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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요물나라 원문보기 글쓴이: 요물
종주에 필요한 5만분의1 지형도 도엽명 : 철원
한북정맥 이북 평강 천산에서 분기된 한탄강의 온전한 북쪽 울타리를 치고 있는 한탄기맥이 서남방향으로 흐르다 소이산에서 다시 남쪽으로 한줄기를 분기하여 보개산으로 가는 보개지맥을 만들어 철원 대교천의 서쪽 줄기를 이루며 흐르다
철원의 진산 금학산에서 머리를 서쪽으로 돌려 내렸다 오른 보개봉(752)에서 보개지맥은 남쪽 보개산(환희봉 지장봉)으로 가고 다른 한줄기가 서북으로 분기하여 고대산(◬832.1m, 2km) 으로 올라 강원도와 경기도의 경계선은 북쪽으로 간다
다른 한줄기가 연천군 신서면을 동서로 나누며 서남방향으로 흘러 삼각봉에서 서쪽으로 대광봉을 떨구고 서남진하여 대소라치고개임도(530m, 1.3km/3.3km)-석봉(644, 1/4.3)-내산리임도 추가령(430, 1/5.3)- 541.3봉(◬1.2/6.5)-376번지방도로 광대골도로(270, 1.3/7.8)로 내려선다
349.9봉(◬0.7/8.5)-불견봉(530)-9번군도 불현도로(310, 3.3/11.8)-감투봉(510, 1.3/13.1)- 수리봉(◬477.9, 1.2/14.3)-418봉(1/15.3)-양금재봉(310, 1.2/16.5)-233.2봉(◬0.6/17.1)을 지나 동막골개울 아미천과 차탄천이 만나 차탄천물이 되는 곳(50, 1.2/18.3)에서 끝이 나는 약18.3km정도의 산줄기를 말한다. [신경수님 글] |
★산행코스: 6월 30일:신탄리역-제3등산로-표범바위-경계능선(물탱크)-고대산(△832.1)_-삼각봉-대광봉(정자)-단맥길-헬기장
-임도-대소라치고개(530)-x644(석봉, 주라이등)-임도(430)-△541.3-376지방도로(광개골도로, 고갯나루)-
-도신3리 버스정류장
10월 7일: 도신3리버스정류장-376지방도로(광개골도로, 고갯나루)-△349.9-임도-벙커봉-꽃봉산-벙커봉-벙커봉-불견
봉(530)-9번군도,불현도로-감투봉(510)-수리봉(△477.3)-x418-양금재봉(310)-△233.2-민가(연천2농장)-포
장도로-신3번국도-연천역
[산행지도]
6월 30일
동두천역에서 송아님을 만나, 송아님이 미리 매표해 놓은 8시 15분 백마고지 가는 기차에 올랐다. 어르신들이 주 승객인
걸 보니 시골가는 것처럼 느껴졌고 기차는 전곡과 연천을 경유하며 3번국도와 같이 갔다. 신탄리역에서 하차하는 아쉬움이
많이 났다.
이 기차가 월정리역을 지나 원산까지 경원선 철도가 더 이상 달리지 못하고 멈추는 곳, 신탄리역이 종점이기 때문이다. 이곳
솟구친 고대산의 832미터의 산정에서 경기도 최북단인 연천군 신서면과 강원도 철원군 산꼭대기에서 철원평야와 북녘땅이 잘
보일꺼라는 기대를 가지며 신탄리역에서 내린다.
[신탄리역]은 경원선의 철도역이다.
역 안내판에는 이전역만 표기되어 있고 다음역은 빈 공간으로 되어 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란 표지판과 '통일이 되는 날,
다시 만나요' '여기는 북으로 가는 철도중단점'이란 글과 솟대가 통일의 염원을 바라는 것들을 보니 찡한 마음이 든다.
고대산 가는 길에도 '전쟁의 아픔 평화의 길로', '통일 고대하는 마음길'이란 팻말이 붙고 고대산교를 지나 제3코스인 고대산숲길
의 이정목과
[고대산숲길 안내도]와 매표소가 있으나 입장요금을 받지 않았다. 고대산으로 향했다. 민가 마당에 개들이 눕고 태양욕을
즐기는 따뜻한 기온이 마음까지 닿아 고대산으로 간다.
'자연이 숨쉬는 고대산입니다. 제3등산로'의 이정목에는 의자가 있어 쉬어갈 수 있으며 '제3등산로 계곡'의 이정목을 지나며 기
암이 선 보였다.
