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철형 제주도 다녀오신다는 얘기 들었습니다. 최근에 저도 다녀왔습니다. 벌써 한달 넘게 지났으니 최근도 아니로군요. 워낙 한가롭고 느긋한 일상 탈출이었던지라, 되새김질 하다 보면 달콤한 여운이 되살아 날까 싶어, 떠나는 님 옷고름 잡고 늘어지는 심정으로 여행기라는 걸 써 봤습니다. 사진도 곁들였습니다. 연습 삼아 찍은 사진들—이라기보다는 나중을 위한 헌팅 용 사진들입니다만 바다구경 시켜드리는 의미에서 같이 올립니다. 사진 클릭하면 원본 이미지가 튀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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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8일 토요일, 오후 2시 비행기를 탔다. 처음 타보는 국내선, 처음 가보는 제주였다. 전날 새벽까지 행한 음주로 인하여 12시 넘어 잠자리에서 일어나 비몽사몽 서둘러 집을 나온 터라 인간의 몰골이 아니었다. 세수도 안 하고 이도 안 닦고, 술 냄새 풀풀 풍기며 비행기에 오른 것도 처음이었다. 이륙하고 나서 커피 2잔 마셨더니 착륙이었다. 허무한 마음으로 출구를 나서자 K 선배가 기다리고 있었다. 손수 마중 나와준 선배가 고마웠다. 공항 인근 도두동에 위치한 선배네 집에 들러 물 한 사발 마신 다음 카메라만 챙겨 들고 나섰다. 이번 여행의 첫번째 가이드인 K 선배가 처음으로 안내한 곳은 도두봉. 정상에 오르자 K 선배의 지정학 강의가 시작되었다. 대부분 기억이 안 나고, 제주도에 있는 봉우리의 개수가 358개라는 것과 에로틱한 이름을 가진 지형지물이 많다는 것만 기억 날 뿐이다.
도두봉에서 (1)
오후임에도 멀리 안개가 자욱하여 쾌청하진 않았지만, 복잡다난으로부터 잠시 벗어난 기분만은 달콤하기 그지 없었다. 도두봉을 내려와 포구로 나갔다. K 선배와 나란히 길을 걷다 보면 중단 없는 전진이 불가능했다. 선후배들, 동네 어른들, 친척들—한적한 바닷가 마을인데도 고개만 돌리면 아는 사람들 투성이다. 제주 사투리로 나누는 대화를 듣고 있노라면 대충 짐작만 할 수 있을 뿐 무슨 말인지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다. 방파제에서 돌아오는 길에, 제주시 전역에 소문 자자하다는 한치횟집 평상에 자리를 잡았다. 당일 잡아 올린 한치들을 커다란 수족관에 풀어 두었다가 주문 들어오는대로 건져 올려 회를 쳐 낸다. 출출하던 차에, 소주 한잔 곁들여 넘기는 한치회 맛이 새벽 이슬 같았다. 한가로운 저녁 바람이 횟감 데치듯 지나간다. 그대로 신선이 될 법 하다.
도두봉에서 (2)
도두봉에서 (3)
K 선배와 느긋하게 소주잔을 기울이며 제주도민의 삶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제주에 없는 것 세가지—대문, 도둑, 거지다. 요즘 들어 가끔씩 빈집에 도둑이 들어 세간을 집어가기도 한다지만, 복잡한 일이라고는 일년 내내 거의 없고 한 두어달 바다에 나가 일하면 일년치 양식이 생기기 때문에 욕심만 없으면 먹고 살 궁리로 지지고 볶을 일도 없다고 한다. 두어달 남짓한 조업철이 지나면 딱히 할 일이 없기 때문에 주색잡기에 빠져 폐인의 길을 걷는 사람들도 많단다. 듣자니 내 적성에 딱 맞겠다 싶었다. 한 2년쯤 허름한 집 한 채 빌려놓고 제주에 내려와 처박혀 살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제주에 내려가면서 애초에 별다른 계획을 잡지 않았더랬다. K 선배를 비롯한 현지 가이드들이 버티고 있는데다가, 애초에 이곳 저곳 부산하게 돌아다닐 생각도 없었다. 그저 느긋하게 바닷바람 쐬면서 광합성이나 해 보자는 무계획의 계획이었다. 선배는 마라도에나 다녀오라고 했다. 마라도 가봐야 특별히 볼거리도 없지만 그래도 예까지 왔으니 최남단에 발도장을 찍음으로써 이번 여행의 상징성을 확보하라는 지령이었다. 마다할 것 없었다. 그렇다면 다음날은 마라도—하는 사이 해가 저물었다. 집으로 돌아갔다. 밤 11시쯤 일어나 장어낚시를 나가기로 하고, 선배와 나는 나란히 누워 초저녁 잠을 청했다.
한숨 자고 일어났더니 밤 10시가 지났다. 선배가 밥통에 들어있던 찬밥으로 야식을 만들었다. 몇 가지 나물에 참치 통조림 하나를 따 넣고 고추장, 참기름으로 지글지글 볶아 순식간에 만들어낸 참치나물볶음밥. 김치와 제주식 마늘 짱아치 곁들인 볶음밥은 가히 별식이었다. 내가 맛있다고 감탄하자 선배는 맛있기는 뭐가 맛있냐며 나무라듯 찬사를 사양했다. 마침 어머님께서 중국으로 여행을 떠나신 터라 제대로 된 음식 대접도 못하게 됐다며 선배는 오히려 미안해 했다. 또, 선배의 작은형님네 배를 빌려 내게 밤바다 낚시 체험을 시켜 줄 작정이었는데 하필 엔진이 고장 나는 바람에 못 나가게 됐다고 연신 투덜댔다. 공짜로 재워주고 먹여주는 것만으로도 신세라면 신세인데, 이래저래 마음 써 주고 투덜대며 미안해 하는 선배가 고맙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야식을 먹고 나서 장어낚시 장비를 챙겼다. 장비랄 것도 없었다. 낚시줄에 낚시 바늘을 달고 빈 페트병에 칭칭 감아 네 개를 만들었을 뿐이다. 저녁에 횟집서 나오던 길에 공짜로 얻어온 한치 내장이 미끼였다. 헝겊 배낭에 페트병과 비닐 봉지를 챙겨 메고 집을 나서 해안도로를 따라 나란히 걸었다. 한치잡이, 갈치잡이 어선들이 내뿜는 불빛이 휘황찬란 멀리 수평선을 촘촘히 밝혔다.
