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호매트2세가 이끄는 1453년 오스만터어키의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 함락은 세계사적으로 엄청난 의미를
지닌 대사건이다. 이 사건의 여파로 신대륙발견과 새로운 동방항로의 개척이 이뤄졌다.
또 전쟁판의 양상이 이후 창칼에서 대포와 소총을 들고 싸우는 판으로 바뀌게 된다. 특히 이 싸움으로 그리이스
로마의 정통학문을 이어온 수많은 학자와 예술가,최고의 기술자들이 대거 이태리등 유럽으로 옮겨감으로써 유
럽은 본격적인 르네상스(문예부흥)시대를 맞게 된다.
그결과는 스페인 포르투칼, 네델란드 영국으로 이어지는 헤양을 통한 유럽의 세계제패로 이어지게 했다. 지정
학적으로는 오스만터어키가 향후 500년가까이 유럽과 쌍벽을 이루며 발칸반도와 중동지역및 지중해남부연안
인 북아프리카의 패자로 군림하는 계기가 됐다.
<신대륙 발견및 동방항로 개척>
콘스탄티노플과 동로마제국은 로마시대이래로 1천년이상 인도 중국등 동방과의 교역중심이었다. 베니스의
상인으로 유명한 베네치아가 크게 번성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동뱡교역을 거의 독점하다시피했기때문이
다.
그런데 오스만터어키가 이 지역을 차지하고 동방교역로를 폐쇄함에따라 유럽각국,특히 상인들은 향신료를
비롯한 물자의 수급을 위해 직접 인도등으로 가는 해상로를 개척하는데 온 힘을 기울일 수 밖에 없었다.
많은 희생과 시행착오끝에 1498년 포르투갈의 바스코 다 가마가 남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인도의 캘리컷에 도착했다.
그는 인도에서 값비싼 후추를 가득 싣고 금의환향해 많은 이익을 남겼다.
이에 앞서 이탈리아 모험가 콜럼버스는 에스파냐 여왕 이사벨라(1451~1504)의 후원을 받아 1492년 70일간
의 항해끝에 지금의 아이티섬과 쿠바를 발견하고 돌아온다.그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의해 남미와 북미는 가
혹한 식민통치를 받게된다.
식민지로부터의 엄청난 은과 금의 유입으로 막대한 부가 쌓이고 들어와 때 아닌 인플레이션을 겪기도 했다.
이러한 신대륙발견과 동방항로 개척은 결과적으로 스페인 포르투갈 네델란드 영국으로 이어지는 해상패권의
시발점이 됐다.
<창칼에서 화약으로>
마호매트가 이끄는 오스만터어키군은 콘스탄티노플공략을 위해 대형 대포를 공성전에 사용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유럽에선 화약을 대수롭게 생각지 않아 전쟁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스만군은 이 대포를 쏘며 공성전을 벌여 방어군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길이 8m에 무게 19톤에 이르
는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하게 큰 괴물대포는 헝가리인 기술자 우르반이 만들었다.
포탄무게만 500kg에 달해 한번도 무너지지 않았넌 콘스탄티노플의 테오도시우스성벽중 일부를 무너트렸다.
유럽은 오스만제국의 이 대포를 보고 깜짝 놀라 화약을 사용하는 대포와 총포에대한 연구를 거듭해 전쟁에 본
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기사계급의 몰락>
총은 원거리 공격무기이나 활에 비해 관통력이 뛰어나다. 이전까지 전쟁은 기병과 창병,궁병과 중장갑병,으로
대오를 갖춘뒤 정면돌파나 측면돌파전략을 주로 써왔다.
개전초 활로 원거리 공격을 한뒤 기병이 측면이나 후면을 공격하고 중장갑병이 정면을 공격한다.적의 기병이
공격해오면 창병으로 방어하는 것이 대부분의 전투형태였다. 여기서 기병과 중장갑병을 이끄는 기사는 사슬갑
옷과 판금갑옷을 입고 전면에 나서 싸우는 살인병기로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린치핀이었다.
그러나 총과 대포가 사용되면서 판금갑옷이 총포에 뚫리며 무용지물이 됐다.기사 무용론이 대두된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봉건제의 붕괴와 함께 기사계급의 몰락을 가져온 여러요인중 하나가 됐다.
몰락기사의 얘기를 쓴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태는 바로 이런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다.문학사상 영국의 세익스피
어에 버금가는 거장으로 평가되는 세르반테스의 등장은 콘스탄티노플 함락이 불러온 나비효과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중세의 종말과 르네상스시대의 본격 개막>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은 1500년을 넘게 이어온 로마시대의 종언을 의마한다. 이로써 사실상 기독교가 모든 것을
지배하던 중세시대가 마감되고 르네상스시대가 열리게 됐다고 많은 사가들은 보고있다.
