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어의 심층
- 상징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화자(話者)의 의도'를 파악하여야 하며, 이는 텍스트에 대한 심층 분석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독자의 주관이나 지식이 아니라 말씀하시는 하나님, 곧 화자이신 하나님의 메시지로 상징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성경 해석의 기본 원칙입니다.
앞 구절에서 말한 <어린 양>은 상징성을 드러내는 구체적인 설명 없이 다만 수식어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으로 표현되어 어린 양의 심층적 의미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해석의 틀이 텍스트에 분명하게 주어지지 않으면 상징을 분석할 때 자칫 주관적인 선입견을 갖고 해석하게 될 우려가 있습니다.
설령 의도적인 해석을 하지 않더라도 상징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자칫 자의적인 해석이 일어나게 됩니다. 상징의 일반적 의미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전적 정의는 사전에서나 필요한 뜻이며, 상징의 실제 의미는 사용을 통해서 의미가 결정됩니다.
언어는 사용(usage)이 없으면 의미도 없습니다. 문맥이 없으면 또한 뜻도 없습니다. 문맥의 구조를 분석하고, 언어의 피상(surface)을 넘어서서 심층을 파고들어 성경의 원저자의 의도를 파악하여야 메시지를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언어의 표층구조를 버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표층은 심층적인 분석의 기초이며 객관적 해석의 바탕입니다.
언어의 표층을 파헤쳐 심층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본문에서 요한의 입을 통하여 밝혀진 <어린 양>은 세상의 죄를 짊어진 어린 양, 율법의 속죄 제물로 바쳐지는 제물의 이미지입니다.
그러나 율법의 제물로 바쳐지는 <어린 양>은 그리스도이신 예수의 상징성으로 부족합니다. 이튿날, 요한의 입을 통하여 새로운 수식어가 드러납니다.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한복음1:36)
요한의 입을 통하여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에서 단순하게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표현이 바뀌면서 의미의 전환이 일어나며, 두 구절의 연합(association)이 발생합니다.
앞의 어린 양은 세상의 죄를 짊어진 어린 양, 곧 율법의 제물로서 어린 양이었고, 뒤의 어린 양은 하나님이 보내신 어린 양, 곧 세상을 살리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보내신 다른 의미의 어린 양입니다.
35-36절의 <하나님의 어린 양>을 말하기 전에 요한은 34절에서 예수님을 보고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언하였습니다.<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요한복음 1 : 34).
자연스럽게 34절과 35-36절이 결합하여, <하나님의 아들>과 <하나님의 어린 양>이 결합하여 자연스럽게 하나의 문맥을 이루며 새로운 의미를 만들었습니다. 수식어는 설명하는 기능이 있는가 하면 의미를 제한하는 기능도 있습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과, 단순하게 <하나님의 어린 양>은 같은 상징적 의미를 지니지 않습니다. 세상 죄를 짊어진 제물은 수동적인 희생양이지만, 하나님의 아들이신 어린 양은 세상을 살리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제물은 자기가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의 자발적인 의지로 희생한 것이 아니지만, 하나님의 어린 양은 세상을 사랑하셔서 자기를 드리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베드로전서 2 : 24-25).
표층의 언어는 그 안에 다른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땅을 파헤쳐 지하의 금광석을 캐듯, 표층을 파헤쳐 심층의 메시지에 들어가야 합니다.
어린 양은 이제 제물로 바쳐진 된 어린 양과, 스스로 제물로 자기 몸을 드린 어린 양으로 의미의 이중성(duplicity)을 지니게 됩니다.
첫댓글 성경을 올바르게 배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