K 선배는 어린 시절부터 혼자 장어낚시를 하며 발견해 둔 장어들의 은닉처를 ‘구멍’이라고 불렀다. 구멍 노출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늘 혼자 다닌다고 했다. 그만의 ‘구멍’ 중 한 곳에 도착했다. 예전에 마을이 있던 자리인데, 제주공항을 확장하면서 마을이 사라질 때 거기 살던 사람들이 떠나며 시비를 세워두었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꾹이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메끝에 홀로 오르니
흰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
정지용의 ‘고향’, K 선배와 더불어 술에 취하면 곧잘 부르던 노래였다. 정지용 시인의 고향은 충북 옥천인데, 제주 바닷가 마을에 그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니 엉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K 선배도 거기 시비가 세워진 걸 처음 봤을 때 어리둥절했다고 했다. 하기야 시인의 고향이 무슨 상관이랴, 시에 담긴 쓸쓸한 향수만은 어느 땅인들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제주 전역에 걸쳐 거의 해변에서만 단물이 난다고 한다. 한라산에서 땅속 깊이 내려간 단물이 해변에서 솟아오른다는 용천현상—예전 지리시간에 배운 기억이 났다. 예로부터 단물이 나는 곳 인근에서만 마을이 생겼다고 한다. 또 거기 물 나는 자리에는 돌벽을 세워 한결같이 공동목욕탕을 만들어 두었다. 지금도 목욕탕에 고인 물은 그냥 퍼 마셔도 될 정도로 맑고 깨끗하다. 단물이 솟아 짠물과 만나는 곳에 장어들이 각자 영역을 이루어 서식한다. 선배 주변에서 빈둥거리던 나는 가끔 심부름을 하기도 했지만, 장어가 거기 살든 말든, 그저 어슬렁거리며 밤파도와 밤바람에 취했다. 서성거리다가 커다란 바위에 앉아 한동안 수평선을 바라보기도 하고 팔 베고 누워 밤하늘을 올려다 보며 담배를 피우기도 했다. 선배는 자기 같은 낚시꾼은 대한민국에 둘도 없을 거라며 낄낄거렸다. 다들 번듯한 낚시대 들고 나와 폼 나게 앉아 있지 자기처럼 페트병에 줄 감아 끼고 몇 시간씩 쪼그려 앉아 있는 낚시꾼은 없을 거라 했다. 폼이 안 나서인지 낯선 육지사람이 얼씬거려 부정이 탔는지, 불행하게도 조업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길쭉한 물고기 두 마리를 낚아 올리긴 했는데 장어는 아니었다. 고기 이름은 까먹었는데, 메기를 낚으러 강에 나갔다가 메기 대신 미꾸라지를 잡아 올린 격이라고 선배가 말했다. 자연산 장어 맛을 드디어 보게 될까 내심 기대를 키웠더니만, 아쉬웠다. 새벽 1시 30분이 지나자 그만 포기하기로 하고 철수했다. 집에 돌아가 씻고, 모기장 안으로 들어갔다. 자리에 눕기 전, K 선배가 고개를 숙인 채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에 선배는 고개를 들며 말했다. “내일 아침은 삼겹살이다. 그것만이 우리의 유일한 생존의 길이다!”
* * *
제주에서의 두 번째 날. 늦은 아침을 먹었다. 반찬은 삼겹살이었다. 집을 나섰다. K 선배는 다음날 있을 면접시험 준비를 해야 한다며 도서관으로 갔다. 제주시내 버스 정류장에서 선배와 헤어졌다. 일단 모슬포까지 한 시간쯤 버스타고 가서 마라도행 도선 대합실을 찾아 갔다. 2시에 모슬포 출발해서 가파도, 마라도에 승객 내려놓고 곧바로 나오는 배가 마지막 배라고 한다. 2시 배를 타면 갔다가 그냥 오거나 섬에서 하룻밤을 자야 했다. 대합실 창구 여직원이 무척이나 불친절했다. 마라도 들어갔다 해지기 전에 나올 수 있는 길이 없을까 몇 마디 더 물었지만, 못생긴 고양이랑 얘기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 이내 포기하고 나왔다. 인근 파출소에 가서 사슴처럼 생긴 젊은 의경한테 물었더니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택시를 잡아타고 송악산 유선장으로 향했다. 2시 반에 그곳에서 마라도 유선이 출발한다. 승객들을 내려 주었다가 4시 반에 다시 태우러 온다고 했다. 마라도로 향했다.
마라도 가는 배 위에서 (1)
마라도 가는 배 위에서 (2)
3시 마라도 도착. 섬을 일주하는 길 초입에 해물 자장면 집이 길을 막듯 버티고 있다. 우선 자장면 한 그릇을 비웠다. 대한민국 최남단까지 와서 하고 많은 음식 중 하필 자장면이라니, 뭔가 손해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옆 테이블에 앉은 가족의 얘기를 엿들었다. 아빠가 어린 남매에게 당부한다. “마라도에 와서 짜장면 먹었다는 건 비밀이다. 알았지?” 듣는 둥 마는 둥, 아이들은 짜장면에 열중했다.
[마라도] 바다 가는 길(1)
[마라도] 대화
길에 나서자 마른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졌다. 일단 비가 내리기 시작한 다음 구색을 갖추기라도 하듯 부랴부랴 먹구름이 몰려 오는 형국이었다. 덕분에 카메라를 가방에 도로 집어 넣고 헤엄치듯 비바람 속을 걸어야 했다. 처음 출발했던 지점으로 거의 다 돌아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비가 그치고 구름이 걷혔다.
[마라도] 바다 가는 길(2)
듣던대로 마라도는 작은 섬이다. 섬 한바퀴 도는데 걸어서 30분 남짓이다. 푸른색 잔디의 평지, 그리고 망망대해. 이런 곳에서 산다면 정말 느긋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한 일년쯤 살아보면 어떨까, 심심해서 미쳐버릴 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제주도 송악산 선착장으로 돌아가는 4시 30분발 배가 들어왔다. 자장면, 소나기와 함께 한, 1시간 30분간의 아쉬운 마라도 방문이었다.
마라도 떠나는 길-선착장에서
* * *
시간이 되면 산방산에 가보라는 K 선배에 조언도 있었고, 버스 타고 지날 때나 배 위에서 바라본 산방산의 모습이 인상 깊었기에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5시, 시간이 너무 늦었다. 산방산에 갔다가 근처에서 일박 할까 하다가 그냥 송악산에나 올라갔다 내려오기로 마음 먹었다.
송악산 (1)
송악산 (2)
쌍둥이봉
산에 올랐다. 높지 않은 산이라 잠시 걷다 보니 끝이었다.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어 정상에 갈 수는 없었으나, 가로막힌 지형이 없어 중턱에만 가도 사방이 확 트였다. 말 농장의 말들이 가파른 산비탈 곳곳에 흩어져 각개전투 하듯 풀을 뜯었다. 가파도 마라도가 풀쩍 뛰면 건너갈 듯 다가왔다. 쌍둥이봉이며 멀리 산방산의 모습이 꿈속인 듯 예뻤다. 해가 기울기 시작하며 풀이며 나무들, 산언덕, 바다, 바람마저 아득함 속으로 잠겨 들었다. 술 마시지 않아도 취한 듯 절로 노래가 나왔다.
