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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과학, 문화의 핵심 개념들
역사서술학(Historiography)
역사적 지식은 두 가지 차원을 따라 일어나는데, 한편으로 역사가는 모든 사람이 기여하는 공통 역사를
전제하기도(또는 전제하지 않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역사의 승자의 입장에서 역사를 쓰기도(또는
쓰지 않기도) 한다.
1930년대에 허버트 버터필드(Herbert Butterfield)는 휘그주의적(Whig) 역사서술학과 토리주의적
(Tory) 역사서술학을 각각 공통 역사의 승자들과 패자들의 입장으로 유용하게 구별했다.
휘그주의적 역사서술학과 토리주의적 역사서술학이라는 버터필드의 신조어 배후에 있는 공통 역사는
십칠 세기 영국의 왕에 대한 의회의 지배를 포함한다.
군주주의적 토리당에게 이것은 자연 질서가 파편화되고 혼돈으로 떨어지는 이야기였던 반면에, 의회를
옹호한 휘그당에게 그것은 만인을 위한 평화로운 기획과 번영으로 귀결된 자유의 확산에 대한 걸림돌의
제거를 특징짓는다.
달리 말해서, 휘그당과 토리당은 서로를 같은 역사 서사의 주역들로 인식했지만, 그들은 그 서사의 줄거
리를 본원적으로 다른 견지에서 해석했는데, 구체적으로 휘그당이 자유를 본 곳에서 토리당은 타락을
보았고, 토리당이 질서를 본 곳에서 휘그당은 정체를 보았다.
토리당에게 휘그당은 군주제의 약점의 운 좋은 수혜자들이었지, 휘그당이 스스로 여겼듯이, 역사적 운명
의 파도를 올라탄 자들이 아니었다.
휘그당이 역사의 문자를 통제했다면, 토리당은 유배당한 역사의 정신에 대한 권리를 주장했다.
휘그주의적 역사서술학과 토리주의적 역사서술학의 차이는 과거에 대한 그것들의 대조적인 태도에
의해 요약되는데, 풀러(Fuller)는 각각의 태도를 과대결정론(overdeterminism)과 과소결정론(underd
eterminism)이라고 부른다(진화를 보라).
전자의 경우에는 역사의 출발점에 상관없이 같은 결과가 보증되는 반면에, 후자의 경우에 현재의 궤적은
역사적으로 특정한, 그리고 잠재적으로 가역적인 결정들의 산물이다.
반사실적 조건문들의 논리학으로 표현하면, 시간적으로 연속적인 두 사건, X와 Y 사이의 관계에 대한
그것들의 태도는 이렇다.
과대결정론: X가 일어나지 않았었더라도 Y는 여전히 일어났을 것이다.
과소결정론: X가 일어나지 않았었더라면 Y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휘그주의적 역사서술학은 기독교의 해방 이야기에서 종교적 선례들이 있으며(종교를 보라), 근대 특유의
진보에 관한 서사인데, 그것의 요소들은 그렇지 않으면 서로 다른 스미스, 헤겔, 마르크스, 그리고 밀과
같은 사상가들에서 발견될 수 있다.
그것의 정치적 기원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휘그주의적 역사서술학은 정치보다 과학에 관한 해설에서 발견
될 확률이 더 높은데, 그렇지만 민주주의에 관한 희망에 찬 몇몇 역사들은 계속 휘그주의적이다.
쿤(쿤, 포퍼, 그리고 논리실증주의를 보라)은 휘그주의적 역사들은 교화적 신화에 불과하지만, 일상적인
과학을 구성하는 흔히 전문화되고 하찮은 활동 속에서 과학자들과 대중을 고무하는 데 그에 못지 않게
필수적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악명이 높다.
휘그주의적 역사들에 부여된 수사학적 가치는, 탐구의 궁극적인 목적이 항상 시야에서 멀어지는 듯 보일
때조차도 오늘날의 과학자들에게 요구되는, 폴라니가 "무조건적인 전념" 또는 심지어 "종교성"으로 간주
한 것에 주목한다(진리, 신뢰성, 그리고 지식의 목적을 보라).
토리주의적 역사서술학은 과학보다 예술과 정치에 관한 해설에 더 자주 적용된다.
그럼에도 그것도 종교적 선례들이 있다.
