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발 같은 내 머리 슬프기도 하지요. 앞도 삐뚤 옆도 푸석 슬프기도 하지요." 머리를 손질하다가 말고 흥얼거리는 내 노래를 듣고 딸이 깔깔 웃는다. "엄마는 어째 그리 맞는 말씀만 하 실까. 키득키득. 아프리카 원 주민 같은 머리, 아니 폭탄 맞은 머리라고 표현해야 더 어울릴 거 같은 머리를 이고 날마다 끓이는 어미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 딸은 자기가 하고 싶었던 노래였다는 듯이 박수를 치며 웃는다. 복장한번 질러 보자는 속셈은 아닐 테고 확실히 머리 스타이일이 이상하긴 한가 보다.
가발 같은 파마를 하고 오던 날, 내게 말하던 남편의 말을 주의해서 들어야 했는데....
워낙 내 머리 스타일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는 터라 "당신 머리해준 그 미장원 밥 먹고 살어?" 이런 자존심 땅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도 그러려니 귀담아 듣지 않았는데
갈수록 내 마음에 들지 않고 머리 감을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을 만큼 얄궂은 머리가 되어 간다. 만지면 머리 결도 푸석 하고 모양새도 우습다. 감고 드라이기로 말리기만 하면 원하는 스타일이 딱 나와야 하는데 이건 출근할 때마다 주물럭 거리느라 시간은 늘 바쁘고 집나 설 때 마음은 영 찜찜하다.
나는 생 단발머리를 오랜 세월 동안하고 다녔다. 그것에 익숙하고 편해서 늘 그 모습을 고집하는데 , 수년 동안 같은 스타일로 다니는 나를 보고 주위 사람들은 여러 가지 말로 변화를 촉구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선배님 따라 미용실 갔다가 그만 단발머리를 영 잃어버리고 말았다. 미용실 주인인 듯한 여자가 "아이 구 임자 만났심더, 내가마 사모님한테 딱 어울리는 머리 해드릴테니 걱정 마이소. 사모님은 이,목,구,비가 뚜렷해서 스타일만 바뀌면 억수로 이쁘다 아임니꺼. 머리 마음에 안 들면 돈 안받심더." 걸걸한 목소리로 내 의견일랑 아랑곳없이 그냥 자르고 복아 댄다. 선배님이랑 그 주인 여자가 사전 모의를 한 거 같다.
사실은 너무 오랜 세월 동안 같은 스타일만 하고 다녀서 내 스스로 변화하는 것이 두려웠다. 커트를 하면 내게 어울릴까. 파마를 하면 거추장스럽지나 않을까. 몇 번 시도를 했다가 그냥 주저앉았는지는 나 밖에 모른다. 그동안 나를 못살게 하던 친구의 성화도 무시한 채 나의 굴레 속에서 별로 마음에도 없는 모습을 하고 오랜 세월도 살았다.
그런 나를 눈치챘는지 선배님은 작전을 쓴 것이다. 미용실 가는 것이 따분한 것임을 인정하므로 동행 해 달라는 요청을 거절하지 않았던 것이다.
미용사의 마지막 손질이 날렵하다. 혹시라도 이상한 모습이 되어 있지나 않을까 가슴 두근거림으로 거울을 주시하다가 그만 또 다른 내 모습에 놀라고 말았다만, 아직 적응이 안된 상태이므로 내 자신에 대해서는 기분 좋을 만큼 변화 된 모습이 "좋다" 는 표현 밖에 할 수 없다. 그런데 바라보는 사람들의 극찬하는 말들에는 은근히 기분 좋다.
그 좋던 것도 잠시
" 무슨 머리가 그렇노, 니는 그게 이쁘다고 생각하나?" 정떨어지는 목소리
"다들 멋지다고 하던데 뭘"
"그럼 니한테 대 놓고 못 났다 하겠나 꿈깨라 꿈"
남편의 빈정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침묵하려고 애쓴다. 내가 봐도 나한테 썩 잘 어울리고 괞찬은데 남편은 왜 저럴까.
사람들이 칭찬하면 돌아와서 못났다고 더 구박하고 무슨 심상인지 모르겠다. 남편의 그 묘한 표정을 다른 사람은 읽었을까
나와 비슷한 친구 하나가 있다. 그 친구는 긴 단발머리에 웨이브가 약간 들어간 청순하고도 순수한 스타일이다. 그녀도 나처럼 오랫동안 같은 모습을 하며 변화하는 시대에 변화를 모르고 사는 사람이다. 자연스럽고 편안하지만 그래도 머리 모양을 한번 바꿔봐야겠다고 말을 하기는 했다. 그러나 그 선배님 따라 그 미용실 갈 줄은 몰랐다.
