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로부터 茶를 가져와서 맛 본 영국인들은 그 맛에 매료 되었다.
이윽고 차는 영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는 습관은 영국에서 생겨났다.
영국에서의 홍차는 차에 우유와 설탕을 넣어 마시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습관은 영국인들 사이에서 오랜 전통을 갖고 있으며, 차의 맛을 부드럽게 만들어 준다. 대부분의 영국인은 차에 레몬을 거의 넣지 않으며, 레몬은 보통 다른 차나 음료에 사용된다.
특히 오후 3~4시에 애프터눈티(Afternoon Tea)가 유명하다. 이 시간에는 스콘, 샌드위치, 타르트, 초콜릿 등 다양한 간식과 함께 차를 즐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영국 내에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포함한 다른 나라의 호텔에서도 애프터눈티를 서비하는 경우가 많다.
차 마시는 시간에 따른 종류를 알아보면
1. Early tea(Bed tea)
아침에 잠자리에서 마시는 차로, 하루 중 유일하게 남편이 부인에게 차를 만들어 주는 시간입니다.
2. Breakfast tea
아침식사와 같이 마시는 차로, 홍차와 토스트, 달걀, 베이컨, 과일과 함께 즐깁니다.
3. Elevenses tea
오전 동안 바쁘게 일하는 도중에 잠시 쉬면서 마시는 차로, 오전 11경에 간단하게 15분 정도로 마십니다.
4. Middy tea break
오후에 간식을 먹으면서 마시는 차입니다.
5. Afternoon tea
오후 4시경에 부인들의 사교를 목적으로 마시는 차로 샌드위치, 스콘, 케이크 등을 준비하고 멋있게 자리를 마련합니다.
6. High tea(Meat tea)
원래는 영국의 노동자들이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오후 6시경에 고기나 샌드위치 등의 식사와 같이 마시는 차를 가리킵니다.
7. After dinner tea
저녁식사를 마치고 여유 있게 마시는 차로, 초콜릿 등 단 과자와 같이 마시며 위스키나 브랜디를 타서 마시기도 합니다.
8. Night tea
잠자리에 들기전에 마시는 차입니다.
영국의 이러한 차 문화에 획기적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우연하게 식민지 카리브해에서 가져 온 설탕을 차에 넣게 되고 영국인들은 설탕을 넣은 차 맛에 또 한번 빠지게 됩니다.
사탕수수 플렌테이션 농장이 만들어 지고, 노동력이 필요 했으나 원주민만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원주민은 이미 식민지 약탈 초창기에 천연두로 90프로 이상이 몰살을 당한 상태였다.
아메리카인들에는 천연두의 면역물질이 없었다.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에 따르면, 아메리카인들의 죽음의 원인은 총과 칼 보다도 천연두가 원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아프리카로부터 흑인을 납치해서 그들의 플렌테아션 농장에 노예로 파는 일이었다.
노예 무역은 삼각 무역이었다.
카리브해에서 설탕을 수입해서 영국에 팔고 그 배로 아프리카로 가서 노예를 싣고 카리브해로 가는 것이었다.
그 중에 일부는 중국으로 가서 차를 수입해 오기도 했다, 그러니까 사각 무역인 셈이었다.
그런 삼각 무역은 나중에 다시 한번 벌어졌다. 차의 소비량이 너무나 심하게 늘어나서 영국은 재정 적자에 시달렸고, 그것을 보전하기 위해 식민지 인도에서 재배하던 양귀비를 동남아 등지에서 가공하여 중국에 팔다가 벌어진 사건이 ‘아편전쟁’이었다.
아편 전쟁은 식민지가 되지 않고 유일하게 남아있던 중국과 한국을 유럽국과 유럽 제국주의를 흉내낸 일본의 마지막 식민지가 되는 결과를 낳았다.
노예 수입은 영국과 네덜란드의 동인도 서인도 회사의 국가 정책 사업이었다.
1526년부터 1867년까지 약 1,250만명의 아프리카인들이 노예로 아프리카를 떠났고 약 1,070만명이 아메리카에 도착했다. 아메리카 대륙 이외에도 다른 곳으로 팔려갔지만, 항해 도중 죽임을 당하거나 죽은 노예들이 많다.
18세기와 19세기에 걸쳐 자유와 평등이라는 계몽주의 사상이 대중의 담론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고, 이는 노예제 폐지 운동의 발단이 되었다.
이러한 운동은 특히 영국과 미국에서 강력하게 전개되었으며, 대서양 횡단 노예제와 노예제 그 자체를 폐지하고자 했다.
여론의 변화는 영국의 윌리엄 윌버포스나 미국의 프레드릭 더글라스와 같은 노예제 폐지론자들의 노력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807년 영국은 대서양 횡단 노예무역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최초의 유럽 강대국이 되었다. 1808년 미국도 이를 따랐다. 그러나 노예무역의 폐지가 노예제도를 즉시 폐지하지는 않았는데, 기존의 노예들이 계속 착취당하고 아메리카 대륙 내 노예무역이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윌버포스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영국 내의 모든 노예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노예 제도 완전 폐지 운동을 벌여 나갔다. 그리고 1833년 7월 26일, 의회는 대영 제국 내의 모든 노예들을 1년 안에 해방시킨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병상에 누워 있던 윌버포스는 이 소식을 들은 지 사흘 만에 눈을 감았다.
영국은 후손들 앞에 부끄럽지 않을 명예를 선물한 윌버포스의 공로를 높이 사 그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했다. 훗날 노예 제도 폐지를 위한 윌버포스의 길고도 숭고한 투쟁은 2008년 영화 〈어메이징 그레이스〉로 만들어졌다.
자본주의 형성과정은, 주식회사 동인도 서인도 회사가 주도한 차와 설탕의 약탈과 수입으로 시작해서, 결국에는 노예로 마무리 된다.
그것의 과실은 영국의 산업혁명을 낳았으며, 결과적으로 생겨난 프랑스의 부르조아들의 프랑스 혁명이 탄생되었다.
달콤한 설탕은 유럽인들에게 새로운 맛을 선사하며 자본주의를 만드는 촉매제 였다.
그러나, 지금의 현대인들은 설탕으로 인한 수많은 질병을 앓고 있다.
설탕의 저주는 아닌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