예를 들면, 십칠 세기의 토리당은 역사란 인간들이 자연과 조화를 이르고 신(왕에 의해 대표되는)과 교감
했던 때묻지 않은 지혜의 최초의 순간으로부터 오래 동안 지속적으로 쇠퇴해 온 것이라는 널리 퍼진
르네상스적 정서를 반영했다.
성경적 견지에서 이런 은총으로부터의 추락은 토리당이 언어, 학파, 그리고 관점들의 분산을 상징하기
위해 환기시킨 바벨탑으로 요약되었다.
단일한 인식적 통용 기준 아래 학문을 통일하는 것에 대한 실증주의의 집착은 이런 토리주의적 감성을
거의 틀림없이 근대화하는 것일 것이다.
또한 토리주의적 역사서술학은 깨끗한 승자는 없다는 더러운 손 원리(dirty hands principle)에 기대어
왔다.
모든 승리는 행운이며 궁극적으로 피루스의 승리인데, 나중에서야 드러나게 되는 숨은 비용을 유발한다.
이 원리는 인간의 오류가능성의 비극적 차원을 전형적으로 밝히는데, 애초에 성공을 낳았던 성질들이
결국은 발전을 저지하고 실패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그 경우에는, 전에 추방되었었던 것이 자체의 정당한 유산에 대한 권리를 다시 주장하게 되는 토리주의적
소망충족, 즉 억압받은 자들의 귀환을 목격하기도 한다.
역사에 대한 토리주의적 감성은 결코 투키디데스와 같은 패배한 장군들이나 볼링브로크 자작―볼테르와
헤겔이 철학적 역사(즉, 사례들로 가르치는 철학으로서의 역사)라는 관념을 얻도록 고무시킨 영국의
원조 토리당원―과 같은 망명한 정치인들에 한정되지 않는다.
십팔 세기에 공통 역사라는 관념이 가계도의 대안적 가지들에서 넓어져 인류 전체를 포괄하게 됨에 따라,
"패자들"은 기득권을 박탈당한 엘리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을 나타내게 되었다.
비남성들, 비귀족들, 비백인들, 그리고 자신의 비합리적 자아까지도 그들에 편입되게 된다.
따라서 마르크스, 니체, 그리고 프로이트는 토리주의적 역사서술학을, 자신의 일반적인 자기이해에서만
이라도(프로이트에서 처럼), 잠재적인 해방의 서사로 변형시켰다.
승리와 패배가 항상 우연성의 문제라면, 과거의 패배가 미래에는 반전될 수도 있다는 희망이 항상 있다.
십구 세기 말에는, 이른바 무한한 우주에서 모든 원자 조합의 "영원 회귀"와 진화생물학자들이 "격세유
전적" 종이라고 부르는 것의 주기적인 귀환에 이런 관점들에 대한 과학적 근거도 있는 듯 보였다.
과학철학의 역사의 특이한 특징은 오늘날 주로 철학자로 간주되는 사람들이 당대의 주요한 과학 전쟁들의
패자 진영에 속했으며, 심지어 때때로 과학 공동체에 편입되지 못했기 때문에 철학을 할 수 밖에 없게 되
었다는 점이다.
십칠 세기는 이 점에 대한 두드러진 확증을 제공한다.
갈릴레오, 보일, 그리고 뉴턴뿐 아니라 데카르트, 홉스, 그리고 라이프니츠까지도 모두 "자연철학자"로
불렸지만, 그럼에도 오늘날 첫 번째 집단은 "과학자"로 불리고 두 번째 집단은 "철학자"로 불린다.
사실상 과학철학은 토리주의적 과학사의 자연스러운 고향이다.
토리주의적 역사서술학의 질료인 역사의 미실현된 잠재력이 철학의 주제일 때, 그것은 동시대의 과학적
실천을 비판하기 위한 입장이 된다.
확실히 이런 입장에서 쿤, 논리실증주의자들, 그리고 포퍼주의자들이 과학에 대한 그들 각자의 규범적
(규범성을 보라) 판본을 전개했다.
그들의 판본들이 흔히 꽤 상당한 차이를 보임에도 불구하고, 그들 모두는 이십 세기에 과학이 테크노사
이언스로 변신한 점을 유감으로 여겼다(과학기술학을 보라).