내가 했던 그 모습 데로 친구가 머리를 하고 왔다. 내 친구지만 그렇게 매력있는 여인인줄은 몰랐다. 늘 수수하게 변화 없이 있어서 자신의 윤곽이 묻혀 있었는데 새로운 이미지의 친구는 한마디로 섹시하고 40대의 원숙 미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말이다. 참으로 희안한 것은 내 남편이 짓던 묘한 표정을 친구 남편의 얼굴에서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도 우스워 친구에게 슬쩍 넘겨 집기를 해봤다.
"신랑이 억수로 좋아하제?" 뻔히 나올 대답을 기대 하면서
친구 왈 "좋아하는 게 어디 있노, 무슨 머리가 아줌마처럼 그러냐." 하더란다.
나처럼 평소에 면박을 자주 맞는 것도 아니고, 다혈질이 아닌 담즙질의 신사로서
마누라가 좋아하는 것은 자기가 싫어도 내색 않고 모든 것을 아내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남편이라 친구는 더 적응이 안 되는 모양이다.
다른 사람들 다 좋다는데 당신만 왜 그러냐고 하니, "그럼 당신 앞에서 보기 싫다 하겠나?" 하더란다. 친구의 머리 때문에 부부가 분주한 광경을 나는 남편과 함께 보았다.
자신의 말을 앵무새가 따라하듯 하는 소리를 들으며 남편은 무안한지 헛기침을 하며 웃는다
친구가 내 귀에 살 짝 말한다.
"아무래도 질투하는 거 같아" 남자들이란 왜 저러 실까.
돌아오는 차안에서 남편에게 물어 봤다." 훈심이 진짜 이쁘제?"
절래절래 머리를 흔드는 남편 " 깍쟁이 같은데 이쁘긴 뭐가 이쁘노. "
그러면서 하는 소리" 남자들은 마누라가 한꺼번에 변신하면 헷갈린다 아이가, 장로님 적응하려면 한참 걸릴끼다."
본색이 드러나는 말이다. 마누라 이쁜 꼴을 못 본다는 거 구만.
20년 넘게 살아도 마누라 머리 잘했다고 칭찬 한 적 없는 남편이다.
"여우같다. 알 밤 같다. 양배추 같다. 깍쟁이 같다."
남편은 긴 머리가 좋다 하지만, 머리카락이 칼라에 대이면 지저분해서 내가 싫은데 어쩌랴.
그리고 긴 머리는 20대 에 찰랑거리며 다녀야 예쁘지 40넘은 나이에 긴 머리는 무슨.
파마를 풀어 버리고 새로 하고 싶지만 상해 있는 머리카락을 생각하니 그렇게 할 수도 없고, 남편이 하도 빈정대는 바람에 동네 아무 곳에 가서 파마를 했더니 국적 없는 머리가 되고 말았다.
아무래도 한 달은 더 있어야 어떤 조치를 치할 수 있을 텐데.
아~
내머리는 아무리 봐도 가발 같다.
"가발 같은 내 머리 슬프기도 하지요. 앞도 삐뚤 옆도 푸석 슬프기도 하지요."
첫댓글담즙질..ㅋㅋ 아내들은 남편의 한 마디가 천국이요, 지옥이지요.ㅎㅎ 궁금한데, 사진 한 장 올리시죠! ^^ 제 생각엔 그냥 용기있게 얼굴 빳빳이 들고 다니시는 것도 좋을 듯.. 예뻐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팍 깨부수고 말예요.ㅎㅎ 요새 왁스 잘 나왔든데, 듬뿍 바르는 센스! 파마값 아까우니까요. 어쨌든 즐거웠슴다. ^^
첫댓글 담즙질..ㅋㅋ 아내들은 남편의 한 마디가 천국이요, 지옥이지요.ㅎㅎ 궁금한데, 사진 한 장 올리시죠! ^^ 제 생각엔 그냥 용기있게 얼굴 빳빳이 들고 다니시는 것도 좋을 듯.. 예뻐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팍 깨부수고 말예요.ㅎㅎ 요새 왁스 잘 나왔든데, 듬뿍 바르는 센스! 파마값 아까우니까요. 어쨌든 즐거웠슴다. ^^
생머리를 오랫동안 보수하셨다니 아무래도 적응하기가 참 힘들거에요 얼굴이 달라져 보일테니까요. 하지만 자꾸 손질하다보면 머리모양새도 갖춰지고 오히려 더 편하기도 해요. 근데고영예님!~ 정말이지 수필을 재미있게 쓰셨어요 자꾸만 궁굼해지니 우짭니까??? 글도 정말이지 멋지게 잘쓰시고요....
송문희님, 꽃향기님 찾아 주셔서 감사 드려요. 짧은 글에 용기도 주시고 위로도 해주시고...덕분에 자꾸 글쓰고 싶어 지는데 우짜면 좋습니꺼....ㅎㅎㅎ ....오늘은 딸래미가 사주는 머리칼 부드러워지는 팩이라는 흉칙한것을 발랐더니 조금 나아진거 같습니다...자주 들려주셔요.감사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