늦은 햇살 (1)
늦은 햇살 (2)
늦은 햇살 (3)
하산 길, 그냥 가기 아쉬워 가건물 식당 옆 파라솔 아래 자리를 잡았다. 소라, 멍게, 문어, 한치가 사이 좋게 담긴 접시와 소주 한 병이 나왔다. 한 병을 비우는 사이에 산등성이 위로 해가 걸렸다. 천구에 붉은 구멍이 뚫린 듯, 거대한 장막을 걷어 버리면 온통 피빛 하늘이 열릴 듯 했다. 신선이 되어버린 기분에 소주 한 병이 두 병이 되었다. 세 병째 비우기 시작하자 식당 주인 아저씨가 삼겹살 접시를 들고 나와 마주 앉는다.
송악산의 일몰
서울이었다면 한 자리에서 소주 세 병은 만취량이다. 하지만 공기 맑은 산 중턱에서 바다 바람을 끼고 마시는 술에 취하는 줄 몰랐다. 세 병을 다 비우고 일어섰다. 콜택시를 불러달라 청했더니 커다란 중형택시가 식당 앞까지 올라왔다. 식당집 가족들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차에 올랐다. 정류장까지 택시 타고 가서 버스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었으나, 곧장 제주시까지 택시로 가버리는 게 낫다는 식당집 주인 아저씨 말을 따랐다.
처음 만나는 제주도 사람들과의 대화는, 서울서 휴가 내려왔다고 말하는 순간부터 거의 비슷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제주에 비하면 서울은 사람 살 곳이 못 된다고 다들 이구동성이다. 식당집 주인아저씨도, 택시 기사 아저씨도 같은 얘기를 한다. K 선배도 10년을 넘긴 서울 생활 청산하고 제주에 직장 잡아 컴백하고 싶어하는 걸 보면 그들 얘기가 맞다 싶었다. 평생 서울서 살다 제주에 내려와 살면 적응기간이 최소 삼년이란 얘기도 했다. 삼년 동안은 심심하고 따분해서 골치가 아프다가도 그 기간만 지나면 반절은 제주 사람이 된다고 한다. 그제서야 비로소 서울에 가면 무슨 수로 이런 복잡한 동네에서 살았나 싶어 놀란다고 한다.
8시가 못 돼 도두에 도착했다. K 선배는 저녁 약속이 있다고 했으니 10시나 돼야 돌아올 터였다. 혼자 빈집에 가 있기도 뭐하고, 생맥주나 홀짝거릴 생각으로 K 선배 친구가 하는 호프집으로 갔다. 전날 K 선배랑 돌아오는 길에 들렀었기 때문에 주인장 형님과는 이미 안면이 있었다. 야외 테이블에 주인장 말고 한 명이 더 나와 있었다. 역시 K 선배의 친구인 경환 형님이었다. 생맥주 한잔을 앞에 두고 얘기 나누던 경환 형님은 서울서 손님이 왔으니 대접을 해야 겠다며 일어나 사라졌다. 잠시 후에 나타난 그의 손에 망태가 들려 있었다. 흑돔 십여 마리가 그 안에서 펄떡거렸다. 오후에 바다에 나가 잡아 올린 놈들이란다. 주인장 형님이 바닥에 도마를 깔고 한마리씩 회를 쳤다. 접시 위에 담긴 흑돔회가 송악산만큼 높아졌다. 지나가던 동네 선배 두 명이 자리를 같이 했고 연락 받고 달려온 후배 하나가 뒤늦게 합석했다. 순식간에 시작된 흑돔회 파티였다. 테이블 위에, 산비탈에 흩어진 말들처럼, 소주병이 늘어갔다.
그날 하루 저녁에 내가 마신 소주가 대략 다섯 병이었으니 신기록이었다. 서울이었다면 하루 저녁 다섯 병은 치사량이지만, 공기 맑은 바닷가 마을에서 갓 잡아올린 자연산 흑돔을 안주 삼아 마시는 술에는 필시 마법이 담겨 있었다. K 선배 아버님 주량이 대략 소주 열병쯤 된다는 얘기를 듣고 상상 불가 기겁한 적이 있었는데, 몸소 다섯 병을 마시고 보니 조금은 상상이 됐다. 그러고 보니 제주에 내려가 살겠다는 생각은 접어야 겠다. 폐인 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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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마법이 담긴 술이었다지만 소주가 다섯 병인지라 다음날 늦잠을 잤다. 하긴 술 먹지않은 드라이한 정신이었다 한들 새벽같이 일어나 부산 떨 이유도 없었다. 한가로움과 느긋함이 이번 여행의 모토였다. 늦게 일어나 아점을 먹고, 이번 여행의 두 번째 가이드인 후배 J를 만나기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J와 함께 벤치에 앉아 지도를 펼쳐 놓고 여정을 논의하고 있자니 한 남자가 접근했다. EF 소나타를 36시간 렌트하는데 11만원이라 했다. 10만원에 합의하고 따라 나섰다. 가이드인 J가 운전사 역까지 자청했다. 제주 동북단을 가로지르는 자동차 여행에 나섰다.
J가 처음 안내한 곳은 함덕해수욕장. 피서철 지난 백사의 해수욕장은 몇몇 낚시꾼을 제외하고는 무인지경이었다. 작은 섬으로 넘어가는 구름다리 위에서 물을 내려다보니 어찌나 맑고 투명한지 마시면 단맛이 날 것 같았다. 사진으로만 보던 코발트 빛 맑은 물과 백색 모래, 육안으로 보기는 처음이었다. 함덕해수욕장은 해방 이후 대대본부가 주둔했던 곳으로 4.3 항쟁 당시에는 학살과 유기의 현장이었다고 한다. 저 만치 물 깊은 곳까지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맑은 바다와, 모래인지 물인지 구분할 수 없을 지경으로 곱디 고운 백사장, 그 위로 수정 같은 햇살이 내리고 비단 같은 바람이 스친다. 이처럼 평화로운 곳에 양민의 피가 넘쳐 흘렀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도록 미워하다가도 이곳에 오면 모두 용서하고 서로 끌어안을 듯 한데 말이다. 아예 인적이 없기에 미워하고 용서할 사람도 없으니 J라도 끌어안을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함덕 해수욕장 구름다리
[함덕] 구름
하늘빛 바다
낚시꾼의 자전거
함덕을 떠나 김녕해수욕장 부근으로 갔다. 방파제 끝까지 차를 몰아 빨간색 등대 아래서 J가 가져온 김밥과 복숭아를 먹었다. 제주의 대부분 등대들은 빨강, 노랑, 혹은 하양의 단색이었다. 멀리서도 눈에 잘 띄게 하기 위해 원색으로 칠해 놓았을 것이라 추측해 보지만, 어차피 등대의 용도는 야간에만 의미가 있으니 무슨 색으로 칠해도 상관 없을 것이었다. 벽면을 단원색으로 칠하는 대신 총천연색으로 재미난 그림들을 그려 놓아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커다란 돌하루방 모양의 등대가 있다면 여러모로 쓸모가 있을 것도 같았다. J가 들려준 돌하루방의 유래가 떠올랐다. 다산을 기원한다는 일차적인 의미도 있지만 돌하루방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한라산을 비롯하여 제주의 전체적인 지형에 여성의 기운이 득세하기 때문에 음기를 상쇄하여 조화를 꾀하는 방편으로 예로부터 돌하루방을 만들어 세웠다고 한다. 돌하루방을 뒤에서 보면 직립한 남성의 성기를 닮아 있다고 했다. 듣고 보니 그랬다. 돌하루방 모양의 등대을 세운다면 여러모로 쓸모가 있을 것이다.
