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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 민주화 운동40주년을 맞아 함께하며, 이에 대해 고찰(考察)한다.
어느 덧 40년인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군이 자국민들을 향해서 무차별적인 폭력을 했고, 총구를 향해서 정조준을 해서 쐈을 뿐만 아니라 헬기 난사까지 했었다.
군인들이 무슨 죄인가? 명령에 따라서 복종한 일이니! 군에서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그것은 어떤 의미인가? 군기에서 명령 불복종은 가장 무서운 처벌이고 이것은 군의 가장 엄중한 문제이다. 모든 군인들은 이 엄중한 규율에 의해서 군인정신이 무장되고, 이 앞에서 그 누구도 거절 할 수 없다.
게다가 최고 사령부의 명령은 군 병사들에게 술을 먹이고 심지어는 정신을 제압하는 약물까지 복용시켰다는 말이 있었다. 왜냐하면 맨 정신으로 자국 국민들을 향해서 총부리를 들이 되며 쏴 댄다는 것은 아무리 군인들이라도 쉬운 문제가 아니었던 문제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경상도나 다른 지역 출신 군인들이 착출 되었다고 했으니 말이다. 그 당시 이 작전에 참여 했던 강원도 출신으로부터 직접 들었던 적이 기억된다. 하지만 이것은 법적으로, 공인 된 언론을 통해서 보도 된 바가 있었는지 모른다. 참여 병사도 당사자가 5.18 발발 30년 후 상세하게 들려주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는 지금까지 우리사회 문제로 지속되어 오고 있지만 결코 문제는 다른 차원이다.
이에 대해서 말하며 주장하여 진지하게 고찰하지 않을 수 없다. 몇 년 전부터 이러한 관점에서 기술해오고 있다. 하지만 오랜 시간 광주 민주화 항쟁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음으로 우리사회는 불신의 골이 더욱 깊어져 오고 있다.
그 뿐이겠는가? 4.19, 부마사건 등, 굵직한 민주화 항쟁들은 어떤면에서는 아직도 진행중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점에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아직도 그 상처가 매년 되살아나며, 우리에게 그 날의 고통으로 슬프게 하는 이유가 지속되며 우리의 마음을 아리게 한다.
그 날의 광주의 고통은 어느 덧 40년의 세월이 되었다. 그런데 아직도 진행형(進行形)이다. 억울하고 순수한 국민들이 원수가 아닌 자기 군에 의해서 너무 많이 죽었던 것이다. 나라 안에 민주화 운동을 확립해가고자 군 쿠데타 세력들의 비정상적인 국가 집권독재를 물러나게 한다는 정의실현이었다.
그런 학생들에게 자국 군대가 무차별적으로 시민들이 보는 눈앞에서 피가 낭자하고 폭포수처럼 솟구치는 장면이 펼쳐졌던 것이다. 길을 가고, 장사를 하고, 학교 마치고 귀가하던 중고생들이 이를 목도하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시골에서 올라오던 시민들이 이를 바라보다가 그 흉측하고 무자비한 군인들의 무차별적인 폭력 앞에서 힘없이 당하는 학생들을 돕고자 자발적으로 학생들과 규합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 무조건 폭력적인 군인들을 광주에서 몰아내고자 말이다.
처음은 민주화를 부르짖는 작은데모 학생들의 거리 운동이었다. 하지만 군인들의 무차별적인 폭력으로부터 지키고자 하는 시민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시민 운동이 되었다. 이는 광주 전체 시민들의 참여가 되어 군인들과 대치상황이 되었다. 우리 한국사회의 잘못 된 그 뿌리를 드러내고자 하는 근본적인 개혁 운동으로 이어지는 민주화 운동의 중심점이 되고 만 것이다.
