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은 아련한 동경이다. 낭만과 신화가 가득 쟁여져 있는 곳이다. 섬마을 선생님은 왠지 달콤한 로맨스와 깊은 사연을 지닌 주인공 일 것만 같다. 그래서 섬마을 유람에 나섰다. 섬마을 선생님들의 훈훈한 휴먼스토리와 낙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지면에 담아낼 작정이다. 서해의 백령·연평군도에서 남해 한려수도를 돌아 동해의 울릉도까지….
운동장 가에 허름한 단층 슬래브 건물이 납작 엎드려 있다. 공장 창고처럼 멋대가리 없는 직사각형 건물이다. 유리창에 투영되는 빨간 저녁노을이 그나마 치장이라면 치장이었다. 건물의 전면에 ‘所安學塾(소안학숙)’ 이라는 큼지막한 글자가 걸려 있다. 아하, 학생들 기숙사로구나.
전남 완도군 소안면 소안고등학교의 기숙사다. 깔끔한 본관 건물과 예쁜 관상수들로 단장을 한 교정과는 달리 덕지덕지 촌티를 달고 있는 기숙사였다. 기숙사의 문을 열고 들어선다. 두 사람이 겨우 비켜갈 만한 좁은 복도를 따라 12개의 작은 방이 길게 늘어서 있다. 방에서 두런두런 학생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각 방에 2~3명 씩 모두 26명의 학생들이 기숙을 하고 있다.
이 방 저 방 할 것 없이 저녁식사 준비에 한창이다. 어떤 방에서는 조막만한 전기밥솥에서 김이 폭폭 올라오고, 또 어떤 방에서는 부탄가스 위에 올려진 노란 냄비에서 보글보글 라면이 끓고 있다. 학생 스스로 저녁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자취형 기숙사였다.
그런데 섬 학교에 웬 기숙사? 소안고등학교라면 전교생 수를 모두 합쳐도 채 50명이 안되는 작은 학교 아닌가? 도시에서 유학이라도 오는 걸까?
“우선은 주변의 작은 섬에서 유학 오는 아이들 때문에 기숙사가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기숙사 학생들 중 상당수는 소안도 아이들이에요. 남쪽의 진산리나 북쪽의 북암리 등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섬 끝 마을에 사는 학생들이지요. 통학거리가 왕복 20km 이상 되는 곳의 아이들은 통학을 할 마땅한 방법이 없어요. 소안여객이라는 이름의 버스 한대가 하루 몇 번 섬을 도는 데 그나마 오후 5시면 운행을 중단합니다. 학생들이 자율학습을 마치고 학교 문을 나서는 시간이 저녁 아홉시쯤입니다. 공부를 하느라 파김치가 된 아이들이 20~30리 길을 걸어서 귀가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입시준비에 매진할 겸 기숙사 생활을 하는 거지요.”
앞장서서 기숙사를 안내하던 선생님이 설명을 해 준다. 교무부장과 기숙사 사감을 겸하고 있는 위왕량(51) 선생님이다. 순천고 24회 출신으로 1980년 봄 공주사범대를 졸업한 뒤 광양실업고와 한국항만물류고, 순천여고, 순천공고 등의 교단에서 30여 년 동안 역사를 가르쳐온 베테랑 교사다.
사감하면 떠오르는 스테레오 타입은 역시 ‘B사감과 러브레터’의 주인공인 B여사다. 현진건의 표현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B여사는 ‘딱장대요 독신주의자요 찰진 야소군(크리스천)으로 유명하다. 사십에 가까운 노처녀인 그는 죽은 깨 투성이 얼굴이 처녀다운 맛이란 약에 쓰려도 찾을 수 없을 뿐인가, 시들고 거칠고 마르고 누렇게 뜬 품이 곰팡 슬은 굴비를 생각나게 한다. 뾰족한 입을 앙다물고 돋보기 너머로 쌀쌀한 눈이 노릴 때엔 기숙생들이 오싹하고 몸서리를 치리만큼 그는 엄격하고 매서웠다.’