[김녕] 등대
짙푸른 물 위로 테트라포드 더미가 방파제를 접해 솟아 있었다. 틈새로 아래를 내려다보니 등골이 오싹했다. 방파제에 나와 술을 먹다가 그 아래로 떨어져 실종되는 취객들이 매년 부지기수라고 한다. 가끔씩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서도 태공들은 미끼를 던져놓고 고기를 기다린다. 테트라포드 더미를 넘어 나가다 발 한번 잘못 디디면 천길 물속 미로에 갇혀 물고기 밥이 되리라 생각하니 낚시꾼들의 용기와 집념이 가상하다. 방파제 난간 바닥과 테트라포드 곳곳에 중국집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송민반점. 그들의 집념과 용기는 더더욱 가상하다. 자장면이나 시켜 볼까 했으나 시원한 바람과 탁 트인 바다만으로도 배가 불렀다. 방파제 난간에 서서 취객 흉내를 냈다. 바다에 물을 보탰으나 수위에는 변함이 없다.
[김녕] 송민 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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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제주군 구좌읍에 위치한 비자림으로 향했다. J가 강력히 추천하는 곳이었다. 천연기념물 제374호인 비자림은 2,800여 그루의 500~800년생 비자나무를 주종으로 하여 나도풍란, 흑난초, 콩짜개란, 비자란 등 희귀 식물들이 자생하는 숲 지대로, J가 어린 시절부터 철마다 찾아와 사색에 잠기던 곳이라고 했다. 푹신한 흙길을 따라 숲 안쪽으로 들어가니 촘촘한 나뭇잎 지붕이 해를 가렸다. 숲 가운데 공터 벤치에 앉았다. 주의 깊게 귀 기울이면 나무들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J가 흙바닥에서 보말 껍질들을 발견하고는 저것들이 왜 여기 있을까 의아해 했다.
“이 숲이 최근까지 바다였다는 증거다.” 내가 말하자 J는 어이 없다는 듯 웃었다. J가 풀어놓는 어린 시절의 얘기들, 비자림에서의 추억담을 들으며 한시간 가까이 머물렀다. 나무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성산으로 향했다.
[비자림] 숲길 (1)
[비자림] 숲길 (2)
[비자림] 숲길 (3)
성산으로 간 것은 우도행 배를 타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성산에 와서 일출봉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4시 배를 타기로 했던 일정을 늦추기로 했다. 우선 일출봉 입구 근처에 갈치요리 전문점이라 써 붙인 식당으로 들어갔다. 드디어 갈치국을 먹어보나 했더니만 여름 이후로 찾는 손님이 많지 않아 갈치국은 팔지 않는단다. 갈치 구이와 조림을 시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이번에 제주 내려와서 가본 곳 중 제일 마음에 드는 곳이 어디냐고 J가 물었다.
“마라도.”
J는 실망스러운 눈으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아니다.” 내가 다시 입을 열자 J의 눈이 반짝였다. “역시 송악산이 인상 깊어.”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내가 말했다. “비자림도 나쁘지 않았어.”
J는 웃음을 터뜨렸다. 식당을 나와 일출봉에 올랐다.
성산 일출봉
일출봉에서 바라본 북제주
[일출봉] 해변 가는 계단
일출봉에 오르느라 J와 나는 흠뻑 땀을 흘렸다. 내려오는 길에 노천 카페에 들러 땀을 식히는 사이 빗방울이 떨구며 먹구름이 지나갔다. 일출봉을 내려와 인근 동암사로 들어갔다. 내가 경내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동안 J가 불당 안으로 들어갔다. 무슨 기도를 드렸느냐고 나중에 묻자 J는 비밀이라 했다. 선착장으로 차를 몰았다. 날이 저물기 시작했다.
[동암사] 서까래, 부연
일출봉에서 바라본 우도
[성산 선착장] 일몰
* * *
6시발 우도행 도항선에 차를 실었다. J와 나는 차에서 나와 갑판에 올랐다. 배가 출항하자 거대한 V자가 물살을 가르며 꽁무니를 쫓아왔다. 거센 바람이 차갑지 않았다. J와 나는 갑판 난간에 나란히 몸을 기댄 채 말 없이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일출봉을 비롯한 제주의 낮은 산과 봉우리들이 붉은 어스름 속으로 천천히 몸을 숨겼다. 실루엣으로 지나가는 배 위에서 어부들이 손을 흔들었다. 꿈 속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바람이 조금 차가워 졌을 때 우도항에 도착했다. J가 인터넷을 검색해 미리 점 찍어 놓았다는 숙소로 전화를 걸어 위치를 확인했다. 비양도로 향했다.
우도행 도항선
배 위에서 바라본 등대
배 위에서 바라본 일몰 (1)
배 위에서 바라본 일몰 (2)
제주에서 태어나 자란 J도 우도는 처음이었다. J의 말에 따르면, 제주 사람들이 다소 패쇄적인 태도로 육지 사람들을 대한다고 하는데, 우도 사람들은 한술 더 뜬다고 한다. 불친절한 우도를 불평 성토하는 여행기가 많았다며 J가 걱정했다. 한동안 가다 보니 우리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차를 세우고 마침 길을 지나던 노인 부부에게 조심스레 길을 물었다. 걱정과는 달리, 노부부가 합심으로 친절하고 소상히 길안내를 해 주었다.