쿤이 실증주의자들과 포퍼주의자들―특히 포퍼의 제자들인 임레 라카토스(Imre Lakatos)와 파울 파이
어아벤트(Paul Feyerabend)―과 달라지는 지점은 쿤이 라카토스가 쿤 손실이라고 부른 현상을 수용한
점이었다.
쿤 손실은 문제풀이 유효성의 개선뿐 아니라 새로운 패러다임의 의제에서 해결불가능한 문제들의 공식
적 제거도 초래하는 과학혁명들의 경향을 가리킨다.
포퍼주의자들에게, 자체의 과거에 대한 과학의 체계적인 망각, 또는 아마 심지어 억압―쿤의 휘그주의적
역사의 질료―은 보편적 탐구로서의 그것의 잠재력을 억제했다(공통 감각 대 집단 기억을 보라).
놀랍지 않게도, 상실되는 경향이 있는 구 패러다임의 측면들은 아마도 자신들의 권위의 한계가 노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과학자들이 피하고 싶어 할, 공적으로 논란이 되는 쟁점들로 둘러싸인 더 주관적인 것
들이다.
탈근대적인 이 시대에는(포스트모더니즘을 보라) 다중의 역사적 계보와 궤적을 전제하기가 더 쉽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과학철학자 스티븐 브러쉬(Steven Brush)와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에 의해 각각 만들어진 술어들을 동원하면, 프리그주의적(Prig) 역사서술학와
하위주체주의적(Subaltern) 역사서술학을 식별할 수 있을 것이다.
프리그주의자는 균형잡힌 입장에서 역사의 다중성을 평가하는 직업적 역사가이다.
그런 입장의 우월성―전문성의 표식―은 줄기들 자체 사이에서 원래 현존했었던 적대감에 상관없이 서로
다른 줄기들을 향해 드러내는 선불교적 태도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하위주체주의자는 역사의 다중성을 본원적인 "타자성"으로 경험하는데, 구체적으로
지배적인 줄기들로부터의 배제와 그것들에 대한 종속까지도 경험한다(페미니즘, 다문화주의를 보라).
휘그주의자의 우월 의식은 역사를 비개인적 초월이라기보다 개인적 유산의 원천으로 취급한다는 점에서
프리그주의자와 다르다. 비슷하게, 토리주의자의 열등 의식은 역사를 사회적 주변성의 더 일반적인 표현
이라기보다 특정한 권리 박탈의 원천으로 취급한다는 점에서 하위주체주의자와 다르다.
풀러 판본의 사회인식론은 자연스럽게 토리주의적 역사서술학에 동조하는데, 특히 비판에 대한 원천으
로서 동조하며, 프리그주의적 역사서술학에 가장 적게 공감한다.
더 읽을 책
A. Ahmad, In Theory: Classes, Nations, Literatures (1992).
J. Elster, The Logic of Society (1980).
S. Fuller, Science (1997).
S. Fuller, Thomas Kuhn (2000).
S. Fuller, Kuhn vs Popper (2003). 스티브 풀러, 쿤/포퍼 논쟁: 쿤과 포퍼의 세기의 대결에 대한
도발적 평가서
S. Fuller & J. Collier, Philosophy, Rhetoric and the End of Knowledge (2004).
I. Hacking, Scientific Revolutions (1981).
J. Kadvany, Imre Lakatos and the Guises of Reason (2001).
T. S. Kuhn,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1962] 1970). 토머스 S. 쿤, 과학혁명의 구조
T. S. Kuhn, The Essential Tension (1977).
M. Mandelbaum, History, Man and Reason (1971).
S. Toulmin, Human Understanding (1972).
S. Toulmin, Return to Reason (2003).
전문성(Expertise)
전문성은 상대주의(상대주의 대 구성주의를 보라)의 역사에서 물리적으로 정의된 영역보다 개념적으로
정의된 영역에 대해서 인식적 권위를 주장하게 되는 혁신적인 전개를 나타낸다.
이 점에 대해 가장 많이 인용되는 문헌은 에밀 뒤르케임(Emile Durkheim)의 <사회분업론(The Division
of Labour in Society)>(1895)인데, 그는 이 책에서 정확히 이런 변동의 견지에서 기계적 연대로부터
유기적 연대로의 전환을 정의한다.
일반적으로 전문성의 문화는 구성원들이 경계가 분명한 공간과 대조적인 분산된 공간에서 실천하는 학문
분과(학문분과성 대 학제성을 보라)와 관련된다(패러다임으로서의 전문성의 출현에 대해서는 쿤, 포퍼,
그리고 논리실증주의를 보라).
