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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스틸러스의 핵, 따바레즈 | |||||
스포츠2.0 | 기사입력 2007-11-20 14:35 | |||||
K리그 구단의 한 관계자는 “외국인선수를 관리하는 게 쉽지 않다. K리그에 적응해도 잠깐 뛰고 가는 선수가 태반이다. 성공한 외국인선수라면 선수나 구단 모두 만족하는 기간은 3년 정도로 보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기준에서 보면 따바레즈는 독특한 선수다. 따바레즈는 처음부터 빛났다. 이적 첫해 정교한 프리킥과 패스를 앞세워 포항을 9년 만에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시즌 종료 후 기자단 투표로 시즌 베스트11에 이름을 올렸다. 그만큼 따바레즈의 활약은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그 빛은 오래가지 못했다. 2005년과 지난해 허벅지 부상으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2시즌 합계 44경기 출전에 11골 7도움으로 평균 수준의 성적은 냈지만 기대치에는 밑돌았다. 더구나 지방팀 소속이다 보니 따바레즈에 대한 관심도 멀어져 갔다. 그러나 올시즌 따바레즈는 다시 K리그의 중심에 섰다. 3년 전처럼 날카로운 킥과 위협적인 돌파로 포항의 거침없는 오름세를 이끌었다. 따바레즈의 오른발을 떠난 볼은 어김없이 동료들의 발과 머리를 거쳐 골로 연결됐다. 포스트시즌에서 그렇게 경남 FC, 울산 현대, 수원 삼성이 차례로 무릎을 꿇었다. 성남 일화도 11월 4일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서 따바레즈의 발을 묶지 못해 1-3으로 크게 졌다. 시즌 초반 롤러 코스터를 탔던 포항은 따바레즈의 활약에 힘입어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섰다. 21살의 철없던 따바레즈는 이제 24살의 의젓한 따바레즈가 됐다. 성공에 길들여진 유망주 따바레즈는 브라질리그에서 촉망 받는 유망주였다. 빈민가 출신의 브라질 사람들이 명예와 돈을 얻는 지름길은 축구다. 상파울루에서 태어난 따바레즈도 어려서부터 축구공을 차며 축구선수의 꿈을 키워 나갔다. 재능은 있었다. 잠재력을 인정 받아 브라질리그 최고 명문 클럽 가운데 하나인 플라멩고에 입단했다. 그리고 놀라운 성장 속도를 보이며 16살의 어린 나이에 1군 경기에 데뷔했다. 패스, 드리블 등 자신의 재능을 유감 없이 발휘하며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쳤다. 1999년부터 2001년까지 플라멩고의 리오 데 자네이루주리그 3년 연속 우승을 이끌었다. 따바레즈가 걸은 길은 순탄했다. 클럽에서의 뛰어난 활약은 대표팀으로 이어졌다. 따바레즈는 엘리트 코스를 차근차근 밟았다. 1999년 U-17 대표팀에 뽑혀 뉴질랜드에서 열린 FIFA(국제축구연맹) U-17 월드컵에 출전했다. 브라질은 이 대회 결승전에서 호주와 0-0으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8-7로 이겨 우승했다. 따바레즈는 주전 경쟁에서 밀려 단 1분도 뛰지 못했으나 4년 뒤 U-20 대표팀에서는 당당히 우승의 주역이 됐다. 2003년 아랍에미리트연합에서 열린 FIFA U-20 월드컵에서 6경기(선발 4회)에 출전했고 브라질은 결승전에서 스페인을 1-0으로 꺾고 통산 네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대표팀에서의 성공은 따바레즈에게 명성을 안겨줬다. 따바레즈는 브라질리그를 대표하는 스타 플레이어 가운데 한 명이 됐다. 올시즌 K리그 득점왕 까보레(27, 경남,18골)는 따바레즈에 대해 “브라질에서 따바레즈 이름만 대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따바레즈의 나이는 겨우 21살이었다. 어린 나이에 성공에 길들여져 있었다. 성공이 반드시 또 하나의 성공을 연결해주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릇된 가치관과 안일한 대처로 실패를 맛보기 쉽다. 따바레즈는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따바레즈는 “클럽과 대표팀에서 늘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우승의 기쁨이 줄어들면서 내 축구인생의 목표 또한 흔들렸다”고 말했다. 따바레즈에게는 변화가 필요했다. 미지의 세계로 포항은 2004년 시즌을 앞두고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최순호(45) 감독에게는 임기 마지막 해였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40승33무41패(연장전 및 승부차기 승은 무승부 처리)로 승률이 50%가 안 됐다. 