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산책을 하다가 배꽃을 발견하고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벚꽃을 비롯하여 워낙 많은 꽃이 피는 때라 그것을 다 보자니 눈이 모자랄 지경이었는데요
그러나 배꽃( 梨花)은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이 아니어서 더 관심이 쏠렸습니다.
배꽃을 보니 내가 좋아하는 시조 한 수가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그 시조를 공유해볼까 합니다.
다정가 / 이조년(李兆年 : 1268~1342)
梨花에 月白하고 銀漢이 三更인제
一枝春心을 子規야 알랴마는
多情도 病인 양 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銀漢 : 은하수 三更 ( 밤 11시 ~ 새벽 1시 - 깊은 밤 )
子規 : 두견새
▶ 이 시조의 숨은 뜻은 작자 만이 알 수 있으나 나는 내 나름의 느낌을 아래와 같이 풀어 봅니다
하얀 배꽃에 달빛이 어리는 밤
배나무 가지에 걸린 봄의 마음을 두견새가 어찌 알까마는
( 봄의 마음 , 즉 작자의 마음을 두견새가 어찌 알겠느냐 마는)
정이 많은 것도 병인지 잠이 오지 않는구나
이 시조의 작자인 이조년은 고려 충렬왕·충선왕·충숙왕·충혜왕 4대에 걸쳐 왕을 보필한 고려의 문신이자
학자입니다. 자는 원로(元老), 호는 매운당(梅雲堂)으로 성품이 강직하여 왕에게 직언을 서슴치 않다가
유배까지 당한 것으로 전해지며 그가 지은 시조 다정가는 오늘날 전하는 고시조 가운데 자주 애송되는 것으로,
잠못 이루는 밤의 심정을 자연을 통해 표현한 절구(絶句)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 백과사전 인용 )
감상 소감
오늘날 전해지는 고시조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의 하나라는 평가는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만,
나 역시 이 시조를 너무나도 좋아하는 사람 중 한 사람으로서 이 시조에 대한 경외감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배꽃이 피는 봄이 오면 나도 모르게 이 시조를 흥얼거리게 되는데요, 넓지 못한 견문에도 불구하고
이 시조만큼 봄 , 특히 봄밤의 정서를 잘 표현한 작품도 드물 것으로 생각합니다.
눈을 감고 이 시조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정경이 있습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온도에 어디에선가 출처도
모르게 흘러오는 꽃향기 , 밝은 달빛을 하얗게 반사하는 배꽃,... 비록 목석 같은 사내라도 느낌이 올 수밖에
없는 봄밤의 서정을 고스란히 담은 시조가 바로 이 다정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릴 적 집 뒤에 과수원이 있엇는데 그 과수원에는 복숭아 사과 배 등의 과일 나무가 있었고 봄이면 그 나무에서
피는 꽃냄새로 어지러울 지경이었습니다. 모두들 짙은 향기를 뿜어내는 꽃들이었는데 내가 이 시조에 관심을
두게 된 것도 그 시절의 추억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며칠 전 나는 " 봄밤 " 이라는 시제로 글을 써서 詩사이트에 올렸는데요, 무슨 뜻인지는 모르지만 우수창작시로
선정되었습니다. 비록 졸문이지만 소개해 봅니다.
봄밤 /화암
매화 가지에 보름달 걸린 밤이면
조용히 눈을 감고
마음으로 밤의 향기와 만납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몸을 감싸는 온도와
얼굴을 스치는 향기가
자취도 없이 사라질 것 같아서
숨도 크게 쉴 수 없습니다
보름달이 매화에 걸려
침묵할 수밖에 없는 건
봄밤의 마술에 걸려
움직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매화 가지에 보름달 걸린 밤이면
조용히 눈을 감고
마음으로 밤의 향기와 만납니다
매화꽃 하얗게 열린 밤에요 .
첫댓글
우리가 알고 있는 고시조 중에
문학성과 서정성이 가장 뛰어난다는
고려시조 '이화에 월백하고'를 올려주셔서
화암님, 감사합니다.
인생의 마지막 시기를 기울어가는 나라를 지켜보면서
이조년은 왕조도 지위도 다 포기하고 낙향은 했어도,
고려에 대한 충정심을 버릴 수 없었는가 봅니다.
이조년의 망해가는 고려에 대한 애타는 충정을
자규에 빚대어 글을 썼는가 봅니다.
