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봉감리교회.
제가 속초에서 일 할 때 섬겼던 교회입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오봉리에 있습니다. 야산만 넘으면 송지호 해수욕장이 넓게 펼쳐져있는 그림같은 동네입니다. 그러나 '~~면, ~~리'로 끝나는 어감이 주듯 이 교회는 시골교회입니다. 속초에서 30분은 가야 있는 교회. 비포장을 건너 동네 언덕까지 오르면 있는 교회. 30명 앉으면 꽉찰까 비좁기만 한 교회, 성가대도 없고, 근엄한 장로님 기도도 없는 이 초라하기만 교회. 그런데 전 이 교회에서 '진짜 교회'의 모본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오봉교회는 주일 아침 10시 30분에 예배를 드립니다. 1부 예배도 2부 예배도 없습니다. 아동부도 중고등부도 없습니다. 그저 애어른할 것 없이 한 자리에 모입니다. 녹슨 비녀를 꼽은 할머니부터 이제 갓난 아이까지, 중간에는 새치머리가 허연 아저씨들,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소녀까지 각양각색, 각계각층이 예배당 안으로 들어옵니다.
교인 중 한 분이 선창하는 찬송가로 조율이 엉망한 피아노 반주에 맞춰 찬송할라치면 차라리 '개구리들의 합창'이라고 말해도 무리가 아닐 정도 입니다. 그렇게 준비 찬송이 끝나면 담임목사 장석근 목사님이 강단에 오르셔서 예배를 드립니다. 예배는 그런데 참 특이합니다. 동네 처녀 선 본 이야기, 할머니 병원에 입원하신 이야기, 꼬마애 돌잔치 때 돈을 짚은 일 등등 사람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그러면서 한 주간을 따뜻하게 묶어주신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분위기가 조성됩니다. 설교도 10분 정도. 작위적인 거룩함도, 상명하달식 권위주의도 이 예배에서는 절대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배는 그렇게 할머니서부터 어린 꼬마 아이까지 한 공동체로 묶어주는 고리였습니다. 관람객이 없는 예배, 정말 신선했습니다.
그리고 주보도 참 특이합니다. 목사님이 직접 만드신 주보인데, 주보 첫 면에는 '당연히' 있어야 할 교회 사진은 없고, 꽃 이야기, 향기 이야기, 양 이야기가 간결하게 그림과 더불어 실려있고, 거기에 빨간 사인펜, 노란 사인펜을 이용해 가볍게 덧칠을 합니다. 내용도 한주간 성도들이 살아온 이야기, 아픈 사연, 좋은 사연, 재미있는 일들까지 세세히 적힙니다. 교인수 30~40명 아니면 만들 수 없는 아주 독특한 주보였습니다.
예배가 끝납니다. 그러면 목사관 사택으로 교인들이 모입니다. 그리고 떡국이나 국수, 또는 고기 요리 등으로 점심을 나눕니다. 목사님의 간단한 기도가 끝나면 신세대와 기성세대가 한 밥상 공동체에 모여, 인생정담,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눕니다. 처음 온 사람도 어색하거나 소외감 느끼지 않을 정도로 이 공동체의 자리는 넓습니다.
끝나고 교회 앞 마당에 만든 벤치에서 신도들끼리 갖는 '시골식 커피'타임을 갖는 기분 또한 끝내줍니다. 태백준령에서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을 맞으며, 목사님과 함께 따뜻하지만 예리하게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헤집습니다. 목사님은 환경운동연합 속초-고성-양양 대표로, 이미 지역 사회에서 큰 역할을 하는 분들입니다. 나중에 안 사실은, 오봉교회 신도들은 오봉리 주민 말고도 속초지역에서 시민 사회단체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세상 속에 빛과 소금이 되는 교회, 오봉교회는 작지만, 지역 사회를 움직이는 큰 축이었습니다.
공동체를 구현하고, 사회구원의 역할을 담당하는 목회.
