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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7. 9. 큐티
에스겔 19:1 ~ 14
이스라엘 고관들을 위한 애가
관찰 :
1) 애가를 지어 부르라
- 1절. “너는 이스라엘 고관들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 “애가”(哀歌)는 슬픈 곡조의 성격을 띠는 시 형식으로 구성된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이스라엘의 고관들을 위하여 애가를 짓도록 하신 것은 이들이 나라를 통치하는 고귀한 신분을 받고, 책임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범죄하기에 앞장서는 것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이라는 것을 슬픔의 노래를 통해서 표현하고자 하신 것이다. 여기서 “이스라엘의 고관”은 여호아하스, 여호야긴, 시드기야를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
2) 애굽으로 끌려간 사자
- 2절. “부르라 네 어머니는 무엇이냐 암사자라 그가 사자들 가운데에 엎드려 젊은 사자 중에서 그 새끼를 기르는데” => 여기서 “네 어머니”는 남 왕국 유다를 상징하는 것으로 본다. 유다 왕국이 주변의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사자와 같은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 이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동일한 정글의 법칙에 살고 있었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보여주시고 있다. 여기서 “젊은 사자 중에서 그 새끼”는 여호아하스를 가리킨다.
- 3절. “그 새끼 하나를 키우매 젊은 사자가 되어 먹이 물어뜯기를 배워 사람을 삼키매” => 새끼 사자가 젊은 사자가 되어 포악한 속성을 드러내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남 왕국 유다를 악하게 통치한 것을 가리키는 표현이다(왕하 23:30 ~ 32). 여호아하스는 동족을 학대하고 압제했으며 살인을 서슴지 않았다.
- 4절. “이방이 듣고 함정으로 그를 잡아 갈고리로 꿰어 끌고 애굽 땅으로 간지라” => 여기서 “이방”은 애굽 왕 바로느고를 가리킨다. 바로느고는 앗수르를 치러 가는 자신들 대적하는 유다 왕 요시야를 죽이고 대신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왕으로 세웠다. 그러나 여호아하스가 악한 통치를 행하고, 하나님을 따르지 않게 되자 하나님께서 애굽 왕 바로느고가 올라오게 하셔서 여호아하스를 애굽으로 사로잡아 가게 하셨던 것을 본 절은 말하고 있다.
2) 바벨론 왕에게 끌려간 사자
- 5절. “암사자가 기다리다가 소망이 끊어진 줄을 알고 그 새끼 하나를 또 골라 젊은 사자로 키웠더니” => 히브리 족보 용법에서 ‘아들’이라는 표현은 혈통적으로 아버지의 아들로서의 아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손자일 수도 있고, 자손 중의 하나가 될 수도 있다. 여기서 “그 새끼 하나”는 그렇기 때문에 여호아하스의 아들 여호야김이 아니라 바벨론으로 끌려간 여호야긴을 의미한다.
- 6절. “젊은 사자가 되매 여러 사자 가운데에 왕래하며 먹이 물어뜯기를 배워 사람을 삼키며” => “젊은 사자”가 된 여호야긴은 이방 여러 나라들과 교류하며 왕래했다. 당시 느부갓네살의 바벨론의 애굽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막강한 제국을 세우고 있었다. 여호야긴은 백성들을 악하게 통치했다. 왕하 24:9 “그 부친의 모든 행위를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고 여호야긴의 악행을 기록하고 있다.