고대산 약수터에서 물 한 모금 챙겨먹고 철난간의 돌계단을 따라 오르면 표범바위'표범폭포 0.12km, 등산로입구 1.1km'의 빨
간이정목이 세워져 있었다.
[표범바위]
고대산 3등산로 하단부에 위치한 표범폭포는 우뜩 솟은 주변암반의 문양이 마치 표범문양과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시원한 폭
포소리에 잠시 쉬어가기에 안성마춤이란다.
표범폭포에 들러
[송아님]
[저]
[표범바위]
인증샷을 하고 표범폭포의 기억을 담고 올라선다.
'마여울아래, 정상 1.7km, 매표소 2.0km'과 '마여울'의 119현위치 표지목을 지나며 고도를 높힌다. 짙푸른 녹음이 산에 가득
했다. 나무잎 향기가 전해지는 상쾌한 공기가 싸한 느낌마져 든다. 신록의 계절에 있음을 실감케 하는 여름의 길목에 있었다.
[목재계단]의 이정목(등산로 입구1.83km, 고대산정상 1.12km)을 지나 통나무계단으로 고도를 높혀갔다.
거기에
돌계단으로 이어지고 마여울위 '정상 1.1km, 매표소 2.6km'의 이정목은 정상을 향해 가까워 지고 있었다. 땀이 등과 이마에
스며들고 습도가 높았다.
벌레가 얼굴과 눈으로 들어가 앞을 가린다. 벌레를 손으로 뿌리치는대도 대들기는 여전하여 오름이 쉽지 않다.
물탱크가 있는 [경계능선]에 올라섰다. 경기도 연천군과 강원도 철원군의 경계를 따라 고대산으로 오르게 된다.
[진지]위 육군 제2136부대장'의 경고판이 붙고 고대산숲길의 이정목이 세워져 있는 철문앞 등산로를 따라가게 된다.
'고대봉아래 0.5km'의 119현위치 표지목을 지나
[고대산 정상 0.43km, 군부대시설(출입금지구역)'의 이정목은 숲터널로 안내하였다. 길다란 모노래일이 깔려 있고 군부대의 운반
을 용이하게 위한 용도로 쓰이는가 보다.
모노래일과 나무계단을 따라 오르며 군부대시설이 있는데 용도와 이름은 알 수 없었다. 특히 군대도 가보지 않았으니 내 어찌 알랴.
저 멀리 우뚝 솟은 금학산이 조망된다. 짙은 안개로 선명하지는 않지만 제일 먼저 반기는 947m의 가 보지 않은 산이라 더 반가운
미소가 지어졌다.
산이 내어준 자리에는 군부대가 차지하고 저 멀리 보이는 군부대 뒤 금학산이 눈에 아른거리며 자꾸 그쪽으로 갔다.
[6.25전사자 유해발굴지역]이란 고대산에서 보개산까지 6.25의 전쟁으로 전사와 부상자의 수가 아픔의 몇 배 보다 큰 상처를
가지고 있는 구국의 현장을 보게 된다.
나라를 위해 목숨바친 분들을 끝까지 책임진다는 국가무한 책임을 위해 유해발굴을 실시하여 뒤늦게나마 조국과 가족의 품으
로 모실 수 있었다는 국방부 제5보병사단의 안내판이 있어 잠시 쉬어 간다.
드디어 고대봉에 올라선다.
나무데크로 단장 되어져 있는 고대봉의 이정목은 '제3등산로 입구 3.0,km, 제1등산로 입구 2.72km, 제2등산로 입구 2.65km'의
솟대이정목과 고대산숲길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었다.
나무데크로 올라
고대산은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대광리 산 168번지 일원에 위치한 고대산(832m)은 등산이 허용된 산 가운데 북한과 가장 가까운 산에 속
한다. 고대산의 특징으로는 현재 앞쪽의 북한지역(강원도 평강군, 이천시 김화군)과 한국전쟁 최대 격전지인 철의 삼각, 궁예
가 새 도읍지 주위에 쌓았다는 태봉국 도성지 등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곳이다.
또한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는 군사분계선은 백마고지 뒤로 약 2km에 있어 매우 가까운 거리이다. 1980년대 안보관광 활성화
로 일반인에게 개방된 고대산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역 이름으로 선정된(코레일 수도권북부지사) 신탄리역에 접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고대산 고대봉]의 정상석 832m에 선 송아님과
[고대산 고대봉의 정상석에 832m에선 저]의 인증샷을 하고
[고대봉 전망대]의 안내도를 따라 눈과 입이 갔다.
