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웅의 나무로 읽는 삼국유사] 경주 나정의 소나무숲
2017-05-12
신라 始祖 박혁거세 탄생신화의 무대
20170512
나정의 소나무 숲을 찾은 사람들이 우주목이라 할 수 있는 소나무의 기운을 느껴보고 있다.
20170512
나정에서 남간마을로 가는 길에 있는 벚나무.
20170512
알영정을 찾은 아이들이 우물을 관찰하고 있다.
20170512
창림사지로 가는 논두렁길. 이 길을 걸을 때는 균형이 중요하다. 우리의 삶도 그러하다.
경주 나정은 예전과 달리 그 입구에 차를 세우고 걸어가야 한다. 박혁거세 신화의 현장을 천천히 걸어가는 기분은 주변의 봄꽃을 감상할 수 있어서 즐겁다. 나정에는 누군가 조각한 부처의 얼굴이 우리를 맞이한다. 그 곁에 백마로 보이는 기구가 놓여 있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탄생한 나정에는 소나무 숲의 서사시가 봄바람을 타고 들려온다. 그런데 나정의 소나무 숲은 발굴로 인해 무참하게 파괴되었다. 소나무 숲이 사라지면 박혁거세의 탄생 신화도 사라진다. 나정의 신화적 상징은 바로 소나무 숲이기 때문이다.
나정(蘿井)은 신라 박혁거세가 탄생한 신화의 현장이다. 박혁거세는 나정의 소나무 숲에서 탄생한 신라의 시조다. 나정에서 박혁거세가 탄생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나정의 ‘나’는 소나무겨우살이(蘿)를 의미하고 ‘정(井)’은 우물이다. 겨우살이가 소나무에 산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소나무를 의미하는 ‘솔’이 ‘으뜸’을 의미하니, 겨우살이는 나무 중에서 최고인 소나무에 살고 있는 셈이다. 신라의 시조가 ‘으뜸’을 의미하는 소나무와 관련해서 탄생한 얘기는 무척 자연스러우면서도 신비롭다.
소나무 뜻하는 ‘솔’의 의미는 ‘으뜸’
하늘-땅 연결하는 우주목 기능 수행
시조 탄생과 관련…자연스럽고 신비
신화 참맛 즐기려면 솔숲서 오릉 봐야
최근 왕궁 창림사지 발굴로 솔숲 파괴
신화적 상징 사라지면 그 신화도 ‘끝’
‘인도 확장’ 시멘트에 질식 직전 벚나무
나정 방문객 관심 밖이라 더 안타까워
일연 스님이 편찬한 ‘삼국유사’에는 나정에서 탄생한 박혁거세 신화가 수록되어 있다. 서기 69년 삼월 초하룻날 신라 육부의 촌장들이 알천 언덕에 모여서 백성을 다스릴 덕이 있는 사람을 찾아서 왕으로 삼고자 했다. 높은 곳에 올라가서 남쪽을 바라보았는데 양산 밑 나정 곁에서 이상한 기운이 땅에 드리우고 흰 말이 꿇어앉아 절을 하고 있었다. 그곳에 있던 붉은 알에서 태어난 아이를 목욕시켰더니 몸에서 광채가 사방으로 퍼졌다고 한다. 이렇게 신라 박혁거세가 탄생하는 신비로운 이야기는 나정의 소나무 숲에서 펼쳐지고 있다.