제주에 머문 동안 불친절함을 체험한 것은 딱 두 번이었다. 전날 마라도 가는 길에 모슬포에서 만났던 중년 남자가 첫번째였다. 마라도 가는 배 타려면 어느 길로 가느냐고 그에게 물었더니, “유람선 타려면 저쪽 길로 가고, 가파도 들렀다 마라도 가는 배 타려면 이쪽 길로 가라”고 대답했다. “마라도 갔다 나오려면 유람선이 나을까요?”라고 내가 다시 묻자, 남자가 대답했다. “그건 당신 좋을대로 할 일이지 내 알 바 아니다.”
‘이쪽 길’로 들어서는 남자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그 뒤를 따라 10분쯤 걸었다. 대합실이 나왔다. 남자가 안으로 들어갔다. 따라 들어갔다. 가파도 배표를 끊은 남자는 나를 힐끗 한번 쳐다보고는 대합실 밖으로 사라졌다. 나는 속으로 물었다. ‘저 남자는 왜 나를 미워하는 걸까?’
불친절함의 두 번째 사례는 앞서 썼듯이, 갈 테면 표 사고 말 테면 꺼져라는 식의 태도를 보여주었던, 고양이처럼 생긴 대합실 여직원이었다. ‘이 여자도 왜 나를 미워하는 걸까?’
이 둘을 제외하고는, 제주도에서든 우도에서든 모두들 하나같이 친절하고 상냥했다. ‘모두가 나를 미워하는 것은 아니다.’
세갈래 길이 나왔다. 길가 원두막에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J가 다시 길을 묻기 위해 원두막 앞에서 속도를 줄이며 차창을 내렸다. “그냥 가자. 그냥 가.” 내가 말렸다.
왜냐고 묻는 듯 J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 처자, 무척 불친절할 것 같다. 그 왜, 시골 마을 어디나 뭐랄까, 정신적으로 도전 받는, 영어로 말하면 멘탈리 챌린지드(mentally challenged)한 마을 구성원이 한명쯤 있잖아? 저 처자도 그 쪽 부류인 듯.”
그렇기 때문에 어떤 대답이 나올 지 오히려 더 궁금하다고 J는 말했지만, 내 뜻에 따랐다. 나는 고개를 돌려 처자를 바라보았다. 언뜻 보기에 20대 초반으로 보이기도 하고 달리 보면 30대 같기도 하여 나이를 짐작할 수 없었다. 겁 많은 토끼의 귀 같은 처자의 시선이 잠시 뒤를 따라왔다. 뒷덜미가 간지러웠다.
비양도는 우도 동쪽 끝에 위치한 또 하나의 어엿한 섬이지만 방파제로 연결되어 있어 차를 몰고 들어갈 수 있었다. 인터넷 상으로는 등머을 콘도라고 알려져 있으나 2층 건물 외벽에는 커다랗게 등머을 민박이라 적혀 있었다. 슬리퍼를 끌고 나온 민박집 청년의 안내를 받아 2층으로 올라갔다. 방에 들어가자 입구 맞은 편 커다란 창을 통해 동쪽 바다가 훤히 보였다.
오던 길에 농협 하나로 마트를 보았었다. 저녁 거리를 사기 위해 J와 함께 차를 몰고 나갔다. 원두막을 지날 때 처자를 다시 보았다.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처자도 손을 흔들어 주었다. 어스름을 밝히듯 그녀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 올랐다. 통일된 조국 같은 미소였다. 역시 모두가 나를 미워하는 것은 아니었다.
식료품을 구입해 숙소로 돌아갈 때도 그녀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녀 역시 손을 흔들며 밝게 웃었다. 마침내 도래한 세계평화 같은 웃음이었다. 저녁 어스름이 짙은 어둠으로 변했다.
[우도] 비양도의 밤 등대
점심을 늦게 먹었기에 아직은 배가 고프지 않았다. J와 나는 일단 바닷가로 나갔다. 등대와 낚시꾼들의 실루엣 너머로 한치잡이 어선들의 환한 불빛이 수평선에 가득했다. 제주에 오면 총총한 밤하늘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했으나, 우도에서의 화창한 밤하늘에도 별이 많지 않았다. 바다에 떠 있는 어선들의 불빛 때문이라 생각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밝으면 얼마나 밝을까, 별빛조차 보이지 않는다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온통 불빛으로 치장한 수평선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애써 보았지만 카메라가 흔들려서 여의치 않았다. 바위 위에 올려놓고 시도하자니 구도가 안 잡혔다. 삼각대가 아쉬웠다. 감도를 높이기 위해 메뉴 버튼을 눌렀을 때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감도가 ISO 100에 가 있었던 것이다.
애초에 감도가 ISO 50에 맞춰져 있는지 확인하지 않았던 것이 실수였다. 50과 100, 한 스텝 차이임에도 PC에 옮기고 보면 육안으로도 화질 저하가 확연하다. 앞서 이틀간 찍은 사진들이 모두 허사가 됐다 싶어 속이 상했다. 허망한 마음으로 궁시렁대고 있자니 명상에 잠겨 있던 J가 다가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CCD와 화소, 필름 감도, 이미지 압축 형식 등, 디지털카메라 개론을 J에게 일장 늘어 놓았다. 떠들고 있는 사이에 속상한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나야 어차피 이제 겨우 디지털 카메라로 막 사진을 배우기 시작한 초보에 불과할 뿐이었다. 연습 과정에서 이런 저런 실수는 늘 있게 마련이고 누구나 실수를 통해 배워나간다고 자위했다. 카메라를 가방에 집어 넣고 바람을 피해 어렵사리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담배 연기를 바람에 실어 보내며 한동안 밤바다를 향해 서 있자니 피로감이 몰려왔다. 배가 고팠다. 숙소로 향했다.
* * *
[비양도] 등대
[비양도] 해변(1)
[비양도] 해변(2)
우도의 아침이 밝았다. 전날 밤, 건물 옥상에 올라가 바다 쳐다보며 시간 보낸 탓에 새벽 세시 넘어 잠자리에 들었었다. 7시 반쯤 잠에서 깼다. 넓은 창에 바다가 가득했다. 여행의 마지막 날이었다. 마음이 분주했다. 점심때까지 우도에 있다가 오후에는 중문으로 가자고 J가 제안했다. 아침을 먹고 9시쯤 나섰다. 차에 짐을 두고 비양도 동쪽 해변으로 다시 나갔다. 전날보다 쾌청한 날씨였다. 낮게 흩어진 구름 위로 티 없는 푸르름이 펼쳐졌다. UV 필터를 카메라에서 떼어내고 CPL 필터로 갈아 끼웠다. 감도 설정이 제대로 되어 있는지 다시 확인했다. 비양도를 떠나 우도봉을 향했다. 원두막 부근을 지날 때 전날 보았던 그 처자를 다시 보았다. 아침 햇살을 맞으며 길가 담벼락에 얌전히 등 기대고 앉은 모습이 해바라기 같았다. 손을 흔들자 웃는 얼굴이 활짝 피었다.
