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전에 아점 먹고 아들놈이 또 잔다.
별 말도 없는 놈이 인도 댕겨온 얘기를 자불자불하면서 천천히 음미하듯 밥을 먹고 말이다.
어제 공항에서 오면서 하는 말이 인도에서 아플 때 가장 먹고 싶은 게 된장찌개더란다.
그말을 들을 때부터 내색하진 않았지만 낼 아침에 해줘야지 맘 먹었다.
어제 지 조카 돌 덕분에 귀국상을 푸짐하게 받은 덕분에 지는 호식을 하여 좋고
난 굳이 기념비 삼을 만한 귀국 상차림하지 않아 좋고^^
그러면 아침엔 제대로 챙겨줘야 할 텐데
컴 앞에 앉은 내가 독수리타로 한 글자 올리려니 아침은 휑하니 날라가버렸다.
용케도 아들놈은 소리없이 자주니 미안하지 않고^^
내 배가 고파 안 되겠기에 일단 멸치물을 다신다.
겨우 멸치물만 다셔놓고 목에다 기브스해가며 아들놈을 꼬셔본다.
된장찌개 끓일 건데 지금 일어나서 밥 먹을 거냐고
ok싸인 받아놓고 감자를 찾아보니 하나도 없다.
모처럼 끓여주는 된장국인데 꼭 챙겨서 먹음직스럽게 만들 요량으로
감자를 사오려고 옷가지 챙겨입으며 눈꼽도 덜 뗀 아들놈한테 갖은 생색을 다 낸다.
엄마가, 이 무거운 엄마가 감히 너를 위하여 감자를 사러 <손수> 나가신다면서...
너무 이른가?
야채 아줌마가 아직 안 나오셨다.
몇 발짝 더 가야만이 슈퍼가 있는데...
잠시 10초 정도 망설이다가 되돌아온다.
오는 길에 우리꺼 옆집꺼 신문 집어들고 옆집부터 들러 신문 던져놓고
엄마는 출근하고 아들만 컴퓨터 게임하고 있는 그집 냉장고 뒤져서 감자 챙겨온다.
시어머니표 된장을 엷게 풀고서
자디 잔 감자, 내 것도 아닌 감자 인심좋게 다섯 개나 깍아 넣고
설 직거래 장터에서 산 충북 음성표 쇠고기도 기름기 싹 발라 얌전하게 썰어 넣고
없는 표고버섯은 건너뛰고 작은언니표 우렁에다 친정어머니표 새우를 넣고 한 소끔 끓여댄다.
갸들이 사이좋게 지 맛을 자랑하는 동안
설 선물 미리 받아 잘 손질해 놓은 굴비 3마리를 구이판에 올려 다이얼을 7분에다 맞추고
어제 동생 집에 들러 얻어온 울엄마도 누군지 모르는 그 어느 양반표 갓김치 썰어내고
작은언니 이웃 형님이 담가준 맛난 김장김치 썰어내고
다시 컴백하여 된장찌개에 마지막 손길을 가한다.
유통기한 <겨우> 이틀 지난 찌개용 두부 푸짐하게 썰고
빼들빼들 순이 마르는 양파망의 양파 7개 개운하게 손질하여 양파와 대파대용을 동시에 해결하고
옆집 친구가 정성스레 빻아 얼려준 마늘도 뚝 잘라넣고
뚜껑에 내 기를 모아 윙크도 얹어가매 아들놈한테 너스레를 떤다.
아들아 놀랄 일이다 겨우 이틀밖에 지나지 않은 두부로 된장찌개가 완성돼 간다 어서 오니라~~~~
시장을 볼 때는 언제나 이것도 해주고 저것도 해줄 양으로
덥석덥석 집어왔다가 유통기한 지나면 버리다가
그것도 익이 오르니 어느 때부턴 그냥 배째라 하고 먹기 시작한 우리집으로서는
이틀밖에 안 지난 상품은 그야말로 상품 중의 상품인 게다.
드디어 얼마만에 아들과 갖는 겸상인가?
오랜만에 깨끗한 보시기에 정성을 담아서 반찬을 내고
<지난번 부석사 앞에서 사온 토란대를 볶은 거(옆집 친구가 해줬음), 역시 단지님표 고추장으로 무친 시금치 >
찌개와 굴비, 김치를 곁들이자 제법 폼이 난다.
간도 보지 않고 국사발을 디밀었는데 한 숟갈 떠먹은 아들놈 가로왈
역시 이틀밖에 안 지난 두부로 끓인 거라 그런지 기가 맥히네. 진짜 맛있어.
나도 한번 떠먹어보니 환상적이더라~~~~~~~~~
인도 뒷애기 들려주며 아들은 된장찌개를 두 사발이나 먹었다.
난 참 훌륭한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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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놀가족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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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난 에미 노릇
덜깬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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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2.02 15:28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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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ㅋㅋ 읽고 보니 죄다 얻어다 맥여놓고서... 훌륭하긴 혀요..얻는것도 재주니께....다정한 모자간의 사랑 잘 읽었다오. 명절 잘 보내시고 함 봅시다요...
얻어다 먹는것두 , 복중에 복이라우... 여기 아르헨티나 에서는 이틀지난것은 최상급이유.. 훌륭한엄마 노릇하기도 쉬운일이 아니라우.
주인 아줌마도 없는 집에서 감자 훔쳐오기,다른사람의 솜씨로 맛난 내 음식 만들기..그 정성으로 봐도 당연히 찌개 맛은 짱이지..짱!!!덜깬주님,,너무너무 재미 있게 잘 읽었어요..,^_^
아들놈은 줄곧 된장찌개만 먹더라구요, 다른 국도 잇는데^^ 역시 훔쳐먹는 사과가 더 맛잇는 거지요?
가끔 내 옆지기를 보면서 여자들은 남자들 모르게 무슨 도깨비 방망이를 가지고 있는듯 하다고 칭찬을 합니다. 덜깬주님이야말로 정말 재주꾼이시네요 노래도 짱 유머도 짱 요리도 짱 그기다가 주량도 짱 ......대한민국 엄마들 짱짱짱
아들과 함께 가진 인도..이야기 잘 통하겠네요..
ㅎㅎㅎ..이렇게 맛있게 된장국 끓이는 글은 첨봐요~~ㅎㅎ...다른것 보다 된장국이 맛이 젤로 궁금합니다~~..ㅎㅎ
이번 강화답사에서 눈을 지그시 감고, 노래부르는 그대모습 무척 인상적이었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