1) 백마고지
는 395고지라고도 하는 백마고지는 고대한 북쪽 약 7km 지점인 DMZ내부에 있다. 심한 포격으로 온통 파괴되어 공중에서 보니
백마와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1952년 10월 6-15일 정예군으로 알려진 중공군 제38군이 국군 제9사단이 지키고 있는 395고지
에 공격을 개시하여 고지의 주인이 24회나 바뀔 정도로 혈전을 벌였던 곳이다.
2)봉래호
강원도 평강군(북한지역)에 위치한 봉래호는 이곳 고대산에서도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듯이 면적 4.78제곱키로미터, 둘레 14.6km
, 길이 5.1km, 평균너비 0.9km의 거대한 저수지다.
1923년 철원 평강대지를 흐르는 임진강의 지류인 역곡천 상류를 막아 건설한 관개용 저수지다.
3)철원평야
4)월정리역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에 위치한 남한 측 강원도 최북단 종착역으로 실제 운행 중단역인 신탄리역과 함께 조국분단을 대표하는 역
이다.
5)태봉국 도성지
신라 말인 서기 901년 궁예가 천하를 통일하기 위해 태봉국을 창건하고 새 도읍인 철원 주위에 쌓은 도성.
6)평강(평강역)
철원군과 접한 평강역은 1943년 기준으로 인구 7만 4,924명의 북다한지역 군이다.
7)노동당사
현 위치에서 산에 가려 직접 보이지 않는 노동당사는 1946년 초 북한땅이었을 때 철원군 조선노동당에서 시공하여 그 해 말에 완공
한 러시아식 건물로 8.15광복 후부터 한국전쟁이 일어나기까지 공산치하에서 반공 활동을 하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잡혀 고문과
무자비한 학살을 당했다.
8)동송 저수지
일명 강산저수지라고 불리기도 하는 동송저수지는 1977년 축조한 인공저수지로서 제방 연장은 3km로써 단일 제방 규모로는 우리나
라에서 가장 길다.
9)학 저수지
동송읍 오덕리에 있는 학 저수지는 1921년 일제가 설치한 것을 1975년 중앙농지 개량조합이 보축 확장한 인공 저수지다.
10)한탄강
길이 136km인 한탄강은 강원도 평강군(북한)에서 발원하여 김화, 철원, 포천을 지나 연천군에서 임진강과 합류한다.
고대산에서 조망되는 지명과 설명을 적어 보았다. 그뿐이랴.
왼쪽 우뚯 솟은 [금학산]이며
[삼각봉과 대광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와 산행하게 될 석봉(주라이등)과 그 뒤 흐릿한 보개산의 산줄기가 유유히 흐르는
모습이 펼쳐져 보이는 고대산 정상이다.
행여 발길 잡아 이곳에 묶어 손에 잡힐 듯 발길 머문 북녘의 하늘과 이곳에 올라 보리라. 금학산과 보개산으로 가는 산줄기
를 따라 보개지맥에서 분기된 분기점까지 왕복하려 했으나 그 계획을 포기했다.
헬지장을 지나
모노래일 깔린 길따라 오솔길처럼 걷기 편한 길따라 진지 위 삼각봉에 닿아
[삼각봉 815m]과
이어지는 단맥능선의 갈림길을 지나 대광봉 고대정에 여정을 푼다.
[고대봉]
고대정에서 보이는 전망이 유독 뾰족한 석봉(주라이등)의 산행할 기쁨을 먼저 만끽한다. 그 뒤 흐릿한 보개산 능선이 손짓하며
반겨 다음 여정의 걸망을 메지 않을까.
산을 보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는 산,
세상 좋다.
천상의 나를 둘러 친 산에서 점심을 먹고 긴 여정을 떠난다. 고대산과 삼각봉지나 대광봉 사이 남쪽으로 고대단맥의 산줄기가
갈라지는
길에 나무와 숲이 갈로 막혀 찾을 길 없어 서성이다 찾아가는 길, 길이 트이면서 간이화장실과 헬기장을 만날 수 있었다.
