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제 3부 정말 우리와 같은 인성을 갖고 계신가?
예수께서 정말 우리와 같은 인성, 아담이 범죄 한 후의 인성을 입으셨는가? 예수께서 정말 우리가 당하는 것과 같은 시험을 당하셨으며, 죄의 유혹을 받으셨는가? 정말 예수께서 우리처럼 슬픔과 고통을 느끼셨는가? 예수님의 인성을 연구하다 보면,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질문들이 머릿속에 떠오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얻을 것인가? 성경에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이 나와 있는가? 그렇다. 자, 이제부터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함께 연구해 보기로 하자.
1. 성경이 말하는 예수님의 인성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성경은 예수께서 입으셨던 인성이 우리와 같은 인성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우리와 얼마나 많은 점에서 같았는가?
"범사에"이다."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히 2:17)."범사에"라는 말은 영어로"in every way"인데, 이것은"모든 면에서"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신성을 거론하는 것 말고 인성에서 예수님은 우리와 같으셨다. 신이셨지만 우리와 같은 감정 - 슬픔, 기쁨, 고뇌, 행복 - 을 느끼시고, 또 우리와 똑같이 육체적인 상황 - 배고픔, 피곤함 - 을 가지셨다. 저명한 신학자 중, 특히 쿨만과 볼트만은"빌립보서 2장 5~8절"말씀에 대하여 동일한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쿨만"은 "종의 형체를 가져"라는 뜻에 대하여 그의 주석에 기록하기를,"종의 형체를 취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사람의 형체, 곧 인간의 타락으로 영향을 받은 한 사람의 형체를 취할 필요가 있었다."라고 했다.
빌립보서 2장 7절의"사람들과 같이 되었고"라는 성경 구절의 영어 표현은"in the likeness of men"이다. 여기서 사용된"likeness"의 원어는"Homoiomati"라는 뜻으로서, 겉모양만 똑같은 것이 아니라,"모든 것이 완벽하게 같다."라는 뜻이다. 이 의미가 바로"사람들과 같이 되셨다."라는 말의 뜻이다. 더욱이 그다음 구절"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가 강조하는 것처럼, 예수께서는 성육신 하심으로 완전한 인간의 상태를 받으셨다. 그리하여 본질적으로 하나님이신 분께서, 속죄사업을 이루시기 위하여 그의 부르심에 순종하심으로 인간의 육신이 되신 것이다. 이것이 예수께서 신의 형상과 하나님과의"동등성"을 버리고"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다."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곧, 예수께서 단순히 인간의 겉모습만 가지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모든 면에서 우리와 같은 인성을 가지신 것을 가리킨다. 예수께서는 인성을 쓰시고 우리에게 다가오시되, 우리와 같은 인성을 입으시고 우리에게 가까이 오셨던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겸손과 사랑인가!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성육신 하신 이유와 어떠한 육신을 취하셨는지를 이 성경 절보다 더 잘 설명하는 말씀은 없는 것 같다. 초기 신학자들은"죄 있는 육신의 모양"이라고 표현된 킹 제임스 성경 말씀을, 그리스도께서 성육신 하실 때의 가지셨던 예수의 육신에 대한 바울의 정의라고 자연스럽게 해석하고 그대로 믿었다. 그들은"모양"이라는 말을 빌립보서 2장 7절에 나타난 것과 정확하게 같은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 성경 절 중"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라는 구절을 영어로 살펴보면,"God sending his own Son in the likeness of sinful flesh"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likeness"의 원어도"Homoiomati"로서 빌립보서 2장 7절의 뜻과 같다. 그리고"육신에 죄를 정하사"라는 성경 절은,"죄 된 육체 속에서"즉, 타락한 육체의 유전자의 영향을 받으셨지만 죄 없는 삶을 사신 예수께서, 실제로"죄를 육신에 정하"(로마서 8:3)셨다는 뜻으로 해석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주지해야 할 사실은, 이 말씀이 그리스도께서 죄인이 되셨다는 의미도 아니며,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어떠한 인간의 죄에 참여하셨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주께서 진실로 천사들의 본성을 입지 않으시고
아브라함의 씨를 입으셨음이라."
성경의 히브리서만큼 예수님의 성육신에 대한 명쾌한 답을 주는 책은 없다. 히브리서를 깊이 연구하면, 이 문제에 대한 모든 의문과 질문이 눈 녹듯이 사라지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위의 성경 절은 더 이상의 해석이나 주석이 필요 없는 성경 절이다. 예수께서 이 땅에 인간으로 오셨을 때에 입으셨던 본성에 대해 이것보다 더 명확한 표현을 어디서 찾아보겠는가? 예수께서는 천사들의 본성, 즉 인간 이상의 어떤 신적인 본성을 취하신 것이 아니요, 아브라함의 씨, 즉 아담이 타락한 이후의 죄와 유전법칙의 영향을 받는, 우리와 같은 본성을 입고 나셨다고 히브리서 2장 7절은 정확하게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가지고 있었던 연약성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는가? 그것이 바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연약성이 아닌가? 그러므로 다윗의 조상과 후손들을 살펴보면,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셨던 그 혈통은 모든 인간적 연약성을 그분 안에 쌓이게 하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연약성이 역사 하는 인간의 성향 속에서도 죄를 짓지 않으시고, 우리와 같은 인성을 쓰시고도 우리의 모본이 되셔서 우리를 따라오라고 하시며 고난의 길을 앞서 걸어가신 예수님을 생각하면, 그 신비가 정말 놀랍고 눈물겹게 느껴지지 않는가?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롬 1:3).
