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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다 公園
李 鐘 桓
1
3·1절 선열 추모식이 다 끝날 때까지 기미당 노인 (己未堂老人)은 지그시 눈을 감은 채 팔각정 앞자리에 서서 솟아오르는 감회에 묵묵히 젖고 있었다. 그의 움푹 꺼진 눈시울 속에는 사십 년 전 바로 이 자리에서 벌어졌던 그날의 광경이 화안하게 되살아나 펄쳐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마치 지금 칠순 노인이 아니라 모두들 어떻게 용하게 연락이 되어 모여든 군중 속에 새파란 청년으로서 끼어들어 있는 착각에 전신이 화끈거렸다.
이윽고 만세를 선창하는 소리가 났다. 그때사 눈을 번쩍 뜨고,
“대한민국 만세에!”
를 목청까지껏 외쳤다. 그것은 목이 메어 터지는 소리였다. 치올린 노인의 두 팔 두 주먹의 말라붙은 핏줄이 떨리고 있었다.
참으로 해마다 찾아오는 삼월 초하룻날은 기미당 노인에게 있어서 연중 가장 보람있는 날이었다. 이날을 기다리는 맛에 사는 것 같았고 이날을 못 잊어 아직 죽지 못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흩어지는 사람들 틈에 끼어 나오는데,
“기미 영감, 오늘은 생일날이라고 신수가 휘언하시구료.”
십삼 층 탑 위에 앉은 함 영감이 알은 체를 한다.
“아암, 생일이구 말구우…….”
대답은 하면서도 오늘따라 〈기미 영감〉에 기분이 거슬린다.
분명히 〈기미당 노인〉이라고 아무리 일러주어도 버릇없는 사람들이 무엄하게 〈기미 영감〉으로 불러 팽개치기만 하는 데는 참 어쩔 수가 없기는 한 노릇이지마는 고약하기가 짝이 없다. 함 영감 말마따나 오늘은 말하자면 기미당 노인의 생일이나 다름 없다. 아니 생일보다 오히려 더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 이것을 잘 아는 마누라가 새로 다듬질한 횐 무명 두루마기를 밤새 꾸며 입히기도 한 것이다. 그러면 생일이나 다를 바 없다고 일러준다치면, 오늘 하루쯤이라도 제대로 〈기미당 노인〉으로 대접 해줌직 하지 않은가.
슬그머니 비위가 틀리는 기미당 노인은 어슬렁어슬렁 함 영감 앞으로 가서,
“그, 오늘 같은 국경일에는, 그, 엉터리 관상쟁이 간판을랑 좀 뒤집어 엎어두지 그래.”
대리석 탑 아래 기대 세워 둔, 떼가 잘잘 짤아 먹글씨도 옳게 알아 보지 못하게 된 〈관상 철학사 함 기로 선생 관상소〉라는 나무 간판을 발길로 차던질 듯 턱으로 가리키며 비꼬아 부쳤다.
“아니, 엉터리라니! 아무리 농이래두, 남 들을까 무섭군 그래, 내가 몇푼 안 되는 돈벌이하러 여기 나와 앉았는 줄 아나?”
함 영감은 콧등에 건 금테 안경이 떻어지지 않을까싶게 턱을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엔간찮다. 말하자면 위신과 권위와 생계에 관한 문제라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야 오늘 같은 경절날, 기미 영감 말마따나 마땅히 걷어 치워야지. 허지만, 나로 말하면 인생 철학을 풀어주는 사람이야. 사람의 운명을 점쳐주는 사람인데, 경절날 여느날을 가릴 수 있단 말인가. 허, 무식한 사람 다 보겠네.”
“에끼 날도둑 같은 영감 같으니라구…….”
기미당 노인은 어이가 없어서 웃어줄 생각도 나지 않=다. 삽살한 흰 수염만
한번 내리 쓰담고 나서,
“아니, 이 탑이 어떤 탑인데, 이따위 엉터리 관상갱이 간판을 함부로 갖다 놓고 더럽힌단 말인가, 응? 에에이…….”
기미당 노인은 도대체가 못마땅했다. 이 공원을 민족정신의 발상지라고 할 수 있으며, 민족정신을 일깨워준 자리인 이 공원을 거지 소굴 아니면 놈팽이들 놀이터로 내버려 두는 것을 생각할 때면 울화통이 터지는 것이다. 아닌게아니라 이 문제를 건의해보려고 세 번이나 시장을 만나러 갔었으나 한번도 면회를 못하고 말았다. 이핑계 저핑계로 내쫓으려고만 하는 비서라는 젊은 친구한테, 마지막 판에는 후레자식이라고 냅다 욕을 깔겨주고 나오고 말았다.
기미당노인은 화가 치밀어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조끼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 이 탑으로 말하면, 대리석 십삼 층으로 이조 제 칠대 세조왕이 조성한 것으로서, 국보 중의 국보요,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함 영감은 기미당 노인의 말투를 흉내내어 약을 올린다.
이때 〈소리하는 청년〉이 나타나지 않았던들 영감의 새빨간 대머리를 한 대 쥐어질러줄 뻔했다.
수염이 텁수룩해가지고 희끗희끗 물이 날은 잠바 주머니에 두 손을 찌른 채 멍청한 눈으로 결어오고 있는 〈소리하는 청년〉은 볼이 꺼칠한 것이 어디 몸이라도 불편헤 보였다.
“기미당 노인, 오늘은 기쁘시겠읍니다.”
기미당 노인은 이 청년이 갸륵했다. 모조리가 〈기미 영감〉인데 이 청년만은 언제나 깍듯이 〈기미당 노인〉이다.
기미당 노인은 금방 노기가 가시어지고 얼굴에 화색이 돈다.
“어서 오시게, 왜 어디 불편하신가?”
“아니 에요…….”
청년은 무언가 말을 이으려다 말고 노인 옆으로 쭈그리고 앉는다.
“그런데 신관이 많이 좋잖아.”
“네, 좀 추운 것 같군요.”
몸이 떨리는 듯 어깨를 으쓱한다.
청년은 요즈음 실업자가 되고 말았다.
얼굴에 꺼멍과 불그스레한 칠을 하고 나와 청승맞은 노랫가락을 부르고는, 둘러 선 청중들이 던져주는 돈으로 끼니를 이어오던 터였다.
경기 잡가를 비롯해서, 전라도 육자배기 경상도 양산도에 평안도 수심가에서 강원도 정선 아리랑에 이르기까지 컬컬한 목소리로 엮고 감쳐 뽑아 넘기는데는 반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것이 직업이요 또 유일한 생활수단이었다. 그러던 것이 얼마전부터 정부통령 선거전이 시작되면서, 바로 가까이 있는 자유당과 민주당 당사에서 수십 개의 스피커를 달아놓고 경쟁적으로 떠들어대는 통에 그만 실직을 하고 만 것 이다.
“젊은 사람이 오늘 같은 날을 춥다면 되는가, 탈이지.”
“괜찮아요.”
청년은 쭉 훑어져빠진 입가에 웃음 같은 것을 조금 비치다 말고 이마를 짚는다.
말이 삼월이지, 아직도 먼산에 눈이 희끗희끗한데, 담 밑, 어린이 〈풀〉 탈의장에서 공원지기 몰래 숨어자는 형편이라 하기야 추울 수밖에 없었다.
기미당 노인은 이런 청년들의 꼴을 보면 참으로 답답했다.
“에이, 빌어먹을 놈의 세상…….”
노인은 혼잣말처럼, 가래침을 돋구어 함께 내뱉았다.
“사십 년 전 이날 우리 조선 학생들과 청년들은 이 자리에서, 일제에 항거하고 독립 선언서를 낭독한 뒤를 이어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노인은 두 주먹을 불쑥 하늘로 치뻗쳤다.
함 영감은 또 시작이구나 싶어 입맛을 다시며 얼굴을 돌린다.
“종로거리를 만세소리로 뒤덮으며 활보했어! 지금와서 말을 하니 그렇지, 그때로서는 자앙했지! 사흘 후에 다시 남대문 정거장에 모여 일제히, 요샛말로 데모를 감행했지! 그날은 왜경들이 마구 칼자루를 뽑아 닥치는 대로 치고 헌병들이 무차별 발사를 하고……· 내, 이 귓뒤에 칼자국이 있잖아? 그때 왜경한테 얻어맞은 거야, 유치장에 붙잡혀 가서도 발을 굴르며 마구 만세를 불러댔지! 무서운 게 다 뭐야! ……그랬는데 오늘날 이런 청년들이 얼굴이 뇌래가지구, 파고다 공원에서 소리를 해서 벌어먹어야 하고…….”
노인의 말은 어느새 열을 띠기 시작하고 있었다.
