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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가사 진흥왕순수비로 유명한 북한산 비봉에서 동쪽으로 1km쯤 떨어져 있으며, 승가대사를 봉안한 독특한 사찰이다. 승가대사는 서역인 으로서 서기 640년에 출생하여 당나라로 건너와 53년간 불교 전 교에 헌신한 분으로 갖가지 변화를 자유자재로 하여 기적을 나타내어 동방의 불교 홍법에 큰 획을 이루어 관음보살로 회신되어 중국의 각지에 승가당이 설치되어 있 다. 위쪽 암벽에 조각된 마애석불님상은 기실 32현상에 의한 관음보살상으로 승가 대사와 인연을 깊게 하고 있다. 신라, 고려,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1,400년간 왕상 공경 (王相公卿)이 국난 때마다 참배 기도드려 가피를 입었으며 백성의 소원도 한 가지만은 꼭들어주는 영험이 따랐다고 한다. 승가사의 명칭도 승가대사를 기리기 위하여 창건의 취지가 담겨져 있다.
승가사 일주문
승가사 다층석탑 전경
승가사 다층석탑
십이지신상
포대화상과 어린이
승가사 범종각
승가사 대웅전 승가사는 동 불암사, 서 진관사, 남 삼막사, 북 승가사와 함께 예로부터 서울 근교의 4대 명찰로 손꼽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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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우측에 자리한 요사체
대웅전 석가모니불
승가사 신중단
승가사 명부전
명부전내의 지장보살상
명부전에서 바라다본 대웅전
승가사 대웅전 벽화
상단에는 부처님의 일대기를 그린 팔상도가 그려져있고, 하단에는 심우도가 그려져 있습니다.
대웅전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곳에 범종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승가사 약사전
승가사 석조승가대사상
승가사 승가굴 안에 봉안되어 있는 고려시대의 조사상(祖師像). 보물 제1000호. 높이 불상 76cm, 광배 130cm. 승가굴은 삼국시대부 터 여러 승려들이 수도했던 석굴로 유명하며 그 안에 주존으로 안치되어 있는 상은 인도의 고승으로 중국 당나라에서 법을 전수하여 이름을 떨친 승가대사의 모습을 조각한 것이다. 광배 뒷면에 있는 명문에 의하면 1024년(현종 15)에 지광 등이 발원하여 승려 광유(光儒) 등이 만들었다고 한다.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앉아 있는 등신대 크기의 좌상이나 대좌는 나중에 보수한 것으로 보인다. 머리에는 두건을 쓰고 있으며 얼굴은 넓은 편으로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이마에 주름살까지 표현했으나 전체적으로 호분(胡粉)이 두꺼워 세속적인 인간의 모습에 가까운 인상을 준다.
승가사 향로각
마애불 오르는 길
북한산 구기리 마애석가여래좌상
보물 제215호
거대한 바위 면에 홈을 약간 판 다음 불상을 도드라지게 새겼으며, 머리 위에는 8각의 머리돌을 끼워 넣어 얼굴을 보호하고 있다.
다소 딱딱해 보이지만 강한 의지가 느껴지는 얼굴에는 단정한 미소가 흐르고 있다. 몸은 건장하고 당당하지만 각이 지고 평판적인 형태미를 보여주고 있어서 경직된 모습이 나타난다. 옷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왼쪽 어깨에만 걸쳐 입고 있으며, 왼팔에 새겨진 옷주름에서는 기하학적인 추상성이 엿보인다. 손은 왼손을 배 부분에 대고 오른손은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있는 모습이고,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에는 화사한 연꽃무늬가 겹쳐서 새져져 있다.
강한 느낌의 얼굴, 평면적인 신체 등의 전통적인 양식에 다소 추상성을 가미하면서 웅대하게 변모시킨 고려 초기의 대표적인 마애불좌상으로 높이 평가된다.
마애불에서 바라다본 북한산 전경
승가사 영산전내의 삼존불
영산전 옆으로 바위 틈에서 오랜세월 자리를 지키고있는 노송
대웅전 뒤편 높은 언덕에 위치한 산신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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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가사 찾아가는 길
구기동 구기파출소에서 좌측으로 향하는 길로 약200미터 들어가면 이북오도청에서 넘어오는 길과 만난다. 좌측으로 10미터 방향에 건덕빌라로 이어지는 길이 있다. 입구에 승가사 방향 안내판이 있다. 이 길은 주택가를 거쳐 이어지는 포장도로로 약10분정도 오르면 한적한 숲 속에 자리 잡은 승가매표소가 나온다. 매표소에서 걸어서 30분 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