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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2일(일) 씨알예배 후기
2014년 10월 12일(일) 씨알예배 후기
일시: 10월 12일 11:00- 12:30 참가자: 우주, 모닥불 부부. 의주, 은선 부부. 자작나무. 늦빔
어제 작은교회박람회 행사의 흥분되고 유쾌했던 분위기가 오늘 예배에서도 그대로 연속되고 있었다.
10시 40분쯤 생각의 집 뒷마당으로 들어서려는데 담장 밑에 세운 차에서 의주님이 보이고 그 옆에 부인도 같이 보였다. ‘아, 부인과 한번 같이 오겠다고 하더니 드디어 오늘 함께 왔구나’하는 생각에 반가왔다. 차 옆에 자작나무님이 서 있었다. 나는 집으로 들어가면서 자작나무님께 “어떻게 알고 거기가 있었어요?”하고 물었다. “아니에요. 먼저 와서 산책을 하고 있는데 차가 도착했어요.” 그러고보니 생각의 집 현관에 놓여 있던 샌달을 신고 있었다.
의주님 부인 은선님은 보수적인 제도교회를 다니는 분이다. 그래도 남편인 의주님이 목사님이시니까(의주님은 교회 개척을 했던 적도 있으시다)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한 측면도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오늘은 의주님이 늦빔이 스마트폰 사진을 찍느라고 항상 사진에 없다고 셀카봉을 가져 와서 같이 찍었다.
셀카봉에 스마트폰을 예약으로 해놓고 의주님이 찍은 사진. 자작나무님이 이땐 자리에 없었다.
왼쪽이 늦빔, 옆에 의주님이 셀카봉을 쥐고 있다.
오늘은 말씀나눔 시간에 늦빔이 어느 대목에서 격하게 울먹이며 얘기하는 통에 옆에 앉아 있던 자작나무님도 같이 울었다.(말씀묵상 나눔 참조)
예배가 끝나고 좀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눌 때는 은선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편해 보이셨다. 의주님은 아마도 씨알예배공동체가 분가를 하면 자신이 제일 먼저 할 것같다고 말씀하셨다. 본인은 부천에서 카페 교회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함께 카페를 창업하는데 아이디어를 보탰다. 의주님은 카페 이름을 ‘미라클’이라고 붙이고 싶어하셨다. 늦빔은 차라리 이름을 ‘기도’나 '프레이어'(prayer)로 정하면 어떨까 의견도 냈다. 그리고 기독교 목사가 프랜차이즈점까지 낸 <포터스 커피숍>을 소개해 주었다. 그 외에도 자작나무님이 결혼전에 14일 금식기도 끝에 꿈으로 환상을 본 얘기 등. 이야기가 끝이날 것같지 않아서 오후 3시 10분에 늦빔이 이제 그만 일어날 것을 제안했다.
우주님이 이번 주에는 마당의 밭에 심어놓은 고구마를 캘 것이니 고구마 순을 따가라고 했는데도 너무 늦어서 그냥들 나왔다. 자작나무님이 고무마 순을 좋아했는데 아쉬웠다.
자작나무님은 문산 사는 조카의 전화를 받고 따로 버스 타고 일행과 반대 방향으로 갔고, 늦빔은 지난 주와 같이 의주님 차를 타고 가다가 고양동까지 와서 내렸다. 차 안에서 은선님은 우리가 하는 얘기를 들어보니 다들 보통 수준이 아니라고 하셨다. 왠만한 사람은 적응하기 힘들겠다고 하셨다. 내가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은선님이 차 안에서 유쾌하게 웃으며 인사를 하셨다.