[우도봉 가는 길] 우도의 하늘
[우도봉 가는 길] 우도봉
차는커녕 사람조차 만나기 어려운 한적한 도로를 달렸다. 구불구불한 길들이 널찍하진 않지만 어디를 가나 포장이 말끔했다. J는 간만에 운전이 즐겁다고 했다. 우도봉 꼭대기는 우도 어디에서든 빤히 보인다.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다 보니 우도봉 진입로가 나왔다. 주차장에 차를 두고 들어서자 가파르게 기울어 오른 초록의 평원이 펼쳐졌다. 오르막길 아래 마차와 말들이 대기하고 있다. 돈 얼마를 내면 올라타고 돌아볼 수 있었다. 내가 J에게 물었다. “이런 곳에 사는 말들은 행복할까?”
“히힝, 푸드덕.” 말 한 마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J도 고개를 끄덕인다.
[우도봉] 마차(1)
[우도봉] 마차(2)
[우도봉] 우도봉 평원
섬의 모양이 소가 머리를 내밀고 바다에 드러누운 형상이라 하여 우도 또는 소섬이라 불렀다 한다. 우도라는 지명을 이미 알았으니 소를 연상했을 뿐이지, 전날 성산 일출봉에서 보았던 섬의 형상은 소 같아 보이지만은 않았었다. 이 섬을 우도라 부른 것은 예로부터 소가 사람에게 친숙한 동물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새삼 소가 애처롭다. 평생 풀만 먹고 힘쓰며 살다가 죽어서는 머리부터 꼬리까지 죄다 잡아 먹힌다. 그것도 모자라 가죽으로는 옷이며 구두 따위를 만들어 버린다. 구두가 되고 나면 사람들 발에 밟혀 죽어서도 고생이다. 우도봉은 소의 머리에 해당한다. 우리말로 소머리오름이라 부르기도 한다. 우도봉에 오르는 사람들은 커다란 소의 머리를 자근자근 밟고 다니는 셈이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죽어서 섬이 되었다 한들, 소의 수난은 끝이 없다. 천국에 가 보면 사람이라곤 간데 없고 소들만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도봉
우도봉에서 바라본 성산 일출봉(1)
우도봉에서 바라본 성산 일출봉(2)
우도봉에서 바라본 지미봉
[우도봉] 내려다본 바다
우도봉의 하늘
* * *
우도봉 다음으로 향한 곳은 검멀레였다. 엉뚱한 길로 접어드는 바람에 빙 돌아갔다. 동쪽 해안도로를 밟아 다시 남쪽으로 달려가니 검멀레였다. 우도봉 동남쪽 절벽 아래였다.찾고 보니 아까 우도봉 가느라 지나쳤던 곳에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검은 모래가 해변을 덮고 있다고 하여 검멀레다. 이름 그대로 모래가 검었다. 숯가루 같은 모래사장을 가로지르면 동안경굴 입구가 나온다. ‘동쪽 언덕, 고래가 사는 동굴’이란 뜻으로 우도팔경 중 하나다. 안쪽에 ‘콧구멍’이라 불리는 이중동굴이 있다는데 음악제가 열릴 정도로 넓고 크다고 한다. 콧구멍이라면 필시 소의 콧구멍을 일컫는다. 안으로 들어가면 졸지에 코딱지가 될 테지만 마침 밀물 때라 들어갈 수 없었다. 입구 안쪽으로 내려가니 갯바위 표면에 작은 벌레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얼른 밖으로 나왔다.
검멀레
[동안경굴] 바위의 표정
검멀레를 떠나 동쪽 해안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달렸다. 찍어야 겠다 싶은 풍경이 보일 때마다 차를 세우고 카메라를 들었다. 바람이 세 졌는지 영일동 일대 파도가 아침보다 높았다. 아예 길가에 차를 세워두고 나와 한참이나 파도를 구경했다. 갯바위에 부딪힌 파도가 사람 키 갑절이 넘는 포말을 뿌리며 흩어졌다. 태평양 물이 발끝까지 와 있구나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다. 시간 가는 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점심 때가 지났다. 배가 고프지 않은 것이 이상했다. 서귀포 중문까지 가자면 서둘러 우도를 벗어나야 했다. 하지만 이대로 떠나기엔 아쉬웠다. J와 상의한 끝에 결국 중문을 포기했다. 오후까지 우도에 머물기로 결정하자 마음이 조금 느긋해졌다.
[영일동] 파도(1)
[영일동] 파도(2)
해안도로를 따라 계속 달렸다. 하룻밤 묵었던 비양도가 나오자 고향인 듯 반가웠다. 전흘동에 이르니 하얀색 등대와 돌로 만든 망루가 솟아 있다. 다시 차를 세웠다. 졸음이 온다며 의자를 젖히고 참을 청하는 J를 두고 나갔다. 망루에 오르자 짙푸른 물 위 먼발치까지 점점이 박힌 하얀색 자국들이 눈에 들어온다. 가만 보니 해녀들이 물질을 하는 광경이다. 숨이 턱 막힐 지경으로 일대 장관이었다. 우도의 여성들이 죄다 여기 와 있었던 건가 싶었다. 감탄은 잠시, 이내 마음을 경건히 했다. 내 눈에 장관이긴 해도 그들에게는 몸을 던진 생업이었다. 등대 오는 길에 물질 나갈 채비를 하는 해녀들을 만났었다. 모두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들이었다. 한번 들어가면 물에 얼마나 있을지, 저렇게 물질 하고 나면 얼마를 벌지 궁금했다. 바닥에 널린 어구며 빈 바구니들을 피해 주변을 오가며 셔터를 눌러대고 있자니 이따금 사람들이 다가와 사진기를 내민다. 사진사라도 된 듯 신중하게 폼을 잡았다. 대부분 자동 카메라였다. 내가 찍은 사진이 어찌 나올지 궁금했다. 짙푸른 바다, 파도, 하늘, 바람—한 시간쯤 머물렀을까. 해녀들의 물질은 여전히 한창이다.