나정의 소나무 숲은 박혁거세가 탄생한 신화의 공간이다. 박혁거세 신화의 신비로움을 체험하기 위해 소나무를 안고 우주목의 기운을 느껴보았다. 소나무는 하늘과 땅을 연결해주는 우주목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태인문학 기행에 참여한 사람들은 소나무를 안고 있는 나를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한 그루의 소나무도 생명체이고, 그 속에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쉰다’는 생태인문학적 시각을 그들에게 말했다. 나아가 신화의 공간인 나정에서 소나무와 대화해 보라고 요청했다. 박혁거세가 탄생한 소나무 숲에서 나눈 침묵의 대화는 생태인문학적 소통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박혁거세가 육부 촌장의 추대로 왕위에 오른 것은 나정이 경주의 토착세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육부 촌장을 모신 사당인 양산재가 나정 옆에 있다. 박혁거세가 탄생했으면 반드시 왕비도 탄생하기 마련이다. ‘삼국유사’에는 알영정(閼英井)에 나타난 계룡의 왼쪽 갈비에서 동녀가 탄생했는데 입술이 닭의 부리와 같았다고 한다. 동녀의 입술이 닭의 부리와 같은 것은 신비로운 인물의 신화적 출현을 보여준다. 박혁거세는 경주의 토착 세력과 혼인관계를 통해 왕위에 오른 것이다. 박혁거세와 알영부인은 나정에서 가까운 창림사의 소나무 숲에 신혼집을 마련했다. 그들이 궁궐에서 바라본 경주의 풍광은 어떠했을까? 산과 강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산과 강은 그대로지만 사람만 세월을 따라 변해버린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신라의 초기 왕궁터인 창림사지로 가는 길에 남간사지(南澗寺址) 당간지주가 있다. 창림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어 고려시대까지 존속했으나 조선 초기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창림사지를 발굴하면서 울창한 소나무 숲은 모두 사라지고 없다. 예전에는 소나무 숲 속에서 삼층석탑을 찾아보는 즐거움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사라져 아쉽다. 신라 시조의 신혼집 터인 창림사지에서 남간마을로 돌아갈 때는 논두렁길을 걷기로 했다. 좁은 논두렁길을 걸어갈 때는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박혁거세의 결혼생활이나 우리의 삶도 그렇다.
그런데 나정에서 양산재로 가는 길에는 벚나무가 신음하고 있다. 남간마을로 가는 인도를 확장하기 위해 시멘트로 벚나무를 완전히 포위한 것이다. 나정을 방문하면서도 숨을 쉬지 못한 벚나무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벚나무의 가뿐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벚나무는 사라지고 만다. 아무리 생명력이 강한 벚나무라고 해도 시멘트에 목이 졸려서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나정의 소나무 숲 속에서 오릉을 바라봐야만 신화의 참맛을 즐길 수 있다. 박혁거세는 나라를 평안하게 다스린 지 61년 만에 하늘로 승천하고, 7일 뒤에 유체가 흩어져 땅에 떨어졌다. 그래서 죽은 황후와 함께 합장하려 했으나 커다란 뱀이 방해, 오체를 그대로 장사하여 오릉 또는 사릉이라 부른다. 오릉은 박혁거세 왕과 알영왕후를 비롯한 남해왕, 유리왕, 파사왕 등이 잠들어 있는 일종의 가족무덤이다. 오릉의 소나무 숲은 바쁜 현대인들에게 천천히 걸으면서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특별함이 숨어 있다.
알영정에서 박혁거세의 부인이 태어날 때 용이 나타났다. 이처럼 왕의 부인이 탄생할 때 물의 신인 용이 나타난 것은 하늘의 자손을 표방한 왕권의 신화적 출현을 의미한다. 특히 알영정의 대숲에는 죽순이 봉긋봉긋 솟아올라서 우리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새로운 생명을 하늘로 힘껏 밀어 올리는 대나무의 생명력은 신비롭고도 감동적이다.
이렇게 ‘삼국유사와 생태인문학 기행’은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탄생한 나정의 소나무 숲에서 시작했다. 생태인문학 기행은 하늘과 땅을 연결해주는 소나무 숲 속에서 박혁거세 신화의 현장을 체험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정의 소나무 숲에서 신라 육부 촌장들이 수많은 갈등을 조정한 것처럼 우리도 생태인문학적 가치를 재인식하는 삶의 지혜를 배웠으면 좋을 듯하다. 경북대 기초교육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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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경주를 많이 방문하였으나,
다음 방문시에는 더 깊이 관찰하게 되겠군요, 고맙습니다.
저도 나정을 찾아가려 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