말씀묵상 나눔
우주: 나한테 다가오는 이 구절이 주님과의 만남에 있어서 삼십대 초반에 감히 주님을 시험했던 구절이기도 했어요. 이게 증명이 됨으로해서 주님께 더 가까이 가게 되었어요. 30대 초반에 소중한 추억인데. 그래서 제가 이 구절을 가장 귀하게 보는 구절인데요. 26절 공중에 새를 보아라.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으나,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 그것들을 먹이신다. 너희는 새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정말 30대 초반에 어려울 때 과연 하나님이 이렇게 하실까? 그렇게 하시더라고요. 그래 지금까지 그렇게 해 온 것 같에요. 생생한 증거가 됐거든요. 이 구절에 대한 얘기를 해 왔는데 여기서 아마 신앙의 척도가 갈리는 거 같에요. 믿음의 척도라고 그럴까? 이걸 어느 정도, 어느 정도가 아닌 100% 믿어야 되는데 지금도 성도들이 많이 믿었고. 저는 큰 경험을 했기 때문에 이 구절에 대해선 그만큼 담대히 증거할 수가 있어요. 제 삶이 증거이기 때문에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시는 것을 이 구절을 통해서 깨닫고 나중에 예수님까지도 영접하게 되었지만...저한텐 굉장히 의미가 깊은 구절입니다. 이 구절을 택하신 예배도 소중한 운명이 아닌가. 다시 한번 생각하고요. 주님 안에서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성령의 도움으로 항상 주님의 중심에 서있을 수 있도록 한번 더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너무 감사하고 너무 은혜가 되는 시간입니다. 저는. 끝으로 한 가지 더 붙이면 세상 사람은 뭐 그렇게 산다고 하지만 믿는 기독교인이라도 이 구절을 백 프로 믿고 이렇게 나아 왔으면 세상이 이렇게 돈으로 사람을 사고 팔고 하는 지경까지는 오지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너무 귀한 구절이라 제가 눈물이 날 정도로 대하게 되는 말씀입니다.
모닥불: 저는 25절에 “목숨을 부지하려고...” 그리고 33절에 “너희는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인데 저는 사회복지사이면서 제가 만났던 사람들은 청소년이나 이런 사람들이 아니라 기초수급생활자나 가정해체되고 어려운 분들. 또 할머니 할아버지 분들, 독거노인 분들. 알콜중독이나 중독자가 있는 가족들을 보는데. 죽는 사람들을 이렇게 참 많이 봤어요. 그리고 죽진 않았어도 정말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 계속 봤고. 근데 그 분들이 어떤 처지에 있든지 제가 너무... 정말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울먹임) 마음이 안타까울 때가 있어요.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면서 근심걱정을 떠맡아서 이렇게 살고 원망하고 끝내는 돌아가시고... 그 분들의 나이가 팔십, 칠십 어떨 땐 구십도 있고. 중요한 거는 제가 왜 살다가 가는 지를 모르겠더라고요. ‘그 죽음이 불쌍하다’ 이게 아니라 70년 동안 왜 오래 사셨을까? 또 40년 동안 왜 사셨을까? 얼마전에 탈북해가지고 스물 여섯 살 청년이었는데... 탈북해서 가정도 잃었어요. 애가 한 살인데. 일찍 결혼했나봐요. 그렇게 힘들게 힘들게 아주 목숨을 걸고 넘어 왔는데 알콜중독으로 병원에 입원하자마자 거기서 이렇게 금단현상이 심해서 죽었어요. 그런 사례가 거의 드문데. 젊은 사람은. 제가 막 통곡이 나오는 거에요. 저 사람은 왜 탈북했을까? 삼팔선을 넘어서 목숨을 걸고 왔을 텐데. 왜 이 땅에서 그 술 하나 이기지 못하고... 사회부조리를 보면서 막 분노하면서... 이 땅에서 살기 힘들다고... 목숨을 부지하려고 애 쓰면서 사는 거에요. (넘어) 오니까 비교에 너무 시달리시는 거에요. 난 여기 왔더니 마티스 타고 다니는데 누구는 이 차 타고 다니고, 나는 여기에 임대 아파트에 사는데 누구는 더 좋은 아파트에 살고 있고. 저는 청년으로서 그 분이 여기까지 넘어와서 본 시각이 너무 괴로웠던 거에요. 그렇게 대화할 때도 괴로웠지만. 그 분이 그렇게 뜻밖에 죽을지 몰랐었어요. 젊은 사람이... 고독사로 이런 저런 가정사 겪고 외로워서 죽는 할머니나 아무튼 목숨을 부지하려고 한 삶이 있구나. 제가 알콜중독자들을 봐도 대부분의 많은... 정말 이렇게 회심해서 제대로 단주생활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 분들은 정말 도전을 주시는데... 그 외에 대다수의 굿힙구 프로의 그런 분들은 오늘도 원망을 하면서 목숨을 부지하려고 사는 거에요. 주님이 참 잘 보셨다. 이 땅에 사는 우리들에게 너네가 사는 삶이 목숨을 부지하려고 사는 삶이다. 적어도 나는 따르려면 이렇게 살아가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뭔지 하나님의 정의가 뭔지는 알고 살아가라고... 이 땅에 우리를, 사는 목적이 이런 거다. 이런 거를 똑같은 삶 속에서 똑같이 사면서 이것을 놓쳐 버린다면 죽음이 정말 덧없다라는 생각이 드는 거에요. 그래서 저는 오늘 주님이 예전에는 몰랐는데 우리의 삶을 한마디로 말씀하셨구나. 목숨을 부지하려고 사는 삶이다. 인생이라는 게. 그렇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서 주님이 오셨는데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정의가 뭐냐고 하나님의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원망하면서 그 길을 구하여라고 이야기하는데. 있다라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구해라 그러면 그 모든 걸 주실 것이다.라고 우리가 찾아야 된다고 이렇게 맗씀을 하시는 구나. 그리고 비유를 들꽃에다가 이렇게 하시면서 장미꽃도 아니고 들꽃이 솔로몬보다 더 잘 입었다. 제가 오늘 여기 자작나무님이 들꽃을 꺽어서 가져 오셨는데 참 하나님이 입혀 주시는 게 사람이 아무리 화려하게 입어도 꽃보다 못하다고 말씀하시는데 이 들꽃도 삶의 의미를 알고 하나님께 모든 걸 의탁하면서 가는 삶을 산다고 주님이 그러시는구나. 그런 생각들을 오늘 읽으면서 하게 됐던 거 같에요.
