방배 노인복지관에서 알선해 준 서초 여성플라자에서 매일 12시에서 오후3시까지의 3시간 방역관계 일을 11월말에 마치고 집에서 쉬다보니 생활리듬이 깨지고 몸이 근질근질하여 다시 시작되는 내년 2월까지(다시 불러줄지는 확실히 모르지만) 두달동안 무얼 할까 궁리를 하다가 당분간은 국립중앙도서관에 가서 책을 좀 읽기로 작정한다. 내가 하던 사업을 그만두고 국립도서관에 다니던 때가 벌써 10여년이 넘었는데 오늘 정말 오랜만에 고속버스터미널을 나와서 도서관쪽으로 걸어 올라가니 거리가 많이 정돈돼 있고 낯이 많이 익다.
12시 가까운 시간에 올라가니 벌써 점심시간이라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을 보니 배낭을 매고 올라가는 내가 쑥스럽기도 하고 군중속의 소외감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한다. 날씨가 그리 춥지 않고 도서관 올라가는 길옆 하얀 억새꽃들이 하늘하늘 춤을 추며 길 건너편에는 서울성모병원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는데 몇년전 중병에 걸린 손아래 처남의 병문안을 위해 들락날락 하던 일의 어두운 기억이 되살아나기도 하고 이미 고인이 된 그를 그때 좀 더 잘 보살펴 주었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기도 한다.
어느 신문에서 시인 기형도가 종로2가 어느 한 극장에서 죽자 기자출신 작가 김훈이 애도의 글을 썼는데 그중에 원효의 게송을 인용하여 " 가거라 그리고 다시는 생사를 거듭하지 말아라. 인간으로도 축생으로도 다시는 삶을 받지 말아라. 썩어서 공이 되거라. 네가 간 그곳은 어떠냐. 누런 해가 뜨고 흰 달이 뜨느냐 " 한 글이 생각난다.
도서관의 아름다운 자태는 그대로인데 모든 시스템이 컴푸터화돼 있어서 컴맹비슷한 나는 완전히 구시대 사람이 된것같아 뒷걸음 치는 기분이다. 사실 내가 도서관을 찾은것은 나의 책을 들고 가서 오후까지 읽고 오려고 하는것인데 모두 예약시스템이고 또한 책을 가지고 들어갈 수 없어서 어쩔까 하다가 지하3층 일부공간에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이 있어 당분간 거기서 시간을 보낼까싶다.
책을 좀 보다가 시간이 1시쯤 돼서 구내식당으로 가 봤다. 점심메뉴가 돼지고기볶음 김치 무우국등으로 해서 단가 5,000원이다. 식판에 담아서 먹는데 저 앞쪽에 80넘어보이는 노인부부가 식사를 씩씩하게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저 부부는 식사하는 걸 보니 두 분이 다 백수는 할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식사를 저렇게 잘 할수 있다는것도 큰 복이구나 싶다. 손님의 과반수 이상이 노인들이다. 나도 노인이지만 식당이 노인식당같아서 기분이 씁쓸하기도 하다.
오늘은 처음이라 늦게 왔지만 내일부터는 10시쯤 거기에 도착하여 독서를 하다가 점심식사도 하고 가벼운 운동도 잔디밭에서 좀 하고 다시 책을 읽다가 오후 4시경 귀가하는쪽으로 스케쥴을 잡아야겠다. 22.12/8 (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