정규리그 순위도 5위, 6위, 7위로 해마다 한 계단씩 내려 앉았다. 포항의 서포터들은 성적 부진을 이유로 최감독의 퇴진을 요구했다. 최감독의 입지는 불안했다. 최감독은 선수단 정리 작업에 들어갔다. 외국인선수에 가장 먼저 손을 댔다. 수비수 산토스(36, 경남)와 공격수 코난(35)만 남겨두고 모두 계약을 해지했다. 그리고 당시 코치였던 김병수(37) 기술부장을 브라질로 파견했다. 플레이메이커와 믿음직한 공격수를 찾는 게 김부장의 임무였다. 최감독은 김부장에게 외국인선수 선발에 관한 권한을 위임했다. 에이전트의 자료가 아닌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선수를 고를 것을 당부했다. 김부장은 브라질 전국을 돌며 쓸 만한 선수를 물색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도 마음에 드는 선수가 없었다. 김부장은 숙소에서 별 생각 없이 튼 TV에 나오는 브라질리그 축구경기에서 플라멩고의 따바레즈를 봤다. 따바레즈는 당시 교체 투입되자마자 경기의 분위기를 한순간에 바꿔 놓았다. 한 눈에 ‘이 녀석이다’라는 느낌이 왔다. 김부장은 따바레즈의 첫인상에 대해 “패스가 아닌 드리블로 경기를 풀어가는 게 독특했다. 전혀 새로운 스타일이라 K리그에서 성공할 것 같다는 확신이 섰다”고 기억했다. 김부장의 레이더망에 걸렸으나 따바레즈의 이적 협상 과정은 순조롭지 못했다. 플라멩고에서 따바레즈의 이적을 반대했다. 더구나 21살의 어린 선수 치고는 몸값이 만만치 않았다. 포항의 한 관계자는 “당시 따바레즈는 선발보다 교체 출전이 많았다. 청소년 무대는 몰라도 성인 무대에서 확실히 검증된 선수는 아니었다. 그러나 김부장을 믿고 임대로 영입했다”고 설명했다. 따바레즈의 계약 조건은 임대료 20만 달러(약 1억 8천만 원), 계약금 23만 달러(약 2억 원), 월봉 1만 6천 달러(약 1천500만 원)였다. 포항뿐만 아니라 따바레즈에게도 적지 않은 돈이었다. 브라질리그에서의 성공이 물질적인 풍요까지 안겨주진 못했다. 당시 브라질리그는 경제 한파로 선수들의 주급을 제 때 주지 못했다. 날마다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등 치안은 불안했다. 따바레즈는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빨리 브라질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이런 가운데 포항의 매력적인 제의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낯선 세계에 대한 도전이라는 목표 의식이 생겼다. 따바레즈는 아무런 불평 없이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달콤한 K리그 생활 “솔직히 말해 따바레즈가 이렇게까지 성공할 줄 몰랐다.” 따바레즈를 데려 온 김부장의 말이다. 포항 관계자들은 사실 따바레즈보다 함께 영입한 공격수 까를로스(32)에 대한 기대가 더 컸다. 그렇지만 까를로스는 4골(25경기)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1년 만에 짐을 쌌다. 능력이 모자랐던 건 아니었다. 까를로스는 지난 시즌 유럽축구연맹(UEFA)컵에서 2골을 넣으며 SC 브라가(포르투갈)를 16강으로 이끌었다. 거친 K리그 적응에 실패한 것이다. 따바레즈는 견뎌냈다. 날카로운 패스로 포항의 공격을 시원하게 뚫었다. 경기 템포도 경기의 흐름에 맞춰 적절하게 유지했다. 개인기를 지나치게 사용하지 않으면서 팀 플레이에 주력했다. 최감독의 입맛에 딱 맞았다. 따바레즈를 축으로 한 포항은 전기리그에서 우승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수원과 치른 챔피언결정전에서는 1,2차전 합계 득점 없이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3-4로 져 준우승에 그쳤다. 그래도 1996년 정규리그(전후기 통합) 2위 이후 9년 만에 거둔 최고 성적이었다. 전남 드래곤즈의 김종건 홍보실장은 브라질 출신 선수들이 국내 무대에 빠르게 적응하는 것에 대해 “동양 축구를 낮게 보지 않고 한국적인 정서를 금세 이해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따바레즈도 그랬다. 선수들에게 먼저 다가갔고 성격이 순해 쉽게 어울렸다. 바닷가에 있는 포항시도 고향처럼 느껴져 마음이 편했다. 따바레즈의 성공은 K리그에 대한 만족감과 굳은 의지의 결과였다. 따바레즈는 포항과 계약서에 사인할 때만 해도 한국에 대해 아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 브라질을 떠나는 데 급급했기 때문이다. 막상 한국 땅을 밟아보니 브라질과 비교해 ‘천국’이 따로 없었다. “마음 놓고 길을 걸을 수 있고 시설 등 축구 인프라도 완벽하다. 두둑한 돈까지 받는다.” 