청년의 크기만 했지 명태 눈알처럼 폭삭 마른 눈에 빛이 휙 이는 것 같았다. 다음 순간 다시 아까처럼 입가에 쓴웃음 같은 것을 띠우고는, 노인의 말은 귀에 들리지도 않는 듯 저 앞의 빵장수를 건너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침을 꿀꺽 삼켰다. 마주 바라보던 빵장수 처녀는 맘보바지도 아닌 누런 양복바지 가랭이를 벌리고 앉았던 두 다리 새로 빵 광우리를 잡아당기며 수집은 듯 고개를 숙인다.
청년은 일어섰다. 빵장수 앞 쪽으로 주춤주춤 가더니 다시한번 군침을 꿀꺽 삼키고는 공원 뒷문으로 지나가고 말았다. 청년의 그림자가 사라지는 기척을 알아차린 처녀는 속눈썹을 길게 들어 뒷문 쪽을 바라본다.
기미당 노인은 청년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청년을 나무래서 한 소리가 아니었다. 다만 세상 돼가는 꼴이 한탄스러웠고, 청년들이 일터가 없이 공원에
모여 빈들거려야 하는 것이 안타까웠을 뿐이다.
“따끈한 커피차 코코아차가 있어요. "
용이엄마가 찻구루마를 끌고 왔다.
“아주머니 나 커피차 하나 주슈.”
함 영감 있는 데서 너댓 자 떨어진 나무 밑에 자리잡은 젊은 관상쟁이가 차장수를 부른다. 젊다지만 사십은 돼 보이는 친군데 여기 나와 앉기 시작하기는 얼마 오래지 않다. 엷은 하늘빛 유리안경을 벗는 적이 없다.
“나 커피차 한잔 주구, 차장수 아주머니두 코코아차 한잔 드슈. 내 돈 내께.”
“아니에요, 난 안먹어요.”
용이엄마 얼굴에 웃음이 인다. 빈말이라도 친절을 받는다는 것이 고마운 것이다.
“아따 한잔 하시라는데, 내 차는 못 마실 차요? 그러구서, 나하고 좀 좋게 지냅시다. 뭐니뭐니해두 이불 속에 여자 빨가벳겨놓고 노는 재미가 젤이지 히이 히이 히이.”
젊은 관상쟁이의 더덕더덕한 금니빨이 누우렇게 번쩍거린다.
“아이구, 신사 아저씨두! 꼭 그런 말씀만 하셔! 우리는 정신적 연애가 좋아! 호, 호호.”
“얏따, 이건 단수가 높으신데? 히이 히이 히이!”
젊은 관상쟁이가 노는 꼴이 사나워 함 영감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꽁초를 꺼냈다.
그런데 함 영감을 한충 더 못마땅케 하느라고 차장수가 지나간 다음 바로, 머리채를 엉뎅이께까지 치렁치렁 땋아 늘어뜨린 처녀 아이가 젊은 관상쟁이 앞에 들어와 앉는 것이었다. 관상쟁이는 고개를 번쩍 쳐들고,
“어셔 오슈, 그 머리채 참 조오타.”
처녀는 수집어 하는 몸짓으로 말을 건넨다.
“저……· 얼마씩이에요? ”
“거야, 우리집에서 보는 거면 이천환도 받고 삼천환도 받지마는, 우리집을 몰라서 못 오는 사람들을 위해서 하루 두어 시간씩 여기 나와 앉았는 거니까, 여기서는 특별히 싸게 해드리지요.”
능청맞게 도사리고 앉는 젊은 관상쟁이의 수작을 귓곁으로 바라보던 함 영감은 한번 엉뎅이를 들썩하면서 기미당 노인을 곁떠 보고 소근거렸다.
“날도둑은 저런 놈이야.”
기미당 노인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 온종일을 나와 앉았는 녀석이 무슨 놈의 우리집에 못 오는 사람을 위해서 어쩌구 저쩌구냐 말이다.
“흠, …·처녀는 서울에서 운이 틔게 돼 있는데, 본시 부모덕은 못 볼 팔자니까, 서울에서 운을 열어야겠는걸.”
벌써 흥정이 된 모양이다.
“작년까지는 아주 좋지 않은 운수였어. 그런데 올들어 이월 삼월부터 활짝 피어 있군.”
“금년부터요? 양력으루요? 음력으루요?”
“물론 음력이지, 올 이월 삼월에 귀인을 만나 새로운 생활이 시작 돼, 틀림없어.”
“이월이나 삼월에요? 그럼 금방이게요?”
“금방이죠. ……그런데 지금 무얼하고 있소?”
“남의 집에 있다가 나왔어요.”
“그럼 취직을 해야지.”
“글쎄 누가 방직공장에 알아 봐 준댔어요.”
“방직공장? 그런 데는 큰일나요. 시골처녀들이 방직공장에 갔다가 모두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구먼? 아주 못쓸 데가 방직공장이요. ……가만있자…….”
젊은 관상쟁이는 목을 바싹 앞으로 뽑아 속삭이듯 말한다.
“내 누이동생 이 전매청 공장에 댕기다가 이번에 결혼하느라고 그만뒀는데, 그렇잖아두 거기 공장장이 바로 우리 고향사람이지……·나보고 좋은 사람 있거든 하나 소개해달라고 하던데·…….”
“어마! 그런 데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그 자리가 아직 볐는지 모르긴 하지만, 어디 나하고 그리 한번 가 보시까?”
관상쟁이는 한 다리를 세운다.
“아이 고마우셔라. '미안해서 어떡해요.”
“천만에! 이게 다 존 일이지 뭐요.”
신바람이 나서 관상쟁이는 전을 걷어치운다.
처녀는 놓칠세라 종종걸음으로 젊은 관상쟁이의 뒤를 따랐다.
“흠, 자식! 누이동생도 많기도 하이…….”
함 영감은 연신 코방귀를 튕긴다.
바로 며칠 전에도 꼭같은 수작으로 관상 보러 온 처녀를 데려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기미당 노인도 무언가 못마땅한 입맛을 다셨다.
“버서러 추모식 끝났능기요.”
약장수 김 첨지가 그 닳아빠진 가방을 끼고 온다.
가방도 하도 오래 써먹으니까 이제는 가죽이 부실부실 일어나다 못해 어떤 데는 금방 구멍이 뚫릴 것만 같이 반질반질하다. 그래서 들고 다니기는 불안스럽다고 언제나 겨드랑이에 끼고 다닌다. 남들이 보기에는 끼고 다니지마는, 사실은 김 첨지로서는 품에 안고 다니는 마음이었다. 〈신령환〉……. 마누라하고 마주앉아 자기가 만들어 내는 약이지마는 몇갑밖에 아니라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될지 몰라도 이것이 〈만병 통치〉고 보면 보통 물건이 아닌 것이다. 거기에다가 신통하게도 이것으로 양주 두 식구가 먹고 살게 되니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ㅡ一모두가 다 빠고다 공원 덕택이지.
김 첨지는 진정 파고다 공원에 대해서 감사하며 살아오고 있었다.
“네, 어서 오시우. 국경일 날은 좀 쉬시지, 첨지두.”
김 첨지는 가방을 앞에 내려 놓으며,
“아잉게 앙이라 나도 좀 쉬고접지마는, 저어, 시골에서 일부러 날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 사람들 헛걸음 시켜가지고야 되겠능기요.”
실상, 멀리는 고양군 시흥군 쪽에서도 더러 오는 수가 있었고, 왕십리, 마포 같은 데서도 〈빠고다 공원 김 의원〉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쨌든 김 첨지의 〈신령환〉으로 효험을 보았다는데야 별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따, 그놈의 마이큰가 먼가 울어대지 않응이 사람 살 것 같대이.”
가방을 열어 전을 퍼기 시작하면서 김 첨지가 하는 말을 기다리고나 있었던 듯,
“친애하는 시민 여러분! 여기는 자유당 정·부통령 선거·…….”
하고 자유당 스피커가 먼저 울리기 시작했다.
“히, 호랭이 말하면 호랭이 온다더니!”
함 영감이 또 코방귀다.
“친애하는 시민 여러분. 오늘 삼일절 날, 빠고다 공원에서 선열 추모식이 거행되는 동안 저희 자유당은 함께 추모하는 의미에서 마이크 선전을 중단하고 있였읍니다. 이제 식이 끝났으므로…….”
잇따라 져서 될까보냐고 민주당에서도,
“친애하는 시민 여러분! 여기는 민주당입니다. 지금 마악 이름을 밝히지는 한 여학생이 선거비로 써 달라고 오백환짜리 두 장을 놓고 갔읍니다. 우리 민
주당은 애국동포 여러분의 이러한 정성으로…….”
고성능 마이크들은 귀창이 찢어지라고 두들겨대기 시작했다.
“어이 우라질! 저렇게 매려운 걸 어떻제 참고 있었을구!”
기미당 노인은 침을 택 뱉는다.
