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31일 첫 전파를 탄 SBS 월화드라마 『라켓소년단』이 무공해 웰메이드 스포츠 드라마라고 호평을 받으며 잔잔한 인기몰이 중이다. 땅끝마을에서 배드민턴계의 아이돌을 꿈꾸는 소년과 소녀들의 소년체전 도전기는 자극적인 소재가 난무하는 요즘 드라마들 사이에서 보기 드문 청량함과 순수함으로 우리의 마음속을 훈훈하게 만들고 있다.
비인기(?) 종목인 국민스포츠의 대명사
배드민턴은 우리나라에서 어떤 스포츠인지 얘기하려면 조금은 애매한 위치에 있는 스포츠이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배드민턴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메달밭이 되면서 올림픽이 열릴 때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그러나 평소에는 배드민턴 경기를 TV에서 중계하는 일이 거의 없고 비인기 종목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하지만 길거리로 나가면 배드민턴은 우리나라에서 가히 ‘국민스포츠’라 불릴 만한 높은 위상을 갖추고 있다. 약수터나 동네 공원에서는 주말마다 가족끼리, 연인끼리, 친구끼리 재미 삼아 배드민턴을 치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이보다 전문적인 복장과 신발, 라켓 등 장비를 갖춘 사람들은 실내체육관으로 모여든다.
배드민턴을 즐기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략 3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는데, 몇 해 전 통계이기는 하지만 대한체육회는 배드민턴 동호회와 그 회원수를 각각 5,855개, 35만4,847명으로 공식 집계하기도 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최근 위축되기는 했지만 배드민턴은 우리나라에서 축구 외에는 사실상 대적할 만한 종목이 거의 없는 생활스포츠의 꽃이다.
시골 소년과 소녀의 배드민턴 종목 소년체전 도전기를 담고 있는 드라마 『라켓소년단』. ⓒ SBS
배드민턴은 길이 13.4m 폭 6.1m의 직사각형 코트에서 1.55m 높이의 네트를 사이에 두고 셔틀콕이라 불리는 깃털 모양의 공을 라켓으로 번갈아가며 상대방 코트에 쳐 보내는 랠리를 하는 스포츠이다. 자신이 친 셔틀콕이 상대방 코트 안에 떨어지거나 상대방이 친 셔틀콕이 자신의 코트 바깥쪽에 떨어지면 포인트를 얻게 되는데, 올림픽 등 정식대회에서는 21점에 3판 2승제로 경기가 진행된다.
배드민턴이 최고로 인기 있는 생활스포츠가 된 이유는 남녀노소에 상관없이 라켓과 셔틀콕만 있으면 실내든 실외든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운동 종목이기 때문이다. 장소가 넓지 않아도 되고 복잡한 장비가 필요한 것도 아니며 심지어 네트가 없어도 게임을 즐기는 데 큰 문제가 없다.
이처럼 간편하게 준비할 수 있지만, 운동의 폭과 깊이는 생각 이상으로 넓고 깊다. 셔틀콕을 쫓아 짧은 거리여도 쉬지 않고 빠르게 이동해야 하며, 점프와 순간적인 방향 전환 등 전신운동을 해야 한다. 라켓을 있는 힘껏 휘둘러 셔틀콕을 맞출 때 느끼는 타격감이 상당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도 제격이다. 또한 네트를 가운데 두고 서로 떨어져서 신체 접촉 없이 행하여지는 신사적인 스포츠라는 점도 장점이다.
시속 400km가 넘는 셔틀콕의 비행
배드민턴은 구기 종목이지만 공 대신 셔틀콕을 사용한다. 셔틀콕(Shuttlecock)은 왕복(Shuttle)과 닭(Cock)이 결합된 말인데, 배드민턴을 칠 때 계속 서로 주고받는 물건이면서 닭의 깃털을 사용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만들어진 이름이다. 최근에는 인조 깃털을 사용해 만든 셔틀콕도 많이 사용하며, 천연 깃털로는 닭보다 좀 더 고급스럽게 오리나 거위 깃털을 사용해 만들기도 한다. 올림픽 등 경기에 사용되는 셔틀콕은 거위 깃털로 만드는데, 최상급 깃털은 거위 1마리당 4개에 불과해 가격이 상당하다고 한다.