그러나 위 선생님, 그러니까 위 사감의 모습에서 B사감과 비슷한 점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반듯하게 빚어 넘긴 머리, 온화한 표정에 차분한 말투, 흐트러짐 없는 옷매무새…. 굳이 공통점을 찾자면 독실한 크리스천이라는 사실과 왠지 융통성이 없어 보이고, 꼬장꼬장한 원칙주의자 일 것만 같다는 점을 들 수 있을까?
아, 참! 위 사감과 B사감의 가장 큰 공통점을 빠트릴 뻔 했다. 두 사람이 눈에 불을 켜고 경계를 한 게 있었으니 바로 기숙생들 간 연애질이다. B사감은 기숙생들에게 오는 편지를 일일이 검토하면서 ‘러브레터’에 질색을 한다. 위 사감 역시 학생들 사이에 연애사건이 터질 새라 눈에 불을 켜고 감시를 한다. 면학 분위기를 좀먹는 가장 나쁜 독소는 ‘연애 바이러스’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한창 사춘기의 아이들이기 때문에 아주 조심스럽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한마을 한 학교를 다닌 아이들이라 워낙 허물이 없는 아이들이지만 한창 피가 끓는 나이들 아닙니까. 그래서 여학생은 짧은 반바지나 민소매 차림을 금지하고 있어요. 남학생들은 웃통을 벗고 돌아다니지 못하게 하고 있고요. 함께 밥을 먹는다는 핑계로 모여 있는 녀석들, 춥다며 한 이불 덮고 둘러 앉아 있는 녀석들을 향해 독한 말을 쏟아내고는 합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단속해도 가끔 연애사건이 터져 나오더라고요. 자연의 이치라고 할 수 있지요.”
기숙사 복도 중간에 셔터가 설치돼 있었다. 가느다란 철봉으로 만들어진 새시 셔터였다. 남녀간 공간을 구분하는 ‘금단의 문’이었다.
“자정이면 셔터를 내리고 자물쇠로 잠급니다. 혹시라도 서로 간에 급한 연락사항이 있으면 사감실과 연결된 비상벨을 누르도록 돼 있습니다.”
남녀간의 뜨거운 감정을 물리력으로 막을 수 있는 걸까? 흔한 말로 사랑이란 국경도, 인종도, 세대도 초월한다는 데 까짓 헐렁한 셔터 하나로 한창 달아오르는 청춘의 열기를 통제할 수 있을까? 언제부턴가 위 사감의 레이더망에 한 줄기 핑크 빛 열기가 감지되기기 시작했다. 평소 심상치 않은 눈길을 주고받던 두 녀석이 본격적으로 사귄다는 소문도 돌기 시작했다.
“평소 때보다 더 소안학숙 순찰을 강화했지요. 어느 날 불쑥 새벽 한 시 쯤 기숙사를 들렀을 때였어요. 정말 진풍경을 목격했답니다. 글쎄 소문의 두 주인공이 내려진 철제 새시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더군요. 살금살금 다가가서 보니 둘이서 야참을 먹고 있었습니다. 여학생 앞에는 모락모락 김이 나는 전기밥솥과 밑반찬 몇 개가 놓여져 있었고요. 여학생이 숟가락 가득 밥과 반찬을 올려놓고는 새시의 철봉 사이로 남학생에게 건네면, 남학생은 좋아라하면서 냉큼 받아먹더라고요. 견우직녀의 상봉 장면이 저토록 눈물겨웠을까요?”
모질기로 치자면 위 사감이 B사감보다 한 질 위다. 소안학숙에서 벌어진 모처럼의 연애사건은 그날 이후로 종말을 고해야 했다. 위 사감의 전방위 압박과 감시가 지속됐기 때문이었다.
“참 몹쓸 짓을 한건가, 하고 되뇌어 보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결론은 하나! 나는 사감이다, 이것이 지금 당장은 힘들지 모르지만 지나고 나면 너희 인생에 약이 될 거다…. 이런 생각으로 두 아이들을 떼어 놓았어요. 대학 진학 이후에 사귀어도 늦지 않다고 설득 했지요.”