“아, 첨에 민주당에서만 시작했을 때야 그래두 무슨 소린지 알아듣기나 했지, 자유당에서 민주당 선전을 방해하느라구, 소리봉을 수십개를 지붕 꼭대기마다 달아놓고 떠들어대니, 도시 뭐가 뭔지 알아들을 수가 있기를 한가, 이건 사람 죽이는 수작 아니야? ”.
함 영감이 핏대를 올린다.
“이래서 요새 사람들이 마카 신경 쇠약이 안 걸 리능기요.”
김 첨지는 의원답게 의학적으로 비평한다.
“그야, 민주당만 선전하라는 법이 어디 있는가, 자유당도 선전에 지지 앓겠다는 거지.”
기미당 노인은 언제나 함 영감이 꼭 무슨 정의파인 체하고 민주당을 지지하는 꼴이 눈끌사나웠다.
“선전을 하면 했지 남이 먼저 시작해 하는데다가 뒤늦게 저어기 구청 꼭대기 이 공원, 저, 전찻길가, 자기네 당사 꼭대기, 수십 개 소리통을 달아놓고 이 장단이니, 이건, 온 종로를 가시끼리했단 말인가? 사람이 살아얄 게 아니냔 말이야.”
함 영감은 좀처럼 지러고 들지 않는다.
“그, 이런 제에길, 민주당이 안하면 몰라도 민주당이 하는데, 왜 자유당인들 못하나 말이야. 다같이 하는데야 자유당만을 나무랄 필요는 없는기 아니냐 말이야. 나는 자유당을 지지한다는 게 아니야, 이치가 그렇다는 거지. 시끄러운 건 매한가지지 뭐야.”
이쯤 되어오면 기미당 노인도 꿇릴 생각은 조금도 없다.
“아, 언제는 또 이 박사 아니면 대통령 할 사람이 없다더니 인제는 또 자유당을 지지하는 건 아니라구? 바로 어제 그저껜데, 까마귀고기 먹었어?”
함 영감은 삿대질이라도. 할 것처럼 덤빈다.
“그, 이런 제에길, 그래, 역시 이 박사가 인물이라고 했지. 암만 뭐니뭐니해싸두 이 박사만한 애국자가 없단 말이야. 헌데에, 이 박사를 지지한다구 자유당 지지하는 게 돼? 그, 이런 무식쟁이 관상쟁이 영감 같으니라구?”
“아니, 무식하긴 누가 무식해, 그래, 이 박사를 지지하면서 자유당은 지지하지 않는다구, 그래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보이소.”
듣고 있자니, 이러다가는 싸움이 되겠다 싶어 김 첨지가 새에 끼어들며 가로
막는다.
“이카다가는 삼 하겠임더, 구만 하이소. 그런데, 이 박사를 지지하는 것이 반드시 자유당을 지지하는 건가 카는 것은 문제가 좀 다를낍니더. 설령 이 박사를 좋아한다개도, 자유당은 싫어할 수도 있을 낍니더.”
“그, 그렇지, 내 말씀이 그 말씀이란 말씀이야, 자유당이 노는 꼴은 나도 꼴불견이란 말이야. 정치가 돼먹지 않았단 말이야, 나라 망쳐먹기 꼭 좋단 말이야.”
“아니, 그러면, 이런 우라질 말 좀 봤나. 이 박사가 훌륭하고 잘한다면 왜 그럼 이꼴이란 말인가, 응?”
“히, 그, 이런 참, 그, 이 박사는 애국자요, 인물이지! 훌륭한 양반이지, 그런데 아랫사람들이 틀려 먹었단 말이야. 이 박사는 뭘 알아? 미국제 모자 하나에 오백환 한다고 속이고 있다는데, 더 말할 나위 있어? 알 만해? 함 영감!”
기미당 노인은, 김 첨지가 제법 조리있게 거들어 주는 통에 신이 났다.
“그렇다면야 알 만하지. 하지만 이 박사는 삼선 때 물러섰어야 해. 허, 참, 조 박사만 살아 계셨더래두…… 조박사는 자유당에서 죽인 거나 마찬가지야.”
함 영감은 결국 이렇게 결론짓고 말았다. 그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
김 첨지가 나즈막한 소리로 말을 꺼냈다.
“조 봉암씨야말로 생떼같이 누명쓰고 죽었지요. 아까운 사람 쥑였지요. 암만캐 쌓아도…….”
이때 허술구레한 부인네가 하나 김 첨지 앞에 와 앉았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세 영감이 떠들어대는 통에 구경꾼이 제법 빽빽이 둘러 서 있었다.
“아이고 어서 오시이소. 어떻덩기요, 약 자시고.”
“참 신통해요.”
부인네는 진정 감탄해 마지않으면서 앉은걸음으로 한발 다가들었다.
“그래, 우리 바로 뒷집 애기 엄마가 월경이 고르지 못하고, 자꼬 아랫배가 아프다고 그러는데, 암만 병원에 댕겨도 낫지를 않아서…….”
“빙원에요, 하이구, 집팔어 널라커덩 빙원에 가라카이소. 아, 내한테 오면 약 사흘치면 떨어질 낀데.”
“글쎄, 그래서 지가 오잖았어요. 우리집 며느리도 금세 거저 낫더라고 했더니 한번 가봐달라고 헤서·…….”
“하마, 하마, 사흘치면 떨어집니더.”
김 첨지는 악 사흘치를 지어주고 팔백환을 받아 조끼 주머니에 넣은 다음 다시 친구 영감들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럼, 영감님 말씀대로 하면 조 봉암이는 간첩이 아니란 말입니까?”
둘러앉아 있던 사람들 속에서 학생 같은 젊은이가 말참견을 한다.
김 첨지는 신이 났다.
“하마, 억울한 누명이지요. 지금 자유당 정권에서 젤 무서워하는기 제삼 세력이거덩. 사실 민주당보다도 이걸 무서워하거덩, 그렁이까네, 조 봉암이를 둬뒀다가는 큰일나겠다꼬 잡하쥐겠다캉이. 간첩은 무신 간첩.”
“영감!”
이번에는 중절모자를 쓴 젊은 친구가 점잖게 불렀다. 젊은 친구는 서 있었기 때문에 김 첨지는 고개를 바싹 제껴 쳐다보아야 했다.
“나 좀 봅시다.”
“예?”
김 첨지는 눈이 둥그래졌다.
“이리 좀 나오슈, 나 좀 봅시다.”
김 첨지는 벌떡 일어섰다. 겁이 훅 난 것이다.
중절모를 쓴 젊은이는 양복 안주머니에서 신분증을 꺼내 보였다.
“잠깐 같이 좀 가십시다.”
“아니, 와 그라십니꺼.”
“조 봉암이 얘기 좀 자세히 듣고 싶어서요.”
“앙이, 와 그라시는지.”
“여러 소리 말고 가잔 말이야!”
형사는 김 첨지의 가방을 걷어찼다. 약봉지가 터뜨러지면서 약알들이 좌르르 땅바닥에 쏟아졌다.
“아이구, 아이구.”
김 첨지는 허둥지둥 약알들을 줏어 모았다.
기미당 노인은 약을 같이 주워 주었다.
“뭘 하고 있는 거야!”
형사 재촉에 김 첨지는 더 머뭇거릴 수가 없었다.
“가방은 내가 맡아 있을 테니 염려 말고 다녀 오슈.”
김 첨지는 우둘우둘 떨리는 다리로 형사를 따라갔다.
손잡이에 구멍이 빠끔히 난 중절모를 머리에 얹고 땅딸한 첨지가 아작아작 따라가는 꼴을 바라보면서 기미당 노인은 눈시울이 확 뜨거워왔다.
기미당 노인은 말짱히 약을 주워 담으면서 뭔가 오늘은 불길한 날인 것만 같았다.
“흥! 막할 놈의 세상, 말도 못하게 해? 국민이 말도 못하게 하고 저회가 잘 될 줄 알아? 흥!”
함 영감은 연신 코방귀를 뀌면서 꺼 두었던 꽁초에 세번째 불을 댕겼다.
“그, 주책 없이 씨부렁거리지 말아요, 떼 가는 걸 보면서두.”
“떼 갈테면 떼 가가지망할 놈의!……”
뭐라고 더 뇌까리던 함 영감이 흠칫 말을 들여삼키고 말았다.
〈소리하는 청년〉이었다.
〈소리하는 청년〉이 후닥딱 뒷문으로 뛰어들어오는 것이었다. 그냥 뛰어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무엇에 쫓겨오는 것이 분명했다.
역시 그랬다.
뒤따라 달려오는 순경이 보였다. 청년은 십삼 층 탑 앞에 와서 쿡 거꾸러졌다.
달려오는 순경의 모자가 훌렁 벗겨떨어쳤다.
황급히 모자를 주워 쓰고,
“이새끼가 가면 어디까지 가겠다구?”
청년의 목덜미를 잡아 제끼는 순경도 숨이 턱에 닿아 있다.
“일어나 이새끼!”
기미당 노인은 불길한 예감이 맞아들어가는 데에 놀라며 제물에 청년보다도 먼저 후닥딱 일어섰다.
