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포세이돈 어드벤쳐>,1972년 ]
1970년대 재난영화를 대표하는 이 영화는 폴 갈리코의 소설을 원작으로 1972년에 로널드 님 감독이 연출한 작품입니다. 원작 소설에서 기본적인 아이디어만 활용하였고 영화 내용은(사진, 주인공으로 분한 진 핵크먼)
원작과 많이 달랐기 때문에 님 감독은 시사회에 폴 갈리코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긴장을 했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원작자 폴 갈리코는 이 영화를 관람한 후 아주 만족해했다고 님 감독은 나중에 회고했습니다.
영화의 대부분 장면은 스튜디오에 세트를 설치하여 촬영했지만 현실감을 높히기 위해 선박에 대한 많은 장면을 롱비치 해안에 정박시킨 실제 호화 여객선인 '퀸 메리'호에서 촬영하였습니다. 거대한 파도가 덥쳐 배가 전복되는 장면은 7.5미터 크기의 '퀸 메리'호 모형이며 그 모형은 현재 박물관에 보관 중이라 하지요.
로널드 님이 감독을 맡고 작품을 구상할 초기에는 배를 전복시킬 계획이 없어다고 합니다.
그 당시엔 150명이나 타는 대형 선박이 그것도 화려한 연회장이 있는 호화 여객선이 뒤집히면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 몰랐었고 감독에겐 그걸 만들어가는 작업이 가장 어려운 과정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주인공인 진 해크만이 이 영화에 출연할 때가 <프렌치 커넥션(1971년)>으로 오스카상을 탄 직후여서 진 해크만이나 님 감독 모두 이 영화가 상대적으로 작품성이 떨어져 보이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결과는 대단히 만족스러웠습니다.
감독은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
주인공이 일행을 무사히 구하는 영웅적인 스토리 전달보다는 위기의 순간에 신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위기을 이겨나가야 한다는 다소 진보적인 종교적 메세지도 함께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스콧 목사(진 해크만 분)의 설교 내용이나 마지막에 스팀 밸브를 잠그며 소리치는 스콧의 절규는 이 영화의 메인 테마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를 빛낸 또 하나의 원동력은 바로 주제곡인 'The Morning After'인데 이 곡은 앨 카샤와 조얼 허시혼이 공동으로 작곡한 노래입니다. 촬영이 한창인 어느날 앨 카샤가 이 곡을 님 감독에게 선을 보였는데 가사가 부정적인 내용이어서 24시간 안에 희망적인 가사로 바꿔 오면 영화에 삽입하겠다고 돌려 보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시 만들어진 가사가 '아침이 가까이 오고 있어요. 희망의 빛을 기다려 봐요' 라는 내용으로 영화와 잘 어울리는 지금의 가사가 탄생하였다고 합니다. 이 곡은 영화 안에서 여가수 역활을 한 캐럴 린니가 연말 파티 장면에서 불렀는데 사실 그 목소리는 레니 알맨드라는 가수의 목소리로 더빙한 것입니다.
이 노래는 영화가 완성되기 전에 모린 맥거번이 취입하여 정식앨범을 내놓았지만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다가 영화의 흥행과 더불어 그해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수상했고, 1973년 8월달 빌보드 차트에서 2주간 1위에 오르며 많은 인기를 얻었기도 했습니다.
[ 문학적 측면에서 본 <포세이돈 어드벤쳐> ]
1910년에 침몰한 타이타닉호 사건을 연상시키는 재난영화 <포세이돈 어드벤쳐>는 선전효과와 항해기록을 올리려는 선주의 욕심으로 무리한 운항을 계속하다가 전복되는 초호화 여객선이 주무대가 되고 있습니다. <포세이돈 어드벤쳐>와 같은 할리우드에서 만드는 많은 재난영화들의 공통점은 재난이 일어나고 있는 장소를 하나의 소우주,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축소판으로서 제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재난영화에서는 비행기, 대형빌딩, 기선 등이 곧 인간세계의 무대가 된다는 점이죠.
<포세이돈 어드벤쳐>에서는 대형 여객선이 지구의 역할을 대신합니다. 거기에는 배(지구)를 운전하는 선장과 항해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선주(회사)의 상업주의에 밀려 결국엔 배를 전복시키고 승객들을 파멸로 이끕니다. 이 영화의 강력한 메타포(은유)는 바로 그와 같은
지도자들의 잘못과 세상의 전복입니다. 전복된 배에서 사람들은 살아 남기 위해 배의 밑바닥으로 내려갑니다. 그러나 배가 뒤집어진 상황에서 그것은 곧 위로 올라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 영화에서는 내려가는 것이 곧 올라가는 것이 되고, 올라가는 것은 곧 내려가는 것이 됩니다. 그것은 전도된 상황 하에서의 리얼리티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은유라고 할 수 있지요. 이 영화에서 전복되는 것은 비단 기선뿐만이 아닙니다. 세상(기선)이 전복되는 순간, 모든 가치관 역시 전도되는 것입니다.
예컨대 법과 질서의 상징인 전직 경찰관 어니스트 보그나인은 배가 전복되는 순간,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무법과 무질서의 화신으로 변신합니다.
반면 타락한 성직자로 낙인 찍혀 오지의 교회로 유배를 가던 진 해크만은 재난이 시작되는 순간, 오히려 위험을 무릅쓰고 사람들을 인도하다가 승객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희생하는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배가 전복되기 전,승무원들이 닥쳐오는 폭풍으로 인해 위기를 맞고 있을 때에도 승객들은 다가오는 재난을 조금도 알지 못한 채,화려한 신년 파티를 열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세상의 멸망을 조금도 알지 못한 채 오늘도 먹고 마시며 즐기는 인간들의 상태를 나타내 주는 훌륭한 메타포가 되지요.
이윽고 거대한 파도가 배를 덥쳐 순식간에 여객선은 아수라장이 되고 배는 거꾸로 뒤집히게 됩니다. 배가 전복됨에 따라 파티장의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도 구원이 사라진 현대의 상황을 나타내 주고 있는
상징으로서 거꾸로 서 있게 됩니다. 인생이란 결국 기나긴 항해이고,그 과정에서 수많은 파도와 좌초와 침몰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포세이돈 어드벤쳐>야 말로 인생을 은유적으로 다루고 있는 훌륭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영화 속에서 살아 남은 사람들은 물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사건들이 내내 물속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문학에서 흔히 물은 익사가 아니면 재생의 모티브로 사용됩니다. 이 영화에서도 죽는 사람과 다시 태어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시 태어나는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던 아집의 두터운 각질-즉 여객선의 두터운 철판-을 뚫고 밖으로 나와야만 합니다. 과연 적절하게도, 이 영화의 마지막은 두터운 철판-곧 배의 바닥이자 꼭대기-을 뚫는 장면을 위해 할애되고 있습니다.
진 해크만은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목숨을 바쳐, 자신이 이끌어온 사람들을 배의 바닥의 표면까지 데려다 줍니다. 그러므로 이 영화에서 자신의 희생 또는 자아의 포기는 곧 타인의 구원과 생명을 의미하게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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