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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파티마에게 본토를 내쫗기고 유럽에서 권토중래하는 콥틱 자그웨 왕조의 일대기를 플레이하고 순조롭게
마무리 했습니다. 뭐 결국 아비시니아를 탈환하진 못했지만 대신 같은 자그웨 가문의 하레르 공작의 독립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고향을 빼앗긴 설움을 달래는 훈훈한 플레이였습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플레이할 컨셉을 고민하던 중에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의
주연이었던 예루살렘 왕국을 배경으로 한 플레이였습니다. 영화에서 묘사되기는 했지만 당시 예루살렘 왕국은
나병환자였던 보두앵 4세가 왕위에 있으며 후손을 보지 못하고 왕위기 누이였던 시빌라 왕녀의 아들 보두앵 5세에게
넘어갑니다. 그러나 보두앵 5세의 요절로 왕위는 다시 시빌라 왕녀에게 넘어가고 시빌라 왕녀의 남편인 기 드 뤼지냥이
벌인 살라딘과의 전쟁 덕분에 망국의 길로 접어들게 되죠.
물론 영화에서 그려지는 모습과 실제 역사는 상당히 다르기는 합니다만... 일단은 그런 점을 배제하고 무슬림의 바다에서
생존해오던 에루살렘의 봉신으로서 왕국을 지켜내고 왕가의 번영을 위해 일하는 눈물겨운 충신 가문의 일대기가 마침
제 가슴속에 낭만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슬슬 준비하고 있는 신작 연재의 배경도 그 근처인지라 미리 지형 답사도
할 생각으로 컨셉을 잡고 플레이를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때는 제가 그런 황당한 상황에 처하리라고는 생각조차 할수 없었습니다.
일단 시기는 보두앵 4세가 왕위에 오른지 얼마 안되는 시점으로 잡았습니다. 역사대로 보두앵 4세는 몸이 안좋아 생식률이
상당히 낮은 상태였고, 시빌라 왕녀는 아스카론의 공작으로 예루살렘 왕국의 남부를 통치하고 있더군요. 그래서 저는 일단
왕국의 흥망을 결정지은 가장 결정적인 요인을 시빌라와 기 드 뤼지냥의 결혼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의 플레이
캐릭터는 브엘세바의 백작인 디블랭 일족으로 시작하였습니다. 브엘세바는 아스카론 소속으로 시빌라 왕녀는 즉, 저의
주군이 되는거죠. 시빌라의 봉신으로서 이래저래 충언과 충성스러운 행동을 다해 왕국을 제대로 이끌어보겠다는 포부로
첫 플레이를 시작하였습니다.
일단 첫번째 타겟은 바로 씹어먹을 예루살렘 왕국을 망하게 만든 주범! 기 드 뤼지냥을 조지는 거였습니다. 뤼지냥 일족을
뒤져보니 마침 빈둥빈둥 놀고 있길래 오라고 꼬셨죠. 단번에 봉신으로 들어오더군요. 이제 이걸 구워먹을까? 삶아먹을까
고민하기는 했지만 암살하려니 돈이 모자라고, 가두고 처형하자니 주변 시선이 의식되서... 일단은 이 망할 자식이 왕녀님을
꼬시는 사태를 막기 위해 결혼을 시켜버렸습니다. 그것도 조카와 모계결혼으로요! 일단 이것으로 네 놈이 뤼지냥의 핏줄을
잇거나 시빌라 왕녀를 꼬실 일은 없겠지? 큭큭큭... 하고 있는데... 이 녀석 반응이...
기 : 우왕! 봉신으로 받아주신것도 감사한데 일족으로 넣어주시다니...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디블랭 : ??????
의외로... 별 사고 안치고 순순히 말을 잘 듣더라구요. 그리고 마침 시빌라 왕녀가 파티를 열길래 방문했습니다만...
시빌라 : 저 미남자는 누구인가요?
디블랭 : 주군, 이번에 저의 가신으로 들어와 일족과 결혼한 기라고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유부남입니다.
시빌라 : 왜 그렇게 유부남을 강조를?
디블랭 : 유부남! 그것도 우리 일족의 모계결혼한 유부남입니다. 잊지 마세요! 유우부우나암!!!