[전흘동] 망루
[전흘동] 등대(1)
[전흘동] 등대(2)
[전흘동] 채비
주홍동, 하우목동을 지나 산호사해수욕장이다. 우도팔경에서도 백미로 꼽는다는 서빈백사다. 부서진 산호 가루가 넓은 해변을 뒤덮었다. 흰 빛에 눈이 부시다 못해 시렸다. 하늘색 잉크를 살짝 섞은 증류수 같은 바닷물이 그 위를 쓰다듬는다. 백색 가루가 물에 녹아 들어가는 듯 하다. 밟으면 뽀도독 소리가 나는 것 같다. 뜨거운 커피에 크림 대신, 아니 설탕 대신 가루를 퍼 남으면 사르르 녹아버릴 듯 하다. 사방이 고요하다. 바람과 파도가 멈추면 달구어진 산호가루 알갱이가 햇살을 피해 돌아 눕는 소리가 들릴 법도 하다. 물 위에 티 없이 파란 하늘이 보인다. J와 나는 말을 잃었다. 파도가 만들어낸 바람인가. 고요한 기억, 묻어둔 추억들이 한꺼번에 실려온다. 그대로 걸어나가면 바람에 떠밀려 파도 위에 올라탈 것 같다. 아직 거기 있으면서도, 곧 떠나야 한다 생각하니 아쉬움에 속이 쓰렸다. 벌써부터 나는 그곳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아직 거기 있으면서도.
[서빈백사] 구름 한 점(1)
[서빈백사] 구름 한 점(2)
[서빈백사] 파도(1)
[서빈백사] 바다로 가는 무리
* * *
산호사해수욕장에 한참을 머물다 떠났다. 선착장 가는 길, 자주 차를 세우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하늘 배경으로 적록청 지붕들 찍고 있자니 한 아주머니가 다가와 뭘 찍느냐고 물었다.
“네? 그림 찍어요.”
아주머니는 불만스럽다는 듯 혼자 중얼거렸다. 차에 올랐을 때 멀찌감치 갔던 아주머니가 되돌아왔다. 우리 뒷편을 향해 뭔가 큰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아는 사람이 나타난 모양이었다. 차를 앞으로 내밀다 말고 J가 말했다.
“어라?”
길 한가운데 버티고 선 아주머니 때문에 전진할 수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서야 아주머니가 우리를 향해 외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차창 곁으로 다가온 아주머니는 마치 선심이나 쓰듯, 우리더러 소라를 사란다. 바다에 나갔던 해녀들이 막 돌아왔다며 금방 건져 올려 싱싱하다고 한다. 목에 스프링 달린 인형처럼, J와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주머니는 불만스럽다는 듯 혼자 중얼거리며 멀어졌다. 내가 J에게 말했다.
“네가 꼭 소라를 살 것처럼 생겨서 그렇다.”
J가 말했다. “어라?”
정박 (1)
정박 (2)
하얀집—돌담 넘어 평화
세시 배로 우도를 떠나야 했다. 시간이 임박할수록 마음이 다급해 졌다. 떠나기 싫었다. 한 일주일만 더, 삼일만 더, 아니 단 하루만이라도 더 머물고 싶었다. 두고 온 도시의 일상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덮어두고 온 일들이 자꾸 눈에 밟힌다. 이대로 떠나면 언제 다시 이 한적한 고요, 담백한 평화를 맛볼까 기약이 없다. 나를 둘로 쪼갤 수 있다면 좋겠다. 알맹이는 섬 바람 속에 풀어두고 껍데기만 돌려 보내면 좋겠다. 하루하루, 모자란 힘에 부치고, 느려 터진 발길에 낙담하고, 멀어지는 목표에 시달리고, 뜻대로 안 되는 세상일에 욕을 퍼붓고는 뒤 돌아서서 좌절하고, 사람에 치이고, 또 사람에 기대 소주 한 병 취기를 빌어 용기를 쥐어짜야 하는 도시의 삶이, 섬의 하늘, 파도, 바람보다 손톱만큼이라도 나을 게 뭐냐. 그 지긋지긋한 곳으로는 헤벌쩍 웃기만 하는 낯짝만 돌려 보내고 영혼은 섬에 머물면 좋겠다. 내보일 일 없는 몸뚱아리, 햇살에 바싹 그을러 버리고, 얌전한 소 등줄기에 올라 멋대로 뛰어다니고, 소가 내쉬는 숨결에 파도를 타면 좋겠다. 하늘 올려다 보며 먹구름을 기원한다. 바람이 더 세차게 불기를 기원한다. 갑자기 파도가 뒤집어지고 비바람 몰아치기를 기원한다. 소 옆구리 찌르려는 듯, 선착장에 배가 들어온다. 하늘과 바람이 무심하다. 배가 들어온다.
배에 올랐다. 갑판에 나가지 않고 그냥 차 안에 있었다. 배가 출렁일 때 이따금 바닷물이 뱃전 넘어 차 안까지 들어와 얼굴을 쳤다. 젖을세라 카메라를 끌어 안았다. 성산항에 내렸다. 슬슬 배가 고팠다. J가 괜찮은 곳에 가서 밥을 사겠다고 했다. 말끔하고 한적한 도로를 따라 제주시로 향했다. 길은 탁 트였으나 우도를 뒤에 두고 파장을 향해 가는 기분, 씁쓸하기만 했다.
[해안도로] 이정표
제주시내 중심가로 들어섰다.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차량의 홍수, 체증이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여느 번잡한 서울거리와 다를 바 없었다. 서울 촌놈으로 살며 평생 몸에 익힌 광경이 낯설고 불쾌했다. 자동차들 꽁무니가 내뿜는 매연에 콧속이 매콤했다. 피곤한지, 끊임없이 입을 놀리던 J도 말수를 줄였다. 속히 시내를 벗어나야 한다는 일념만 머리 속에 맴돌았다. 탈출, 드디어 찾아간 곳은 해안도로변 카페 촌(村)이었다. J가 음식 맛이 좋다는 레스토랑 앞에 차를 댔다. 레스토랑 안에 자리를 잡고 나서 비로소 내가 입을 열었다. 이런 레스토랑이라면 서울에도 얼마든지 있다, 이런 풍경이라면 인천 월미도에 가서도 볼 수 있지 않느냐, 서울에서도 숱한 레스토랑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왜 하필 이런 곳으로 안내했느냐—불평을 늘어 놓았다. J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J는 예전에 읽었다는 은희경 소설 한 대목이 생각난다고 했다. 한 여자가, 교통사고로 죽은 전남편을 회상하는 장면이었다. 연애시절, 여자를 집에 바래다 주고 돌아가던 남자는 연신 ‘헤어지기 싫다, 헤어지기 싫다’며 투덜대곤 했다. 그럴 때마다 이 남자가 나를 아끼기 때문이라 여겼지만 여자는 나중에 깨달았다. ‘헤어지기 싫다’는 말은 ‘일상으로 돌아가기 싫다’는 뜻을 담은 남자의 독백일 뿐이었다. ‘너와 헤어지면 다시 지긋지긋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한다. 그것이 싫다.’