이를 우리정부와 사회가 간과(看過)하면 안 될 것이다. 그러므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그 원인의 근본 문제를 바로 잡아야 한다. 왜, 5.18 광주민주화가 일어난 것인지? 이를 바로 잡을 때, 가해자들의 문제와 그들의 숨어 있는 조직의 문제가 해결되고, 이것이 우리 국권을 근본적으로 회복하는 중대한 결과로 매듭되어 질 것이다. 이것이 금번 40주년 의의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러자면 다음과 같은 문제들이 선결(先決)로 귀결(歸結)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장 먼저는 왜, 광주 민주화 운동 발발 근원으로써 보이지 않는 면이라 할 수 있다.
이 문제를 바로 보지 못하고 계속 헛 다리 집는 식으로 덮고 넘어가기만 한다면, 또 다른 광주 민주화 운동과 같은 아픔은 우리사회에 혼란의 파장을 가속화 시키고, 온 국민들에게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으로 내 몰아가게 될 것이다.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문제의 진실을 계속 묻혀지고, 사회는 답이 보이지 않는, 지금처럼 개인, 가정, 사회 온 나라를 고통으로 내 몰아가는 민주화 항쟁이니 운동이니 의의를 세우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이런 나라 사건, 사고들이 근본적으로 일어나지 않고, 일어나지 않도록 미연에 막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물론 사회란 다양한 인간들이 모여살기에 얼마든지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을 고의적으로 이용하여 자신들의 목적을 추구하는 집단들이 조직적으로 진행되는 파괴성이라면, 이것은 사회를 언제나 불행가운데로 몰아가고 국민들이 너무나 억울한 일들을 이유 없이 겪게 되는 사회 불안전성이 극성을 부리게 될 것이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이러한 차원에서 바라볼 때, 그것이 완전한 해결로 고통과 눈물의 문제를 바로 해결하고 안정 된 사회 안전망이 제대로 돌아가는 사회 회복이 구동되는 국가사회 기반이 될 것이다.
그러자면, 우리는 일본의 경향성에서 이를 바라 볼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임진왜란은 7년 동안 7곱 차례 전쟁, 결국 조선이 승리함으로써 막을 내렸다. 직후 사명대사는 일본을 수 십 차례 드러다녔다.
그리고 우리 후손들에게 일본의 교활성과 음흉함을 그대로 역사적 서술로 우리에게 전하고자 했다. 일본은 반드시 다시 침략해 올 것이다라고 강조하는 역사적 보고를 남김으로써 우리 후손들에게 교훈을 주면서 경각심을 일깨우고자 했던 것이다.
그 가운데서 지금도 선명하게 읽었던 내용은 붙잡아 간 15만 명의 조선인들 중 가장 어린 아이들을 굶주리고 고통가운데로 내 몰면서 완전히 일본인들로 바꾸어서 20~30년 검객이나 지식인들, 불교 기반들로 쪽배에 태워서 들여보낸다는 내용들을 우리 후손들에게 남기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일본이 65년 한국으로 재입성을 하고, 15년이 지나면서부터 경제와 기술로 우리사회를 컨트롤하며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힘을 갖기 시작하고, 지금처럼 한일 공사(公私)간에 구축되어 오던 인적 자원들의 집중적인 활동들은 한국사회 내의 이와 같은 일본 부정적인 내용들 제거나 내 은밀하게 진행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은 임란 이후 400년의 세월 동안 조선 침략에 대한 세월을 보내면서 국가적 연구 기반을 다져 왔다. 그것이 350년 만에 재침략 준비해 온대로 단행하였고, 오랜 세월 조선 내의 준비 해 온 협력자들을 가동시키면서 교활한 책략으로 조선을 집어 삼키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데 일본 입장에서 우리 한반도에 대한 선결 요건 몇 가지가 있었다. 그것은 일본이 임란 직후 패배에 가까운 상태로 돌아가면서 조선 한 가운데의 강 길이 나 있었더라면 이 하나와 경상도와 전라도 방면으로 늘 상 침략을 해 왔고, 그럴 때마다 전라도와 경상도 지역에 대한 일본의 자체적인 연구가 진행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임진을 일으키고 보니 경상도 쪽은 도망가기 바빴던 것이다.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파죽지세로 경상도 방면으로 침투해 왔던 소서 행장은 거침없이 한양으로 가장 빠르게 올라가서 입성을 했던 것이 아닌가?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라도가 해상과 육로로 막히면서 전라도 한 지역으로 인해서 일본은 전쟁이 실패로 돌아갔던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기류가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추세가 되어오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왜,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전라도에 광주학살의 계책을 펼친 것인가?