- 7절. “그의 궁궐들을 헐고 성읍들을 부수니 그 우는 소리로 말미암아 땅과 그 안에 가득한 것이 황폐한지라” => 여호야긴은 왕으로써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거주지 성읍들을 훼파해 버리는 악을 행하기까지 했다. 그로 인해서 유다 땅이 황량하게 되었다는 것을 본문은 가리키고 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여호야긴이 악한 통치로 말미암아 피폐하게 변모하게 되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 8절. “이방이 포위하고 있는 지방에서 그를 치러 와서 그의 위에 그물을 치고 함정에 잡아” => 남 유다 왕국 주의의 많은 이방들이 바벨론의 세력을 등에 업고 여호야긴을 공격한 것을 가리킨다. 바벨론이 유다를 공격할 때 그 군대의 상당수가 유다 주변의 이방에서 뽑은 자들이었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 9절. “우리에 넣고 갈고리를 꿰어 끌고 바벨론 왕에게 이르렀나니 그를 옥에 가두어 그 소리가 다시 이스라엘 산에 들리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 앗수르의 앗술바니팔의 사냥 장면에 대한 모습이 점토판에 새겨진 것이 발견이 되었다. 거기에는 생포된 사자를 나무틀로 만들어진 우리 안에 넣어 옮기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고 한다. 본문에서 “젊은 사자”로 비유된 여호야긴이 당시의 사냥에서 잡은 짐승과 같은 취급을 받으며 바벨론 왕에게 끌려가는 모습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여호야긴은 자신의 권력을 잘못 사용함으로 하나님에 의해서 처참하게 끌려가게 되는 결과를 맞이했다. 여호야긴은 약 석 달 동안 유다 왕으로 악한 통치를 하다가 바벨론 군대의 침입으로 모친과 함께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갔다. 땅을 황무하게 하던 젊은 사자인 여호야긴이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됨으로 여호야긴의 잔악과 강포가 더 이상 이스라엘 땅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3) 물가에 심겨진 포도나무
- 10절. “네 피의 어머니는 물 가에 심겨진 포도나무 같아서 물이 많으므로 열매가 많고 가지가 무성하며” => 여기서 “어머니”는 유다 왕국을, “네 피”는 유다의 왕통을 비유하고 있다. 유다 왕통에 의해서 세워질 당시의 이스라엘은 영적으로 매우 풍성한 열매를 맺는 포도나무와 같았다. “물이 많으므로”는 팔레스타인의 상황에서 볼 때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메마른 땅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른 비와 늦은 비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는 곳이 팔레스타인 땅이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이렇듯 하나님의 은혜로 경제적으로도, 국방력으로도 강력하게 자라게 되었던 나라였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 11절. “그 가지들은 강하여 권세 잡은 자의 규가 될 만한데 그 하나의 키가 굵은 가지 가운데에서 높았으며 많은 가지 가운데에서 뛰어나 보이다가” => “그 하나”란 여호야긴 뒤에 남 유다의 왕이 된 시드기야를 가리킨다. 시드기야는 11년 공안 통치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악한 행위와 반바벨론, 친애굽 정책을 펴다가 느부갓네살에 의해서 폐위당하게 된다. 시드기야는 사실은 왕위에 오를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조카 여호야긴을 대신해서 왕이 되었다. 본문은 그에 대해서 비유적으로 말하고 있다.
- 12절. “분노 중에 뽑혀서 땅에 던짐을 당하매 그 열매는 동풍에 마르고 그 강한 가지들은 꺾이고 말라 불에 탔더니” => 남 유다를 상징하는 포도나무가 완전히 파괴당해 소생할 수 없게 박살이 난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시드기야 왕 때 남 유다가 얼마나 처참하게 패망하게 되었는지를 표현하고 있다. 시드기야는 두 눈이 뽑혀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갔다. 바벨론의 침공으로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 졌고, 유다의 왕의 적통은 끊어지게 되었다.
- 13절. “이제는 광야, 메마르고 가물이 든 땅에 심어진 바 되고” => “메마르고 가물이 든 땅”은 바벨론 지역을 의미한다. 시드기야 왕이 바벨론으로 끌려가 이제는 전에 누렸던 왕으로서의 지위를 모두 상실하고, 삭막하고 피폐한 상태에 처하게 된 것을 말한다. 시드기야는 소생 불능이 되었고, 다시 유다로 돌아가 왕권을 회복할 가성성은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 14절. “불이 그 가지 중 하나에서부터 나와 그 열매를 태우니 권세 잡은 자의 규가 될 만한 강한 가지가 없도다 하라 이것이 애가라 후에도 애가가 되리라” => “불”은 하나님의 심판을 가리킨다. “그 가지 중 하나”는 시드기야 왕을 의미한다. 시드기야의 죄악과 하나님께서 명한 뜻을 거스린 반바벨론 정책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그 불길이 온 남 왕국 유다에 미치게 된 것을 가리키고 있다.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가 바벨론으로 끌려가고 그곳에서 죽음으로 더 이상 혈통적 다윗 왕가의 후손 중에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를 자가 없다는 것을 본문은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다윗의 후손으로 동정녀를 통해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하신 왕으로서 다윗의 위를 이어 세세토록 왕노릇 하시게 된다.