따바레즈의 한국 예찬이다. 따바레즈의 계약 조건은 1년 임대였다. 따바레즈는 완전 이적을 위해 더욱 구슬땀을 흘렸다. 그리고 그 꿈을 이뤘다. 포항은 시즌 종료 후 따바레즈를 잡기 위해 두 팔을 걷어 붙이고 달려 들었다. 이적료 160만 달러(약 14억 5천만 원), 연봉 50만 달러(약 4억 5천만 원)였다. 연봉이 150%나 올랐다. 따바레즈는 “무엇보다 한국에서 계속 지낼 수 있게 돼 기뻤다”고 말했다. 포항의 한 관계자는 “성격이 좋고 사고를 저지르지 않고 1년 동안 잘 지냈다. 외국인선수와 협상할 때 돈이 중요한 잣대지만 따바레즈의 경우 인성을 높이 샀다”고 설명했다. 특급 도우미, 정상에 오르다 2005년 같은 브라질 출신인 세르지오 파리아스(40) 감독이 포항의 새로운 사령탑으로 임명됐다. 공격적인 축구를 강조하는 파리아스 감독의 전술에서 따바레즈의 역할은 더욱 커졌다. 자신의 공격적인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그러나 포항을 상대하는 팀들이 1년 전처럼 따바레즈를 내버려둘 리 없었다. 따바레즈 경계령이 떨어졌다. 따바레즈에게 거친 파울이 집중됐다. 따바레즈는 “경기마다 상대 선수에게 많이 차였다. 부상 때문에 제대로 경기를 뛰지 못했다. 내겐 가장 슬픈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허벅지 부상으로 2년 동안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따바레즈가 부진하자 팀도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무너졌다. “팀에 대한 애정이 깊은 따바레즈로선 모든 게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마음 고생이 적지 않았다”는 게 포항 홍보팀 박준형 사원의 설명이다.
따바레즈의 발 끝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상대팀의 압박 수비에도 유연하게 대처했다. 드리블을 자제하고 수비수가 자신에게 몰리면 빈 곳에 있는 동료에게 패스하며 경기를 풀어 나갔다. 자신에 대한 수비가 느슨하면 드리블로 빠르게 치고 들어갔다. 상대팀들은 따바레즈의 능수능란한 밀고 당기기에 속절없이 당했다. 정규리그 26라운드에서 11개의 도움을 기록해 처음으로 도움왕이 됐다. 특급 도우미로 올라선 것이다. 6강 플레이오프에서 따바레즈를 전담 마크했던 이상홍(28, 경남)은 “(따바레즈는)영리한 선수다. 상대 선수의 장단점을 꿰고 있어 막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따바레즈가 K리그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라며 실력을 인정했다. 따바레즈는 지난 3시즌 동안 후반기에서는 도움보다 득점이 많았다. 올해는 반대로 도움이 절대적으로 많다. 포스트시즌을 포함해 후반기에서만 도움 8개를 기록했다. 따바레즈는 “집중 마크를 당하다 보니 감독님이 많이 움직일 것을 주문한다. 팀 플레이에 치중하나 그렇다고 플레이 스타일까지 바뀐 건 아니다. 올해 (도움이 많은 건)동료들이 내 패스로 골을 많이 넣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그동안 따바레즈를 지켜 본 동료들의 반응은 다르다. 확실히 변했다는 것이다. 예전엔 따바레즈가 컨디션에 따라 대충 뛰어 경기를 그르치는 적이 많았다. 포항 관계자들은 경기를 앞두고 “따바레즈가 오늘은 단단히 마음을 먹어야 할 텐테”라며 발만 동동 굴렀다. 그러나 이젠 그런 걱정을 하지 않는다. 포항의 맏형 김기동(35)은 “가끔 뛰기 싫어할 때가 있다. 따바레즈의 표정만 봐도 금세 알아챌 수 있다”며 “그런데 후반기 들어 눈빛이 달라졌다. 따바레즈가 마음먹고 경기에 나서니까 편하게 경기를 뛸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따바레즈는 주위의 칭찬에 대해 “내 능력보다 동료들의 도움이 컸다”며 웃어 넘겼다. 그러면서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자신뿐만 아니라 팀을 최고의 위치에 올려 놓기 위해서는 마지막 고비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선택의 갈림길 따바레즈는 올시즌을 끝으로 포항과 계약기간이 끝난다. 경우에 따라서는 12월 2일 포항스틸야드에서 벌어지는 전남과의 2007 하나은행 FA컵 결승 2차전이 포항 유니폼을 입고 치르는 마지막 경기가 될 수도 있다. 포항으로선 반드시 따바레즈를 잡겠다는 계획이다. 김현식 포항 사장은 “따바레즈는 포항 전술의 핵심이다. 올시즌 포항이 챔피언결정전까지 오르는 데에는 따바레즈의 활약이 결정적이었다. 무조건 재계약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렇지만 따바레즈로서는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할 기로에 서있다. 