위 사감도 B사감처럼 학생들에게 밉상으로 비칠까? 그를 대하는 학생들의 표정으로 봐서는 예상과는 달리 꽤 인기 있는 선생님으로 보인다. 아이들의 표정을 보면 웬만큼 다 드러나게 마련이니까.
“지난 6월의 일이었어요. 밤 12시를 막 넘긴 시간에 누군가 관사의 문을 두드리더라고요. 문을 열고 내다봤더니 몇 녀석들이 케이크 박스를 들고 서 있었습니다. ‘밤 12시가 넘었으니 오늘이 선생님 생일이지요? 저희들이 가장 먼저 선생님 생일을 축하해 주고 싶었습니다’ 하더군요. 녀석들이 빙 둘러서서 생일축가를 불러 주는데 콧날이 시큰해지더라고요.”
“이곳은 아이들에게 꿈과 감성을 심어주는 곳입니다. 섬 아이들의 부족한 견문을 채워주기 위해 영화감상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장기 자랑 시간도 갖고 있습니다. 가장 힘을 많이 쏟는 부분은 창의성 계발입니다. 아이들은 틈나는 대로 ‘창의성 계발 활동 일지’를 작성하면서 토론의 장을 열고 있어요. 매일 점심시간을 이용해 특정 주제를 놓고 자유토론을 하는 겁니다. 월요일은 ‘토론학습’, 화요일은 ‘관찰일기’, 수요일은 ‘모순해결’, 목요일은 ‘나를 칭찬하기’, 금요일은 ‘수다 떨기’ 등 요일별로 활동내용을 달리하고 있지요. 방금 제가 건네 드린 책자가 바로 이런 활동들을 학생 개인별로 정리하도록 한 일지입니다.”
책자를 펴 보니 주제와 일시, 발표 참여자, 발표 내용 정리, 모순 찾기, 모순 해결, 소감쓰기 등 자신의 활동내용을 정리할 수 있는 공간이 항목별로 구분돼 있었다. 특히 ‘나를 칭찬하기’ 항목이 눈길을 끈다. ‘자신에 대한 지속적이고 공개적인 칭찬’을 하라는 내용이다.
“섬 아이들은 참 여유롭습니다. 아등바등 경쟁할 줄을 모르는 착한 아이들입니다. 친구들끼리 서로 모르는 문제를 가르쳐주고, 노트도 빌려주고 그래요.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도전정신과 열정이 부족해요. 작은 울타리 속에서 오랫동안 함께 생활하다보니 경쟁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겁니다. 오랜 타성과 게으름에 젖어 있어요. 도시 아이들이 너무 경쟁을 하는 게 문제라면 이곳 아이들은 너무 경쟁심이 없다는 게 문제지요.”
경쟁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걸까? 경쟁을 모르고 사는 이 아이들이 더 슬기로운 게 아닐까? 혹시라도 이 땅의 교육은 무한경쟁 속으로 무작정 아이들을 밀어 넣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경쟁보다는 창의력 계발에 힘을 쏟는 소안도의 아이들의 미래가 공교육과 사교육에 파묻혀 경쟁에 몰두하는 도시 아이들보다 더 밝은 게 아닐까? 소안고등학교 아이들의 구김살 없는 밝은 웃음이 던져주는 질문들이었다.
박상주 오지여행가
항일운동으로 유명한 완도군의 막내섬
막내는 대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다. 그건 늘 맏이의 차지다. 보길도(32.51㎢)와 노화도(25.01㎢), 소안도(23.16㎢) 등 고만고만한 삼형제 섬이 나란히 붙어 있지만, 세상의 주목을 받는 건 언제나 맏이인 보길도였다. 뭍에서 오는 배가 가장 먼저 닫는 노화도까지는 이따금 대접을 받지만 소안도는 뒷전으로 밀린다.
보길도는 고산 윤선도의 유적과 천연기념물인 상록수림, 감탕나무 등 볼거리들이 널려 있는 곳이고, 노화도는 전복과 김, 톳 등 이 지역 양식업의 중심기지이기 때문일 터였다. 특히 지난 2008년 1월 보길도와 노화도를 연결하는 보길대교가 개통되면서 두 섬은 사실상 하나의 섬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막내인 소안도는 더 외로워 보인다.