물론 이건 구현화되는 이벤트가 아니라 제 망상속의 한장면... 아무튼, 역사를 뒤바꾼 시빌라와 기의 결합을 이렇게
제 손으로 막아내었고... 거기다 경사가 생겼습니다. 자식을 볼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보두앵 4세가 아들을 본겁니다.
할렐루야! 그것도 비잔틴 제국의 공주님과의 사이에서요~~~ 이제 동맹도 굳건해지고 예루살렘 왕국의 미래는 탄탄대로구나
라고 여겼습니다. 그말대로 예루살렘 왕국은 살라딘의 공격을 이래저래 막아내고, 장기 왕조의 영토를 일부 빼앗기도 하고
안티오크 왕국에 원군을 파병하기도 하면서 세력을 굳건하게 세워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교황의 안달루시아 십자군 선언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 전쟁에 적극 참전을 주장했습니다.
보두앵 : 저 머나먼 스페인에 병력을 파견하는 것은 위험하지 않겠는가?
디블랭 : 구호기사단과 성전기사단을 위주로 편성하면 됩니다. 잘만하면 예루살렘을 근거지로 한 본토 외에 유럽에 더
가까운 곳에 새로운 근거지를 만들수도 있습니다.
보두앵 : 흠... 누이는 이번 참전에 별 반응이 없어서 좀 아쉽군. 이번에 재혼한 낮은 신분의 아스카론 수비대장이 무력이
출중하여 동행해주면 좋았으련만... 자네라도 아스카론을 대표하여 나와준다니 고맙군.
뭐 이것도 제 망상 이벤트이긴 합니다만 어찌되었던 저와 보두앵 국왕은 병력을 몰고 적극 안달루시아에 참전하여 상당히
높은 승수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이대로라면 보두앵 전하가 안달루시아의 왕위를 차지하는 것도 꿈은 아닐듯 보였습니다.
디블랭 : 좋아, 아르만사도 우리 손에 들어온다. 응? 저건 뭐지? 우리에게 달려드는 적군이... 어서 국왕군에 지원을
요청해라.
기 : 주군... 저건 적군이 아닙니다. 저건... 국왕군입니다.
디블랭 : 뭐라고? 어째서 국왕폐하가 우리를 공격하는거냐?
보두앵 : 디블랭! 아스카론이 반란을 일으켰다. 왕국군을 이곳으로 몰고온 것은 네놈의 게략이렸다.
디블랭 : 뭐라고요? 시빌라 주군께서? 폐하 오해이십니다. 부디 진정을...
시빌라 왕녀는 화끈하게 왕위를 노리고 왕국에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 선봉에 섰던것은 얼마전에 결혼한 낮은 신분
출신의 무력 27까지 굇수 대장군... 그리고 덕분에... 아르만사에서 공성전을 하고 있던 저의 군대는 현장에서 그대로
국왕군과 맞붙어 전멸해버렸습니다.
반란은 제 손을 떠나버렸습니다. 어차피 군대도 소멸되고 돈도 없어 이렇다할 정치적 입장을 세워보지도 못하고
허탈하게 본국으로 귀환하였습니다. 이 와중에 점입가경으로... 국왕폐하는 우리랑 맞붙은 덕분에 병력이 줄어들고 연이어
들이닥친 알모하드의 군대에 박살나고 사망... 어영부영 내전이 끝나버리고 왕위는 보두앵 4세의 장남인 아직 어린
아모리 1세에게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장기 왕조의 군대가 예루살렘의 남동부를 침공! 울트라주데인을 공략했고
안달루시아에서 병력이 털리고 국왕도 아직 어린 예루살렘 왕국은 손도 못쓰고 전멸하고 영지를 잃어버렸습니다.
디블랭 : 왜 그러셨습니까?
시빌라 : 왕위는 내 것이다. 내가 적법한 후계자다.
디블랭 : 이 지경이 된 나라가 그리도 탐나셨습니까?
시빌라 : 건방지다! 근신하라 브엘세바 백작!
