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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가 들어가는 모든 제품은 열이 발생한다. 이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전기 에너지를 열, 빛 또는 기타 에너지로 바꾸는 과정에서 100% 효율을 내지 못하고 ‘저항’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열은 기기에 치명적일 수도 있고 인체에 치명적일 수도 있으며 그냥 무시해도 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열이 기계와 인체에 치명적일 때인데, 사실 가전제품의 발열이 어떤 문제를 일으킬 것인지 사전에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오늘은 가전제품들이 얼마나 뜨거운지, 가전제품 중에서 ‘열’에 주의해야 하는 것들이 무엇들인지 직접 열화상 카메라를 이용해 확인해봤다.
테스트 방법과 장비
테스트는 보통의 가정집에서 진행했다. 사무실보다는 가정집이 가전제품도 많고 어린아이나 노인들이 있어 발열로 인한 위험에 더 취약하기 때문이다. 오늘 테스트에 사용한 제품은 TV, 냉장고, 전기밥솥, 전기장판, PC, IPTV 셋톱박스, 공유기, 휴대폰 충전기 등이다. 이들 제품을 살펴보고 전원 on/off에 따른 온도 변화 등을 측정할 예정이다.
온도 측정 장비로는 스마트폰 애드온 형태의 열화상 측정 장비 ‘FLIR ONE Pro’를 사용했다. 그럼 본격적으로 집안의 가전제품과 PC를 한 번 살펴보자.
측정 제품군 소개
24시간 작동 중인 가전제품들
▶ IPTV 셋톱박스
▲ IPTV 셋톱박스 작동 후 온도
집에서 TV 사용 시간과 동일하게 전원이 인가되는 제품이 바로 IPTV 셋톱박스이다. IPTV 셋톱박스의 내부는 일반 PC처럼 CPU, 메모리, 각종 전자 부품들로 가득 채워져 있고 영상을 처리하기 때문에 CPU 사용률이 높다. 그래서 의외로 열이 많이 나는 제품이다. 측정에는 모 통신사의 UHD 4K 셋톱박스를 사용했다. 이 셋톱박스는 안드로이드 기반이며 내부에는 쿼드 코어 CPU를 탑재했다.
먼저 위 사진은 셋톱박스에 전원을 넣고 TV를 작동했을 때의 외부 온도이다. 작동 전 대기 상태의 온도는 약 24도였는데, 작동 후에는 약 38도 정도로 올랐다. 사람 손과 비슷하게 따끈한 정도다. 셋톱박스 자체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과 비슷한 구조로 되어 있고 영상 처리 작업을 하다 보니 열이 꽤 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정도로 화재가 발생하진 않지만, 좁고 밀폐된 공간이나 TV 뒤에 두는 것은 셋톱박스나 TV의 수명에 좋지 않다.
▶ 공유기
▲ 공유기(위)와 모뎀(아래)의 작동 시 온도
공유기는 냉장고와 함께 24시간 계속 전원을 공급받는다. 그리고 IPTV 셋톱박스와 마찬가지로 좁은 공간에 별다른 냉각 장치 없이 열을 내는 각종 부품으로 가득하다.
측정에 사용한 공유기는 IPTV와 같은 통신사에서 제공하는 공유기와 모뎀이다. 최근 인터넷 서비스는 공유기와 모뎀을 분리해서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위 열화상 사진처럼 공유기와 모뎀을 겹쳐 두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온도를 보면 둘을 가급적 떼어 놔야 한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특히 공유기에서 나오는 열이 생각보다 높은 것을 볼 수 있다. 겨울에도 51도를 넘어간다. 공유기와 모뎀이 맞닿아 있던 모뎀 윗부분은 58도를 넘어간다. 추운 겨울에도 이 정도라면 한여름에는 60도 이상 올라갈 수도 있다. 두 제품이 의외로 온도가 높으므로 공유기와 모뎀을 겹치지 않는 등 관리에 주의가 필요하다.
▶ 냉장고
▲ 냉장고 뒷면 아랫부분
냉장고는 24시간 전원을 끄지 않고 사용한다. 열기가 아주 뜨거운 가전제품은 아니지만, 24시간 사용하는 만큼 특정 부위에서 열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특히 냉장고의 부피가 커서 겉으로 튀어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벽에 딱 붙여서 사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좋지 않다.
먼저 위 사진을 보자. 24시간 꺼지지 않는 가전제품의 대명사인 냉장고 뒷면은 생각보다 시원한 편이다. 하지만 모터가 있는 하단은 열이 많은 편이다. 특히 내부의 열이 밖으로 빠져나오는 곳은 40도를 넘기기도 한다.