그 외로운 소안도를 발로 더듬기 시작했다. 아침 일찍 소안면사무소 근처의 바닷가 숙소를 출발해 남쪽으로 길을 잡는다. 10분이나 걸었을까. 호박만한 크기의 둥근 돌들을 붙여 만든 우뚝한 기념탑이 시선을 붙든다. 1990년 외부의 후원도 사양하고 소안도 주민들의 힘으로 건립했다는 ‘소안항일운동기념탑’이다.
기념탑 옆으로는 작은 운동장이 딸린 기와 목조 건물이 자리를 하고 있다. 태극기가 펄럭이는 목조건물 앞에 넓적한 돌로 만들어진 시비가 세워져 있다. 요즘 맞춤법으로는 군데군데 맞지 않는 ‘소안선열들 앞에 바치는 노래’라는 글이 돌판 위에 새겨져 있었다.
‘태초에 뜻이 있어/이 한 점 찍을 적에/하늘이 무너져도/살어서 지켜내라/나라와 겨레의 등불/너에게 맡겨더니라/망국의 한을 품고/산천이 캄캄할 때/옥에 갇히시고/총칼 앞에 쓸어지면서도/온 몸을 불태워서/이 역사 비추었거늘/저 바다 바람결에/듣느냐 님의 함성/오늘도 우리 가슴에/불길로 타오르나니/길이 빛날 그 이름/민주의 섬 소안이여.’
남도의 작은 섬에 이처럼 묵직한 항일 유적이 있었던가? 도대체 일제 때 소안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탑 옆에 들어서 있는 ‘소안항일운동기념관’안으로 들어섰다. 관광객은 물론 안내인조차 하나 없이 썰렁하다. 항일운동 당시의 상황을 재현한 밀랍 모형들과 사진자료, 연표 등이 전시돼 있었다. 소안도 주민들의 자부심과 애향심이 물씬 묻어나는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소안도의 진면목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소안도는 일제 때 함경도 북청, 부산 동래와 더불어 가장 격렬한 항일운동을 벌인 지역으로 꼽히는 곳이었다. 소안도 사람들은 13년에 걸친 토지소유권 반환소송을 승리로 이끈 것을 비롯해 ‘배달청년회’, ‘수의위친계’ 등 항일결사체를 결성해 일제에 항거했다. 지역주민들의 모금으로 사립소안학교를 설립해 숱한 민족 운동가를 배출하기도 했다. 독립군 군자금 모금과 노동운동, 농민운동 등 민족의 혼을 일깨우는 선각적 움직임들이 소안도를 중심으로 전개됐던 것이다.
들어갈 때와는 달리 숙연해진 마음으로 전시관을 나온다. 보길도와 노화도의 뒷전에 밀려 있는 막내 섬인 줄 알았더니 대단한 항일성지였구나. 이제부터 소안도 답사는 항일성지 순례인 셈인가?
소안도 최고봉인 가학산(359m)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보길도와 노화도를 멀찌감치 감상하기엔 가학산 능선 길만한 곳이 없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등산로 초입에 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잔디밭 쉼터∼학운정∼정상∼수원지삼거리∼해도정∼맹선재∼물치기미 쉼터까지 약 4.8km의 코스다.
20여분 정도 다소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랐을까. 시야가 확 터지면서 소안도는 물론 보길도와 노화도 인근의 다도해 절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쾌청한 날씨에는 멀리 제주도까지 보인다는데 오늘은 아쉽게도 날씨가 꾸물꾸물하다.
완만한 등산길을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꼬불꼬불 예쁜 오솔길이다. 능선에 올라서서 보니 소안도는 듣던 대로 완전한 장구 모양으로 잘록한 허리를 가진 섬이다. 저만치 보길도와 노화도를 연결하는 보길대교의 모습이 장난감처럼 걸려 있다. 이런 절경을 감상하며 걷는 능선길이 세상에 몇 개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