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난 글과 인연. 245
[살아내야 한다는 것]
숙소는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막길을 따라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지만 그 경사 역시 발을 완전하게
딛을 수 없는 길이다. 그렇게 도착한 방가방가 게스트 하우스. 사무실에서 안내받아 올라가니 작은
마당(걸음으로 서너 걸음)이 있고 바로 현관문인 집이었다. 그 마당은 게스트 하우스 사무실의 지붕
인 것은 가방을 방에 들여놓고 나와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감천마을의 집 구조가 거제도에서 보았
던 다랑이논의 형식을 닮았다는 느낌이 든다.
곧 아랫집과 윗집이라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그나마 마당 있는 집은 몇 가구 될 것 같지 않았
고, 아랫집의 처마 끝이 윗집의 문 앞이라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그리고 보니 그 마을은 담이
없고 대문이 없다. 이런 표현이 어떨까? 골목길이 있는데 골목길의 한 쪽은 아랫집의 처마에 다다랐
고, 또 한 쪽은 손만 뻗으면 윗집의 안방 문고리를 잡을 수 있는 형태의 집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마당도 없다. 내 숙소 같이 아랫집 지붕이 콘크리트 구조물이어서 작은 마당이라도 있는 것
이지만 그 외 대부분의 집이 골목을 사이에 두고 아랫집과 윗집이 있는 그런 형태였던 것이다. 당연
이 텃밭도 없고, 닭장도 있을 만한 곳이 아니니, 어쩌면 그 마을에서 강아지를 보지 못한 것도, 아예
그런 가축들조차 기를 수 없는 지형이었던 것이다. 아니 어쩌면 개와 고양이도 못살 동네라고 혀를
내밀며 도망갔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숙소로 들어선다. 현관 문을 열고 들어서니 신발을 벗을 곳과 댓돌, 그리고 눈에 보이는 안방
문, 지금은 유리로 되어있지만 예전에는 창호지를 발랐을 문, 손잡이도 없이 문짝에 홈을 파서 손가
락으로 미닫이를 해야 하는 문,
방으로 들어가니 삼단 서랍장(그저 양말이나 속옷 정도를 보관하는) 위에 얇은 담요와 이불 두 채가
개켜져 있었고, 그 옆에는 일단 서랍장 위에 티브이가, 그 곁에는 모텔에나 있을 만한 음료 보관용 냉
장고, 그 위에 오래된 전기 렌지 하나. 방은 세로로는 세 명이 누우면 좁아 보이고 가로로는 너댓 명이
누울 수 있을 것 같은 전기온돌 방,
안방 문 쪽에 다락방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고 작은 다락방이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욕실이었다.
작은 욕실의 변기에 앉으려면 허리를 숙이고 조심해서 앉아야 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앉으면 머리
위로 다락으로 올라가는 계단 바닥이 닿을 것 같이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샤워는 아예 포기해야
할 것 같은 좁은 욕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밖으로 나선다.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서였는데, 물어보니 그 지역은 먹을 만한 식
당이 없을뿐더러, 식당이라고 간판을 달아놓은 곳이 있기는 한데 오후 5시면 문을 닫는다고 한다.(저
녁을 마을에서 느긋하게 먹을 생각이었는데), 그러면서 이곳에서 식사할 생각을 하지 말고 시내로 가
서 먹고 오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권하는데, 그러면 내 계획의 중요한 부분이 틀어지는 것이니, 곧 이
박삼일 동안 모든 것을 그 마을 안에서 해결할 것이라는 내 계획을 수정해야 하게 된 것이다.
버스를 타려고 나와서 보이는 슈퍼에 들러 물었다. 몇 시에 문을 닫는지를, 주인의 답이 8시 전에 문을
닫는다고 한다.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한다. 벌써 시간은 6시가 넘어서고 있으니, 버스를 타고 충무동
으로 나간다. 운전사의 실력이 대단하다. 급커브에서 핸들을 돌리는 속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어쨌든
빨리 가서 저녁을 먹고 올라와 마을 슈퍼에서 음료를 구입할 생각이 조급증을 일으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