문제는 기가 아니라 시빌라였던듯 합니다. 한편, 그러는 와중에 시빌라 왕녀의 장자인 몬페라토의 보두앵이 어머니보다
먼저 사망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물려받은 이탈리아의 몬페라토 영지를 어머니가 상속하게 되었는데... 그 영지가
생기자 자신감이 생겼는지... 보무도 당당하게 2차 반란을 일으켜 버립니다. 아모리 1세는 고모의 난행에 적극적으로
대처했고, 초기 남편을 앞세워 병력을 예루살렘에 진출시켰던 시빌라 왕녀는 위기에 처합니다. 그러나... 그 망할 기세에
합류하고 싶지 않았던 저는 왕에게 요청합니다.
디블랭 : 폐하... 신은 아스카론의 봉신이지만 역적은 아니옵니다. 바라옵건데 폐하의 직신으로 귀순하고자 하오니 거두어
주시옵소서.
아모리 : 이를 말인가. 귀순을 환영하네.
시빌라 : 디블랭 이 망할 놈이!!!
저의 배신으로 아스카론은 궁지에 몰립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 병력이 절묘하게 꼬였는지....
아모리 : 으윽... 분하다...
디블랭 : 폐하! 폐하 정신을 차리옵소서.
아모리 1세는 난전중에 사망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다행이 보두앵왕의 차남이자 아모리 1세의 동생인 르노가 왕위에
올라 전쟁을 지휘하였고, 아스카론이 무너질 분위기가 되었는데... 그 순간...
시빌라 : 예루살렘의 놈들에게 내 영지를 넘겨주진 않겠다. 넘겨준다면 차라리 네놈들을 죽일 아이유브에게 영지를 넘겨
주고 말리라!
아이유브 왕조의 군대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쑥들어와서 순식간에 아스카론을 평정하고 영토를 빼앗아버렸습니다. 시빌라는
그대로 몬페라토로 도주해서 그곳에서 은거하게 되었구요. 브엘세바도 아스카론의 소속이었지만 재빨리 국왕 휘하로 넘어
가버린 덕분에 아이유브의 점령의 손길을 피할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왕국은 이제 최악의 상황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잇달은 왕가의 내전으로 넌더리가 났던지 유력한 봉신들의 이탈이 이어졌습니다. 북방을 지키고 있던 갈릴리 공작은 프랑스
툴루즈와의 통혼을 통해 이탈하여 프랑스의 세력에 편입되어 버렸습니다. 예루살렘을 눈뜨고 영지를 빼앗긴 이 폭거에
항의조차 못하고 손놓고 지켜볼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예루살렘에 남은 영지는 예루살렘 공작령과 브엘세바, 그리고
아직은 왕국 소속으로 남아있기는 한 몬페라토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운명의 날이 왔습니다.
르노 : 적들이 쳐들어 왔다고? 어서 빨리 비잔틴에 원군을 청해라.
디블랭 : 폐하... 적은 비잔틴이옵니다.
르노 : 뭐라? 외삼촌이... 이제 예루살렘을 끝이로구나.
당시 비잔틴에서 황위에 오른 헬리오스 1세는 제가 지금것 플레이하면서 봤던 가장 후덜덜한 비잔틴 제국 승천기를 보여주며
아나톨리아와 발칸반도에 쉴새없이 제국의 영토를 회복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망국에 위기에 놓인 예루살렘에 거침없이
확인사살을 날려버린겁니다.
결국... 전쟁이 끝나고 성지는 비잔틴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왕국은 다행히 망하지는 않았습니다. 몬페라토의
영지를 시빌라에게 몰수한 르노 국왕은 그곳을 새로운 예루살렘의 수도로 삼고, 마지막 남은 브엘세바 백작을 봉신으로 둔
작은 왕국으로 남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시빌라의 악행은 거기가 끝이 아니었습니다.
수사의 공작이 몬페라토의 권리를 주장하며 예루살렘 왕국으로 침공을 감행했습니다. 압도적인 수사의 공세에 예루살렘은
망국의 위기에 놓였는데... 그 원인이 바로...
르노 : 고모님... 당신이 어떻게...
시빌라 : 내것이 될수 없다면 없어져 버리는 것이 당연한것이다. 사라져라...
르노 : 고모님!!!
