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을 위한 파리아스 감독 특유의 공격축구는 K리그에 제2의 파리아스가 나와야 하는 이유다.(사진 김수홍)
수원 삼성과 포항 스틸러스의 K리그 플레이오프가 열린 10월 31일 수원월드컵경기장. 포항의 수비수 조성환이 정성룡 골키퍼에게 백패스를 하는 순간 멈칫거리며 벤치를 향해 오른팔을 든다.
‘백패스를 싫어하는 남자’ 세르지오 파리아스 감독에 대한 양해의 표시다. 포항의 수비수 황재원은 “처음엔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이젠 골키퍼에게 백패스를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 플레이가 됐다”고 말했다.
황재원은 “파리아스 감독은 수비수도 공격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으며 세트피스 때에는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해 골을 넣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미드필더 황진성은 “처음엔 무조건 백패스를 하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했지만 요즘은 방향 전환을 위해 필요할 때는 백패스를 한다”며 “파리아스 감독이 말하는 백패스는 불필요한 백패스를 말한다”고 설명했다.
파리아스 감독과 3년 동안 생활한 선수들은 이제 그가 추구하는 축구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가시적인 성과도 올리고 있다.
포항은 지난 시즌 정규리그에서 42골을 기록하며 전후기 통합순위 2위에 올랐다. 1위를 차지한 성남 일화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득점이다.
그러나 올시즌에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정규리그에서 27골밖에 넣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기내용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포항은 올시즌 성남과 챔피언결정전 1차전까지 30경기에서 311개의 슈팅으로 경기당 10.4개의 슈팅을 기록했다. 경기당 9.8개였던 지난 시즌보다 많다.
고기구와 프론티니 등 주축 공격진이 전반기에 극심한 난조를 보인 것이 득점력 빈곤의 가장 큰 이유다.
포항은 후반기에 브라질 공격수 슈벵크와 조네스를 데려와 13경기에서 16골을 터뜨렸다. 13경기에서 11골을 넣는 데 그친 전반기의 공격력 부진을 만회했다.
포항의 창 끝은 날이 갈수록 날카로워졌다. 6강 플레이오프부터는 특급 조커로 성장한 이광재까지 공격에 가세했다.
포항은 11월 4일 포항 스틸야드에서 열린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서 활화산 같은 공격력으로 성남을 3-1로 완파했다.
브라질축구를 보는 듯한 경기내용과 3-0으로 앞서 있는데도 상대를 몰아치는 화끈한 공격축구에 팬들의 환호가 이어졌다.
3-5-2 전형의 편견을 깨다
축구팬들에게 3-5-2와 같은 스리백 전형은 수비적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2002년 히딩크 감독의 3-4-3 그리고 '유로 2004'에서 그리스를 우승으로 이끈 오토 레하겔 감독의 3-5-2는 모두 수비에 무게를 둔 전형이다.
좌우 윙백이 수비에 가담해 5-3-2 전형으로 바꾼 뒤 수비를 강화하고 빠르게 역습할 수 있다.
러시아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거스 히딩크 감독은 10월 18일(한국시간) 모스크바에서 열린 '유로 2008' 조별리그에서 3-4-3 전형을 들고 나와 잉글랜드를 2-1로 꺾었다. 꼭 잡아야 할 강팀을 상대할 때 유용한 전형이다.
그러나 단기 대회가 아닌 리그에서 스리백을 쓰는 팀은 CSKA 모스크바 등 몇몇 팀을 빼면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압박과 점유율을 높이는 3-5-2 전형은 많은 반칙이 나오고 백패스가 늘게 돼 클럽 축구에 대한 팬들의 흥미를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수원과 포항이 겨룬 2004년 K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 두 팀은 수비에 무게를 둔 3-5-2 전형으로 맞서 경기의 재미를 반감했다. 두 팀은 2차전 연장전을 포함해 1,2차전에 걸친 210분 동안 단 한 골도 성공하지 못했다.