가르침 :
1)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남 유다의 마지막 왕들에 대한 슬픔의 노래를 지어 부르게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왕의 권세를 주셨지만, 그들은 그 권세를 가지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백성들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마음대로 휘둘러 백성들을 피폐하게 만들고, 남 유다를 패망에 이르게 했다. 하나님은 그 과정에서 바벨론을 따를 것을 명하기까지 하시면서 회개의 기회를 끊임없이 주셨지만, 결국 그들은 망하는 길을 택하고, 멸망의 자리에 나아가게 되었다.
2)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으신 다윗 언약을 잘못 이해하고 해석한 것이 그들 왕들의 치명적인 잘못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신들이 영원히 이어질 하나님의 언약이 있는 다윗의 혈통으로서의 왕이기 때문에 결코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이 하나님을 떠나도 여전히 다윗 언약이 유효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보게 된다. 오늘날도 교회를 다니기에,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아도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주어질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크나 큰 착각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3) 하나님은 다윗 왕가의 혈통적 맥을 끊어버리셨다. 이제 다윗 왕가에서 혈통적으로 적통을 통해서는 왕으로 세워질 사람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단순히 나라가 망한 것으로 그칠 일이 아니라 다윗 왕가의 적통의 씨가 말랐다는 것이다. 이것은 왕가에 있어서 무서운 결말이고, 정말 소망이 없게 되는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과정을 통해서 진짜 다윗 언약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는 일을 이루신다. 하나님의 은혜이다.
4) 에스겔이 부른 슬픔의 노래, 애가(哀歌)는 한 나라와 왕조의 멸망에 대한 무섭고 슬픈 노래이다. 살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죽어라 죽을 길로 달려간 미련하고 고집스런 나라와 왕조에 대한 슬픔의 노래이다. 그러나 반전이 있다. 그로 인해서 하나님의 보편적 은혜가 더욱 크고 놀랍게 우리에게 주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이 땅에 오시게 된 것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은혜인지를 더욱 깊게 깨닫게 된다.
적용 :
1) 남 유다의 멸망과 다윗 왕조의 종말은 슬프고 슬픈 일이다. 그러나 그 후에도 백성들은 이어지고, 바벨론에서도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존재하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하며, 주님 나라가 이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않은 뜨인돌이 제국을 무너뜨리고 온 세상에 가득하게 되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능력이다. 유다가 망한다고 하나님이 망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존재하는 한 하나님 나라는 이어지고, 더 강력하게 된다. 오늘날 주님의 몸 된 교회들이 고난 속에서 힘들어 하고 있다. 모임을 온라인으로 가지게 되면서 많은 성도들의 이탈과 뉴노멀의 시대에 대응하지 못하고 지리멸렬 하는 것처럼 보이고 있다. 심지어는 국가에서 교회의 소모임을 금지시키는 조치까지 취해지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망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그런 것으로 교회를 망하게 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지역 교회는 문을 닫을 수 있지만, 전우주적 교회는 더욱 강력하게 되고, 장차 다시 오실 주님을 소망하는 믿음은 더욱 강렬해 질 것이다.
2) 슬픔의 노래의 이면은 그렇기에 기쁨의 노래가 되고, 그 모든 것을 인도하시는 분이 살아계신 우리 주님이심을 인해서 주님을 찬양하게 된다. 진짜 왕이 오실 이유가 이 땅의 왕들이 끊어지게 됨으로 더욱 드러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3) 살아계신 주님을 더욱 의지해야 할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마음을 다해 주님을 섬기고, 주님을 기뻐하며 힘을 내도록 하자. 예수 그리스도는 애가가 필요없는 진짜 왕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