“아니, 그, 왜, 왜들 이러시우.”
기미당 노인은 청년과 순경을 번갈아 본다.
“이 새끼가? 포스터는 왜 찢었어?”
순경은 기미당 노인에게는 아랑곳없이 목덜미를 한번더 됩싸 나꾸챈다.
“왜 찢었느냐 말이야!”
“됐어요, 가요.”
청년은 옷의 먼지를 털면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한다.
“되긴 뭐이 됐어!”
“이 어른들께 인사 드리려구 왔지요, 인제 가요.”
청년은 기미당 노인과 함 영감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이런 망할 자식 같으니라구! 포스터는 누가 찢으랬지?”
순경은 눈을 부라렸다.
“내가 찢구 싶어 찢었어요.”
“뭐? 찢구 싶어서?”
“하두 배가 고프기에 형무소에 넣어달라구요, 콩밥이라도 먹을 수 있잖아요.”
청년은 뛰어오느라고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씰룩거리며 말한다.
“도둑질하기보단 낫잖아요?”
세겹 네겹으로 둘러선 사람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쳐다보았다.
“이런 망할 자식! 하필이면 이 대통령 사진을 찢어 ? 겁도 없이!…….”
순경은 약이 치올라 말소리가 떨렸다:
“민주당 거야 찢는다구 어디, 데려가나요?”
순경은 태연하게 지껄이는 소리에 따귀를 한대 따악 소리가 나게 갈긴다.
“가…·이자식…….”
청년은 기미당 노인을 돌아보며 싱긋이 웃는다.
“여보시오.”
“그, 배가 고파서 그랬다니 오죽했겠소. 그, 그만 놔 주시지요.”
“당신은 머요! 저리 비키시오”
기미당 노인을 띠밀칠 듯이 팔을 홱 뿌리친다.
“아니.”
함 영감도 가만히 보고 배길 수 없었다.
“뭐, 다른 생각이 있어서가 아니라, 배가 고파 그런 건데 뭘 그러시오, 그만 놔 주시구려.”
“이런 ! 당신네들이 참견할 문제가 아니니 비키시오들! ……이자식아!”
순경이 발길로 찬 모양으로, 청년은,
“아얏!”
하고 꼬꾸라진다.
“죄를 졌으면 벌을 줄게지 왜 사람을 때리고 차는 거요!”
여자 소리였다.
젊은 여자의 앙칼진 목소리에 둘러섰던 사람들은 깜짝 놀랬다.
빵장수 처녀였다.
가까이 있던 사람들이 길을 틔워주었다. 처녀는 순경 앞으로 다가섰다.
“이건 또 뭐이 이런 게 있어, 거지 같은 게!”
순경은 당장 요절을 내기라도 할 듯이 으렁댄다.
“당신 눈에는 모조리 거지로만 뵈우? 사람을 함부로 치고 함부로 욕을 하게!
인권을 옹호하는 게 경찰의 임무라는 걸 아세요!”
기미당 노인은 눈을 의심 하리만치 놀랬다. 기미당 노인뿐만이 아니었다. 함 영감도 입을 벌렸고, 누구보다도 〈소리하는 청년〉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뭣이 어쩌고 어째?”
금방이라도 한대 후려칠 듯이 처녀 앞으로 한밭 다가드는 순경의 팔을 청년이 답썩 잡았다.
“죄인은 여기 있읍니다. 어서 가시지요.”
처녀는 홱 돌아서더니 빵 광우리에서 덜 단단한 놈을 서너 개 골라가지고 청년의 가슴팍에 안겨 준다.
청년의 눈이 물끼를 머금으면서 환하게 빛났다.
처녀는 광우리를 끼고 청년보다 먼저 공원을 총총히 빠져나갔다.
불길할 것 같던 기미당 노인의 예감은 기분나쁘리만치 맞아들어갔다.
저녁 때가 거의 다 되어서였다.
낙원 시장거리……· 바로 공원 뒷담에 붙어 우동 장사하는 함 영감의 아들이 부리나케 달려드는 것이었다.
“아버지! 어머니가…….”
“응? 뭐 뭣이?”
관상을 보다 말고 함 영감은 엉덩이를 들썩했다.
“어머니가 시장에 나오셨다가 갑자기.”
“갑자기?”
“쓰러지셨어요!”
“머?”
허둥허둥 일어서서 신을 채 뀌어 신지도 못하고 뛰어나가는 것이었다.
기미당 노인은,
“……·이 무슨 변곤고…….”
중얼거리며, 함 영감의 전을 걷어 간판과 같이 주워들고 함 영감네 집으로 뒤따라갔다.
함 명감은 자기 말로 일제시대에 경부 노릇을 했다고 했다. 그러다가 해방통에 알거지가 되어 이남으로 쫓겨왔다는 것이었다.
경부 노릇을 했다지마는 그대로 믿을 수는 없고 아마 순사나, 혹은 순사 부장쯤 지냈는지 알 수 없다고 기미당 노인은 짐작하고 있었다. 하여간 경관 노릇을 한 것은 틀림없는 것이, 지금도 가끔 가다가 공원 뒤 빈대떡 집에서 대포라도 한 잔씩 할 메면 작부들의 어디를 건드리는지 찢어지는 소리를 지르며 영감도 망녕이라고 눈을 흘길라치면 곧잘 고라! 고라! 하고는 호통을 치는 버릇이 있었다. 이것은 오랫동안 순사질하는 새에 자기도 모르게 밴 습성이 뛰쳐나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저러나 싸움은 가다가 해도 이 공원에서 기미당 노인에게 있어서는 가장 가까운 친구의 하나였다. 혹 몸이 불편해서 어느 한 쪽이 나오지 않을 때면 궁금하고 섭섭해서 못 견딜 지경이었다.
함 영감의 부인은 나이 이미 여순을 넘어 있었다. 갑자기 쓰러졌다니 뇌일혈
에 대개는 틀림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아무래도 살기는 어려우리라 싶었다.
다행히 함 영감네 셋방은 시장 입구의 병원 이층이었다. 병원 안이 부산한 것을 보니 병원으로 곧장 데리고 들어간 모양이었다.
밖에서 좀 서성거리다가 아무래도 궁금해서 못 배기겠기에 문을 열고 들여갔다.
안 노인은 언뜻 보기에 벌써 눈의 촛점을 잃고 있었다.
――틀렸구나……
기미당 노인은 직각적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혈압을 재고 주사를 놓고 부산하게 응급치료가 끝난 다음 여의사는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산부인과 전문이니까 내과 병원으로 데려 가보시지요.”
나중에라도 귀찮은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눈치였다.
“대, 대관절 어떨 것 같습니까.”
함 노인은 부인의 한 쪽 손을 잡은 채 여의사를 쳐다보며 물었다.
“글쎄요, 아마 어려우실 것 같군요.”
의사의 말이 떨어지기가 바쁘게,
“어이구 어이구! 마누라야, 날 두어두고 너 혼자 가는구나아! 어이구 어이구! 그래도 살아보려고 마주잡고 삼팔선 넘어왔는데에·…· 이게 웬일인고오 이게 웬 일인고오…….”
함 영감은 싸느랗게 식어가는 아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소리를 놓는 것이었다.
기미당 노인은 더 바라보지 못하고 돌아서 나오고 말았다. 콧잔등이 시큰해왔다. 코를 뺑 풀고 이층에 올라가 며느리한테 함 영감의 전 걷은 것을 놓아 놓고 밖으로 나왔다. 세상에 혼자 남은 듯 외로웠다. ˙
이렇게 불길한 날, 집에는 무슨 사고라도 없을까 싶어하며 청량리행 전차에
올랐다.
마누라의 얼굴이 떠오른다.
기미당 노인의 부인도 올이 환갑이었다. 정말이지 늙어가면서 마누라밖에 좋은 것이 없었다. 늙막해서 외동아들 하나 낳아 지금 대학에 다니지마는, 애비 속을 알아줄 리 없었다. 하기야 학비 한 푼 보태 주지 못하고 제손으로 고학을 한다고 버둥거리는 것을 보고만 있으려니, 아들보고 애비 에미 속 알아달라고 할 염치도 못 되었다.
그러는 통에 끼어 마누라는 코딱지만한 구멍가게를 가지고 그래도 어쨌든 세 식구의 밥을 끓여 먹이고 있으니, 그저 고맙고 대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허구헌 날 공원에만 나가 앉아 있고 돈 한푼 못 번다고 군축 한마디하는 법 없다. 그저 오래 살기를 바랄 뿐이었다.
정말이지 기미당 노인으로서도 단 한가지 마누라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제발 덕분 탈 없이 오래 살아주기를 비는 것뿐이었다.