아드리아누(25, 인테르 밀란) 등 U-17 월드컵과 U-20 월드컵에서 함께 뛰었던 친구들은 현재 유럽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따바레즈에게는 커다란 자극제다. 따바레즈는 평소 “난 월드 스타급이 아니다”라며 몸을 낮췄지만 유럽 진출의 꿈까지 포기한 건 아니다. 국내의 한 에이전트는 “K리그에서 뛰는 브라질선수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유럽리그 진출이다. K리그에서 해외 리그 경험을 쌓은 뒤 유럽리그로 이적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는 게 일반적이다. 따바레즈도 예외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올시즌 활약으로 치솟은 몸값도 포항에게는 부담스럽다. 포항의 한 고위 관계자는 “재계약 여부는 전적으로 따바레즈의 마음에 달렸다. 요구액을 높일 경우 (재정에 한계가 있는)클럽으로서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털어놨다. 따바레즈는 재계약에 대해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챔피언결정 2차전, FA컵 결승 1,2차전 등 포항 선수로서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포항의 통역을 맡고 있는 나영준 씨는 “따바레즈는 쾌활한 성격이지만 매우 신중하다. 계약 문제와 관련해선 쉽게 말을 꺼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따바레즈는 재계약에 관한 언급 대신 이런 말을 남겼다. “한 가지 확실한 건 포항에서 보낸 4년의 시간은 참으로 행복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 내 생애에서 가장 기쁜 시기다” ※김기동이 본 따바레즈와 윤정환 K리그 역대 최고의 플레이메이커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1990년대 중반 이후로 범위를 좁혀도 고종수(29, 대전), 이관우(29, 수원), 김두현(25, 성남) 등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그렇지만 적지 않은 지도자들은 윤정환(34, 사간 도스)을 꼽는다. 윤정환은 넓은 시야와 정확한 패스 그리고 센스 있는 경기 운영으로 호평을 받았다. 1999년 7월 일본 J리그 세레소 오사카로 이적하기 전까지 108경기에 나서 15골 28도움을 기록했다. 따바레즈는 K리그 최고의 외국인 플레이메이커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11월 9일 현재 112경기에 출전해 20골 29도움으로 윤정환의 전성기와 비교해 뒤지지 않는다. 윤정환과 따바레즈는 전술적인 움직임도 상당히 비슷하다. 발레리 니폼니시(63) 감독과 세르지오 파리아스 감독은 윤정환과 따바레즈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살렸다. 부족한 수비력은 수비형 미드필더가 메우게 했다. 그 선수가 바로 김기동이었다. 김기동은 두 선수를 비교해 달라는 질문에 “플레이 스타일이 다르다. (윤)정환이는 패스를 빨리 주고 받는 등 패스 플레이로 경기를 풀어가는 데 반해 따바레즈는 위협적인 드리블로 경기의 돌파구를 연다”고 설명했다. 김기동은 “패스 연결은 윤정환의 부천이 앞서지만 위기 관리 능력에선 따바레즈의 포항이 낫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경기의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고민 끝에 윤정환의 손을 들었다. “(나도 축구선수이기 때문에)볼을 계속 주고 받을 수 있으니 (윤)정환이가 편안하고 재미있을 수밖에 없지 않겠냐”는 게 김기동의 설명이다. 안드레 루이스 따바레즈 Andre Luiz Tavares 생년월일 | 1983년 7월 30일 출생지 | 브라질 상파울루 신체조건 | 179cm/ 72kg 주요경력 | 1999년 플라멩고 입단 1999년 U-17 월드컵 브라질 대표 2003년 U-20 월드컵 브라질 대표 2004년 포항 스틸러스 입단 SPORTS2.0 제 77호(발행일 11월 12일) 기사 포항=이상철 기자 ⓒmedia2.0 Inc. All rights reserved. 무단전재 및 재배포시 법적 제재를 받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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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굿굿 용병선수중에 이성남,까보레,따바레즈 좋아함 굿굿 ~
사기유닛 따바레즈.. 진짜 무서운 선수
퍼갈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