▲ 냉장고 뒷면과 붙어 있는 벽의 온도
그래서 냉장고는 벽과 적당히 공간을 둬야 한다. 기자의 경우 거리를 적당히 뒀음에도 벽 온도가 30도까지 올라가 있다. 만약 벽에 바짝 붙어 있다면 열 배출이 원활하지 못해 냉각 효율이 떨어지고, 심한 경우 먼지에 불이 붙어 화재로 이어질 수도 있다. (관련 뉴스)
작동 시 열이 많이 발생하는 가전제품들
▶ 휴대폰 충전기
▲ 충전 시작 온도
▲ 고속 충전 중 온도
요즘은 스마트폰 배터리가 고용량에 교환 불가능한 일체형으로 바뀌는 추세여서, 여분의 배터리를 느긋하게 충전하기보다는 스마트폰 자체를 고속으로 충전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래서 휴대폰 충전기가 필수품이 됐다. 특히 프리미엄급 스마트폰은 대부분 고속 충전을 지원하고, 구매 시 함께 제공하는 충전 어댑터는 5V가 아닌 9V 출력을 지원하면서 고속 충전 시 온도가 생각보다 높다.
약 26도의 온도로 시작한 충전 어댑터는 고속 충전 중에 최대 38도를 넘어간다. 이는 안전성 테스트가 비교적 철저한 휴대폰 제조사의 정품 충전기를 사용한 결과이기 때문에, 만약 이보다 충전 속도가 더 빠르거나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은 비정품 충전기의 경우 온도가 더 올라갈 수 있다.
따라서 휴대폰이나 포터블 기기 충전 중에는 어댑터가 이불이나 수건, 옷, 콘센트 박스 등으로 밀폐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을 추천한다.
▶ 스마트폰
▲ 스마트폰 충전 시작 온도
휴대폰 충전기 온도를 재던 중에 궁금함이 생겨 예정에 없던 스마트폰을 추가했다. 앞서 확인한 휴대폰 충전기와 연결해서 보면 된다. 최신 스마트폰 중에는 고속 충전 모드를 지원하는 것들이 있다. 일반 충전에 비해 거의 2배 이상 빠른 속도로 충전을 할 수 있으나 그만큼 많은 열을 낸다. 그럼 고속 충전 모드에서 스마트폰은 어느 정도까지 뜨거워질까?
최신 스마트폰과 번들로 제공하는 고속 충전기(9V/1.68A)로 0%부터 고속 충전 구간인 80%까지 충전하면서 온도 변화를 확인해봤다.
▲ 충전 50분 후 온도
충전을 시작했을 때에는 카메라가 있는 부분의 온도가 가장 높았고 배터리가 있는 부분은 약 26도 정도였다. 그리고 약 50분 이후 다시 온도를 측정했을 때에는 배터리가 있는 부분이 36도까지 올라간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이것만 보면 많은 열이 난다고 볼 수는 없지만, 문제는 충전 환경이다.
특히 잠들기 전 스마트폰을 충전하면서 두꺼운 이불 위나 이불 안에 두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아래 사진을 보자.
▲ 이불 안에 20분 방치한 스마트폰 온도
카메라 부분의 온도가 36도에서 약 46.8도까지 올라갔고 아래쪽 커넥터 부분도 47도 이상 올라갔다. 위 테스트에 사용한 최신 스마트폰은 그나마 발열이 많지 않은 제품이고 20분 방치 후 측정했기 때문에 약간 뜨끈한 정도로 끝났지만, 다른 스마트폰의 경우 위와 같은 환경에서 60도를 넘길 가능성도 있으며, 20분보다 더 오랫동안 이불 속에 들어가 있거나 충전과 동시에 게임을 구동했을 경우 온도가 더욱 상승할 수 있다.
특히 겨울철 두꺼운 이불 속에서 충전 중인 스마트폰을 만지다가 그대로 잠드는 경우가 있는데, 화재 또는 스마트폰의 이상 동작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 전기밥솥
▲ 전기밥솥(쿠쿠 DHR067FS) 작동 전
두말할 필요가 있을까? 전기밥솥은 전열 가전인 만큼 열이 많이 난다. 이것은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가장 열이 많이 나는 부분은 따로 있다. 바로 이곳! 증기 배출구와 측면 손잡이이다. 특히 아이가 있다면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먼저 위 사진을 보자. 전기밥솥 작동 전 온도이다. 증기 배출구와 본체 부분 모두 실내온도와 비슷한 21~22도 수준이다. 하지만 취사가 끝난 후에는 온도가 급격히 올라간다.
▲ 취사 직후의 전기밥솥(쿠쿠 DHR067FS)
취사 이후에는 본체는 대략 30도 초반 정도이지만 증기 배출구는 42도까지 올라가고 측면의 밥솥 손잡이 부분은 약 59도까지 올라갔다. 증기 배출구의 온도가 가장 뜨거울 것으로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밥솥 손잡이 부분이 가장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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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증기 배출구의 온도가 예상보다 낮다고 해서 안심하면 안 된다. 증기가 배출되는 순간에는 매우 뜨거우니 조심해야 한다.