셔틀콕의 전체 무게는 4.74~5.5g으로 깃털로 만든 만큼 매우 가볍다. 가죽을 씌운 2.5~2.8cm 크기의 반구형 코르크에 길이 6.2~7cm 길이의 깃털을 박아 원뿔 형태로 만든다. 하나의 셔틀콕에는 16개의 깃털을 사용하는데, 깃털이 꽂힌 곳의 반대쪽 원뿔 바닥부분의 지름은 5.8~6.8cm 정도가 된다.
플라스틱을 비롯해 인조 깃털과 거의 깃털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진 셔틀콕(위). 셔틀콕은 날아갈 때 항상 코르크 부분이 진행방향을 향한다(아래). ⓒ C. Lin 『Understanding and evaluation of badminton shuttlecocks through flight dynamics and experimental approach』
깃털로 만든 가벼운 셔틀콕 덕분에 배드민턴은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구기종목이 된다. 기네스북에 등재된 공식경기 중 셔틀콕 최고 속도는 2017년 한 덴마크 선수에 의해 기록됐는데, 속도가 무려 시속 426km에 달했다. 기네스북에 등재된 다른 구기종목들을 살펴보면 야구의 불같은 강속구 최고구속은 시속 169.14km이고, 축구의 대포알 슛 최고기록은 시속 211km에 불과하다.
배드민턴처럼 도구로 공을 치는 구기종목으로 한정해 봐도, 기네스북 기준으로 탁구는 시속 112.5km, 아이스하키는 시속 177.5㎞. 테니스는 시속 263.4㎞, 골프는 시속 349.4㎞로 배드민턴에는 한참 미치지 못한다. 참고로 기네스북 기록은 아니지만,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MLB)에서 사용하는 투구 및 타구 추적시스템인 스탯캐스트에 찍힌 역대 최고 타구 속도는 시속 197㎞에 불과하다.
셔틀콕이 압도적으로 빠른 이유는 뉴턴의 운동 제2법칙에 의해 쉽게 설명된다. 제2법칙은 가속도의 법칙인데, 힘(F)은 질량(m)과 가속도(a)의 곱(F=ma)으로 정리할 수 있다. 결국 가속도는 힘에 비례하고 질량에는 반비례하게 되는데, 라켓을 사용해 강한 힘으로 가벼운 셔틀콕을 치면 가속도가 매우 커져 셔틀콕은 순간적으로 빠른 속도를 낼 수 있게 된다.
셔틀콕이 다른 스포츠의 공보다 월등히 빠르기도 하지만 특수한 공기역학적 성질 때문에 일반적인 공과는 전혀 다른 비행궤도를 그린다. 셔틀콕이 날아갈 때는 항상 코르크 부분이 깃보다 앞쪽에 위치하는데, 코르크가 깃보다 공기 마찰력이 적기 때문이다.
라켓으로 셔틀콕을 타격하는 순간 코르크 부분이 진행방향 쪽을 향하는 자세를 취하며 날아가는데 공기저항으로 인해 깃털 폭이 오므라들면서 저항이 줄어 매우 빠른 속도로 날아간다. 그런데 네트를 넘어갈 때 즈음에는 깃털이 원래대로 펴지면서 마치 낙하산이 펼쳐지는 것처럼 공기저항이 커져 속도가 급격히 감소하게 된다. 그대로 두면 속도가 떨어지다가 나중에는 거의 수직으로 지면으로 낙하하게 된다.
배드민턴은 일반인이 라켓을 휘둘러도 셔틀콕이 시속 100km를 훌쩍 넘는 가장 빠른 구기종목이지만 셔틀콕 특성으로 인해 속도 변화가 매우 심하며 시속 제로에 가까운 초저속 플레이도 가능하다. 셔틀콕이 날아가면서 그려내는 이와 같은 변화무쌍한 선은 배드민턴의 재미를 한층 높이는 중요한 요소다.
스매시를 받는데 필요한 것은 두뇌
배드민턴에서 라켓을 휘둘러 셔틀콕을 치는 모든 행위를 스트로크(Stroke)라 한다. 스트로크는 라켓을 든 손이나 팔만 움직여서 치는 것이 아니라 허리부터 시작하여 어깨, 팔꿈치, 손목 순서로 관절을 연속적으로 유연하게 움직여서 치는 것이다.