이것을 우리사회는 직시(直視)해야 한다. 여기에 우리 국가, 국민적 정신을 집중해서 이 문제를 똑바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일본인 “세지마 류조”란 인물 한 사람을 우리사회는 국민적으로 알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미 본인이 여러 차례 밝히는 노력을 해 왔다. 일본 사회에서는 하나님 같은 인물이다. 그래서 흑막의 황제로 통하는 인물이다.
일본사회 일본 왕보다 더욱 실제적인 힘을 부리는 대상이다. 일본 전 사회를 좌지우지하는 인물이다. 특히 언론들은 이 사람을 기술하려 할 때, 붓을 꺾고 새 붓으로 바꾸어서 기록해가고 본명을 기술하지 않고 철저하게 이니셜로 표기하여 드러내지 않고 보호할 정도로 대단한 존재였다.
도대체 이 인물이 누구 길래 그러는가? 이 사람은 연합군이 승리하고 전쟁범으로 처형을 하는 대표 세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전쟁범 세 사람 가운데 두 사람만 죽고 이 사람은 소련의 유대인 조직들이 죽이지 않고 46년 소련 수용소로 데리고 가서 50년 대 후반까지 약 11년 만에 일본으로 돌려보냈던 인물이다.
그런 그가 미시비씨 일반 직장인으로 취직이 되었는데 그런 그가 일본 사회 흑막의 황제가 되었다는 배경에는 의문스런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사람은 관동군 유사 출신으로 고 박정희대통령의 1년 선배이기도 한 사람이다.
이런 그가 고박통의 65년 한일협정과 함께 우리 한국사회로 은밀하게 들어 온 것이다. 고이병철삼성회장의 안내로 한국사회를 암암리에 누비고 다니면서 정재계 인사들과 사회 유수한 인물들과의 접촉이 즐비하게 이루어진 세월이 만들어져 왔던 것이다.
이때 고박통에게 특별한 관심을 받으면서 승승장구하던 전두환과 노태우가 이병철회장의 주선으로 엮이는 과정이 이루어졌고, 전두환, 노태우 두 사람은 이 사람을 자신들의 인생 스승, 즉 멘토링(mentoring)으로 삼았던 것이다.
왜, 전두환의 광주 학살인가? 이 물음을 일본 입장에서 바라 볼 때, 거기에 정답이 있음이다. 이와 같은 배경적인 역사 문제 속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왜, 발포자나 명령자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가? 이런 흑막의 문제가 개입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사회가 항상 걸리는 것이다.
하남에 우연히 갔다가 새롭게 우리사회에 부상되는 친일 경향의 힘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새롭게 문을 열고 시작한 거대 쇼핑몰인데, 그 여세가 대단했다. 그런데 그 건물 자체가 일본식 건물 구조였다.
어디서 많이 보았다 했는데, 홍콩이나 태국 본인이 선교관계로 나가 경험한 지역들에서 볼수 있었던 일본 현대식 건물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새로운 형태의 건물들로 구축되어 우리사회 돈들을 휩쓸고 가는 것 같은 형국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바로 눈에 들어왔다. 롯데가 우리사회 완전히 그 정체가 드러나고 한일 관계가 옛날 같지 않은 분위기로 들어가자 내부 협력자들이 발 빠르게 이런 식으로 일본을 위한 새로운 형태로 한일 양국 사이 관계 좁히기 경제 몰이가 진행되는 것인가?
선교지에 옷을 다 두고 코로나 상황으로 갑자기 들어 왔기에 그곳 옷이 싸다는 이야기를 듣고 간 것인데 비싸기만 하고 대대형 쇼핑몰이 존재하는 그 앞에 그것이 우리를 속이는 형태의 일본 배경이 아닌가 싶은 느낌이 바로 들어 왔다.