"경험 많은(experienced)"이라는 분사의 줄임말인 "전문성"은 십구 세기 마지막 4반세기에 프랑스 제3
공화국에서 하나의 명사로서 처음 나타났다.
최초의 전문가들은 재판에서 필적 위조를 감별하는 증인으로 소환되었다.
위조로 추정되는 것을 평가할 때, 전문가들은 자신들의 추리를 공개적으로 제시하도록 요구받지는 않았다. 그들은 다양한 일반 원리가 그 사건에 적용한 상대적인 확률을 가늠하는 결의론자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위조를 성공적으로 식별했던 전문가의 과거 경험이, 재판에서 증언하도록 소환된 동료 전문가의
이의 제기를 받는 그의 판단의 진실성을 인가했다.
전문성의 신비감은, 전문가의 동료들이 충분히 꼼꼼하여 그들은 필요하다면 자신들의 전문성의 어떤 오용
이나 남용도 교정할 수 있고, 그리고 교정하는 경향이 있을 것이라는 인상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렇지만 그것이 전문성이 옳은 바를 행하고 있음에 틀림없다는 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런 단체성의 분위기는 프랑스의 선도적인 소설가이자 자칭 지식인이었던 에밀 졸라(Emile Zola)로
하여금 전문가들을 "문외한" 대중과 구별되는 "새로운 성직자들"이라고 부르게 한 신비감을 품었다.
졸라는 권위에 대한 사회의 궁극적 원천으로서 종교를 과학으로 대체시킨, 오귀스트 콩트(August
Comte)의 더 열렬한 "실증주의" 추종자들이 기른 유령을 불러내고 있었다.
전문가와 달리, 지식인은 세계 전체를 자신의 판단을 위한 좋은 목표로 간주하면서 자신을 모든 부분
으로부터의 조사에 개방한다.
사실상 지식인들은 흔히(기꺼이) 입장들을 발전시키고 적용하기보다 옹호하고 공격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곤 한다.
네 가지 의미에서 전문성은 사회적으로 구성된다(사회구성주의를 보라).
수많은 갈등하는 지식 주장들과 그것들이 전제하는 배경 지식의 차이들은 각 주장을 그것 자체의 장점
으로 평가하는 것이 더 이상 합리적이지 않다는 점을 거의 확실히 의미할 것이다.
그런 환경에서 전문성(또는 인지적 권위주의)에 의한 지배는 언뜻 보기에 매력적인 것이 된다(지식사회를
보라).
불행하게도, 전문가 자문은 문제의 틀 자체가 문제의 일부인 상황에서 구해지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세계 빈곤의 문제 해결을 향한 첫 번째 단계는 빈곤이 어떤 종류의 문제―생생하게 서술하면,
누가(또는 무엇이) 비난받아야 하는가―인지 결정하는 것을 포함한다.
자유 전문직과 강단의 학문분과 사이의 전통적인 차이는, 전자가 사회적 적실성이 매끈한 과학적 해결
책들에 의해 충족되지 않는 더 골치 아픈 문제들을 다루지만, 오히려 현실 세계의 환경에서 이미 그런
판단들을 내린 경험에 의해 가장 잘 특징지워지는 재량적 판단들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결국 전문성에 대한 존중은 전문가가 자기 경험의 배경에 기대어 여러분의 문제를 모형화하는 것에
대한 승인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의뢰인이 자신의 필요보다 전문가의 능력이 더 잘 처리하는 문제에 대한 재집중을
수용하도록 설득당하는 인식적 유인 상술을 쉽사리 초래할 수 있다
(진리, 신뢰성, 그리고 지식의 목적을 보라).
전문성은 고객과 판매자 사이의 거래를 포함하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의사-환자와 정치가-유권자
관계들을 포함하는 것으로 대체로 파악된다.
지혜에 대한 두 가지 상보적인 의미가 함의된다.
한편으로는 그 일에 대한 올바른 고객을 선택하는 지혜로서 이것은 통찰의 문제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판매자가 그 일에 적합한 사람으로 스스로 표현하는 지혜로서 이것은 적정성의 문제이다. 두 의미 모두 시행착오를 포함하는데, 그 때문에 고객과 판매자는 서로의 능력, 욕망, 그리고 기대에 적응
한다.