팔을 사용하는 스포츠는 운동역학적으로 제3종 지레의 원리가 적용되는데, 3종 지레에서는 양 끝에 축과 저항점이 있고 가운데 힘점이 위치한다. 따라서 지렛대의 끝에서 긴 작용팔이 보다 빠른 속도를 얻기 때문에 팔꿈치를 펴서 작용점까지의 거리를 길게 해야 더 큰 스피드와 파워를 낼 수 있다.
배드민턴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스트로크는 클리어(Clear)다. 하이클리어(High Clear)는 셔틀콕을 높고 길게 쳐서 상대 코트의 엔드라인 가까이까지 높게 날아가 수직으로 떨어뜨리는 기술이다. 자신이 불리한 상황일 때 셔틀콕의 긴 체공시간을 활용해 전열을 정비할 시간을 벌기 위해 사용하는 수비형 스트로크다.
반면 드리븐 클리어(Driven Clear)는 하이클리어보다 직선으로 빠르게 날아가 엔드라인 위해서 뚝 떨어뜨리는 스트로크다. 속도와 코스를 잘 선택해 상대방의 허점을 찌르는 공격형 기술로 사용한다.
드라이브(Drive)는 셔틀콕이 어깨와 허리 사이로 들어올 때 받아치는 사이드암 스트로크로 셔틀콕을 네트 위를 거의 스칠 정도로 코트 방향과 평행하게 날아가도록 하는 기술이다. 타점이 낮지만, 스피드가 빨라 기습 공격에 좋은 방법이다.
하이클리어(1), 드리븐클리어(2), 드라이브(3), 스매시(4), 드롭(5), 헤어핀(6) 등 배드민턴의 다양한 스트로크에 의한 셔틀콕의 비행 궤적. ⓒ Baker, A.H.『Investigating the variability of overhead deceptive shots in an elite badminton player』
스매시(Smash)는 머리 위 높은 위치에서 빠른 스피드로 라켓을 휘둘러 상대방 코트로 셔틀콕을 강하게 예각으로 꺾어 내리치는 스트로크다. 강한 힘과 속도로 가장 파괴력 있게 공격하는 기술로 배드민턴의 꽃이라 불린다. 보통 점프해서 더 높은 타점에 내리꽂기 때문에 위력이 배가되는데, 체력 소모가 크고 후속 동작이 늦어질 수 있어 상대의 반격을 허용할 수도 있다는 단점이 있다.
드롭(Drop)은 클리어나 스매시와 같은 오버해드 스윙 방식인데, 짧고 가볍게 끊어쳐서 셔틀콕을 상대팀의 네트 근처로 떨어뜨리는 기술이다. 강하게 스매시를 때리는 척하다가 드롭을 구사하면 상대방이 속기 쉽다. 따라서 준비 동작부터 타구 직전까지는 최대한 스매시와 비슷하게 구사해야 한다.
넷드롭(Net-Drop)은 네트 바로 밑에 떨어지는 셔틀콕을 다시 네트 위를 타고 넘듯이 넘기는 기술로, 동그랗게 구부러진 헤어핀(Hair Pin) 모양처럼 넘어간다고 해서 헤어핀이라 불리기도 한다. 네트플레이의 기본이 되는 스트로크로 손목이나 팔의 힘을 미세하게 조절하는 게 생명이다.
배드민턴에서 가장 강력한 스트로크인 스매시를 했을 때 셔틀콕이 상대 코트에 떨어지는 시간은 대략 0.15초 정도가 걸린다. 그런데 순발력과 민첩성을 끊임없이 갈고닦은 국가대표 선수들도 반응속도가 평균 0.2초에서 0.3초 정도 걸린다. 시간으로만 해석하면 스매시로 공격하면 상대편이 그 시간 안에 대응할 수 없으므로 무조건 성공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런데 실제 경기에서 배드민턴 선수들은 상당히 강력한 스매시도 척척 받아낸다. 선수들이 반응속도보다도 빠른 스매시를 받아낼 수 있는 이유는 상대 선수들의 성향과 움직임, 상황 등을 다각적으로 고려해 예측하고 판단을 해서 미리 움직이기 때문이다.
우수한 배드민턴 선수는 강한 체력과 완성도 높은 기술도 기본적으로 필요하지만,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위치를 선점하여 상대방의 플레이에 대항하는 전술능력이 매우 중요하다. 이 때문에 배드민턴은 손이 아닌 발로 하는 스포츠이고, 무엇보다 머리를 가장 많이 써야 하는 두뇌 스포츠라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