콘스탄티노플은 당대 최고의 선진문화도시였다..서기 330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아시아와 유럽대륙
의 교통 요지인 비잔티온으로 제국의 수도를 천도할때 그리스에서 로마로 이어지는 문화유산과 학자,기술자들도
모두 옮겨왔기 때문이다.
동로마제국 멸망이후 많은 학자와 예술가, 뛰어난 기술자들이 이탈리아를 비롯한 서유럽 각국으로 망명 이주하면
서 르네상스가 일어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신대륙과 동방항로의 개척으로 상인들과 자유도시의 경제력이 급
격히 커지면서 건축과 이를 장식할 그림및 조각품들의 수요가 폭발했다.
또한 그리스,로마의 자유로운 사상과 경험주의로 인해 과학 기술이 크게 발전하면서 산업혁명으로 이어지는 기반
이 마련될 수 있었다.유럽은 르네상스시대의 본격화로 문화예술과 과학기술을 선도하며 21세기까지 그 번영을 구
가하고 있다.
<오스만터어키의 이슬람권 지배>
오스만터어키는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할때까지만 해도 대제국은 아니었다. 한때는 동로마제국의 용병집단으로 활
동하기도 했다. 셀주크 터어키가 망하고 동로마제국이 쇠퇴하면서 힘을키워 동로마가 망하기 직전까지 발칸반도의
상당한 지역과 현재의 터어키가 자리잡고 있는 아나톨리아 지역을 다스리는 새로운 강자로 발돋움한 정도였다.
아나톨리아와 발칸반도는 오랜동안 동로마를 섬겨왔던 제후국과 비슷한 처지로 기회만 되면 동로마와 손잡고 분란
을 일으켜왔다. 그러나 명목상이나마 종주국이며 구심점이었던 동로마가 멸망하면서 오스만 터어키에 그대로 복속하
지않을 수 없게 됐다.
지정학적으로 콘스탄티노플 함락은 오스만 터어키가 발칸의 지배권과 함께 욱일 승천하는 유럽세에 맞서 이슬람권의
제국으로 우뚝 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북으로는 발칸반도를 넘어 당대의 강국 오스트리아.헝가리와 국경
을 맞대었다.남으로는 아라비아반도를 손에 넣으면서 이집트를 포함한 지중해 남부연안인 북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지배권을 확고히 다지게 된다. 제국은 500년가까이 지속되다 1차대전의 패전으로 현재의 터어키의 영토만 남고 해체
됐다.
Sylvie Vartan(실비바르땅)은 1944년 불가리아에서 태어나 8세때 부모와 함께 프랑스로 이주한 프랑스 샹송가수다.
60년대 영화 "우상을 찿아라"의 주제곡이 세계적으로 알려지며 70-80년대 전성기를 누렸다.그녀는 전통적인 샹송
가수와 달리 록큰롤을 가미한 경쾌한 멜로디로 당시 젊은이들의 인기를 끌었다.대표곡으론 La Maritza(마리짜강변
의 추억), La Reine De Saba(시바의 여왕)등이 있다.
Les Hommes(무명용사)는 1947년 알제리 전투와 63년도 베트남전에서 희생당한 외인부대의 무명용사들을 애도하
는 내용의 노래다.
첫댓글
일목 요연
흐름을 정확히 써 주신
비온 뒤님 역시나 입니다.
전체적인 그때의 역사적 지리적 문화적 경제적 모든 공부를 섭렵하게 되어 스스로 뿌듯 합니다.
기사 제도의 몰락이면
이제 돈키호태가 나와야 겠디요..
ㅎㅎ
글 잘 읽었습니다
재미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세계사에 큰 획을 그은 사건이라 관심이 갑니다.
세르반테스도 재미있는 인물인데...
필력이 달려서 될 지 모르겠습니다.
지리공부 역사공부
몇번 봐야겠어요
노래가 경쾌 하네요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리공부 역사공부는 재미있습니다.
이노래는 반전가요인데
프랑스정부가 지원했다고 합니다.
베트남은 어찌됐든 쫓겨났지만 자기네 식민지였는데
미국이 가서 집적거리니 기분이 않좋아서 월남전
반전운동을 부추기려는 의도가 있었다네요...
좋은 하루 되세요..
@비온뒤 그렇습니다 프랑스 식민지죠 그쪽 혼혈은 이쁜처녀들 많아요
@큰언니1 그렇죠..커피도 그렇고 아직도 프랑스잔재가
곳곳에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북경 나비 날개짓이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 태풍이 된다고 합니다.
현재의 작은 징후도 미래에 엄청난 변화를 초래합니다.
하물며 국가간 전쟁은 오죽하겠습니까?
그 인과응보를 다 견뎌내고 지금의 세계 모양이 정립됐을 것입니다.
간결하면서도 일목요연하고 대국적 견지에서 바라본
비잔틴 대 오스만 콘스탄티노플 함락 전쟁 비사를 즐거운 마음으로 잘 읽었습니다.
선배님이 카오스이론을 잘 설명해 주셧습니다.