'정상(삼각봉)0.4km, 매표소3.4km'의 이정목과
모노래일따라 내려가는 확트인 너른 길 따라 간다. 석봉의 손짓이 눈에 와 닿는 듯하여 발걸음이 빨라진다. 폐타이어참호
를 지나
[대소라치]로 내려선다.
대소라치고개에는
보병 제5사단과 미3군 제2공병단의 정성이 모아 81번 전술도로를 개통한다는 1991년 5월 24일 기념비가 세워져 있는 뒤로
커다란 기암이 앞을 막고 오른쪽 사면으로 돌아 꿩의다리꽃을 만나 잠시 쉬어 간다. 지나온 대광봉의 산줄기가 벌써 저
뒤에 평지처럼 흘러간다.
[진지]와 돌참호을 지나 x644봉의 석봉과 주라이등을 오를 수 없어 사면으로 돌아 나간다.
참호길의 돌길은 낙엽이 쌓여 발목까지 채이고
쓰러진 나무밑으로 빠져 나가기도 하고 수시로 붙는 진지와 참호길~~
폐타이어 참호길 교통호따라 올라서면 헬기장이었다.
[기암]아래로 진행하여
비포장도로의[내산리임도]로 내려선다.
다시 진열된 폐타이어를 밟고 올라서 비닐커튼이 쳐진 진지를 지나 교통호를 지나며 펼쳐지는 보개지맥의 산줄기가 아무일도
없는 듯 하늘을 가른다.
[보개지맥]앞으로 석봉이 저 뒤로 물러나 있었다.
헬기장을 지나
[△541.3]봉의 삼각점이 둔갑을 하여 알아 볼 수 없이 놓여져 있었다.
폐타이어참호와 돌교통호를 지나 헬기장도 지나며 잠시 암릉을 밟아 노란표지기따라 산을 내려섰다. 임도였다.
[광대골고갯마루]에서 약간 비껴있는 임도로 내려서
376번 지방도로따라 이어지는 딸기를 따 먹으며 구비구비 도로를 따랐다. 내려서는 도로따라 가길 다행이지 싶을 정도로
지루하고 산보다 힘들었다. 광대울유원지를 지나
민가에서 물 한그릇 얻어 먹고 잠시 쉬어 광대골 흐르는 계곡 물소리 들으며 땀범벅 닦고났더니 이보다 좋을 수 없을 듯 상쾌
한 기분으로 도신3리 버스정류장에서 산행을 마쳤다.
30-2번 버스에 올라 소요산역에서 저녁을 먹고 귀가한다.
10월 7일
추석연휴가 이어지는 공휴일, 숙제처럼 담았던 고대산 남쪽 산줄기를 이어보기로 하고 배낭을 꾸렸다. 이른아침 알람소리에
일어나 부지런히 챙겨 나섰다. 동두천역에서 8시 15분 출발하는 백마고지행 기차에 올라 연천역에서 하차하였다. 몇 번
다녀간 곳이었다.
[연천역]
'만남의 江은 흐른다'란 KBS이산가족특별전이 열린 이곳의 풍경이 그대로 전해졌다.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
고
그리운 가족을 찾던 지난날의 사진과 애끓는 사연을 담은 포스터가 연천역 벽과 뜰에 붙어 사연의 절절함이 느껴졌다.
한반도의 전쟁과 분단이 이산가족 발생이라는 참혹한 피해가 남겨진 끝은 여전히 유일한 분단국으로 남아 있다. 1983년
6월, KBS는 이산가족을 찾기 위한 방송을 시작하였다. 그 사연들이 방송되고 생사를 모르던 가족들이 극적인 상봉을 이루
어지던 그 때의 텔레비젼 화면은 30여 년이 지났어도 지워지지 않는 사진으로 남았다.
오늘 또 이곳에서 보게 되는 것.
[급수탑]
등록문화재 제45호로 지정된 급수탑은 일제강정기때 서울과 원산을 오가며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던 시설이다. 급수탑에는
한국전쟁때 입은 총탄자국도 그대로 남아있다고 전한다.
연천역 길 건너 버스정류장에서 39-2번 버스에 올라 도신3리 버스정류장에 하차하여 광대골도로를 따라 갔다. 길가에 핀 코스
모스가 파란하늘에 너울대고 '금촛대교회'안내판이 서 있는 도로따라 민가를 지난다. 올라갈 생각이 무거워, 가던 차를 세웠더
니 젊은군인아저씨다.
쾌히 받아주셔
편히 광대골고갯마루에 발을 밟는다.