의주: 오늘 말씀 묵상을 멘트하시고 진행하시는 게 저번과도 다르고 그래서 굉장히 예배가 정말 변화하는 예배다. 그런 생각이 들었구요. 제가 처음에 참석하자마자 세 번째까지는 아무 소리 안해야 되겠다.(일동 웃음)라고 생각한 이유가 선입감 때문에 오해하실까봐 이제 좀 그런 마음도 있고 해서 말씀을 안 드리고 참았는데 교제하는 중에 선입감이 없어지고 말씀을 드려도 되겠다하면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다하는 말씀이 저는 꽂혔는데. 저번 주에도 그렇고 자기를 위해서 구하는 것과 진정한 자기, 참 하나님을 위해서 구하는 것하고는 차이가 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교회와 하나님 나라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죠. 다르다는 것은 아니고 그러니까 우리가 이제 조금 뭔가 오해하고 있는 것들이 몇가지 있다는 건데. 마태복음 22장에 보면 혼인잔치 비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잔치에 초대했는데 사람들이 오질 않았어요. 그래서 누구든지 초댈 했어요. 선한 사람, 악한 사람, 가난한 사람, 아무 상관없습니다. 다 모이게 했는데 근데 그 뒤에 뭐라고 주인이 이야기하냐면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쫓아 내 버리신 거에요. 그러니까 교회는 선한 사람 악한 사람 누구나 다 택해서 왔지만은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고 그냥 참석한 사람은 쫓겨난다. 하나님의 나라를 참석하는 사람과 교회를 참석한다는 것하고 차이가 있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이 씨알예배공동체를 참석하면서 정말 인위적으로 사람이 생각해서 계획을 하고 기획을 해서 예배공동체를 만들고 교회를 만들고 그런 것이 아니라 저절로 생기는 것도 있구나. 사람이 만들지 않고 정말 성령이 인도해서 예배공동체를 이렇게 형성하게 하는 것이 있다. 그런 걸 느꼈습니다.
늦빔; 저는 이 하나님과 재물을 아울러서 섬길 수 없다는 말에 뭔가 예언자적인 마음이 들어왔어요. 한국교회가 정말 물량주의에 빠져 있고... 어제도 CBS TV를 좀 봤어요. 우리 뉴스가 나오나해서(일동 웃음). 근데 이게 CBS 라디오 방송은 그래도 뉴스를 바로 보내는데 이게 하루에 두 번 오전에 한번 있고 오후에 한 번 있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껄 못봤어요. 근데 이제 그러다가 밑에 CTS인가 하는 TV를 채널을 돌려서 보니까 ‘한국교회 이대로 좋으냐’하는 토의를 하더라구요. 근데 신 누군가, 메가처치 반박 그런 걸 쓰신 분도 나오고 서길원 목사라고 상계동 쪽에 교회가 있는. 아무튼 개혁적인 분들이 나와서 말씀을 나누는데 한국교회가 문제잖아요? 대형교회 중심으로 메가처치들. 너무 시스템 중심으로 사람 위주로 하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 규모가 커지면 완전히 시스템화돼서 목사는 CEO처럼 결정만 주로 하고 아랫사람들이 그걸 받아서 운영하는 것이 교회다.그러면서 이삼백명 넘어가면 공동체성을 잃어버린다. 이런 얘기도 하는데. 근데 왜 메가처치가 왜 그렇게 되느냐? 우리 시간에 무슨 교리같은 거 얘기하긴 그렇지만 이게 그 장로교. 그 칼빈의 예정설이 있어 가지고... 이건 창조때부터 하나님께 예정되어 있다. 여러분 선택받은 자들. 구원받은 자들. 요렇게 해놓니까 아, 나는 과연 예정받았나? 난 구원받았나?하는 것을 장로교파 사람들이 항상 이게 불안한 거에요. 왜냐면 인간이란 게 자꾸 죄에 빠져 들거든요. 죄 지을 때마다 나는 아닌가보다 자꾸 그러면서... 