5년 전부터 “한일양국가민간차원가까워지기협의체발대식”이 일본 도쿄에서출범한 이래 급속도로 발전해 온다고 하더니 우리 한국사회 안에서 이런식으로 은밀하게 합법적 구조 아래 거대한 형태로 침략해 오고 있는 것인가?
일본의 한국사회 침투는 모래 속으로 스며드는 물처럼 빠르게 흘러들어오고 있는 추세이다. 아, 그런 것인가? 한일 관계의 불편함을 이용하는 것인가? 지금 한일 관계가 나빠지면서 우리사회 경계를 다른 곳으로 돌려서 이렇게 우리가 일본을 막는다는 허울아래 모래 작전을 펴는 것인가?
철저히 일본을 중심하는 한국사회 조중동 중심이 언론 구조가 일본 한국사회 침략 유형을 보호하니 우리사회 눈과 귀가 가리고 막힌 것인가?
그런데 이곳 4층 잘 보이는 특이한 위치에 한일간이라는 푸드 음식점인지 떡 버티고 서 있지 않는가? 그것을 뒤로 하고 영화관으로 들어가서 개신교 목사로써 고김수환추기경의 어린시절 레파토리의 영화를 아내와 함께 관람했다.
참으로 잔잔한 감명이 일었다. 비록 신앙노선이 다른 구교적인 배경이었지만 이분의 어린 시절, 일제 강점기 때의 우리사회 삶의 애환과 고통이 서린 그 사회적 배경은 고향시절의 비슷한 과거의 환경을 그대로 접하면서 눈시울이 불거지지 않을 수 없었다.
조선의 비참했던 과거적 사회, 특히 어버니의 고생스런 삶의 애환은 그대로 본인 부모로 연결 될 때, 공감됨과 동시에 내 삶을 그대로 동의적으로 느끼도록 하고야 말았다. 잔잔한 감동이었다.
특히 어머니의 아들에 대한 교훈은 사람마다 밭에 씨를 심는단다. 그래서 농부의 씨앗, 교사의 씨앗, 군인의 씨앗, 어머니의 씨앗 등, 거기서 신부로써의 씨앗이란 교훈은 참으로 감동이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중간에 일본 아이들이 등장을 하는 것인가? 지금까지 변질 된 항일 영화들이 과거의 항일 영화들과 기획이나 연출 분장 등,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스크린 화 되어 현대 우리사회 정신과 인식의 변화를 유도하고자 했다.
이것이 MB 정부와 함께 출범한 뉴 라이트의 정부 출현과 함께 이런 항일 드라마나 영화들이 우리사회를 강타하려고 했다. 이것을 우리사회가 간파하고 비판적인 운동들이 일자, 이번에는 이런 단순한 스크린 처리로 명확하게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던 것인가?
그것도 김수환 추기경이란 거인 인물을 선정하여 그 파급력을 통해서 우리사회를 노린 것인가? 이 영화에서 일본적 입장은 두 가지 차원에서 강하게 우리사회를 겨냥했음을 알 수 있었다.
하나는 한일 관계에서 비교 우위를 노렸다. 양자 간 비교를 통해서 상하의 위치 선정을 느끼도록 하는 방식이 그 첫 번째로 반영 된 것이다. 단 한 차례 싸움의 배경으로 나오는데, 일본 아이들이 이기면서 조선 아이들을 경멸하는 이 배경은 일본이 우리에 대해서 언제나 저자세로 일관하는 메시지를 삽입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더욱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은, 일본은 1등 국민, 조선은 2등 국민이란 이러한 배경을 의도적으로 적용시켰다. 과거 한일 과거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는 의도가 배제 된 순수한 우리 중심으로 이런 양자 비교로 한 쪽을 뚜렷이 높이고, 한 쪽을 비참하게 보이게 하는 연출을 하지 않는다.
이것은 일본이나 우리나라 내에 있는 한국인으로 신분을 갈아 탄 일본인들이나 친일 부역자들이 바라보는 일본적인 시각이다. 철저히 한국인들을 자신들의 하인들로 간주하는 저자세 태도이다.
