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백화점
김 용 림
길거리에는 여러 종류의 가게들이 많이 있지만 상점 아닌 노점상들도 많이 있다. 특히 여성의류점이 많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나는 그런 곳에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옷 구경도 하고 옷 골라 사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내가 관심을 갖는 옷에 상인은 ‘이건 백화점에 나가는 상품인데 어쩌고저쩌고,’ 하며 나를 유혹한다. 그래, 짝퉁이라도 좋다. 값 싸고, 내가 사주면 당신 좋고 나 좋고 하는데, 하고 몇 가지씩 사들고 오기 일쑤다. 그러나 집 문 앞에 도착하면 곧 걱정이 앞선다. 언제나처럼 또 남편은 나한테 한 벌을 사더라도, 비싸더라도 메이커 있는 고급스러운 정품매장에서 사 입으라고 핀잔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귓등으로 흘려보내고 만다.
그동안 유명한 양장점에서 몇 차례에 걸쳐 가봉을 해가며 정장도 맞춰 입어봤고 메이커 제품이라고 해서 비싼 옷을 사 입기도 했었다. 그러나 큰 액수만큼 나는 한 번도 멋지게 만족하게 입어보질 못했다. 비싼 옷인만큼 언제나 드라이클리닝을 해야 했고 자유롭지 못해 행동하기에도 불편했다. 또, 아끼다가 그만 유행이 지나버리기도 하는데 아까워서 과감히 버리지도 못해 장롱 속에서 자리만 차지한다. 그래서 자연히 디자인이 예쁘고 물빨래에 편하고 저렴한 제품을 선호하게 되었다.
시골에서 평생 농사만 짓고 사는 어떤 할아버지가 있었다. 손녀사위를 잘 얻어 최고급 양복을 얻어 입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결혼식장에서 사진 찍느라 딱 한번 입고 집에 와서 바로 벗어 장롱 속에 걸어두었다. 얼마 후 아들이 옷장정리를 해주다가 좀이 먹어 완전히 망가져버린 양복을 발견하게 되었다. 속이 상했지만 어쩌겠는가. ‘개 발에 편자’가 되고 만 것을. 그러게 옷도 분수에 맞게 입어야 한다.
나는 다행히 일찍 주제파악을 했다. 나는 표준체격이라 무슨 옷이든 걸쳐보기만 하면 내 몸에 딱 맞는다. 그리고 친구들이 내가 입은 옷에 칭찬을 많이 한다. 그럼 나는 웃으며, 그래, 돈 조금 줬지. 얼마 줬는데? 하고 꼬치꼬치 캐물으면 그때서야 ‘아, 길 백화점에서 돈 쪼끔 주고 사 입었다구’ 하면 평소 검소한 나를 이해한다.
해가 갈수록 나는 점점 내 눈에 드는 옷, 내 수준에 맞는 가격을 찾는다. 공무원의 아내로 자식 셋을 대학교까지 마칠 수 있었던 것도 나는 서민체질이란 주제파악을 하고 대왕소금 노릇을 했던 것이 한몫 거든 셈이다,
모임에 나갔을 때 친구들이 오늘 옷 참 예쁘다 어디서 샀어? 하다보면 알려고 하지 않아도 서로 간에 걸치고 나온 옷값들은 대화중에 자연 알게 된다. 간혹 나도 모르게 입이 쩍 벌어질 때도 있다. 재킷 하나에 160만원, 블라우스 하나에 몇 십만 원, 심지어 평범하게 보이는 청바지 하나에도 기 십만 원이다. 내 생전에 3만 원 이상 하는 청바지는 구매해본 적이 없는데 친구들은 덜컥덜컥 몇 개씩 잘도 사 입는다. 나는 끝에서 0을 두 자리까지나 떼어야 사 입겠는데 말이다. 그래도 나는 샘나지 않는다. 값에 비해 내 옷보다 더 좋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인 중에 유독 튀는 교수부인이 있다. 그녀의 취향은 참 독특했다. 키도 크고 날씬한데 부지런해서 스포츠센터에 개근한다. 두 아들이 장가갈 나이가 되었는 데도 몸매는 S 라인, 언제나 긴 머리에 어디서 사 입는지, 그 나이에 절대로 소화할 수 없는, 모델들이나 입을만한 옷인데도 그녀한테는 아주 세련되게 잘 어울린다. 종아리까지 올라오는 망사 부츠에 짧은 반바지, 풍성한 가방을 어깨에 메고 알이 굵은 진주 목걸이를 하고 나타나면 쳐다보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녀는 당연히 고급 옷만 입는 귀부인인 줄로만 알았다. 나는 길 백화점을 좋아한다고 고백했더니 그녀 역시 길 백화점 쇼핑을 즐긴다고 한다. 의외였다. 그렇잖아도 멋진 여자가 더 멋져 보이는 건 웬 심술일까 아니면 위안일까.
나는 여자로써 당연히 좋아해야 할 목걸이, 반지, 팔찌, 모자, 양산 같은 액세서리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대신 이불, 가방, 구두, 옷 같은 것들을 많이 잘 사는 습관이 있다. 집에 많이 있는데도 길 가다가 나도 모르게 사게 된다. 그 이유야, 그냥 예뻐서, 저렴해서란 핑계가 많다. 그런 충동구매는 제발 그만하라며 남편이 또, 딸이 만류해도 소용없다.
초등학교 때 나의 옷은 어머니의 취향대로 입혀졌다. 농촌이기 때문에 어머니가 5일장에 가서 사 오신다. 언젠가 여름에 알록달록 꽃무늬가 많은 포플린 간따후꾸를 사다 입혀주셨다. 지금 말하는 원피스다. 내 맘에 쏙 들었다. 간따후꾸를 자랑하려고 나는 괜히 동네 한 바퀴를 돌기도 했다. 여름 내내 그 옷만 입고 살았는데도 여름 가는 것이 섭섭했다. 나는 바로 위아래에 언니 동생이 없기 때문에 내 옷은 내가 닳을 때까지 입어야 했다. 그 간따후꾸를 졸업할 때까지 입으니 나중에는 초미니가 되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교복을 입고 정해진 체육복을 입었기 때문에 잠옷 정도에만 관심을 가졌다. 새 옷을 살 때마다 내 맘에 들었던 간따후꾸의 아름다운 추억이 떠오른다.
서울 중앙선 전철에서 내려 환승역인 3호선 옥수역으로 가는 길은 마치 공룡 뱃속을 통과하는 것 같다. 그 길 한쪽 옆으로 많은 가게들은 꼭 공룡뱃속의 융털 같다. 여기에도 거의가 여성의류점이다. 이곳을 지날 때마다 나는 철 따라 진열된 옷들 하나하나에 저절로 눈이 간다. 때로는 만져도 보고 가격도 물어보고 입어도보고 가격이 맞으면 사기도 한다. 그러나 남편과 함께 갈 때는 쳐다 볼 수도 없다. 내 눈길이 간다싶으면 벌써 또, 또, 하면서 팔을 잡아끈다.
오늘도 옷 몇 가지를 사들고 왔다. 번호 키를 누르고 들어와 바로 문간방으로 들어가 감춰놓고 나왔다. 나중에 입고 나서면 남편은 ‘이 옷 언제 샀어? 못 보던 옷인데?’ 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언제나 그랬듯이 응, 언니가 사 줬어, 친구가 하나 사줬어, 오래됐어. 하고 둘러댈 참이다. 그러면 순진한 우리 남편 예쁘게 잘도 속아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