고객들은 일반적으로 판매자 능력을 넘어서는 것들을 바라는데, 판매자들은 그것에 대응하여 고객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능력을 그들의 욕망의 더 나은 표현으로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잠재적으로 유동적인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그것이 정보에 입각한 동의(의학)로 정의되든 피지배자
들의 동의(정치)로 정의되든, 명시적인 책임 기준을 적용받을 필요가 있다.
동의에 대한 이런 필요성의 이면에는 고객들이 자신들을 위해 말하고 행동하도록 선택하는 판매자들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이 놓여 있다.
분석적 사회인식론과 과학기술학 둘 다에서 나타나는 신뢰와 증언에 대한 최근의 강조는 이런 책임 의식
을 가리는데, 전문가 무능력이 신뢰 붕괴의 견지에서 설명되기 때문이다.
사회의 노동 분업에 대한 인정이 자기를 대신하여 전문적인 과업을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권위를 전면적
으로 이전한다는 점을 함의하는 것처럼, 전문가 배반을 시사하는 이런 형식의 말은 고객들을 너무 쉽게
빠져나가게 한다.
이런 비난 전가의 터무니없는 결과(reductio ad absurdum)는, 미래 희망과 기대를 키우는 이른바 이력에
바탕을 둔, 끝없는 "위임의 연쇄"(브뤼노 라투르)와 "신뢰성의 순환"(피에르 부르디외)이다.(과학의 규범적 구조를 설명하기를 보라.)
고리가 파괴되거나 순환이 통제를 벗어나면, 비난이 결과의 공동 생산자들로서 영향 받은 당사자들에
걸쳐 똑같이 분배되는 경향이 있다.
전문성 관할권의 이런 경계 흐림은 전문성의 고객과 판매자 둘 다에 대해 책임성과 개선가능성을 사실
상 불가능하게 만드는 데에만 기여한다.
특히 판매자는 문제가 주로 자신의 전문성에 놓여 있는지 그것의 적용 맥락에 놓여 있는지 판별할 수 없다. 게다가 전문성이 앞에서 언급한 네 가지 의미에서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면, 책임성과 개선가능성에 할당된
가치는 상당히 낮은 것으로 판명될지도 모른다.
결국, 전문가란 고도로 제한된 지식 영역에 대한 통제권을 소유한 많은 사람들 가운데 일인이라고 상정
하면, 관련된 사유 과정들을 포함하는 그 지식의 내용은 그것이 수행하는 기능보다 논란이 훨씬 덜한
쟁점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원칙적으로 전문가는 일련의 질문들에 대해 일련의 해답들을 제시하도록 프로그램화되는
전산화된 전문가 체계로 대체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상황에서는 컴퓨터가 인간처럼 사유하지 않는다는 점은 이무 상관이 없다.
여기서 우리는 지식이 목적 자체로서가 아니라 수단으로서만 가치 있는 지식 경영의 세계로 들어간다.
물론 이런 지식관에 대한 모형은 산업적 노동인데, 그것은 점차적으로 동일하거나 비슷한 생산품을 더
효과적으로 제조할 수 있는 자동화된 기술로 대체되어 왔다.
전문성은 정의상 영역 특정적이기 때문에, 전문가들이 자신들의 지식을 그것의 현재 응용들을 넘어서는
솜씨 집합으로서 발전시키는 데 집중하는 집단적 정체성에 대한 강한 의식을 결여하고 있다면 전문성은
지식 경영에 취약하다.
중세 시대에 지식 생산자들의 집단적 정체성은, 구성원들의 생계를 확보할 필요성을 넘어서는 질 높은
공예를 재생산하도록 합법적으로 위임받은 길드에 의해 계발되었다.
학문분과와 자유 전문직은 도제 제도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전통적으로 위계적인 사회적 배치를
비롯하여 길드 심성의 많은 것을 유지한다.
그렇지만 전문성이 작업 조건보다 추상적인 원리들과 더 많이 관련됨에 따라 길드 심성은 강화하기가
더 어렵게 되었다.
이제 거의 틀림없이 모든 과학에 영향을 미치지만, 화학이 이런 운명을 겪은 최초의 과학이었을 것이다.
놀랍지 않게도, 지난 반세기 동안 과학자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해악을 끼치는 데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과학을 위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확립하려고 한 시도들이 반복적으로 실패했다.