지금도 한일 외교관계에서 이러한 태도들이 얼마나 많이 드러나는가? 일본이 이런 식으로 국제 사회에서 우리를 대한다. 이는 일본이 노골적으로 한국은 자신들의 속국에 속했음을 의도적으로 깔아가는 행보이다.
왜, 고 김수환추기경의 어릴적 이야기를 레파토리로 삼아서 여기에 메시지를 담은 일본적 배경을 부각시키는 메시지를 내 보낸 것인가? 한일 양국민간차원가까워지기가 지금도 프로그램대로 진행되고 있음이다.
이것이 무서운 것이다. 정상적인 양국 배경에서는 일본과 척을 지는 것처럼 하면서 은밀하게 또 다른 사회 측면에서는 한일관계가 일본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청와대에 자국 중심으로 무장 된 인물들이 모두 거두어져 나온 것이다.
다음은, 더욱 더 무서운 메시지를 담은 각본이었다. “내선일체(內鮮一體)” 글귀가 한자표기로 영화 속에서 반영 된 것이다. 이것이 엄청난 힘을 실어서 영화로 우리사회에 내 품고자 했던 것이다.
“본토 일본과 반도 조선은 하나이다.” 이 메시지를 영화, 그것도 김수환이란 한국의 최고 카톨릭 수장, 한국의 교황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을 배경 삼아 내선일체 운동을 전개 한 것이다. 이것은 무서운 일이다.
아, 그래서 위안부 문제를 통해서 화해 치유 재단을 설립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것이 성공을 거두었더라면 내선일체를 이렇게 영화로 간접적으로 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다. 일본 왕 생일 잔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체결 등, 굶직 굶직한 한일 관계 문제들을 합법적으로 진행하려 했던 것이다.
자신들이 오래 전부터 개혁한대로 MB가 성공하고, 박근혜전대통령정부를 이어 그대로 자신들이 정권을 잡고 있었다면, 내선일체는 영화로 반영하고자 했던 문제가 아니다. 그런대 예상하지 못했다. 우리사회 이렇게 반 일본 정서가 강렬할지, 이 정도 일 줄이야 몰랐던 것이다.
영화로라도 일본이 구상해오고 있었던 국가 백년대계를 진행하고자 해오는 것이다.
5.18광주민주화 운동은 이러한 차원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전두환, 노태우가 한국사회 내부 간자들로 첩보역할로 행동하여 국민들을 도륙했으니 마땅히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두 번 다시 나라에 세워진 지도자로 인해서 국민들이 억울하게 당하는 일이 영원히 없어질 것이다.
만일 일본과 관계해서 우리사회 이런 정치적인 사안들을 바라보지 않고 우리나라 내부 문제로 보고자 하여 외관상 해결, 즉 상처를 외형에 드러난 피부에만 약을 발라 덮고 그것으로 해결이다라는 식으로 넘어가기만 한다면, 또 다른 광주 민주화 항생은 발발할 것이다.
수많은 오랜 세월 국민들이 도륙 당하고 해결 받지 못하고 울며, 고통하며, 그것으로 정부를 향해서 항거하는 모습이 길어진다면, 온 나라는 암울해지고 불신으로 계속 골이 깊어져서 싸우는 대한민국만이 있게 될 것이다.
40년 동안의 세월, 그런데 가해자들이 왜? 드러나지 않고, 제대로 판결이 이루어지지 않는가?
우리나라가 주권을 행사하는 유일한 권력의 최 상층부라면, 결코 이렇게 애매모호한 처리로 끝나지 않는다. 이는 우리의 영향력보다 더 강한 힘이 배후에서 조절하는 힘이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일개 검찰이 자기 정부와 직접 전쟁을 벌이는 힘은 무엇인가?
이런 검찰공권력 집단들이 자신들 내규, 혹 총장 개인적인 정치 놀음으로 정부 직접 겨냥하는 헤게모니적 태도는 바로 이러한 배경을 반영해 주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또 다른 요인들이 작용하는 복잡성도 배제할 수 없다.
