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과 부처는 하나
중생과 부처는 하나고불(古佛) 조주선사가 상당해서 한마디 했다.
“ 오래 참선을 해온 납자라면 진실치 않은 사람이 없고 고금을 통달치 않은 사람이 없겠지만 신참이라면 반드시 이치를 캐야 한다.
그대들은 천명의 대중을 몰아가지 말라. 총림에 주지를 한답시고 자칭하면서 막상 불법에 대해 물으면 마치 모래를 볶아 밥을 짓는 것처럼 아무것도 못하고 한마디 말도 할 줄 모른다.
그러면서도 도리어 남은 그르고 나는 옳다고 하며 얼굴에 열을 올리니 세간사람들이 법답지 못한 말들을 내놓게 한다.
진실로 이뜻을 밝히고자 한다면 노승을 저버리지 말라” 진실한 수행보다 명리를 쫓아 다니는 수행자들에게 고불답게 일갈하고 있다.
수행은 세속의 명리를 떠나 있음을 널리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뜰앞의 잣나무다”“스님께서는 남전스님을 친견하셨다고 들었는데 그렇습니까”
“진주에는 큰 무가 난다”“무엇이 넓은 땅위의 흰 소 입니까” “달빛 아래서 색깔이 필요없다” “삼계를 벗어난 사람은 어떻습니까” “가둬 놓을 수 없다” 조주록에 담겨있는 선문답들이다.
다른 선사들과 마찬가지로 조주선사의 법거량은 명쾌하고 단순하다. 그러나 그곳에는 오직 자신만이 찾을 수 있는 진리가 들어있다.
“뜰앞의 잣나무” “진주의 큰 무”등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공안들을 조주는 이렇게 태연히 쏟아놨다.
그러나 그는 곧 침묵한다. 똑같은 질문에 똑같은 답을 해놓고 , 때로는 방을 내렸다. 그러나 그는 고불처럼 점잖케 침묵할 줄도 알았다.
“무엇이 부처며 무엇이 중생입니까” “중생 그대로가 부처며 부처 그대로가 중생이다”
“둘 가운데 어느것이 중생입니까” “묻고 또 묻는 구나”중생과 부처는 둘이 아니다. 모든 삼라만상에는 불성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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