예루살렘 왕국에서 추방되서 어디로 갔다 했더니 하필이면 지금 몬페로토를 침공하고 있는 수사의 봉신으로 가있는
시빌라였습니다. 수사 공작의 애인이 되서 자식까지 보셨더군요. 뭐, 수사 공작이 원래 있던 클레임으로 공격한거니
시빌라가 원흉은 아닐수도 있지만... 그래도 상황이 너무 절묘해서 욕을 안할래야 안할수가 없네요.
결국 예루살렘 왕국은 몬페라토에서 무너져 버렸습니다. 저는 뭐했냐고요? 저는 왕국이 무너지기 직전에...
디블랭 : 내가 가야하는데... 주군에게 내가 가야하는데...
기 : 너무 늦었습니다. 몬페라토에 배도 없는 우리가 도달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주군... 다 끝난듯 합니다.
디블랭 : 그렇다면... 폐하를 이곳으로 모셔라. 이곳을 폐하에게 받치고 새로운 예루살렘을...
기 : 주군... 주군의 아드님께서 헝가리의 니트라 공작이 되셨습니다. 부인의 작위를 물려받으셨습니다. 축하드릴일이지만
이 브엘세바는 주군께서 돌아가심과 동시에 헝가리에 귀속될겁니다. 죄송합니다.
디블랭 : 안타깝도다... 나의 천상의 왕국이여... 결국 나는 이 왕국을 지켜내지 못한 마지막 봉신이 되는구나...
마누라가 상속권이 있어서 헝가리에 예루살렘의 멀티를 만들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어이없게도 오빠들이 죽어나가는
바람에 공작이 되서 되려 브엘세바가 헝가리에 흡수가 되어 버렸습니다. 결국 브엘세바 백작 디블랭은 숨을 거두고 그
후계자가 니트라 공작으로서 남은 당주가문의 후계자인 르노 당주의 아들 리샤 당주를 영지로 모셔 가문을 끊지 않으면서
왕국의 긴 악연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기는 나름 무력이 출중했던 덕에 평생 브엘세바의 대장군으로 봉직하고, 나중에 니트라에서도 사령관으로 일하다가
죽었습니다. 자식은 모계결혼인 덕분에 딸하나만 보고 뤼지냥의 대는 단절되었습니다.
시빌라는 역사대로라면 30살에 죽었어야 정상이지만, 제 플레이에서는 78세까지 살면서 수사 공작 이후로도 결혼을 한번
더하고 4명의 아버지에게서 9명의 자식을 봤습니다. 당주의 핏줄은 되려 시빌라의 모계결혼으로 본 쪽이 더 많이
번창했습니다. 그래봤자 작위는 시원찮았지만...
이번 플레이를 하면서 느낀건 정말... 영화를 보면서는 에바 그린 누님의 미모덕에 나름 동정을 하게 되었던 시빌라가
정말이지... 실제 역사랑 별로 다르지 않은 이름 그대로 시빌...라였음을 제 확인한 플레이였습니다. 아직까지도 회상해
보면 속이 뒤짚히네요. 정말이지 제가 플레이했던 기록중에 제 오너캐가 아닌 등장 캐릭 중에 세손가락에 꼽을 막장으로
남을듯합니다. 앞으로 연재를 다시 하게 되면 꼭 반영을 해보리라 다짐하게 되는 플레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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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시() 이군요 정말
그냥 다음 플레이에서는 시빌라부터 죽이고 시작하시길 권합니다...
으엌ㅋㅋㅋ
아니 뭐 ai야 시스템대로 움직였을 뿐일테긴 한데....
와우.. 재밌어요!!! 결과론적으로 안달루시아 십자군이 결정적 패착이었네요.. 역시 클레임가진자를 뒤에 두고 무리하면 안된다는..
시빌라 개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말 파란만장하네요 마치 트로이에서 파리스 왕자 새끼를 보는 듯한 분노가 치밀어오름ㅋㅋㅋㅋㅋ
개ㄴ...ㅠㅠㅠㅠㅠㅠㅠ 킹덤 오브 천국에서의 그 누님은 그저... 픽션이었을 뿐이네요 ㅋㅋㅋㅋㅋㅋ
one8라랄라
시빍ㅋㅋㅋㅋㅋㅋㅋㄱㅋ
시x라
근 일년간 크킹게시판을 보면서 이 글을 최고로 치더라
파란만장 하다 ㄷㄷ 충신보소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