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부터 시작된 커피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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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센 제국이 분열되고 있을 무렵 유럽인들은 십자군을 조직하여 이슬람 세계로 원정을 보냅니다. 이때 십자군 병사들은 처음으로 이슬람교 지역에서 자유롭게 커피를 향유하게 되지만 유럽에서는 이교도의 음료라 하여 자유롭게 마실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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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십자군원정 이후 르네상스시대로 접어들면서 근대정신에 눈을 뜬 유럽인들은 종교적 교리로 인하여 이교도의 음료로 낙인찍힌 커피에 대해 관대해 집니다. 르네상스라는 문예부흥운동으로 근대정신에 눈뜨게 되었고, 종교교리에 묶여 있던 커피에 대해서도 관대해졌습니다. 더욱이 당시의 시인, 화가 등 커피를 예술의 대상으로 삼기도 했는데, 그야말로 커피는 '시인에게 영감을, 음악가에게 악상을, 철학자에게 진리를 ,그리고 정치가에게 평화를 전한다'고 찬미할 정도였습니다. 예로 교황 클레멘트 8세는 커피금지령을 내려달라는 요청을 받았으나 커피를 먹은 후 커피의 맛에 감복하여 커피에 세례를 내렸다고 합니다. 이것은 커피가 전 유럽으로 퍼지는 데 큰 힘을 발휘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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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에 이르러 비로소 기독교인들도 마음놓고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되자 1645년 베니스에서 처음으로 커피하우스가 생겼습니다. 이후 1687년에는 군인이었던 게오르그 콜스치스키(Georg Kolschitsky)가 비엔나에 커피하우스를 열었는데,그는 비엔나를 점령하고 있던 터키군을 물리친 공로로 터키가 남겨 놓고 간 커피 500포대를 받았던 것입니다. 아랍풍습에 익숙했던 그는 커피 추출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터키를 물리친 기념으로 이슬람 제국의 상징인 초승달 모양의 케이크를 커피와 함께 손님들에게 내놓기도 했는데, 오늘날 케이크를 곁들여 커피를 마시는 것은 여기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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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영국에서는 1650년경 에닌젤이라는 이름의 커피하우스가 옥스퍼드에서 문을 열었습니다. 영국에서의 커피하우스는 스미르나에서 커피맛을 보고 돌아온 한 영국 상인과 그에게 커피를 끓여준 하인 파스카 로제에 의해 알려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영국에서의 커피 마시는 일이 유행하게 되자 이 상인은 1652년에 콘힐의 외곽지대 에 있는 세인트 미셸 산책로에 오두막을 하나 세우고 그 하인으로 하여금 일반인들에게 커피를 팔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17세기 말 런던에는 무려 2천 개 이상의 커피 하우스가 있었고 그 중에는 이따금 꽤 특색 있는 커피 하우스들도 있었습니다. 어떤 커피 하우스 안에서는 최신의 해외 소식들을 접할 수 있고 이민 티켓이나 보험 증서, 주식을 살 수도 있었으며 때로는 흑인, 이상한 새들 또는 식물의 경매에 입찰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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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변호사,의사,아일랜드인,군인,노름꾼,성직자, 그리고 작가들을 만날 수 있는 커피 하우스도 있었습니다. 프랑스의 카페는 그 번창속도가 영국의 커피하우스에 훨씬 미치지 못했습니다. 최초의 카페는 1643년에 파리에서 문을 열었지만 커피마시기가 유행하기 시작한때는 1669년 르방의 한 대사가 부임하고 난 뒤부터였다고 합니다. 파리 사람들은 그 이전에는 커피가 심한 질병과 무력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의사들의 경고 때문에 이를 멀리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프랑스에 커피하우스를 보급하는데 공헌한 루이 14세는 1664년에 처음 커피를 마셔본 뒤 1670년경에는 해마다 네덜란드에서 왕실 전용 커피를 수입토록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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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5년에는 네덜란드인이 가이아나에 커피나무를 이식함으로써 커피나무가 아메리카에 처음 소개되었습니다. 1718년, 네덜란드인이 가이아나에서 커피를 재배했습니다. 1720년에는 프랑스 해군제독 클리에가 가져온 커피묘목을 마르티니크 섬에 심었으며. 1723년 ~ 1852년까지 남미에 커피재배가 확산되었습니다. 프랑스령 기아나의 총독부인이 화려한 꽂다발 속에 커피묘목을 숨겨 잘생긴 스페인 연대장에게 선물함으로써 그 묘목은 콜롬비아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고 ,이어 브라질로 퍼져나갔습니다. 그렇게 브라질과 콜롬비아로 보내진 커피는 최상의 재배조건 위에서 잘 자라 두 나라를 세계 최대의 커피 생산국으로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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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북아메리카에 커피가 전파된 것은 17세기 말로 뉴암스테르담(지금의 뉴욕)의 부유층 사이에서 마시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당시만 해도 북미에서는 기호음식으로 차를 마셨는데, 1773년 4월 영국 의회가 차세법을 통과시켜 엄청난 세금을 부과하자 이에 반발한 시민들이 인디언으로 위장, 차를 가득 싣고 보스턴항에 정박 중이던 영국 동인도회사의 배를 파괴해 버린 것입니다. 미국 독립전쟁의 발단이 된 이 '보스턴 차 사건'이후 북미에서도 차를 대신해 커피가 보편화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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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동양에 커피가 처음 들어온 것은 1878년 경 일본에 들어온 것(묘목)이 처음이라고 하며 1888년 일본 동경에 커피점이 생겼습니다.
1690년~1699년 사이에는 네덜란드인이 스리랑카와 인도네시아에 커피나무를 심어 재배에 성공했으며 1740년에는 자바섬에서 필리핀으로 커피가 전파되었습니다. 1840년에는 영국인들이 인도를 자국에서 소비하는 커피의 공급지로 삼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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