사실 이런 '혁명적 목회'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 이유는 장 목사님이 20년 가까이 이 오봉리에서 사역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두 달이 아니라 20년이라는 사실입니다. 풍파많은 그 세월이 누적되어오는 동안, 자녀 교육을 위해 도회지로 나가고 싶은 욕망이 장 목사님에게 없었을까요? 번듯한 교회당에서 '나 이 교회 목사요'라며 얼굴값하고 싶은 본능적 명예욕구가 과연 장 목사님을 괴롭히지 않았을까요. 세속적 기득권을 누리며, 떵떵거리고 싶었던 기대가 없었을까요. 몸과 마음이 가난한 촌사람들 사이에서 의식 있는 젊은 목사님이 감내했을 그 좌절과 번민, 그리고 탈출하고 싶은 욕망. 모르긴 해도 처절하리 만치 목사님의 삶을 괴롭혔던 제목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봉리는 평안했습니다. 감리교회는 과거, 시골 미자립 교회 목회를 해야 목사 안수를 주는게 관행처럼 돼 있습니다만, 목사님은 부임 이후 안수를 받고 나서도 변함없이 20년가까이 오봉 강단을 지켜오고 있습니다. 그가 욕망으로부터 딛고 일어설 수 있었던 데에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의 의지가 있었을 것 같았습니다. 그것이 뭐였을까요? 저는 감히 하나님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봉교회 앞마당에는 넓은 밭이 있습니다. 이 밭에서 자라는 고구마와 고추, 감자, 깻잎 등은 신도들이 심은 것도 있지만, 사실 씨뿌리고, 거름주고, 기른 분은 장 목사님과 사모님입니다. 그놈들 생김새를 봐서는 밖에서 팔린다면 1등품으로 손꼽힐 만큼 최고급 작물들입니다. 그러나 주일이 되면 신도들이 와서 따갑니다. 물론 공짜로 말입니다. 목사님은 "왜 그것만 따가냐"며 타박입니다. 주는게 기쁜 사람, 이 엉성한 계산법을 가진 사람이 바로 오봉교회 장 목사님입니다.
오봉교회를 떠난 지 4개월이 지났습니다. 지금은 우수수하게 낙옆이 오봉교회 앞마당을 덮었을텐데... 우리 장 목사님이 그립고, 늘 식당에서 밥하는 모습으로만 뵀던, 그러나 참 위대해 보이던 사모님이 그립습니다. 그리고 시골에서 사춘기를 맞는 장 목사님의 큰 아들, 그 얼굴에 구김살이 전혀 없던 밝은 인상이 그립습니다.
오봉교회는 목회자가 아들에게 목회 세습을 할만큼 으리으리한 교회도 아니고, 불법 상속이나 담임목사가 다른 기행(欺行)을 할만큼 부요한 재산을 담은 금고도 없습니다. 가진 것이라고는 밭에 널려있는 고추나 감자, 고구마 밖에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봉교회가 위대해보이고, 오봉교회를 섬기는 이들의 발길과 가슴이 참 값나 보입니다.
종교개혁일이 다가옵니다. 새삼 종교개혁의 본의를 생각하게 되는데요, 종교개혁은 때리고 부수는 방법을 써서 기득권을 교체하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종교개혁은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선교가 되고, 그것이 신앙고백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규모는 작지만 도회지 교회의 온갖 모순과 다툼에 휘둘리지 않고 오늘도 내일도 묵묵히 경건한 믿음의 방주 역할을 할 오봉교회. 그 소리없는 공동체의 본을 보며, 한국교회의 내일와 근본을 생각합니다. 주변이 정리되는대로 다시 오봉교회를 다녀올 생각입니다.
-----------------------------------------------------
글/김용민, 전 극동방송PD. 자신의 홈페이지에 스포츠투데이 비판의 글을 올린것이 화근이 되어,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낼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까지 내몰렸다. 현재 방송계 프리랜서 활동중.
첫댓글 마음이 따뜻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