화암님의 '봄밤'이
우수 창작시로 선정됨을 축하드립니다.
'매화에 월백하고' 라 하고 읊어봅니다. ㅎ
습작을 자주 하셔서
보여주시면 감사하겠네요.
이조년의 나라에 대한 충정과는 별개의 글로 봅니다.;
고시조 중 봄에 대한 서정이 가장 뛰어나다는 점만 보고싶습니다.
이름 없는 필부의 눈에도 봄은 참으로 좋은 계절이지요.
다소 애상적이긴 하지만 봄밤의 아름다움을 이토록 곱게 노래한
시조도 드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되네요.
말미의 제 글은 그저 그러려니 ~ 하고 보아주세요 ㅎ 감사합니다.
달빛아래 배꽃은 참으로
청초하고 아름답지요.
보름달이 매화에 걸려 침묵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아마도
매화의 매력에 매료되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상상만으로도 행복한 모습이지요.
낮에 보아도 아름답습니다.
매화를 포함한 봄밤의 분위기와 느낌을
적은 글입니다.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봄밤 우수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화암님의 봄밤에 나오는 꽃은 이화 대신 매화로군요. 봄밤의 정취를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이조년의 시조는 저도 좋아하여 암송합니다.
수상이 아니라 우수 창작시 선정이니 큰 의미는 없습니다.
봄밤은 분위기만 비슷할 뿐 다른 글입니다. 이조년의 다정가는
배꽃이고 봄밤은 매화니까요.ㅎ. 감사합니다.
학창시절 교과서에 실린, 알려진 이화에 월백하고..
시험에도 자주나와 익숙하지요.
올리신 봄밤 시
이조년의 시와 어우러지는
봄의 서정이 느껴져 아주 좋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봄의 기운 많이 느끼시며
건강하세요.
워낙 유명한 시조라 학교에서도 교재로 쓰이지요.
봄밤은 습작으로 써본 글입니다. 시라고 할 것도 없지요.
한스님 감사합니다.
네에 자작시도 절창입니다.
사실 지극히 황홀한 풍경과 만나면
말문이 막히지요.
그 감정 흩어질세라 미동도 자제하고요.
이조년의 시조야 다른 은유가 있었다 하더라도
화암님의 시는 그냥 시심일 뿐이겠지요.
그런데 재미있는건
이조년이 5형제였다는데
이백년 이천년 이만년 이억년
그리고 이조년이었다지요.
그걸 흉내냈던지 제 친구는
이일철 이이철 이삼철 이사철
그리고 이오철인데
그 철이 뚫을 철자랍니다.
어머니 뱃속을 뚫고 나왔다는거죠.
맞습니다. 요즘이 바로 그런 시기가 아닐런지요.
제가 쓴 글도 바로 그런 의미를 담은 것입니다.
말문이 막혀 아무말도 할 수 없는 그런 경우 말이지요.
이조년의 5형제에 관한 내용을 저도 읽었습니다 ㅎ
친구분의 성함도 재미 있습니다.
형제가 많으면 그런 방식이 쉽겠습니다.
배꽃핀 깊은 봄밤에 달님과 ... 이때쯤 생각나는 이백 의 월하독작 도 생각납니다 *꽃나무아래서 친한이도없이 홀로술을 마시네
잔을들어 밝은달을 맞이하니 그림자를 대하여 세사람이 되었네 달은본래 술마실줄모르고
그림자는 나를따를분 ....
배꽃과 벗꽃과 벗하는좋은나날입니다
상상만으로도 낭만적인 분위기를 느깔수 있습니다.
튜립님 감사합니다.
마당에 작은 배나무가 두그루가
있는데 하얀 배꽃이 피었습니다.
이화에 월백하고..많이도 들어본
싯귀절과 자작하신 싯귀절에
비 그친날 달밤엔 꼭 배꽃을 봐야
겠다는 마음입니다.
달밤에 보는 배꽃은 각별하지요.
저도 어릴 때 우리집 과수원에서 많이 보았습니다.
어설픈 감성이었지만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감성이 풍부한 깜장콩님
그 시절의 아릅답던 추억을 잊지 못하고 계시네요.
아마도 그 추억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배꽃이 피는 계절입니다.
흔하디 흔한 벚꽃과는 달리 정갈하고 고아한 멋이 있는 꽃이지요.
세월이 흘러 친구들은 하나 둘 떠나도
우리는 아직 여기에 남아있기에 아름다운 것들을 보며
행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