2
함 영감네 장사에는 기미당 노인이 두 팔 걷고 나와 일을 보아 주었다. 함 영감의 슬퍼하는 모습이란 곁에서 보기에도 딱할 지경이었다. 관이 화통 속으로 밀려들어갈 때는 관머리를 붙잡고 영 놓아 주지를 않아 화부들은 한동안 싱강이를 해야 했다.
돌아오는 길로 바로 공원 뒤의 단골인 〈행줏집〉에 들러서 두 노인은 해가 누엿누엿할 무렴 까지 연거푸 잔을 비워냈다.
“그놈의 김 첨지나 있었으면 좋잖나, 떼 가긴 빌어먹게!”
함 영감은 이런 때에도 있어야 할 친구가 한자리에 앉아 있지 않은 것이 몹시 서운한 것이었다.
“맞다 맞다!”
기미당 노인도 김 첨지의 사투리를 흉내내며 소리를 질렀다.
“그 주제에 제 삼 세력은 밤낮 무슨 놈의 우라질 제 삼 세력이라고 떼 가기까지 한담!·…· 늙은 게 썩은 밥 먹고 앉았을 테니, 팔짜 꼴 자알 돼먹었다!”
기미당 노인은 김 첨지가 원망스러웠다. 어느 세상이라고 함부로 지껄이다가
다 늙은 것이 욕을 본단 말인가.
“기미 영가암!”
함 영감은 기미당 노인의 어깨를 툭 잡았다. 주기가 돈 모양으로 금테 안경너머로 흘겨 보는 뿌연 눈알이 게슴츠레하다.
“우리, 내일부터 김 첨지 석방 운동을 합시다. 마누라도 죽고 없는 나야 인제 친구밖에 더 있오. 아들놈? 흥! 소용없어, 세상에는 늙은이들한테는 마누라가 젤이구우, …·기미 영감, 죽기 전에 마누라 엉뎅이 잘 쓰담아줘……· 죽구 나면 없네 없어…….”
코를 훌쩍 들여 마신다. 목이 메어 온 것이다.
“그래, 알아, ……알아."
기미당 노인은 진정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기미당 노인도 눈물이 울컥 솟았다.
“그러구 말이야.”
함 영감은 말을 이었다.
“마누라 다음엔 친구밖에 뭬 있나 말이야, 그렇잖아?”
“옳은 마씀이야, 그리구, 그 청년 있잖은가, 소리하는 청년 말일세. 그 청년도 우리 같이 찾아내도록 합시다. 빠고다 공원에서 소리를 해서 벌어먹고 있을망정 양정 바른 청년이야. 모두 우리 식구 아닌가배.”
“아암, 그렇지, 그렇지, 우리 그 두 친구를 꼭 찾아내고 마세, ……자, 아주머니, 한잔씩 더 따루, 빈대떡 한접시 더 주구!”
이튿날부터 두 노인은 경찰서를 뒤지기 시작했다. 어디서 누가 데려갔는지도
알 수 없는 터라 경찰서를 뒤져나갈 도리밖에 없었다.
〈소리하는 청년〉은 종로 경찰서에 갇혀 있는 것을 금방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청년 말입니다. 그 청년으로 말하면 아무 죄 없는 청년입니다. 우리 모두 같은 식구나 다름없는데 우리 둘이 책임질 테니 염려 말고 내보내주슈.”
두 노인은 번갈아 애걸했으나 경찰의 태도는 만만치가 않았다.
“죄가 있는지 없는지 당신들이 어떻게 아슈. 선거벽보를 찢었는데 아, 죄가 없단 말이오?”
“아, 글쎄 그게, 어디 벽보를 찢을래서 찢은 겁니까. 하도 배가 고파서 그랬다는 걸 가지구.”
“배가 고프면 거지 노릇을 할 게지 선거 벽보를 찢어도, 더구나 이 대통령의?”
“아, 이 대통령이야 이미 당선확정 된 분인데.”
“도대체 당신들은 머요, 왜 이 야단이오. 하여간 선거법 위반으로 구속된 거
니까, 그렇게 알고 나가시오.”
“우리, 우린 같은 빠고다 공원 식구요. 빠고다 공원에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오. 제발 내주슈. ……사람 한번 죽고 말면 그만입네다·…….”
함 노인의 말끝이 흐려온다.
“무슨 소리들을 하고 있는 거요, 영감들은, ……나가시오.”
“그, 그러실 게 아니라. ”
“우리는 바쁜 사람들이우, 나가시오!”
돌아앉아버린 경찰관은 더 상대를 해주지 않았다.
“그, 배가 고파서 그런 건데, 그, 그걸 뭐 선거법 위뱐…….”
“시끄럽단 말야!”
홱 돌아보는 경찰관의 상판이 엔간치 않게 험상궂다.
“배가 고파서 그랬다구? 그 자식은 버젓한 예비역 육군 대위야.”
두 노인은 눈이 휘둥그래진 얼굴을 마주 쳐다보았다.
“그래, 육군 대위였던 자식이 배가 고파서 그런 짓을 했단 말이오? 그 자식은 틀림없는 빨갱이요, 국가 변란을 일으키기 위한 간첩이요!”
시퍼런 서슬 앞에 두 노인은 입을 딱 벌린 채 돌아서 나왔다.
간첩이니 빨갱이니 하는 따위는 항용 그 사람들이 쓰는 말이거니 짐작되지마는, 육군 대위를 지낸 사람이라는 데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아니 그게 정말일까?"
함 영감은 금테 안경 속 두 눈이 올빼미 눈알같이 동그래진 채다.
“그럴는지도 몰라. 내가 뮈랬어, 똑똑한 청년이랬잖아? 사실일 거야.”
기미당 노인은 한층 그 청년이 대견스러워 보였다.
함 영감은 함 영감대로, 어딘가 자기와 정치노선을 같이하는 듯한 그 청년이 새삼 믿음직 스러워졌다.
“할아버지들 웬 일이세요? ”
빵장수 처녀였다.
마악 경찰서 문을 들어오고 있었다.
그 누런 양복바지가 아니고, 산뜻하게 한복으로 차린 처녀를 두 노인은 얼핏 못 알아 볼 뻔했다.
“아니, 어떻게 여기.”
기미당 노인은 손이라도 덥썩 잡아주고 싶도록 반가웠다. 공원에서 날마다 같이 지내는 사람을 공원 밖에서 만나면, 흡사 타향에서 한고향사람 만나는 것 같은 반가움이다.
“저…… 좀 볼일이 있어서요.”
“그래? 우린, 그 청년 말이야, 붙들려 온 청년 좀 만나려고 했더니 만나지도 못하고, 석방은 더구나 어림도 없을 것 같구만.”
걱정스레 말하는 기미당 노인을 쳐다 보고 있던 처녀의 맑은 두 눈에 눈물이 사르르 고인다.
그러더니 처녀는 몸을 홱 돌리며,
“그럼 또 뵙겠어요.”
종종걸음으로 경찰서 안으로 들어갔다. 통조림 같은 것을 두어 개 신문지에 싸 들고 있었다.
두 노인은 다같이 저 처녀가 청년 일로 온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김 첨지는 치안국에 구속되어 있는 것을 저녁때가 다 되어서야 알아냈다.
시내 경찰서라는 경찰서를 다 돌아다닌 다음이라 두 노인은 어지간히 피로해 있었다. 아주 낙망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함 영감이 이왕이면 치안국에 한번 들러보자고 했다. 치안국을 생각해내게 된 것은 함 영감이 전에 경찰관 경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기미당 노인은 함 영감을 쳐다보며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그래, 부랴부랴 달려와 보았더니 정보과 유치 인명부에 김 첨지가 올라 있는
것이었다.
두 노인은 여기에 있는 것을 알기만 한 것만도 만나기나 합 듯이 반가왔다.
그러나 벌써 다들 퇴근하는 시간이었다.
불문곡직 하고, 내일 오라는 것이었다.
아뭏든 김 첨지가 있는 데를 알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사무실을 나오는데,
“기미당 노인 아니세요? "
저쪽 안 구석에 앉았던 젊은이가 쫓아나와 알은 체를 한다.
“가마안있자, 그 이게, 석호가 아닌가.”
“네, 여전히 기력이 좋으시군요.”
기미당 노인은 물에 빠진 사람이 찌푸라기라도 잡는 격으로, 여기에서 아는 젊은이를 만난 일이 어떻게 반가운지 몰랐다.
“자네, 여기 웬일인가.”
“지, 여기 있어요.”
“여기라니, 치안국에?”
“네, 정보과에요.”
“야 이사람아, 그, 그, 참 잘 만났네, 아, 그, 이사람 인사 드리게, 이 노인으로 말하면, 자네 선친이 작고하신 후론 내가 젤 막역하게 지내는 친구 중의 한 분일세.”
“저 김 석호 올시다.”
“나 함 기도요.”
기미당 노인과 주고받는 촌수로 미루어 함 영감도 좀 점잔을 빼도 좋을 것같이 생각된 모양으로 의젓하게 이렇게 받았다.
