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ymbol of the Holy Roman Empire (painting from 1510)/PUBLIC DOMAIN
서양 역사라는 것이 지중해를 중심으로 남쪽 이집트 문명, 동쪽 메소포타미아 문명, 북쪽 헬레니즘으로 대표되는 그리스-로마의 흥망성쇠입니다. 서양사를 공부하면서 머리에 쥐가 나는 이유는 동양 역사를 배우면서 생긴 선입견 때문인데요. 동양은 대부분 민족 중심으로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같은 언어를 쓰고, 왕이 세워지고, 그 왕은 세습을 하면서 왕조가 형성되고, 왕조를 중심으로 나라 이름이 만들어지는 반면, 서양은 고대사를 제외하면 민족 중심의 역사도 아니고, 언어도 다양하고, 왕을 세습하는 왕조가 아니며 투표하여 선출하는 형태도 있다 보니 쉽게 이해도 안 되고, 정리도 안 되고 해서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이 독일과 프랑스의 싸움이었는데, 독일의 히틀러가 민족사회주의인 나치즘을 표방하고 자신들의 민족인 게르만이 세계의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면서 유대인을 학살한 일이 있었지요. 이 일로 저는 유럽이 우리처럼 민족 중심의 국가관을 가지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는 한때 한 나라였던 적이 있었지요. 800년경 샤를 대제로 알려진, 카를로스 대제(이름을 여러 개로 쓰니, 안 그래도 어려운 서양사가 더 어렵게 느껴지네요.) 시절에 프랑크 왕국으로 하나였다가, 40년쯤 뒤에 왕자들 세 명이 서로 다투는 통에 프랑크 왕국이 삼분할 되어서 오늘의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가 된 것입니다. 프랑크족이 게르만족의 일파였으니까 이 세 나라는 결국 같은 민족이 되는 셈이지요. 독일과 프랑스는 프랑크 왕국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이런 경우 세계대전은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민족상잔의 비극 같은 것이니, 우리 정서대로라면 그냥 콩가루 집안이지요.
거기에 더해서, 프랑크 왕국이라도 순수 게르만인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유럽이라는 나라가 고대 로마의 정복 전쟁 시절에 타민족을 받아들여 로마 제국을 만든 것인 만큼, 유럽은 다민족 사회였습니다. 프랑크 왕국도 왕실이 게르만계의 프랑크족이라는 거지, 결국 단일민족은 아니었습니다.
뉴질랜드로 단기선교 가는 사람이 있어서, 뉴질랜드를 검색해 보니 국왕이 엘리자베스 2세였습니다. ‘어라? 영국 여왕이랑 동명이인인가?’ 했었지요.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맞았습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무려 15개국의 여왕이지요. 그것도 얼마 전까지는 32개국의 여왕이었다가 17개국이 독립하면서 현재는 15개국의 여왕이 된 것입니다. 영국의 식민지 나라들인가 싶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고요. 영국연합의 영연방 국가들이 영국에서 떨어지는 콩고물 받아먹으려고 가입한 나라들도 꽤 되더군요.
서양의 사람들이 이런 형태를 지니다 보니 이건 뭐, 도통 정리가 안 되는 거였습니다. 거기에 덧붙여 고대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한 테오도시우스 황제 이후 그 아들들에게 둘로 쪼개서 주는 바람에 동로마와 서로마로 나뉘어서 역사가 진행됐고, 이게 두 나라인 것 같으면서도 교황이 이 두 나라를 오가는 통해, 한 나라 같기도 하고, 서로마는 476년에 스스로 개판 치다가 망해버리고, 동로마는 1453년에 지금의 튀르키예인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이사오심(1453)으로 망해버렸지요. 그러면 서로마는 없어야 하는 건데 프랑크 왕국의 카를로스 대제가 800년쯤에 신성로마제국의 대제가 되는 일이 생기네요. 동로마가 버젓이 있는데도 망했던 서로마가 신성로마제국으로 부활한 걸까요?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고 교회의 사유재산을 인정하면서 교회의 수장들은 토지를 포함한 재산을 소유하게 됩니다. 주교가 봉건 군주 같은 지위를 얻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탈리아의 도시인 로마(국가명 로마도 있고, 도시명 로마도 있으니 머리가 어지러울 수밖에요.)에 주교가 주인처럼 다스리는 영토가 있었던 것이고, 이것이 오늘날의 바티칸 시국의 전신이 되었습니다. 서로마가 사치하고 타락하면서 476년 자멸할 때도, 교황이 다스리는 영토인 교황령은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종교적 색채가 강한 땅이다 보니 괜스레 신의 영역을 건드렸다가 저주받을지도 모를 일이고, 잘못 건드리면 신앙심 좋은 민중이 봉기할 수도 있으니 그냥 안 건드린 모양입니다. 교황이라는 말이 군주라는 말과 주교라는 말이 합쳐져서 교회의 황제 같은 개념이었습니다.
서로마가 476년에 망하고 “듣보잡”이었던 랑고바르드족이 득세하면서 교황령은 큰 위협을 받게 되었습니다. 교황이 군사적으로, 외교적으로, 정치적으로 근근이 버티다가 프랑크 제국의 카를로스 대제가 평정하자 그에게 신성로마제국의 왕위를 줘 버린 것이지요. 교황령은 카를로스를 잘 이용해서 안전을 보장받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프랑크 제국이 셋으로 쪼개져 버리니 누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될 것인가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선제후라는 것인데요. 도대체 이 선제후는 또 뭔가요? 제후들이 모여서 황제를 뽑는 선거인단을 만들었는데, 선거인단의 회원이 바로 선제후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뽑은 황제가 차기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니 선제후 자리를 놓고도 전쟁을 치르기도 했고요. 좌우간 선제후에서 황제가 정해지면 그 사람을 교황이 대관식을 통해 황제로 임명하게 되는데요. 교황은 자기 맘에 안 드는 사람이면 임명을 거부해 버리니까 나중에는 금인칙서라는 것을 만들어서 교황을 무시하고 그냥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등극해 버리는 일까지 벌어졌던 것입니다. 서양사를 보면 누가 선제후가 되었다고 나오는데 그 선제후가 바로 이런 개념이었던 것입니다.
신성로마제국은 종교개혁 이후 구교와 신교 간의 쌈질이 나고, 루터파와 칼뱅파의 전쟁이 나는 바람에 군주들 간에 감정싸움이 나면서 신성로마제국을 탈퇴하고 독립을 선언하게 됩니다. 결국 신성로마제국은 점점 좁아지더니 1800년경 나폴레옹이 등장하면서 1,000년을 유지해온 신성로마제국이 완전 공중분해 돼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