모르겠어요. 난 칼빈의 기독교강요는 앞부분만 조금 읽다 말았는데 두꺼운 책을. 그 칼빈이 너희들의 직업이 천직이다. 하나님한테 받은 직업으로 알고 직업 속에서 성실하게 열심히... 그래서 너희들이 직업에서 소득이 있고 성공을 한다면 그건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징표가 될 수 있다. 그런 걸 아마 써놨는가 봐요. 그러니까 프로테스탄트들이 열심히 자기 직업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천직으로 알고 열심히 일하고 모으고 그래서 인제 부유해지면 ‘아,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축복받았다.’ 이게 자꾸 그냥 일반화되면서 마치 세속적인 성공과 하나님의 축복, 선택받은 거를 이제 함께 가다보니까 교회에서도 축복받고 자식 잘되고 뭐 세속적으로 성공하고 돈도 벌고... 그리고 헌금 많이 하고 하면 축복받은 사람이 돼서 이제 장로로 피택도 되고 이런 것이 이 하나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다를 근본적으로 뒤흔들어 놓은 게 아닌가? 칼빈이 물론 그렇게 썼을 때는 만인제사장설처럼 성직만 천직이 아니라 일상 세속직업도 천직일 수가 있다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 써놓은 거 같은데 이게 뒤바뀌어 가지고 천직 속에서 나와 있는 성공, 열심히 그냥 성심성의껏 자기 일을 하면 된다. 이런 속에서 소득을 너무 강조한 게 아닌가 싶구요. 근데 저는 여기서 25절이 주제 문장 같고 그 다음에 26, 27. 28 29 30가지는 비유고 31절이 다시 한번 강조하는 것인데. 내가 직장생활하면서 천직으로 알고 열심히 한 거는 한번도 없었던 거 같에요.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살아야 하는데 먹고 살려니까 직장을 택해 가지고 그러니까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리고 또 그 직장에서 떨쳐 나오고... 해고당해서 그만 둔 경우도 있고 대체적으로 내가 못 견디고 그냥 끝내고 끝내고 했는데. 그러니까 먹고 사는 게 항상 딸려 들어가더라구요. 지금도 사무실에서 있는데, 사회공헌 아저씨들 데려다가 일 좀 시킬려니까 왜 그렇게 그냥 시간 죽일려고 앉아 있는지 그것도 보기 싫어 죽겠고. 참 세상은 먹고 살려고 직업을 갖고 사는 게 정말 힘들어요. 그런 측면에서 재단도 하나님 나라 사업을 하려고 모여 있는 곳이잖아요. 유영모 함석헌 배우는 것도 그렇고. 씨알사상도 그렇고. 그런데 그걸 제대로 구현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는가? 재단과 유사한 다른 단체도 노인들이, 이젠 젊은 사람들이 가지도 않는데 거기는 맨날 싸운대요. 총회때마다 언성 높이고 싸우고. 니가 잘 났니, 내가 잘 났니. 머리들만 커가지고. 그래서, 근데 우리 씨알예배공동체 내가 이런 걸 그렇게 바라면서 (지역)YMCA 사무총장도 하고 뭐도 했지만 다들 스트레스 받았어요. 그리고 언제 쫓겨나나?(일동 웃음) 행사 하나 끝나면 이사들에게 업적 보고해야 하고. 학원강사할 때는 머리 나쁜 애들 가르치느라고. 나도 자습서 외어 가지고 그걸 가르치고. 낮에도 사우나 가서 퍼지는 거에요. 그래서 하도 못견뎌서 고향이 속초 쪽이래서 설악산 가서, 그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다리 위에서 내려다 보면 이렇게 계곡물이 흘러가는데 자갈돌 위로 여울이 생기면 햇빛 받아서 반짝반짝해요. 그거 보면 정말 생명을 느껴요. 그런데 나는 죽어 있거든요. 