권력은 그 자체가 인간들을 유혹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힘을 손에 쥐거나 쥐려고 욕망을 숨기고 있거나 그 매력에 사로잡힌 자들 또한 더 욕심을 부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왜, 전라도를 겨냥한 것인가? 일본 입장에서 전라도는 예로부터 걸림돌 지역이었다. 그래서 그 지역을 무법천지내지 무력한 지역으로 만들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일본이 다시 한반도를 노리는 일본 입장에서 전라도를 바라보는 그 음성적인 정치가 전두환 같은 인물들을 찾은 것이다.
그것인 신천지, 통일교 같은 이단과 사이비 집단들로 전라도 지역을 초토화 시키도록 한 것이다. 그래서 전라도 지역이 다른 지역에 비해서 이단성이 더욱 강성을 띄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임진 때 전라도 지역에 강렬한 정신적 배경의 국민적 환경을 제거하는 작전이 은밀하게 적용되는 것이다.
우리정부와 사회는 정신 차리고 일본에 대해서 직시해야 할 것이다. 일본은 코로나19 사태에 대해서 우리 정부의 세계 속의 역할을 시종일관 부정하는 태도를 취해왔다. 또한 우리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에 있어서 저자세로 일관되게 행동해 왔다.
게다가 진단 시트에 대해서도 세계가 인정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과 아베는 의문을 제기하는 여론몰이를 했었다. 우리 사회 언론들이 문제를 삼지 않아서 그렇지 일본 코로나19 문제는 우리에게 엄청난 역공이 은밀하게 펼쳐 질 것이라고 간주 된다.
그런데 아직도 일본과 좋은 방향, 관계를 부르짖고자 하는가? 일본이 코로나19 문제에 도움을 구하고 나올 때, 우리 정부는 쉽게 손을 내밀어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작전으로 우리를 곤란하게 하고 들어오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오늘 광주의 5.18 광주민주화 운동 기념식, 정말 뜻깊은 행사로 나라의 안정을 가져 오는 날이 되기를......
본인도 이날 이후 여수에서 신학교 100명의 학생들이 올라가려고 했었던 기억이 역력하다. 그런데 사태가 일단락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우리 학생들은 결정을 내려 놓았던 기억이 인다.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 한다. 불행한 사태가 발발한 후에 이렇게 오랜 시간 고통을 않아야 한다면 그것이 민주와 항쟁이 된다고 고통당하는 분들과 가정들에 무슨 이득이 되겠는가?
한 사람의 변절자, 혹은 소수의 변절자들, 은밀하게 일본인 스승을 인생 멘토링으로 삼은 소수의 사람들의 드러나지 않는 은밀한 계략이 나라에 불행을 몰아오는 구멍 뚫린 사회라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러므로 우리정부와 사회는, 더 이상 끌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와 동시에 우리사회 안에 불행을 내몰아서라도 자신들의 목적을 추구하고 달성하려고 하는 사악한 자들을 몰아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근본 문제를 끊어버리는 것이 나라 안에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을 바로 잡고, 두 번 다시 이런 불행한 사건들이 발생하지 못하도록 막아내는 강력한 나라 체제를 구축하는 길이 될 것이다.
축복 된 40주년 광주 민주화 운동의 기념식이 펼쳐 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이제 우리 광주민주화 운동본부, 그리고 우리 정부는 확실하게 이 문제를 매듭짓고, 더 이상 이 문제가 고통의 문제가 아니라 계속 이런 문제들이 슬픔의 문제들로 이어지면 나라 환경과 분위기가 별로 안 좋다.
완전 해결로 더 이상 고통이 아니라, 이 문제의 근원이 일제 강점기로부터 완전해결이 안 됨으로써 끊임없이 우리사회 안에서 반복되는 것임을 직시하고,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서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일본 근원의 문제를 끊어내는 것이 우리나라 진정한 문제 해결임을 공감하는 온 국가적 각성(覺醒)의 날로 승화되는 기념식이 진행될 수 있기를 간청드리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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