2차전에서 골 포스트를 맞춘 포항 이민성의 슈팅과 승부차기에서 김병지의 마지막 슈팅을 막은 수원 골키퍼 이운재의 환호에 팬들이 잠시 흥분했을 뿐이다.
3-5-2 전형도 마음만 먹으면 역동적인 공격축구를 할 수 있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필리페 스콜라리 감독이 이끈 브라질은 호케 주니오르와 루시우, 에드미우손 등 스리백 위에 뛰어난 윙백인 호베르투 카를로스와 카푸가 자리를 잡고 화려한 공격축구를 펼치며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포항의 파리아스 감독이 바라는 것도 공격형 3-5-2 축구다.
파리아스 감독은 올시즌 박원재와 최효진을 K리그 정상급의 공격형 윙백으로 키웠다. 공격 가담 횟수는 카를로스와 카푸에 미치지 못하지만 공격적인 성향은 그들에 못지 않다.
2004년 포항의 윙백이었던 문민귀와 강용이 파리아스 감독을 만났다면 어땠을까.
포항의 미드필더 황지수는 “당시 최순호 감독은 파리아스 감독과 많이 달랐다. (최감독은)볼 점유율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백패스를 해도 별다른 제재가 없었다”고 말했다. 같은 전형이라도 감독이 다르면 선수들의 성향이 바뀔 수 있다.
팬의 중심에 선 기술 축구
유난히 판정 시비가 많았던 2007년이다.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만난 몇몇 심판에게 물었다. K리그에서 가장 좋아하는 팀은 어디냐고. 이구동성으로 등장하는 팀이 포항이다.
포항은 K리그 심판들에게 인기가 많다. 심판에 대한 선수들의 항의가 거의 없고 벤치에서 좀처럼 흥분하지 않는다.
K리그의 한 심판은 “포항은 정말 축구만 하려고 하는 팀 같다”는 말까지 한다. 이 같은 포항의 경기 자세는 팬을 우선하는 파리아스 감독의 지도 방식에서 나온다.
파리아스 감독은 “축구는 골을 넣기 위한 스포츠이며 돈을 내고 입장한 팬들은 골을 넣기 위해 뛰는 선수들을 보고 싶어 한다”고 강조했다.
파리아스 감독은 한국선수들에 대한 편견도 바꿔놓고 있다. 한국축구는 그동안 기술이 부족한 반면 스피드와 체력이 좋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그
러나 파리아스 감독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한국선수들 가운데 브라질선수보다 기술이 뛰어난 선수가 많다. 기술보다는 오히려 어려운 상황을 헤쳐 나갈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말했다.
전진패스를 강조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획일화된 학원축구에서 성장한 선수들은 몸에 익은 축구를 쉽게 바꿀 수 없다.
포항은 포철동초등학교부터 포철공고까지 국내에서 가장 선진화한 유소년 클럽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박원재와 황진성 그리고 잉글랜드와 일본 무대에 진출한 이동국과 오범석 등이 모두 이 시스템에서 성장했다.
파리아스 감독은 청소년 선수들의 발굴에도 풍부한 경험을 지니고 있다. 1997년 이집트에서 열린 17세 이하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서 브라질 대표팀 코치로 일하며 호나우지뉴와 마투잘렘 등 브라질 우승의 주역들을 조련했다.
1999년 뉴질랜드 대회에서는 감독으로 브라질 국가대표로 성장한 디에구를 발굴했다. 2005년 초 파리아스 감독을 영입한 포항의 김현식 사장은 “파리아스는 브라질 청소년대표팀을 이끌고 많은 성과를 거뒀다.
브라질의 기술을 접목하고 유소년시스템에서 육성한 포항의 어린 선수들을 키우는 데 적합한 지도자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파리아스 감독은 1983년 출범 이후 끊임없이 이어지는 국내 프로축구 활성화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팬들을 위해 있는 파리아스 감독 특유의 공격축구는 K리그에 '제2의 파리아스'가 나와야 하는 이유다.
첫댓글 오~ 심판들도 포항을 좋아하는구나1! ㅋ 그러고보면..선수들 간의 난투극이나 이런 거 보면 포항은 거의 없던 거 같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