"저를 잠깐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히 2:7).
이 문제를 이야기할 때, 많이 인용되는 다른 성경 절 중에 또 하나는 로마서 1장 3절이다. 이 성경 절은 그의 조상을 통하여 예수의 본성에 관한 정의를 내리고 있는데, 정확하게"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라고 언급하고 있다. 다윗의 혈통이라면 어떤 혈통인가? 신의 혈통인가, 아니면 인간의 혈통인가? 히브리서 2장 7절과 9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온다."저를 잠깐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깐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 구절 또한 예수님의 본성에 대해 명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여기 언급된, 천사보다 잠깐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죽음의 고난을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으로 관 쓰신 예수"의 본성은, 사망의 지배를 받고 있는 우리 인간들과 같은 본성이다. 그러므로 분명히 예수께서는 인간으로서 사망이 들어 온 후의 인성을 쓰셨고, 사망의 지배를 받기 전의 인성을 쓰시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망이 들어온 것은 오로지 죄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인간이 범죄한 후의 인성을 쓰셨다는 것이 증명된다.
또 히브리서 2장 10절에 보면"만물이 인하고 만물이 말미암은 자에게는, 많은 이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저희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라는 구절이 있다.
범죄 하기 전에는 인간은 고난을 당하는 일이 조금도 없었다. 그러므로 만일 예수께서 범죄 하기 전의 인성을 쓰고 오셨다면, 그런 인성과 방법으로는 인간의 고난을 결코 알 수 없었을 것이며, 그러므로 인간을 돕고 이해하며 동정하는 능력이 그렇게 넓게 미치지 못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사람들을 이끌고 영광에 들어가기 위해,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되셨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인간이 되셨을 때에, 고난 곧 죄의 삯인 죽음의 고난을 받고 있는 인성에 참여하신 것이 확실하다.
히브리서의 몇 성경 구절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형제"들의 인성의 본질을 강조하기 위하여 쓰였다. 예를 들면,"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히브리서 2:11)라는 구절과"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2:14)라는 말씀, 그리고"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2:17)는 말씀들이 그것이다.
또 다른 성경 절은"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브리서 4:15)라고 표현되어 있으며, 이 모든 성경 절들은 예수님과 인간이 한 혈통임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갈라디아서 4장 4, 5절에 바울이 선언한"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서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라는 말씀과 고린도후서 5장 21절"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라는 말씀들은 우리와 한 혈통을 가지신 예수님에 대해 증거하고 있다.
2. 예수님의 무한한 겸손과 치욕
아담이 범죄하기 전의 인성을 쓰시는 것도 그리스도 예수께는 무한한 치욕이 되었을 것이지만, 예수께서는 인간이 타락한 지 4,000여 년 후, 우리와 같은 인성을 쓰시고 성육신 해서 오심으로 우리와 한 형제가 되셨다. 곧, 인간의 타락한 영향과 인간의 유전 법칙의 영향과 인간의 연약성을 그대로 다 받으신 채 인간이 되어 오신 것이다. 주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우리의 형제가 되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우리와 같은 시험을 받으셨지만, 한 번도 범죄하지 않으신 성령이 충만한 생애를 사심으로 우리의 모본이 되신 것이다. 혹자는 예수님의 인성에 대하여 말하기를, 예수께서 인간의 모양만 가지셨다고 말한다. 만일 그렇다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을 때도 모양만 돌아가신 것인가? 고통의 모양만 있었고 고통을 전혀 느끼지 않으셨는가? 그런 사상은 도세티즘(Docetism)의 사상인데, 이것은 초대 기독교 당시의 한 사상으로서,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고통은 실제적인 것이 아니라 단지 형상적이었고, 부활하신 후에는 영적인 몸, 즉 실제적인 몸이 아니라 인간적인 모습만을 가지고 있었다는, 그때 당시 이설로서 취급되었던 교리이며 사상이다.
성경에는 죄 자체가 되신 예수께서 우리의 죄 때문에 겪으신 겟세마네와 갈바리의 십자가에서 겪으신 고통과 고난에 대하여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분께서는 속속들이 인간이 당해야 하는 죽음과 죄를 대신 지시는 고통을 당하셨고, 몸에 죄를 지셨다. 죄를 대신 진다는 뜻은 죄 자체가 되셨다는 뜻이다. 그 의미는 죄를 지었을 때 당하고 느끼는 죄책감, 그리고 죄를 지었을 때 느끼는 불행한 마음, 죄를 지었을 때 갖는 소망이 없어지는 마음, 죄지었을 때 은혜가 없이 완전히 정죄당하는 느낌이 드는 것을 말한다. 그분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정말 죄 자체가 되신 것이며, 정말 인간이 되셨다. 얼마나 놀라운 사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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