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 이래 드물게 나라 전체가 극도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아니 전쟁 상태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각자가 온갖 방법으로 각기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고 있다. 그 가운데 특별히 종교적 현상들을 주목해 본다면 분신에서 십자가까지
다양한 현상을 목도할 수 있을 것이다.
종교적 현상의 가장 극단적인 사건은 한 비구의 소신공양이었다. 1963년 월남에서
한 스님이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죽는 사진 한 장이 세계를 놀라게 했었다. 월남 정부의 부정부패와
불교 탄압에 항거하기 위하여 틱광둑이라는 고승이 자신을 버린 것이다. 이런 사실을 보았기 때문에 나는
한국의 불교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나 하는 예감을 가졌었다. 그러나 정작 그런 경악할만한 사건이 벌어졌으나 한국 불교계에서는 특별한 움직임이 없었다.
물론 정원 스님은 일반인들뿐 아니라 스님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이였다. 그러나
스님을 떠나서 한 사람의 불교인으로서 소신공양을 한 것으로만 생각해도 조계종이 충분히 나설 명분이 있었을 것이나 조계종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결국 정원 스님의 장례 행렬이 조계종 앞에서 노제를 치르고
지나가는 것으로 불교계와의 인연은 정리되었다. 노제라는 것은 운구가 지나가다 그냥 지나갈 수가 없어 잠깐 들르는 것이다. 정원 스님은 정식으로 조계종에서 수계를 받은 스님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동도 하지 않은 조계종을 보고 역시 ‘조선의 개들이 모인 종갓집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방구 깨나 뀌는 목사들이 모여서 총을
만들어 사방에 총질을 해대던 한기총이나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종교인으로서 최고의 숭고한 행위인 소신공양에 대해여 아무 관심도 표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가짜가 아니라
불교식으로는 마구리요 기독교적 표현으로는 마귀 사탄의 세력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조계종 종단 지도부의
땡중들이나 개신교 교단 연합의 대표입네 하는 목사들의 머리에는 예수나 부처는 없고 세상의 권력을 쫓는 해바라기 꽃만 만발한 것이다. 종교에서의 기득권은 세속에서의 기득권 보다 더 무섭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영혼을 병들게 하기 때문이다.
스님이 소신공양을 하는 다른 한 편에는 탄핵반대를 외치면서 십자가를 지고 행진하는 목사들도 있었다. 편의점 보다 3 배나 교회가 많은 나라이니 별별 목사들이 다 있을 것이어서 별로 놀랄만한 일이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런 목사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는 대강 짐작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내가 아는 사기꾼 목사도 있다. 그는 30 년 전에 출소를 해서 갈 곳이 없는 사람 몇
명을 데리고 있으면서 전과자들을 대상으로 선교를 한다면서 개인 땅에 무허가로 집을 지어놓고 철거 되게 생겼으니 도와 달라고 나를 찾아왔었다. 그
때 나는 “선수끼리 솔직히 이야기 합시다. 빈민운동이란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지 떼거지 쓰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 아닙니다.” 라고 거절 했다. 그러나 역시 선수답게 그는 ‘당신은 힘 없는 자들 편에 서서 살지만
나는 힘 있는 자들 편에 붙어야만 살 수가 있다.’고 솔직하게 이야기를 했다.
나에게 청부를 했던 일은 성사될 수 없었지만 원래 선수는 서로 알아보는 법이라서 한 참 동안 형님, 동생 하면서 잘 지냈다.
그는 인천에서 박근혜가 막판에 국민통합위원장으로 임명한 최성규 목사의 행동대장 노릇을 하면서 각종 문제에 끼어들어 브로커 노릇을 했다. 그러나 관변 행사를 하면 인천에서 여성 목사들만 300명을 동원할 수 있는 실력이 있었다
그런
목사가 있으니 이 판국에 십자가를 들고 나선 목사들은 차라리 순진한 것인지도 모른다. 로마의 권력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이들은 십자가로 불의한 권력을 지키려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