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12월21일
동지에 첫눈이 내려요.
어제 일기예보에 전국적으로 눈이 내린다고 했다. 동지에 눈을 볼 수 있을까?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내심 기다렸다. 오늘은 대구에서 모임이 있어서 오전부터 부지런히 움직였다. 아침도 챙겨서 먹고 샤워도 일찍 했다. 거실에서 책을 보는데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전해졌다. 안개처럼 유리창이 희뿌연 했다. 눈인가?
베란다로 나가보니 눈이 펄펄 내리고 있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서 눈보라가 치고 있었다. 얼마나 좋은지 나도 모르게 “눈이다, 눈이 온다!” 잠을 자는 아들도 깨우고 남편도 흔들어서 깨웠다. 아들이 슬그머니 나와서 베란다에서 ‘정말 눈이 오네?’ 하면서 한참을 바라보고 있다. 남편은 ‘무슨, 조금 날리다 말겠지,’아니라고 펄펄 내리고 있다고 소란을 피워도 설마 하면서 그대로 일어나지 않았다.
이럴 때가 아니다! 이정석의 노래를 크게 틀어놓았다. 슬퍼하지 마세요, 하얀 첫눈이 온다고요!’겨울이면 찾게 되는 노래다. 여전히 세차게 부는 바람에 눈보라가 일고 있다. 정말 감사했다. 이렇게 눈을 보여주심에 눈물이 날 정도로 기쁘다. 동짓날에 내가 사는 이곳에서는 첫눈이 내리고 있다. 가슴이 마구 뛰었다. 의정부에 사는 벗이 눈이 온다고 사진을 보내오고 철원에서 하얀 눈이 펑펑 내리고 있다고 눈 소식을 전해준다.
그렇게 한바탕 눈이 내리고 가버렸다. 한풀이는 한 셈이다. 잠시지만 눈보라가 세차게 이는 겨울 풍경을 보았다. 함박눈이 펑펑 내린 것은 아니지만, 겨울바람에 눈보라가 이는 풍경은 마음을 시리게도 행복하게도 외롭게도 한다. 심장이 녹아내리는 아픈 사랑처럼 말이다.
저녁에는 대구 시내에서 모임이 있었다. 집에서 버스를 타고 영남대학교에서 지하철로 갈아타고 가면서 오붓한 데이트를 했다. 날씨가 다소 춥지만, 오전에 내린 눈 탓에 아직도 내 심장이 뜨거웠다. 간간이 눈발이 날리는 날, 동짓날에 사랑하는 사람과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시내까지 나가는 것은 흔하지 않은 데이트다. 어지간하면 자동차를 타고 나가는데, 연말에 친구랑 만나서 술을 마셔야 하니까 마음 편히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모처럼 날씨도 차가운데 사랑하는 사람과 팔짱 끼고 데이트하는 것도 설레는 일이다,
막걸리에 사이다를 넣어서 말아주는 ‘막사’라는 술이 너무도 맛있었다. 소맥은 들어봤어도 막사는 처음 맛보는 술이었다. 막걸리의 텁텁한 맛을 사이다로 잡아주니 산뜻하고 깔끔한 맛에 연거푸 두 잔을 마셨다. 취기도 없어서 더 마실까 하다가 버스나 지하철에서 옆 사람에게 술 냄새가 날까 봐 자제하고 두 잔으로 끝냈다.
돌아오는 길에 눈이 살포시 날렸다 눈을 맞으며 모처럼 대구 시내를 걸으니, 우리가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손 꼭 잡고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려고 계단과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내리면서 곁에 좋은 친구가 있어서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새해에도 손 꼭 잡고 걸어요, 좋은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