“이, 석호군은, 전에 바로 이웃집 에 살아서, 선친과는 죽마지고우지. ……·그래 자네 여기서 무슨 일 하는가.”
“정보 담당입니다.”
“이사람아 그 계급이 뭔가 말일세.”
“경위 올시다.”
“경위라……·허, 이사람 참 자알 만났어, 저, 그 우리 요기, 잠간만 같이 나
가세.”
“전 조금 일이 남아서요.”
“아따 이 사람아 만날 하는 일 가지구 뭘 그러나, 잠간만 나가세, 오늘 여기서 자넬 만난 것은 참, 하늘이 도운 일일세. 자, 어서, 그, 요기 가까운데 우리 잠깐 나가서.”
“그럼 잠깐 기다리세요. ”
석호는 일단 들어갔다가 다시 나왔다.
기미당 노인은 함 영감 앞에 어깨가 으쓱했다.
석호는 이왕이면 약주나 한잔 대접한다구 가까이 있는 음식점으로 안내했다.
기미당 노인의 자초지종을 듣더니 석호는,
“요즘 그런 일이 실상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마는 어디 내일 한번 다시 와 보시지요.”
“고마우이! 고마우이!”
기미당 노인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내친 걸음이라 생각하고 종로서에 있는 〈소리하는 청년〉 부탁도 겹쳤다.
“절대로 자네 후회하는 일을 부탁하지 않네, 내 두번 다시 이런 일을 가지고 귀찮게 하지 않을 테니 그, 이 두 사람만 꼭 좀 봐주게.”
“치안국의 그 노인은 제가 힘써 보겠읍니다마는 종로서는 좀 어렵습니다. 제가 직접 관계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더구나 사건이 그런 거면, 더 힘들 것 같군요. 아뭏든 한번 알아는 보아드리지요.”
“그러게, 이 사람아 경위라, 치안국 정보과라, 그, 되네 돼, 자네만 믿네.”
두 노인은 기분이 좋은 데다가 오래간만에 색다른 안주를 보는지라 권하는대로 술되나 좋이 마시고 일어섰다.
김 첨지는 석호의 힘으로 이튿날 저녁때 바로 나왔다.
김 첨지는 두 친구 덕분에 몸이 풀려 나온 것을 무척 고마워했다. 날마다 번돈 중에서 대포를 샀다.
그리고 함 영감 상처한데 대해서는 정중하게 따로 봉투를 전했다.
그러나 〈소리하는 청년〉은 역시 쉽지를 않았다. 석호 말대로 석호로서 할 수 있는 때로 힘써 달라고 부탁할 수밖에 더 어째 볼 도리가 없었다.
어떻게 된 셈인지 빵장수 처녀도 그후 한번도 공원에 나타나지를 않았다.
선거가 끝났다.
한 달을 넘어 떠들어대던 스피커 소리가 멎자 공원이 조용해진 것 같았다. 그러면서 새로운 생기가 돌았다.
그럴수록 〈소리하는 청년〉이 그리워지는 것이었다. 얼마나 살아날 것같이 그
멋들어진 노랫가락을 불러넘겼을 것인가.
그러나 좀처럼 청년은 풀려나오지를 않았다.
선거가 끝난 것은 좋았으나 마산에서 데모사건이 발생한 것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팽창해가는 불안스러운 공기는 파고다 공원에 쉴새없는 화제를 제공해 주고 있었다.
그러면서 각자 자기들의 생활은 여전히 영위되어 가고 있었다.
공동변소와 맞붙은, 열지 않은 북쪽 문에는 물주가 들어 앉았고 그 주위에는 노름꾼들이 항상 우굴거리고 있었다.
팔각정 안에서는 청계천이 콘크리트로 덮이고 수표교가 헐려나가고 하는 통에 서울이 서울답잖아진다고 한탄하는 노인들이 여전히 핏대를 올리고 있었고, 이러다간 이놈의 나라 꼴이 어떻게 돼갈 건고 하고 장탄식을 하는 우국지사들에, 멀지 않아 무슨 변고고 나고야 말 것이라는 예언자들도 여전했다.
약장수, 관상쟁이들도 제각기 입에 거품을 물고 돈벌이에 여념이 없었다.
사월에 접어들었다.
봄볕이 따사롭게 공원 구석구석에까지 가득 들어차고 나뭇가지들이 파릇파릇 물을 머금고 있었다.
쭈그러진 중절모자에 단장을 짚은 노인이 앞장서고 그 뒤에 군대 헌 양복을 걸친 청년과 젊은 여자 하나가 뒤따른 일행이 심상치 않은 걸음걸이로 바람을 일으키며 이리로 달려오다시피 걸어오는 것이 눈에 띄었다. 얼른 보아서도 무슨 곡절이 있음에 틀림없었다.
“어디, 어디, 어느 놈이야!”
십삼 층 탑 가까이 오자 노인은 숨찬 소리로 뒤를 돌아보았다.
뒤따르던 젊은 처녀 같은 여자가,
“이, 여기에요.”
하고 손가락으로 가리킨 것은 하늘빛 유리안경을 쓴 젊은 관상쟁이였다.
“이자식이?”
노인은 한번 다짐을 한다.
처녀는 고개를 끄덕하며 얼굴을 수그린다.
“이놈 말이지!”
노인은 여러말 할 것 없다는 듯이 들고 있던 단장으로 젊은 관상쟁이를 한 대 후려갈기기부터 했다.
다따가 당하는 일에 떨어진 안경을 주워올릴 겨를도 없이 젊은 관상쟁이는 후닥딱 일어섰다.
“이놈의 자식 맛좀 봐라!”
노인을 뒤따라온 젊은이가 관상쟁이 멱살을 한 손으로 움켜잡으면서 볼타구니를 호되게 후려갈긴다.
“아, 아니, 이, 이거.”
관상쟁이가 뭐라고 허둥거리는 것을 또 한대 쥐어박았다. 그리고는 발로 아랫배를 냅다 질렀다.
관상쟁이는 나무둥치에 나자빠졌다.
구경꾼들이 와아 몰려들었다.
청년은 나자빠진 관상쟁이를 계속해서 군화 신은 발로 우겨찼다.
“웅? 이 죽일놈, 남의 생떼 같은 딸 아이를 종삼에 다 팔아처먹어? 죽여라! 죽엿버리랑께 당장! 깟놈은 죽엿버려두 말할 놈 없어!”
노인은 연방 옆에서 펄펄 뛴다.
얼마전에 전매국에 취직시켜 준다던 그 처녀였다.
“아무래도 수상하더라니!”
함 영감이 하는 소리다.
함 영감은 뭔가 시원하다는 말투다.
“맞았어! 그, 그놈이 바로!”
기미당 노인도 맞장구를 쳤다.
갑자기 어디서 달려온 것인지 애숭이 같은 청년들이 너댓 확 몰려와서 구경꾼을 헤쳤다.
눈깜박할 새 관상쟁이를 때리던 청년이 저만치 팔각정 바래로 내동댕이쳐졌다,
영문 모르고 섰던 노인은,
“어마! 오빠가! 오빠가!”
딸이 소리를 지를 때사 아들이 얻어맞는 것을 알았다.
“이, 이놈들! 누구를 누굴 때리는 거여? 누구를 때리는 거여? 어? 어? 이, 이놈들이!”
노인은 단장을 휘둘렀다.
노인의 단장이 부러졌다.
기미당 노인은 큰일났구나 했다. 애숭이 젊은이들은 깡패에 틀림없었다. 깡패들은 청년과 노인을 마구 엎쳐놓고 푹푹 질러댔다.
기미당 노인은 파출소로 뛰어갔다.
“여, 여보시우, 빠, 빨리, 빨리, 깡패가, 그, 그, 깡패들이 ! 사람을, ……."
순경들이 달려왔다.
관상갱이와, 청년과, 노인은 제각기 떡이 되어 누워 있었다. 깡패들은 튀어달아나고 말았다.
“저놈이, 이 처녀를 취직시켜준다고 사창굴에다 팔아먹었단 말이야. 우리도 봤어 ! ”
함 영감이 설명을 했다.
쓰러졌던 관상쟁이와 청년은 엉망이 된 얼굴로 일어났다. 노인은 꿈쩍 않았다. 머리에서 피가 막 쏟아졌다. 백차가 와서 노인을 실었다. 관상쟁이와 청년은 파출소로 끌려가고 백차에 같이 올라탄 처녀의 울음소리가 싸이렌과 함께 사람들 가슴에 무섭게 와 부딪쳤다.
이튿날 조간에 〈소녀 유괴단 일망 타진〉과 함께 노인은 그대로 운명했다는 기사가 났다.
이것이 이날 공원의 중심화제가 된 것은 물론이다. 젊은 관상쟁이는 상습 소
녀 유괴단의 괴수라는 것이었다.
며칠이 지났다.