"해악"을 정의하는 일반적인 어려운 점들을 넘어서서, 과학 활동가들은 그런 선서를 인가하고 그것의
위반에 대한 제재를 관리하는 도덕적 권위를 지닌 기관의 설립이라는 훨씬 더 기본적인 문제를 직면했다.
모든 훈련받은 과학자들과 현직 과학자들이 더 이상 예전처럼 공통적인 세계관을 공유하지는 않는다.
뚜렷한 한 선례는 이십 세기 중반에 영국인 물리학자 존 데스먼드 버날이 과학자들을 산업 프롤레타리
아트와 제휴시키기 위해 전개한 운동이다.
그 당시에 과학적 훈련은 노동자 계급 배경을 지닌 사람들을 위한 사회적인 신분 상승의 수단이 되어
있었지만, 그럼에도 과학과 사회의 점점 더 철저해지는 상호침투는 과학자들이 생산수단에 대한 공통의
관계―마르크스주의자들이 "계급 의식"이라고 부르는, 갱신된 판본의 길드 심성의 출현을 위한 한 가지
필요 조건―를 결여하고 있었다는 점을 의미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역사적으로 전문성의 자율을 특징지었던 길드 심성은 유례없이 매력적이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길드들은 보험기관들의 보수적인 성향을 획득하여 집행부의 승인을 받지 못하는 일탈적 실천행위들을
검열했다.
1870년대에 비스마르크는 탐구의 자유을 강단의 자유라는 길드적 권리로 바꿈으로써 독일 강단을 더
잘 관리할 수 있게 만들었다.
따라서 국가는 정치적으로 전복적인 입장들의 전파를 막기 위해 개입할 필요가 없었는데, 강단 자체가
이미 그렇게 할 집단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동료평가 과정의 상호 비판은 더 급진적인 입장들을 청소하고,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 정통적인
정치적 목적들에 적합할 만큼 충분히 질이 높다고 보증한다.
게다가 로버트 머튼의 "누적적 이득의 원리"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여전히 불리는 길드들의 위계적
특성은 과학에서 실행될 때 대체로 부패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부정적인 정서는 엘리트 과학자들에 의해 영속되는 사기보다 그 엘리트들이 보통 과학자들의 이해
관계와 떨어져 있다는 단순한 사실과 더 관계가 있다.
대부분의 회원들이 그것으로부터 혜택을 받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노벨 상 수상자들의 로비에도 불구
하고, 미국물리학회가 초전도 초대형 충돌기의 건설을 전심전력으로 승인할 수 없었던 1990년대 초에
이 점은 고통스럽게 명백해졌다.
그럼에도 자체 엘리트들을 억제하는 것 외에, 전문적인 과학 기관들이 자체 회원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가능한 한 많은 고용주들이 그들을 고용하도록 촉구하는 것에 불과하다.
더 읽을 책
R. Aron, Currents in Sociological Thought (1965).
D. Bell, The Coming of Post-Industrial Society (1973).
J. D. Bernal, The Social Function of Science (1939).
P. Bourdieu, "The Specificity of the Scientific Field and the Social Conditions of the Progress
of Reason" (1975).
H. M. Collins, Artificial Experts (1990).
H. M. Collins & M. Kusch, The Shape of Actions (1999).
G. Delanty, Challenging Knowledge (2001).
J. Franklin, The Science of Conjecture (2001).
S. Fuller, Knowledge Management Foundations (2002).
S. Fuller, The Intellectuals (2005).
A. Gouldner, The Future of Intellectuals and the Rise of the New Class (1979).
W. Keith, Democracy as Discussion (2007).
E. Krause, The Death of the Guilds (1996).
M. Kusch & P. Lipton (eds.), Studies in History and Philosophy of Sciences 33, special issue
on testimony (2002).
B. Latour & S. Woolgar, Laboratory Life (1986).
W. Lippmann, Public Opinion (1922).
R. K. Merton, The Sociology of Science (1977).
R. Sassower, Knowledge without Expertise (1993).
A. Schutz, "The Well-Informed Citizen" (1964).
H. Simon, The Science of the Artificial (1977).
S. P. Turner, The Social Theory of Practices (1994).
S. P. Turner, Brains/Practices/Relativism (2002).
S. P. Turner, Liberal Democracy 3.0 (2003).
번역: 김효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