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실화✍️
잊을 수 없는 그 사건 <116화> 2005
10대 소년의 미친 사랑
‘네 뼛속까지 내꺼’ 온몸에 주먹 도장
영화 <완전한 사육>의 한 장면.
2005년 5월 중순. 서울 수서경찰서에는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한 소년이 조사를 받고 있었다. 한눈에도 앳되 보이는 이 노랑머리 소년의 이름은 박상혁 군(가명·16). 조사를 받으면서도 생글생글 웃고 있는 모습이 어찌나 해맑은지 소년이 신고 있는 흰 고무신과 수갑을 찬 손이 안쓰럽게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10대 중반의 나이에 불과한 박 군은 이미 특수절도 혐의 등으로 네 번이나 처벌을 받은 적이 있는 ‘문제아’였다.
박 군이 다섯 번째 경찰서로 잡혀온 이유는 놀랍게도 성폭력이었다. 박 군은 사귀던 미성년자 여자친구를 납치해 수십 차례 성폭행한 혐의로 체포되어 조사를 받고 있던 중이었다. 형사들은 “미성년자가 저지른 일이라 하기에는 죄질이 너무 나쁘다”며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박 군의 태도는 뻔뻔하면서도 당당하기까지 했다. 그는 형사들의 질문에도 태연하게 당시 상황을 진술했으며 피해자인 여자친구의 상태에 대해서는 무심한 반응을 보였다. 범행동기에 대해서 박 군은 “좋아해서 그랬다”며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시키려 했다. 이번에 김원배 경찰청 수사연구관이 전하는 사건은 10대 청소년의 왜곡된 사랑과 집착이 불러온 끔찍한 사건에 대한 얘기다.
사건은 2004년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격 차이로 갈등을 겪던 박 군의 부모는 그가 다섯 살이 채 되기 전 이혼했다. 집안 형편상 마땅히 돌봐줄 사람이 없었던 박 군은 결국 보육원으로 보내졌고 그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된다. 박 군의 보육원 생활은 평탄하지 못했고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성격이 비뚤어지기 시작했다. 여느 또래들과 다른 자신의 처지에 대해 박 군은 툭하면 불평을 늘어놓곤 했다. 학교생활도 순탄치 못했다. 자신을 향한 또래 친구들의 시선도 어린 박 군이 감당하기에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 때문인지 박 군은 보육원 규율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했다. 사고를 치기를 수차례 반복하던 박 군은 결국 중학교 1학년이 되기 전에 보육원을 뛰쳐나오고 만다. 그리고 마땅히 갈 곳이 없었던 박 군은 10대 초반의 나이부터 거리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거리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박 군이 갈 만한 곳이라고 해봤자 PC방과 찜질방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것도 돈이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미성년인 그가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간간이 전단지 돌리기나 호객행위 아르바이트를 해서 손에 쥐는 돈이라고 해봤자 푼 돈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당연히 수중에 돈이 있을리 없었다. 거리를 배회하던 중 박 군은 우연히 김송희 양(가명·14)을 알게 된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김 양 역시 박상혁과 별 다를 바 없는 처지였다. 역시 결손가정에서 자란 김 양은 이른 나이에 학업을 포기한 상태였다. 그녀는 중학교 1학년을 중퇴하고 미용기술을 배우고 있었다. 둘 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외롭게 성장한 터라 두 사람은 서로에게 급속히 빠져들었고 결국 연인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하지만 둘의 관계는 순탄치 못했다. 바로 박 군의 빈번한 폭행 때문이었다. 특히 정에 굶주려 있었던 박 군은 김 양에게 심한 집착을 보였다. 쓸데없는 의심과 무모한 집착은 시간이 지나면서 폭행으로 이어졌다. 더구나 평소 욱하는 성질이 있었던 박 군은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고 조금이라도 기분이 나쁘거나 마음에 안드는 일이 생길 때마다 김 양에게 화를 풀었다. 박 군의 폭행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어느 순간부터 박 군의 폭력은 도를 넘기 시작했다.
김 양이 달래고 사정해봤지만 그때뿐이었다. 하루가 멀게 행해지는 폭행에 김 양의 얼굴과 몸은 성한 날이 없었다. 결국 이를 견디다 못한 김 양은 박 군에게 이별을 선언하게 된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김송희의 이별선언은 박상혁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던 것 같다. 마음을 돌이키기 위해 박상혁은 김 양을 찾아갔으나 그의 행동에 질릴 대로 질렸던 그녀의 마음은 이미 차갑게 식은 상태였다.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김 양은 박 군을 만나주지 않았다. 박 군은 심한 허탈감을 느꼈고, 그것은 이내 분노로 바뀌었다. 오랜만에 정을 붙인 상대로부터 또다시 버림받았다고 생각한 박 군은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박상혁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김 양을 다시 붙잡겠다고 결심하게 되는데 문제는 그가 택한 방법이었다.”
박 군은 매일같이 여동생과 단둘이 살고 있는 김 양의 집으로 찾아갔다. 그리고 다짜고짜 행패를 부려댔다. 집안 살림을 때려 부수고 욕설을 내뱉는 것은 기본이었다. 심지어 박 군은 여동생이 보는 앞에서 김 양을 폭행하기도 했다. 매일 집안은 쑥대밭이 되기 일쑤였다. 결국 견디다 못한 김 양은 평소 알고 지내던 동네 오빠 한승수 군(가명·18)에게 도움을 청하기에 이른다.
5월 7일 밤 한 군은 김 양의 집에 와 있었다. 박 군이 찾아와 행패를 부릴 것을 두려워한 김 양의 요청에 의해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이날 새벽 1시경 박 군이 또다시 찾아왔다.