그걸 멍하니 보고 있거든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직장에서 경쟁하고 비교하고. 아까도 탈북자가 와 가지고 한국에서 못견디는 게... 이 경쟁 사회를 도저히 못 견디는 거에요. 나라에서 한 1억 정도 정착 지원금을 식당하라고 주고. 그걸 받아서 함흥냉면집을 하면 잘 될 줄 알았는데. 엄청나게 경쟁하니까 망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이 주인이 맨날 술만 먹는 거에요. 끝나고 소주 세 병 맨날 마시고. 알콜중독자 되는 거죠. 한국 사회가 참 돈은 많이들 버는데 행복한 사람이 별로 없는 거라. 거의 없는 거 같에요. 그런데 씨알예배공동체는 안 그렇잖아요. 어제 (작은교회박람회) 행사... 아, 우리 너무 재미있어 가지고(일동 웃음) (전교우) 다섯 명이 다 와 가지고 그냥 뭐 열 시부터 네 시까지 지루한 줄을 모르는 거에요. 다섯 명이 막 떠들고 히히덕 그러고. 거기에 무슨 씨알사상 배우는 노인들처럼 근엄한 척. 내가 함석헌이야, 내가 유영모야. 이런 거 없어요. 그냥 씨알이야. 그냥 있는 그대로. 떠들고. 근데 앞에 있는 작은 교회는, 이쪽에 새길교회는 그래도 사람들이 있어서 괜찮았는데. 두 분이 하루 종일 앉아 있으니 지루해 가지고(일동 웃음) 우리는 네 시가 되는 지도 모르고 있는데, 세 시 사십분 되니까 진열한 물품들을 치우고 있더라구요. 빨리 가고 싶은 거에요. 그래서 씨알예배공동체같은 요런 작은 조직이 하나님 나라겠구나.
우주: 어제 참 신기했어요. 성령이 인도 안하면 사람들이 그렇게 우리한테 오질 않했어. 다른 교회는 우리하고는 게임이 안될 만큼 경력도 있고 조직도 탄탄하고 그런데도 (둘러 보는)사람이 별로 없었거든. 참 그런 걸 보면 우리가 하는 일은 아무 것도 없는 거에요 사실은. 우리는 그냥 즐기기만 했어요.
늦빔: 그런데 우리가 또 비교하면 안되지만 비교가 되더라구요.(일동 웃음) 다섯 명이 했는데 너무 멋있는 거에요. 도예가 미술가. 프로방스풍 실내디자인 공부하신 분도 있어 가지고. 우리 부스가 삐까 번쩍해 진짜. 돈도 얼마 안들여 가지고. 공임 드리면 몇 십만원. 오륙십 만원되는 그런 디스플레이고 디자인인데. 공짜로 다 해주셔. 그런 놀라운 기적들이 이 하나님 나라가 아닌가. 문제는 하나님께서 먹여 준다고 그래서. 아! 어디서 만나가 떨어지나? 이런 게 아니라. 정말 바울이 가난한 예루살렘 교회에 과부들 구제하기 위해서 고린도나 이런 데서 이렇게 돈 모아서 그 헌금 갖다 주러 예루살렘 갔다가 붙잡혀서 결국 로마로 압송돼서 거기서 죽잖아요. 자기 목숨 바쳐서.(운다) 같이 살려고. 그게 예루살렘 간다고 그러니까 장로들이 그냥 와가지고...안된다고... 내가 꿈에 봤는데 당신 말이야... 이 허리 띠 풀어가지고 묶는 시늉을 하면서 가지 말라고. 그게 예언이겠죠. 근데 우리나라 신도들은 거기까지만 예언을 해요. ‘아, 당신 말이야. 내일 모레 어떻게 돼.’ 근데 진짜 예언은 그게 아니거든요. 바울은 하나님한테 받은 게 있으니까. 왜? 하나님이 너희들 같이 살아라(울음)...그게 진짜 예언이에요. 하나님의 뜻을 말하고 행동하는 게 그게 예언자지, 뭐 그냥 꿈에 봤다고. 환상 봤다고. 당신말이야 이제 (끌려간다고)... (예언하는 사람들) 맞추긴 맞추지요. 그 장로도 맞췄잖아요. 바울이 압송됐잖아요(울먹인다) 그렇게 끌려 갔잖아요. (하지만) 진짜 예언은 바울이 한 거에요. 그렇기 때문에 초대 교회에 그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교회로 와서 이 하나님 나라 속에서 그 재물 걱정, 먹을 것 그런 거 걱정 안하고 살 수 있었던 거지. 하나님께서 뭐 때만 되면 만나를 내려 주시나?...그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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