머리를 풀어헤친 처녀 아이가 젖가슴을 온통 드러내놓은 채 빙글빙글 웃으며 공원으로 들어왔다. 그 처녀였다. 사창굴에 팔려갔던 그 처녀였다.
“난 전매국에 취직했어요, 정말애요. 아이, 정말이라니까, 히, 히.”
하얀 이빨을 내놓고 웃는 것이었다.
기미당 노인이 석호한테 연락을 해서 정신병원에 보내기까지는 수삼 일이 걸렸다.
3
기어코 터지고야 말았다.
대학생들이 백주에 〈부정선거 다시 하라〉 〈민주주의 사수하자!〉를 외치며 장안을 뒤덮고 데모를 감행했다.
시민들은 불안한 눈초리로 이들을 바라보았다.
이튿날은 전 서울 시내 대학생들이 쏟아져 나왔다.
경찰은 마구 곤봉으로 학생들의 머리를 깠다.
환호를 부르짖는 시민들과 함께 파고다 공원의 노인들도 공원 앞에 나와 만세를 불렀다.
기미당 노인은 만세를 부르면서도 이 박사의 신변이 은근히 염려스러웠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 박사만은 안전해야겠다는 심정이었다. 선거를 다시 해도 좋고 못된 놈들을 모조리 처단해도 좋지마는 이 박사만은 다쳐서는 안된다는 지론에 변함이 없는 기미당 노인인지라 제일 그것이 염려스러웠다. 그러나 아뭏튼 학생들의 이 장한 행진을 보면서 비로소 3·1 정신이 여기 살아 있구나 싶어 만세를 소리소리 질렀다.
총소리가 터쳤다.
학생들을 제지하려던 경찰이 하다못해 최루탄을 쏜 것이었다.
학생들과 시민들은 일제히 눈물을 쏟았다.
아까부터 쏟아지려는 눈물을 어금니를 악물고 지그시 참고 있던 기미당 노인은 마침 다행이라고 흘리고 싶은 대로 눈물을 흘렸다. 시원스러웠다.
그러면서 엊저녁에 집에 들어오지 않은 아들 문식의 걱정이 울컥 났다. 가끔 동무네 집에서 자고 곧장 학교 각다가 오는 수가 있기는 하지마는, 때가 때인만치 불안스러웠다. 더구나 어제 저녀엔 깡패들이 학생들을 마구 때려 눕혔다는 소문이라 생각하면 불안이 풀릴 길 없었다.
점심˙때가 지나면서부터 여기저기서 총소리가 나고 경무대 어구에서는 학생들이 여러 명 총 맞아 죽었다는 소문이 퍼졌다.
계엄령이 발노되고 시내의 공기는 살벌해져갔다.
기미당 노인과 함 영감, 김 첨지는 마지막까지 공원에 앉아 있었다. 무언가 공원을 지키고 있어야 할 의무라도 있는 것 같은 심정이었다.
거리에는 자동차들이 점점 없어지기 시작하고 사람들의 걸음걸이는 바빴다. 저녁때가 되어오자 일제히 총소리가 몰려왔다. 총소리에 쫓겨 거리에는 거의 사람의 그림자가 없어져갔다.
총소리는 가까워 왔다.
달아나던 학생들이 한 패 공원으로 뛰어들어왔다.
잇따라 경찰들도 따라 들어왔다.
아무도 없는 공원에 노인 몇이 앉아 있는 것을 본 경찰은,
“여기, 학생들 들어왔지요!”
거칠은 숨소리다. 발견하면 당장 들고 섰는 총대로 쏘아 붙일 기세다.
“모르겠는걸요.”
노인들은 시치미를 뗐다.
“저기, 저기!”
〈풀〉 탈의장 쪽을 가리키는 한 순경을 따라 경찰은 일제히 몰려갔다.
“나와, 나오지 않으면 쏜다!”
안에서는 아무 대담도 없었다.
“쏜다!”
두번째 소리가 떨어졌다.
역시 아무 대담이 없다.
빵!
총소리가 났다.
계속해서 서너 방이 울렸다.
“쏴라!”
짐승의 포효 같았다.
탈의장 속에서 뛰어나온 짐승의 포효는 팔을 쩍 벌리며 경찰 총대 앞에 막아섰다.
한 쪽 어깨에서 시뻘건 피가 솟아나고 있었다.
경찰도 피를 보고는 더 쏠 생각을 하지 못하는 듯 노인들만 핏발 선 눈으로 흘겨보며 되돌아서 나가고 말았다.'
“학생들, 이 뒷길로 빠져요.”
기미당 노인이 가리키는눅 대로 학생들은 뒷문으로 몰려나갔다. ˙
노인네들도 뒷문으로 빠져 제각기 집으로 갔다.
기미당 노인이 걸어서 집에 들어갔더니 문식이한테서 기별이 왔는데, 어쩌면
며칠 집에 못 들어올 거라고 하더라면서 마누라는 덜덜 떨고 있었다.
“염려 마오. 그 녀석이 무모한 짓을 하진 않을 테니.”
여상스럽게 말하면서도 아까 공원에서 보던 총 맞은 학생 생각이 났다. 뚝뚝
듣던 시뻘건 피가 눈앞에 서언했다.
“학생 들이 많이 다쳤다면서요?”
마누라는 울쌍이 된다.
“더러 다친가 봅디다마는…….”
아닌게아니라 기미당 노인도 은근히 걱정으로 가슴이 꽉 메어 올랐다. 집에 들어오지 못하는 것을 보면 녀석이 아무래도 일에 적극 가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인상싶었다.
“다치지나 않아얄 텐데.”
“다친다고 어디 학생들이 다 다치겠오. 염려할 것 업다니까.”
일단 이렇게 마누라를 위로했다가,
“허지만, 남들이 다 나서서 하는 일에 빠져서야 될 말이겠오.”
한편, 아들이 남 못지 않게 일해주기를 바라는 심정이기도 했다.
“당신은 참 못하는 말이 없구료…….”
마누라는 못마땅한 눈살을 보낸다.
“애비도 젊을 때 총칼 앞에 나서서 싸웠으니까, 애비의 피를 이어받았으면야!”
“아이 속상해! 작작해두시구려!”
마누라는 듣다 못해 톡 쏘아 붙인다.
다음날도 느지막헤서 기미당 노인은 공원으로 나갔다.
공원에는 별로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김 첨지와 함 영감도 와 있었다.
물론 장사는 되지 않았다.
계염사령부에서 일체의 집회와 사람 모이는 것을 금하고 있기 때문에 공원도 문들이 닫혀 있는 것을 모두들 뒷담을 뛰어넘어 들어온 것이다.
공원지기가 와서 뭐라고 잔소리를 하려고 했다.
“떠들지 말어! 지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재미없어 괜히!”
늘 나오는 노름꾼 청년이었다. 청년의 서슬에 공원지기는 비슬비슬 제자리로 돌아가고 말았다. 해가 저물었다.
노인 네들은 〈행줏 집〉으로 갔다.
"장하군, 자앙해!”
함 영감이 사뭇 쾌재를 부른다.
“장하고 말고. 한국 청년들이 보통이 앙이라캉이! 세상은 뒤집어지고 말끼라. 두고 보라캉이.”
“또 저런 소리하다가 떼 갈려구.”
두 노인이 웃는 옆에서 기미당 노인은 자꾸만 이 박사 생각이 나서 멍청히 앉아 술잔만 들이 켰다.
“기미 영감은 왜, 꿀먹은 벙어리야?”
그래도 기미당 노인은 입을 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들 문식의 염려와 이 박사의 일신상에 대한 걱정이 가슴 하나 꽉 차 올라와 있는 기미당 노인이 잘 되어가는 세상이라고 박수만 보내고 있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노인들은 거나해 졌다.
대폿집을 나왔다.
깜깜한데 비가 오고 있었다.
“그, 우리, 공원에 가서 좀더 앉았다 가세.”
기미당 노인은 무언가 집에 곧장 들어가고 싶지가 않았다. 뒤숭숭한 마음에 어 라도 좀더 돌아다니고 싶었다.
“그러세. 우리 공원 아닌가. 우리가 임자 아닌가. 어느놈이 문을 닫아걸었단 말인가.”
함 영감이 비슬비슬하면서 공원 문을 쾅쾅 찬다.
“비가 이리 쏟아지는데, 공원에는 멀라꼬 가자카노.”
김 첨지는 제일 덜 취한 모양이었다.
“아따, 마누라 있는 첨지가 옷 버리는 게 걱정인가, 공원에 들어가면 팔각정이 있잖은가, 팔각정에서 비를 피할 수 있잖은가 달이야. 비를 피하다가 자꾸 오면 하룻밤 새고 간들 어떠냐 말이야.”
함 영감은 사뭇 유감해진 모양이다.
“헤헤이, 그라자 그래!”
김 첨지가 디딤돌을 디디고 훌쩍 담위로 올라갔다.
“자, 손 올러주소.”,
김 첨지는 나이로 서너 살씩 아래지마는 기운이 좋았다.