박 군은 평소와 다름없이 현관문을 발로 차고 난동을 부려댔다. 결국 한 군이 문을 열어줬고 박 군을 붙잡고 얘기를 하려했다. 하지만 김 양의 집에 와있는 한 군을 발견한 박 군은 눈이 뒤집히고 말았다. 한 군이 자초지종을 설명하려 했지만 그는 이미 이성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두 사람의 관계를 오해한 박 군은 김 양에 대한 배신감으로 치를 떨었다. 박 군은 “송희는 내 여자다. 두 번 다시 송희를 만나면 죽여 버리겠다”고 위협하면서 김 양이 보는 앞에서 한 군을 마구 폭행했다.
이후 박 군은 집안 집기를 부수는 등 한바탕 난리를 친 후 그날 새벽에야 돌아갔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다음날 오전 8시 30분경 박상혁은 다시 김송희의 집에 찾아왔다.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돌아간 지 겨우 몇 시간 지난 후였다. 그는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현관 앞에서 행패를 부려댔다. 겁에 질린 김 양이 문을 열어주지 않자 박상혁은 문 유리를 손으로 깨고 집안으로 쳐들어갔다. 유리를 깨는 과정에서 큰 상처를 입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박 군은 부엌에서 과도를 가져와서 ‘둘 다 죽여 버리겠다’고 난동을 피워댔다. 그리고 또다시 한 군과 김 양을 상대로 무차별 폭행을 했다. 박상혁을 말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김 양의 안면을 집중적으로 구타하던 박 군은 항거불능 상태로 반실신한 김 양을 밖으로 끌고 나갔다.”
그 후로 김 양은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무슨 일이 생길 것 같다고 판단한 한 군은 경찰에 신고했다. 납치 신고를 받은 수사팀은 즉시 박 군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특정 주거지가 없었던 박 군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박 군이 자주 가는 PC방과 찜질방 등을 위주로 잠복하던 수사팀은 사흘 후 박 군을 긴급체포하기에 이른다.
조사 결과 드러난 박 군의 행동은 10대 청소년이 한 짓으로 믿어지지 않을 만큼 잔인했다. 김 양을 납치한 박 군은 강동구 천호동 일대의 PC방 등지로 김 양을 끌고 다니며 폭행을 일삼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그는 불과 사흘 동안 무려 30여 차례에 걸쳐 김 양을 성폭행을 했던 것으로 밝혀져 수사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김 양의 상태가 정상일 리 없었다.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관계자는 “어찌나 심하게 때려댔는지 김 양의 얼굴은 사람의 몰골이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조사 결과 김 양이 박 군과 함께 있으면서 당한 피해는 상상을 초월했다. 박 군은 심지어 길거리에서도 김 양을 수시로 구타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유는 집착 때문이었다. 김 양에 대한 집착이 커질수록 박 군의 행동은 폭력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박 군의 협박에 겁을 먹은 김 양은 감히 신고할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특히 사건이 발생하기 얼마 전 박 군은 맹장수술로 김 양이 입원해있는 병실에까지 찾아가 괴롭혔던 것으로 드러났다. 호스를 꼽고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김 양에게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는 것.
더욱 충격적인 것은 박 군이 그간 여자친구인 김 양을 성적으로 학대해왔다는 사실이었다. 박 군이 한 행동은 열여섯 살 소년이 한 짓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도 엽기적이었다. 박 군은 경찰조사에서 “사흘 동안 28~30회 성폭행했다”고 태연히 진술했는데 그동안 박 군이 김 양에게 한 행동을 보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 조사결과 김 양은 그동안 박 군에게 비정상적이고 변태적인 성폭행을 수시로 당해왔다는 사실도 추가로 드러났다.
박 군은 김 양이 자신의 요구를 거부할 때마다 폭력을 휘둘렀고 김 양은 비정상적이고 무리한 성관계로 인해 혼절해 병원신세까지 진 적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로 김 양은 열네 살의 어린 나이였지만 비정상적인 성관계 때문에 자궁에도 이상이 생긴 상태였다.
김 양의 상태는 심각했다. 사흘 동안 박 군에게 끌려다녔던 김 양은 만신창이였지만 특히 정신적인 충격이 심했다. 김 양은 극도의 불안감을 호소하며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어댔다. 김 양의 상태만 봐도 그녀가 겪은 사흘간의 끔찍한 악몽을 짐작하기에 충분했다. 오죽하면 박 군의 이름만 들어도 소스라치게 놀라며 경기를 일으킬 정도였다는 것이 수사관계자들의 얘기였다. 김 양은 결국 정신과 치료가 불가피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왜 그랬냐?”는 질문에 대한 박 군의 대답은 어이없게도 “사랑해서요. 좋아하니까요”였다.
특히 박 군은 김 양에 대해 병적인 집착을 드러냈는데 이에 대해 수사팀은 오랫동안 정에 굶주려 있던 박 군의 뇌리속에 잘못된 이성관이 각인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자신의 여자친구를 한낱 소유물로 여기는 박 군의 태도에 수사팀원들은 혀를 찼다고 한다.
무모한 집착과 구속, 강압적인 성관계. 이것이 박 군이 생각한 남녀관계였다.
“내 것이니까 내 마음대로 했다. 그 애도 좋아했다”는 것이 박 군의 항변이었다. 정에 굶주려 있었던 박 군은 한 여성을 소유함으로써 일종의 희열감과 만족감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또 박 군의 머릿속에는 육체적인 관계를 통해서만 자신의 사랑을 확인하려하는 잘못된 성관념이 박혀 있었다. 하지만 김 양은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도움도 받지 못한 채 1년 6개월 동안 끔찍한 고통에 시달려야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 양이 겪은 악몽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잊히지 않을 거라는 것이 수사관계자들의 얘기였다.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