▶ 전기 오븐
▲ 전기 오븐 사용 전 온도
▲ 전기 오븐 사용 이후 온도
위 제품은 전자레인지와 전기오븐 겸용 제품이다. 오븐 기능을 사용해 예열 후 180도로 맞추고 5분간 파이를 데우기 전과 후의 외부 온도를 측정했다.
작동 전에는 거의 실온과 비슷한 수준이다. 왼쪽 사진에서는 측정 부위가 둘 다 정면에 맞춰져 있다. 이 부분이 가장 뜨거울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명백한 오판이었다. 조리가 끝난 후 측정한 결과 전면보다 상판이 더 뜨거운 것을 볼 수 있다.
열을 내는 부분이 위쪽에 있고 전기 오븐 수납장도 위쪽이 막혀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이다음이다. 보통 전기 오븐을 사용한 뒤에는 내부 열을 식히기 위해 자체 쿨링을 하기도 하지만 주로 문을 열어 두고 식힌다.
▲ 조리가 끝난 직후 오븐의 온도. 문 안쪽은 70도, 내부는 150도가 넘는다.
이 상태로 장시간 문을 열어두고 열을 식히는데 아이가 있다면 매우 위험하다. 막연히 ‘뜨겁다’라는 생각만 했을 뿐 문 안쪽은 70도가 넘는 온도까지 치솟는다는 것은 몰랐을 것이다.
그럼 문을 열어 두고 내부 열을 식힌다면 얼마나 걸려야 원래 온도까지 떨어질까? Flir One Por의 타임랩스 기능으로 5초마다 사진을 찍어 온도가 떨어지는 시간을 측정해봤다.
약 45분 동안 기다렸음에도 불구하고 상판은 46도로 여전히 높았고 70.3도였던 문 안쪽도 30도를 기록했다. 이 정도 속도라면 1시간을 훌쩍 넘긴다 하더라도 초기 온도까지 낮아진다는 보장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집에서 전기 오븐을 이용할 때는 아이의 접근을 막고, 가급적 통풍이 잘 되는 곳을 이용할 것을 권장한다.
▶ TV
▲ TV 작동 전(위)과 후(아래) 온도 변화
LED 백라이트를 사용하는 TV는 소비전력이 그렇게 높지 않아서 발열도 많지 않다. 그리고 화면이 클수록 방열 면적도 커지므로 온도도 높지 않은 편이다.
전원을 켜기 전에는 24도 정도였으나 전원을 켜고 사용하더라도 최대 34.5도 정도에 불과했다. 만약 OLED TV라면 이보다 더 낮은 온도를 기록했을 것이다. 최신 LED TV의 경우 TV 자체의 발열은 크게 문제 되지 않는 수준으로 보인다.
▶ 전기장판
한겨울 따뜻한 잠자리를 보장해 주는 전기장판은 1인 가구나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는 가정에서 종종 애용하고 있다. 요즘은 전기장판에 대한 안전성을 고려해 각종 안전장치를 많이 부착하고 있어 전자파 노출이나 과열 등으로부터 어느 정도는 보호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열’은 그대로이다.
테스트를 위해 침대 위에 전기장판을 두고 그 위에 다시 이불을 깔았다.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온도 설정은 ‘중’으로 맞춘 뒤 측정해 봤다.
▲ 전기장판 작동 10분 후, 전기장판을 덮고 있는 이불 표면 온도
10분 뒤 온도이다. 전기장판 위에 이불이 한 겹 깔렸기 때문에 온도가 크게 올라간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불 아래 전기장판의 온도를 직접 재면 다르다.
▲ 전기 장판 작동 10분 후, 이불 아래에 있는 전기 장판의 온도
온도를 ‘중간’ 단계에 맞췄을 때 전기장판의 온도는 열선이 있는 부위는 51도나 된다. 만약 이불을 덮고 밤새 있는다면 온도는 더 오를 수 있다. 그러니 전기장판을 이용할 때는 ‘취침모드’나 타이머를 이용하고 직접 눕는 것보다 이불을 한 겹 깔고 그 위에 눕는 것이 좋다. 50도가 넘는 전기장판에 직접 닿을 경우 저온화상의 우려가 있다.
모든 전자제품은 열을 멀리해야 한다
우리에게 편리함을 가져다주는 가전제품은 항상 위험을 동반한다. 대부분은 누전으로 인한 감전 사고가 더 많겠지만 '열' 때문에 발생하는 사고도 있다. 특히 전기 오븐 사용 이후 화상을 입거나, 휴대폰 충전기, 전기장판에서 화재가 발생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를 인지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열 화상 카메라를 이용해 일반 가정집에서 흔히 사용하는 가전제품이나 사용 환경 중 조심해야 할 '열'들을 찾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집에 노약자나 아이가 있다면 열이 발생할 수 있는 가전제품들을 다시 한번 점검해 보기를 권한다.
기획, 편집 / 송기윤 iamsong@danawa.com
글, 사진 / 유민우 news@dana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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