나 또한 제주와 헤어지기 싫었다. 멀어지는 섬을 밀어내고 자기 자리를 찾아 성큼 다가오는 일상이 싫었다. 파티는 끝나 간다. 나는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안타까움에 마음의 평정을 잃고 있었던 것이다. 한바탕 투정 부리고 났더니 J에게 미안했다. 고맙단 말 백번을 해도 모자랄 판이었다. 논문 준비로 바쁜 와중에 일부러 시간 내서 가이드에 운전사까지 도맡아 주었다. 말끔한 레스토랑에서 제대로 밥 먹여 올려보내고 싶다는 J였다. 배은망덕 불평에 투정을 늘어놓은 내게, 타박 한마디 없이 이해심을 발휘하는 J가 무던하고 착하다. 주문한 스테이크 정식이 나왔다. J 말 마따나 음식이 맛있었다. 커다란 접시를 소스도 남김없이 비웠다. 지켜보던 J가 웃었다.
[이호 해수욕장] 일몰 (1)
7시에 차를 반납하기로 했으니 한 시간 남짓 여유가 있었다. 해안도로를 타고 공항 방면으로 올라갔다. 중심가에서 멀어질수록 도로가 한적했다. 이호 해수욕장으로 들어섰다. 서편 하늘에 붉은 물이 들기 시작한다. 방파제 위로 나갔다. 일몰은 삽시간이었다. 수평선 위에 붉은 색이 감돌더니 갑자기 미친 태양이 빛을 내뿜기 시작한다. 하루가 저무는 풍경일 뿐인데, 바라보고 서 있자니 가슴이 무너진다. 눈물이 솟는다. 내려 가지 마세요, 가지 마세요—해를 향해 빌었다. 가지 마라, 가지 마. 한바탕 빛을 뿜더니 태양이 힘을 잃었다. 그리고는 내려간다. 바람만 신명이 났다. 바람이 눈가에 묻은 물기를 닦으며 지나갔다. 또 다시 세상은 거대한 그늘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내 여행도 거기서 막을 내렸다. 바람이 닦았는데도 눈에 자꾸 물기가 어린다.
[이호 해수욕장] 일몰 (2)
[이호 해수욕장] 일몰 (3)
[이호 해수욕장] 일몰 (4)
[이호 해수욕장] 일몰 (5)
공항 가서 차를 반납했다. 이상하게 갈증이 났다. 비행기 시간까지 두 시간 가까이 남았다. 택시를 잡아탔다.
“기사님, 여기서 제일 가까운 생맥주집으로 가 주세요.”
* * *
이것이 이 여행기의 끝이다.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 날, 한 친구가 잘 다녀왔느냐고 물었다. 회신 적어 보냈더니 간결하고 특색 있고 여행기라며 반드시 활용해 줄 것을 요청했다.
"잘 다녀왔다. 사진여행이었다. 오백장 가까이 찍어버렸다. 지난 토요일 저녁 제주시 도두에 짐 풀고 일요일에 마라도 다녀왔다. 저녁에 송악산 올랐다가 풍경에 취해 소주 세 병 마셨다. 도두에 돌아와 자연산 흑돔 안주로 두병 더 마셨다. 월요일에 차 빌려서 우도로 떠났다. 거기서 일박하였다. 우도는 끝내줬다. 화요일 오후에 신제주로 돌아와 이호 해수욕장에서 일몰을 보았다. 맥주 한잔 마신 후 9시 비행기로 서울에 왔다. 아쉽다, 아쉽다, 아쉽다!"
그 흔한 제주도, 삼박사일 다녀와서 20페이지가 넘는 여행기 써 올리는 인간도 흔치 않을 테지만, 쓰는 것 또한 즐거운 체험이었다. 쓰다 보니 여행의 기억을 면밀히 더듬게 된다. 기대했던 대로 제주의 풍광과 여행의 감흥이 마음 속에 되살아 나는 듯 했다. 원래 계획대로 다 썼다면 아직도 끝이 멀었다. 훨씬 더 길어질 뻔했다. 사실은 줄창 쓰고 싶었다. 제주와의 첫 만남이 그 만큼 특별했다. 무엇보다, 일상 탈출의 염원이 무척 강렬했던 시점에 떠난 여행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줄창 쓴다는 계획은 접기로 했다. 사실은 이미 줄창 썼다. 올리려고 준비했던 사진들도 대폭 줄였다. 유쾌한 마음 한편, 씁쓸한 아쉬움의 뒷맛, 독백의 허탈함, 지겨움도 더불어 커졌다. 회사 일에도 지장이 적지 않았다. 쓰다 덮어둔 다른 글들도 다시 쳐다보기 시작해야 한다.
이번 제주 여행은 내 생애 최초의 사진 습작 여행이었다. 예전의 여행과는 사뭇 달랐다. 뭐가 다른지 딱 꼬집어 말하자면 시간이 더 필요하긴 하다. 여행의 순수한 감상과 사색을 카메라가 방해하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카메라가 앙탈를 부리는 통에 생각 거리를 캐는 데 집중하지 못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보는 눈 하나를 더 달고 다니는 맛은 색다르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순간, 많은 에너지가 빠져 나간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했다. 그런 만큼 노력의 대가가 구체적이다. 찍어 온 사진들이 없었다면 여행기 쓸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진들은 부수적인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던 500번의 순간들이 이번 여행의 일차적인 결과이자 증거가 되었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당시의 생생한 마음의 단상까지 찍혀 저장된 듯 하다. 좋은 사진을 찍으려면 사물과 현상을 보는 시각이 남달라야 한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사실은 그 반대가 아닌가 싶다. 사진 초보의 망상인가? 카메라를 들이대면 사물이 스스로 모습을 달리한다. 사물을 보는 시각이 절로 달라진다.
이제 정말 맺자. 사진과 글, 끝까지 봐준 여러분들께 감사한다. K 선배에게도 감사하다. 특히 J는 바쁜 시간 쪼개서 성격 삐딱한 나그네 가이드 하랴, 운전하랴, 고생이 많았다. 고맙다. 걱정마라, J. 속도 위반 범칙금은 내가 낸다.
하! 여행기도 길더니만 에필로그 또한 길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이번 겨울, 제주도 다시 한번 가볼 참이다. 삼박사일은 너무 짧았다. 한 이 주일쯤 머물고 싶다. 겨울판 제주 여행기 또한 기대하시라.
섬,
하면 가고 싶지만
섬에 가면 섬을 볼 수가 없다
지워지지 않으려고 바다를 꽉 붙잡고는 섬이,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를
수평선 밖으로 밀어내느라
안간힘 쓰는 것을 보지 못한다
세상한테 이기지 못하고
너는 섬으로 가고 싶겠지
한 며칠, 하면서 짐을 꾸려 떠나고 싶겠지
혼자서 훌쩍, 하면서
섬에 한번 가봐라,
그 곳에
파도 소리가 섬을 지우려고
밤새 파랗게 달려드는
민박집 형광등 불빛 아래
섬이 되어 앉아 있어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