공감합니다. 나름 정리해 봤습니다만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좋게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평안한 밤되세요...
그 당시 독일과 영국은 유럽에서 그리 강한 나라가 아니 였었죠.
글에도 있지만...
그 당시 사용했던 대포는 청동으로 만들어 졌었습니다.
위력은 있었지만 열 팽창 계수가 높은 청동(구리가 주 성분) 대포는 한발 쏘면 한 시간 쯤 후에나
다시 쏴야 하는 문제를 가지고 있었는데..
영국에서 주철로 만든 대포를 발명하게 됩니다.
연발 사격이 가능한 이 대포의 발명으로 당시 무적이라 불리던 스페인 함대를 물리치게 됨으로서
해상 권을 장악한 영국이 최 강국으로 부상하게 되죠.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시발점이 된 것..
점령지에서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했죠.
지금의 최 강국인 인도..중국..모두가 피해 지역 이였습니다.
1000년도 안된 시기....
동,서양을 막론하고 혼돈의 시대 였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무지 평화로운 시기를 살고 있음에 감사할 뿐입니다.
맞습니다. 이렇게 평화롭고 풍요로운 세상에
살 수 있음에 저도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포에 대해서 잘아시니 밀덕이신 것 같습니다.
좋은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밤 되십시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저도 무스타키 좋아합니다. 특히 마 솔리튀드(Ma Solitude),
일 에 트로 타(Il Est Trop Tard), 르 팍퇴르(Le Facteur)를 가끔 애청합니다.
로에님 방문을 환영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세계사 시간이 정말 재밌었는데
지금은 방해군 때문에
집중이 안 되어
패스
새벽에 읽어봐야겠습니다ㆍ
집중까지 하실 만한 글은 못됩니다.
가볍게 일별하시면 됩니다.
좀 재미가 없어서 그렇지...
윤슬하여님의 방문을 격하게 반깁니다.
좋은 꿈 꾸세요...
방금 유투브로 오스만제국의 흥망성쇠에 대해 들으면서....조선의 역사와 비교하는 재미와
최태성님의 <역사의쓸모>를 다시 꺼내 읽어볼까? 그러고있던 참에....이 글을 읽으니
아항...그얘기가 이얘기구나....감탄합니다.
지식이 하나씩 쌓이니....지혜도 더불어
싹틀 것 같은 기분좋은 예감.
돈 많이 벌고 싶어졌어요.
방장님이랑 비온뒤님이랑..등등
밤새도록 술 푸고 골든벨 울리고 싶습니다.^^
골든 벨 까지는 좀 그렇고
우리 자리만 돈 내고
밤새 술 퍼 봅시다..
ㅎㅎ
언제??
곧!!!
몽연1님의 학구열은 여전히 식지않네요...
그런 열정이면 지식이 쌓이다 못해
지혜까지 넘쳐날 것 같습니다.
돈 많이 벌고 싶다고 하지 마시고 이미
돈은 많이 벌어놔 넉넉하다고 생각하세요...
골든벨 울리겠다는 그런 뱃장이면 뭐든 잘 될 겁니다....
@효주 아네스. 방장님 체력도 대단하세요..
밤새 마신다니...ㅎ
방대한 내용을 아주 잘 적어주셔서 새삼 고개 끄덕이고 있어요.
이런 논제 던진 방장님과 비온뒤님 .
두루두루 감사합니다^^
딱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담까지 들으니 기분도 업됩니다.
주말 즐겁게 보내시고 늘 건강하세요...
솔직이
처음에 한번 읽고,
어제밤 두번 읽고
도저히 댓글을 쓸 수 없어서
미루어만 두었습니다.
터키 역사에 대한 이야기인데
머리속에 정리가 되질 않네요.
이제야
겨우 씁니다.
그냥 일별하시면 되는데...
수수선배님이 댓글 달아주셔서 영광입니다.
편안한 저녁시간 되세요...
주중 바쁘게 종종이느라
차분히 읽지 못하다
습관처럼 주말도 같은시간 기상이라 읽었습니다
세계 역사한편을 글한편에 폭 담아낸 박식함 대단하세요
이슬람 술탄 오스만 콘스탄티노플 등
터키여행하면서 가이드한테 참 많이들었던 단어들을
정립해봅니다
근데 금새 까묵이 문제여라 ㅎ
아~~신무기를
누가 먼저 개발 사용하냐에
힘의 이동이네요
모두가 신기술 신형만이
평화유지 힘인것을ㅠ
지금 시대에 태어남도 감사하고 모든것이 감사입니다
여기저기서 읽은 것들이 생각나 한자 적은 것뿐입니다.
박식은 즉 얕은 지식일 뿐입니다.
아무래도 똑같은 무기들고 싸우면 쉽지않은게 사실입니다.
자신이 여우있게 이기려면 싸움판을 바꿔라라는 말이 있듯이
신무기사용도 싸움판을 바꿀 수 있는 것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정아님,좋은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요일 오후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