[광대골고개]
여름이 지나고 가을의 문턱에 광대골고개에 올랐다. 절개지에 철조망을 두른 고개에서 산행채비를 하여 산으로 올랐다.
산림청에서 세운 안내판의 '입산통제의 구역과 면적, 기간'이 적힌 안내판 뒤로 올라 폐타이어를 밟고 오른다.
돌참호가 나타나며
[헬기장]
가을냄새가 물씬 풍기는 붉은기 물든 잡풀들이 무성한 헬기장을 덮고 삼각점이 쓰러져 있는데 지도에 없는 삼각점인가 보다.
광대골도로와 한탄북기맥의 산줄기가 흐르는 연천 와초리쯤 되는 가 보다. 산촌의 풍경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모습이 평화
롭고 한적한 느낌 그대로다.
[삼각점349.9]봉에 이른다.
낙엽과 풀에 덮힌 삼각점을 찾다 없는지 돌맹이 하나로 인증샷을 해야했다. 길은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갔으며 산부추가 피어
있는 산에 드문드문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가을의 보랏빛 향내음이었다.
임도에 내려선다.
또 다시 산으로 올라 보면 펼쳐진 산병풍에 발길을 잡고 저 높은 보개산의 산줄기에 이마 위에 붙어 있는 것 같았다. 시원한 하
늘아래 펼쳐진 하늘금!
고운단풍이 물들어 갔다. 노란잎새에도 빨간단풍잎에도 어느새 가을이 왔다는 걸 알려 주었다. 노랑단풍이 물든 나무옆에
돌참호가 붙고
[기암]뒤로 보개산이 손톱만큼 보이더니 '엄지척'하는 것처럼 보였다.
가짜삼각점을 지나
[폐타이어 헬기장]을 지나 고대산에서 보았던 노란표지기가 여기까지 따라와 붙어 있었다. 이 분도 아마 이 산줄기를 하고
있었나 보다.
너른임도가 보이는 산자락에 수놓은 듯 단풍이 든다.
[진지]를 지나 산으로 올라
기암에 자란 소나무가 끈질긴 생명력을 보이고 있었다. 바위를 딛고 오르자 단풍이 물들어 가고 있는 벙커봉에 닿았다.
[벙커봉]
에 배낭을 내려놓고 서쪽의 연봉으로 이어지는 꽃봉산으로 향했다. 벙커를 지나 암릉으로 올라보면 기암을 끙끙거려 올라
보면 보개산이 드넓게 펼쳐져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
고대산에서 보개산까지 흐르는 산줄기 뒤 금학산과 같이 조망이 트였다. 걸어온 발아래 산줄기까지 보이는 사진첩을 담았다.
[연천 관광 안내도]에 보면 꽃봉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작은분지에 싸리나무가 있고 평평한 곳, 아마 이곳이 꽃봉산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행여,
누구의 표지기가 없을까 찾아보았지만 해답은 없기에 이곳에서 벙커봉으로 되돌아 온길 따라 갔다.
[벙커봉]으로 돌아와 이곳이 [불견봉530]인가 보다
둥근돌하나 얹져놓은 것처럼 보이는 바위를 지나보면 발아래 9번군도의 모습과 민가가 몇 가구 보였다.
보개산과 복대로 이어지는 산줄기와
벌써 [복대]가 이마 위에 붙은 듯 손에 잡힐 듯하였다. 이곳의 풍광이 오늘 산행 중 엄지척이지 않을까.
풍광만큼이나 좋아 머물렀던 암릉의 직벽을 조심하여 내려섰다. 직벽암릉을 돌아서 가야 하는 길을 더듬더듬 걸어 내렸다.
길이 흐릿했다.
돌교통호따라 내려섰다.
[불현도로]의 방호벽
불현고개로 내려와 DMZ라 쓰인 빨간리본이 길안내를 하는 임도를 따라 갔다. 마루금을 왼쪽에 두고 '96옥산임도'라 쓰인
임도시설비를 지나 포장도로와 비포장도로가 반복되어 지는 길따라 편의상 쉽게 갈 수 있는 너른 길이었다.
연천군에서 설치한 임도안내문에는 현위치를 표기하였고 임도명과 4km의 거리를 알려주는 안내문을 지나
디엠지 트레일러닝이라 쓰인 빨강리본이 달려 있는 길을 따랐다. 길은 헤어지라고 있는지 '↗474고지, ↙법화동'이라 쓰인
팻말 위의 길을 따랐다.