함 영감이 먼저 넘어가고, 기미당 노인이 잇따라 넘어갔다.
공원에는 빗소리뿐이었다.,
비를 맞았어도 술기운에 추운 줄을 몰랏다.
제각기 담배를 피워 물었다.
한참 동안을 덤덤히 앉아 있었다.
“히 이구, 주사를 놓으면 안된다는데에…….”
갑자기 울음섞인 함 영감 소리가 터져 나왔다.
“뇌일혈에느은 주사를 놓으면 안된다는데에……· 주사를 놔가지구, 마누라 그만 죽었지…….”
함 영감은 술만 먹으면 마누라 생각이었다. 어디서 들은 소리인지, 이렇게 시장 소리를 하면서 눈물을 질질 짜는 것이었다.
“쓸데없는 소리 마소, 주사라는 것은, 강심제겠지, 그런 때는 강심제를 놓는 법이라캉이, 백제, 쓸데없는 소리라카는데 와 캐 쌓노.”
함 영감의 시장 소리는 한번 내놓으면 좀처럼 그치지 않는다.
비 소리만 죽죽 나는 밤이라 한층 청승맞게만 들린다.
“에이, 그만둬요 제발 좀.”
기미당 노인은 자리를 훌쩍 일어났다.
문득 저 앞 벤치에 거무스럼한 것이 눈에 띄었다.
“아니, 그, 저게 머야.”
두 노인도 기미당 노인이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았다.
“사람 아닌가.”
“사람이면 비를 노상 맞구 저렇게…….”
“맞다, 사람이 대이.”
자세히 보니 벤치 위에 남자와 여자가 앉아 있는 것이었다. 그냥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가 꼭 부둥켜 안고 있는 것이다. 그냥 부둥켜 안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얼굴과 얼굴을 마주 포개고 눈을 감고 있는 것이었다.
숨도 쉬지 않는 것 같았다.
――죽었나보군……
기미당 노인은 오싹 소름이 끼쳤다.
“죽었재.”
김 첨지도 그렇게 보이는 모양으로 소근거렸다.
함 영감도 시장 소리를 그쳤다.
“우리, 가보까.”
기미당 노인이 앞장섰다.
두 노인도 따라 일어났다.
조심조심 가까이 다가가던 노인들은 꼭같이 발을 딱 멈추었다.
그것은 〈소리하는 청년〉이었다. 그리고 여자는 빵장수 처녀에 틀림없었다.
다음 순간
“어! 그, 소리하는 청년 아니오!”
기미당 노인이 소리를 질렀다.
그제사 청년과 처녀는 눈을 번쩍 떴다.
“어마!‘
처녀는 수치심이 앞서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이제 웬일인고! 언제 나왔오!”
김 첨지가 청년의 손을 덥썩 잡는다.
청년은 넘치는 웃음을 띄우면서, 천천히 일어섰다.
“염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까, 저녁 때 나왔읍니다. 집행유예루요.”
“반갑소, 고생했겠오.”
기미당 노인도 한 손을 잡았다.
“여러분들께 염려끼쳐서 죄송했읍니다.”
“아니, 그런데, 여기, 어쩌자구, 비를 맞고.”
함 영감도 반가움을 못이겨 청년의 어깨를 툭 치며 말한다.
“네, 나오는 길로 어떻게 밥을 많이 먹었던지, 피로가 겹쳐 이까지 와서 바로 잠이 들었군요.”
“원, 사람들두! 저리 가세.”
일동은 팔각정 안으로 들어갔다.
“저를 위해서 염려해주셨다구 말씀 들었읍니다.”
청년은 전보다 딴 사람같이 의젓하고 똑똑했다.
“뭐, 염려했을 뿐이지 뭬이 됐어야지.”
자리잡고 앉자 청년은 수집음 머금은 말로,
“그렇잖아도 내일, 이리로 나와서 뵐까 했읍니다만 저, 이 사람하고 결혼하기로 했읍니다.”
노인들은 한번더 뜻밖의 말에 놀래면서 반가워했다.
“그래! 나, 그럴 줄 알았지!”
웃음소리가 터졌다.
아닌게아니라 그때 경찰서 앞에서 빵장수 처녀를 보자 직감적으로 느껴졌던
것이 있었다.
“그래서 기미당 노인께 주례를 부탁 여쭙기로 의논했읍니다.”
“원 이사람아, 내가 무슨.”
기미당 노인은 당황히 손을 저었다.
“그렇잖습니다. 오늘까지의 정세로 보아서 세상은 틀림 없이 뒤바꿰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일을 해야지요. 결혼이 첫 사업임니다. 저희는 파고다 공원을 잊을 수가 없읍니다. 주례를 그렇게 부탁드리고, 결혼식도 여기서, 팔각정서 하기로 의논했답니다.”
“야! 거 참 굉장한 결혼식이구나!”
함 영감이 무릎을 친다.
“좋고 말고! 참 잘 생각했심더.”
김 첨지는 눈을 빛내며 찬성의 뜻을 표하고서는,
“주례 영감, 이건 이 천하 어느. 결혼식보다도 영광스러운 깁니대이! 자알 하이소.”
청년은 빵장수 처녀가 그동안 사식을 계속해서 넣어주고 무척 수고를 많이 했다는 말과 마침 처녀의 사촌오빠가 검찰국에 있어서 운동을 해주었다는 것, 그리고 검찰청에 넘어가 있는 동안까지 여러차례 면회를 하는 새에 서로 결혼하기로 약속이 되었다는 얘기들을 했다.
“빠고다 공원의 경사야, 빠고다 공원 만세야!”
기미당 노인은,
“만세에!”
하고 스리를 질렀다.
공원에 포이던 사람들 새에 〈소리하는 청년〉과 빵장수 처녀가 결혼한다는 소문이 쫘악 퍼졌다.
결혼식 날 몰려든 사람들에 의해서 공원 정문이 활짝 열려졌다.
팔각정은 알록달록한 테이프가 쳐쳤다.
결혼식은 정각에 시작되었다.
기미당 노인의 식사는 엄숙하고 그러면서 감격에 차 있었다.
너울을 쓴 신부는 발그레 흥분해 있었고, 신랑은 꿋꿋한 의지가 이마에 배여
있었다.
처녀가 다니는 교회 성가대원들이 나와 웨딩마치를 노래로 불렀다.
며칠 뜨음하다가 지난밤부터 다시 시작된 데모의 아우성과 함께 새로운 희망과 정열이 불타는 결혼식이었다.
신랑신부가 노래에 맞춰 퇴장하고 박수소리가 요란했다.
“아, 동상이, 이 박사 동상이.”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에 축하객들의 눈은 일제히 이 박사 동상으로 쏠렸다.
동상 목에 밧줄이 감기고 청년이 두서넛 뛰어올라가 있었다.
기미당 노인은 후둘후둘 떨리는 다리로 동상 있는 데로 달려갔다.
“이노음!”
기미당 노인의 노한 고함이었다.
꼬장꼬장 마른 노인의 어디에서 그런 소리가 터져 나올까 싶었다. .
그러나 이미 동상은 휘우뚱 하고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청년들은 목에 밧줄이 홀친 동상을 끌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이놈들! 아니, 아니, 그, 이 박사가 아무리 능지처참할 죄인이라손치더라도, 이게, 이게 무슨 짓이란 말인가! 이렇게 참혹한 짓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래도 끌고 가는 청년들은 막무가내였다. 기미당 노인은 전신이 와들와들 떨려 왔다.
“네 이놈드을!”
밧줄을 끌던 청년 하나가 밧줄을 놓고 달려왔다.
“할아버지! 우리는 살아야 합니다.”
청년은 기미당 노인을 마주 부등켜 안았다.
기미당 노인에게 그런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이놈들, 너흰 네, 애비도 에미도 없느냐아! 이놈두을!”
창자가 끊어지는 호령이었다.
끌고 가던 또 하나의 청년이 뒤를 히뜩 돌아보았다.
머리를 봉대로 싸맨 청년이었다.
기미당 노인은 중치가 칵 맥혔다. 눈에 불이 환히 비쳤다. 그것은 문식이란 놈이었던 것이다.
문식이는 잠깐 빙그레 웃음을 보였다.
그리고는 되돌아서서 밧줄을 끌었다.
기미당 노인을 붙안고 있던 청년도 그리로 달려갔다.
동상은 보이지 않고: 말았다.
아들도 보이지 않고 말았다.
동상을 골고 가는 젊은이들이 발맞춰 부르는 〈어둡고 괴로워라 밤이 길더니〉의 노랫소리도 점점 멀어져 갔다.
얼이 빠져 멀뚱히 섰는 기미당 노인의 양볼 위로 뜨거운 눈물이 쭈륵 미끄러졌다. 눈물은 허연 수염을 타고 떨어졌다.
데모대의 함성이 하늘에 사무쳐 가고 있었다.
―198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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