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창(梅窓)의〈취한 손님에게(贈醉客)〉
贈醉客 梅窓
醉客執羅衫,(취객집라삼) 羅杉隨手裂,(라삼수수열)
不惜一羅衫,(불석일라삼) 但恐恩情絶,(단공은정절)
취하신 임께 신석정 대역
취하신 임 사정없이 날 끌어단
끝내는 비단적삼 찢어 놓았지
적삼 하날 아껴서 그러는 게 아니어
맺힌 정 끊어질까 두려워 그렇지....
취한 손님에게 허경진 대역
취한 손님이 명주 저고리를 잡으니
명주 저고리가 손길을 따라 찢어졌네.
명주 저고리 하나쯤이야 아쉬울 게 없지만
임이 주신 은정까지도 찢어졌을까 두렵네.
[출처] 매창의 시|작성자 ys청봉
술 취한 손님 비단 소매 끓어 당기니, 醉客執羅衫
비단 소매 그 손 따라 찢어지는 구나. 羅衫隨手裂
비단 소매 하나 찢어지는 것 아깝지 않으나, 不惜一羅衫
다만 두렵구나!
우리들의 정다운 마음까지 끊어지는게... 但恐恩情絶
-졸역
*매창(梅窓: 1573-1610): 본명은 향금(香今), 계유년에 태어났으므로 계생(癸生), 또는 계랑(桂娘)이라고도 하였음. 부안의 아전 이탕종(李湯從)의 딸로 태어나, 명기로 개성의 황진이와 더불어 쌍벽을 이루었음. 《매창집》 2권에 시 58 수가 전하고 있는데, 김억의 《금잔디》에 38 수나 번역 게재되어 있다.―《한백》7-738 참조.
*나삼羅衫: “삼”자는 적삼일 수도 있고, 춤추는 것을 형용할 때 이 글자가 나오면 적삼에서 펄렁거리는 부분인 소매일 수도 있음. 이 시에서는 소매임. 당나라 장호張祜〈왕장군의 기생 첩 자지가 죽음에 느낌이 있어 짓다.感王將軍柘枝妓歿〉: “봄바람에 적막하게 되었구나! 엣 자지여, 춤꾼은 노래 그치고 악공은 연주를 그만 두었구나. 원앙새 장식한 허리 띄는 어느 곳에 버려졌는가? 공작새 수놓은 비단 적삼의 소매는 누구에게 돌아갔는가寂寞春風舊柘枝, 舞人休唱曲休吹. 鴛鴦鈿帶抛何處? 孔雀羅衫付阿誰?”
*은정절恩情絶: 인정어린 마음이 끊어지다. 한 성제(漢成帝)의 후궁(後宮) 중에 재색(才色)이 뛰어났던 반첩여(班婕妤)가 한 때는 성제의 총애를 독차지했다가 뒤에 조비연(趙飛燕)으로 인해 총애를 잃고는 스스로 자신을 깁부채〔紈扇〕에 비유하여 〈원가행(怨歌行)〉을 지었는데, “항상 맘속으로 가을철이 이르러, 서늘한 바람이 더위를 빼앗아 가면, 상자 속에 그대로 버려져서, 은정이 중도에 끊어질까 염려했었네.〔常恐秋節至 凉風奪炎熱 棄捐篋笥中 恩情中道絶〕”라고 하였다.-고전db 각주정보에서 인용
[해설]
이 시의 제목은 〈취한 손님에게(贈醉客)〉인데, 술취한 손님이 비단 소매를 잡고 끌어당기다가, 그것이 끊어진 것을 보고 지은 시이다. 소매 하나쯤 끊어지는 것쯤이야 별 상관이 없지만, 이 소매가 끊어지듯이 피차사이에 좋은 관계가 이 소매처럼 끊어질까 걱정이라고 하면서, 술에 취하여 마구 달려들어 끌고 가려는 남자를 은근히 나무란 것이다.
앞에서 인용한 두 분의 번역에서 이 “삼”자를 모두 "적삼"이라고 해석하였는데, “적삼이 찢어졌다”고 보면 너무 난폭하고, 야하게 보이지만, “소매가 찢어졌다“ 정도로 보아야 무난할 것 같다. 소매는 손으로 당기면 쉽게 끊어질 수도 있다.
얼마 전에 조지훈 시인의 〈완화삼玩花衫〉이라는 시를 영어 번역한다는 재미 교포 한 분이 여기서 ”삼“자의 뜻을 한국에서 나온 해설을 보니 모두 ‘적삼”이라고만 풀고 있는데, 아무리 보아도 어색한 것 같다고 하면서, 나에게 이 시에서 이 글자의 뜻이 무엇인지 물어온 일이 있었다. 그래서 이 글자의 여러 가지 용례를 찾아보니까, 이 글자가 어떤 때는 적삼, 어떤 때[특히 춤출 때]는 소매로 사용되고 있음을 보았다. 그래서 “완하삼”이라는 말은 봄날 팔을 흔들며 길을 걸어가는데 펄렁펄렁 그리는 “소매로 날아와서 나부끼는 꽃잎을 즐긴다“는 뜻이라고 일러준 일이 있다.
“비단 소매羅衫”라는 말이 네 구절 중에서 세 번이나 되풀이하여 나오는데, 마치 말하듯이 쉽게 쓴 시이나, 그래도 품위가 느껴지는 시이다. 소매가 떨어져 나간 것이지, 적삼이 찢어진다고만 보지 않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