[진지]가 수시로 있는 너른 길, 흰로프줄로 길가를 쳐 놓은 길, 얼룩무늬의 진지가 붙은 길, 돌절벽에 붙은 빨강단풍이 들어 보면
서 돌아가는 길,
길은 경사도를 높혀가고 있었다.
[차량 전차종 출입금지]의 팻말이 있는 곳에서 고도는 급격히 높혔다.
이곳이 [감투봉]이지 싶다.
임도의 끝은 깎아질듯 절벽아래 임도는 돌아 나갔으며 저 멀리 한탄북기맥의 산줄기가 조망되는 조망터에 선다.
진행하게 될 산봉우리가 단장채비를 하고 게 나를 잡아 당겼다. 절개지에 붙은 [진지]가 위태롭게 달라 붙은 것 같고
임도를 버리고 산길로 접어 들었다.
연천의 모습이 나무사이로 조망되며 헬기장을 지나 산릉을 깎아 만든 평평한 네모모양의 산릉을 지났다.
[△477.9]의 삼각점이 있는 수리봉에 올라선다.
수리봉에는 철깃대가 있고 잡풀이 가득하여 잡풀을 걷어 '철원 23, 1983 재설'의 귀하신 2등급을 드러냈다. 참나무 사이 시야가
트이는 연천읍내가 바로 지척에 있다.
[460봉]에 올라서면 연천시가지의 모습이 발아래 지척에 있고 도로와 차탄천의 구불진 모습이 어울어져 멋져 보였다. 그 뒤
산자락이 군자산의 한탄북기맥 산줄기가 구릉과 같이 흘러간다.
지나온 산줄기를 되돌아 보며 알 수 없는 암릉의 산봉우리가 저 산 너머 끝에 붙어 있었다.
[노랑 구절초]
[용담]
쉬어 가니 가을꽃이 화사했다.
x418봉과 양금재봉이 조망되는 길따라 산으로 구비구비 얼마 남지 않았다. x418봉 아래 드넓은 구릉의 모습이 그림같고
단풍이 드는 계절과 어울려 멋스러웠다.
돌참호길,폐타이어참호,
나는 이런 것들이 처음에 무서움으로 다가왔던 그날 들이 이제는 친숙해졌갔다. 참호가 연달아 길을 막고 있는 길을 올라
가짜삼각점을 지나.
수시로 있는 [대형진지]들이 임도에 따라 붙는다. 폐타이어참호와 세멘진지을 지나 올라서면 헬기장에 이른다.
[헬기장]
돌교통따라 이어지는 진지와 친구되어 갔다. 안테나시설물을 지나 양금재봉의 오름짓을 하면 정상에 도착, 교통호와 널따란
돌참호에 빨간 종이 세워져 있다.
[양금재봉]
연천읍이 코앞에 있었다.
정상에 구불구불 이어진 교통호와 참호가 군시설물을 가득담고 있는 산정 , 양금재봉 x310높이에 서 있는 산, 연천읍을 바라다
보고 있는 산으로 기억하고 싶다.
[△23.2봉]의 지적삼각점을 지나
폐타이어교통호 따라 내려서면 묘 몇 기가 있고 민가로 내려선다. 어느 부부의 들깨 수확을 하고 있는 모습과 개가 짖어
댔다.
낯선 나그네의 발자욱 소리가 더 바빠지는 것 같았다. 도로로 내려서니 '연천2농장'의 팻말이 붙고 포장도로 따라 군자산
이 보이는 길로 터벅터벅 걸었다.
군자산,부대가 정상을 차지하고 산,
나는 그것도 모르고 군자산 정상에서 헤메던 교통호와 참호, cctv가 있어 흔적을 보이지 않기 위해 인기척 한 번 못내 보고 돌
고 돌아 못찾고 임도로 내려섰던 산을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아미천이 흘러 차탄천으로 스며드는 곳, 동막리였다. 동막골유황천의 팻말이 붙은 신3번국도 아래를 지나 도로 신3번국도를
따라 연천역으로 왔다.
연천역에서 양금재봉이 보였다.
연천역에 붙은 애끓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한데 연천군은 스포츠를 통한 남북의 화합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통일의 가능성을 심
어 주길 바라는 팜플렛을 손에 쥐었다.
오직,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기원해 본다. 연천역을 17시 30분 동두천역↔백마고지의 기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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