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를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은 많다. 인간의 삶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쥐는 더러움과 불결함의 상징이다. 쥐덪을 놓고 쥐약을 놓아 쥐를 박멸하려고 한다. 특히 주방 주변에서 자주 쥐들이 출몰하기 때문에 쥐들은 음식물 쓰레기 등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등장한다. 그런데 애니메이션의 세계 속에서 쥐는, 현실과는 반대로 오히려 인간과 가장 가깝고 친근한 동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어린이들의 영원한 친구 미키 마우스가 대표적인 예다.
이제 쥐가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역사에 새로운 캐릭터를 추가해야 할 것 같다. 바로 라따뚜이다. 요리하는 쥐, 라따뚜이의 캐릭터는 쥐와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요리를 접목시킴으로써 독특한 아우라가 형성되었다. 주방의 금기 동물 1위인 쥐. 그 쥐가 세계 최고의 요리사로 실력 발휘를 하는 엉뚱한 영화가 [라따뚜이]다. 이 독특한 캐릭터의 매력이 워낙 강하고 중독성이 높아서 한 편으로 끝날 것 같지는 않다.
[라따뚜이]는 요리와 맛의 천국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주인공인 요리하는 쥐의 원래 이름은 레미다. 레미는 절대미각을 타고 났다. 척 보면 압니다가 아니라, 척 냄새 맡으면 상한 것인지, 쥐약이 들어 있는지, 정확히 안다. 쥐의 세계 속에서는 더러운 음식물 쓰레기만을 주워 먹는다. 그러나 레미는 자신의 창조적 상상력으로 이 세상에 아직 존재하지 않는 멋진 요리를 만들어 보고 싶어 한다. 레미가 길을 잃고 하수구를 전전하다가 구스토 레스토랑 주방에 들어간 것은, 오직 음식 냄새 때문이다. 다른 쥐들처럼 음식을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만들기 위해서 주방에 들어간다는 것이 레미의 차별성이다.
상투적인 고정관념, 음식물을 탐내는 쥐의 이미지를 역발상으로 뒤집어서, 최고의 요리를 만드는 창조자로서의 요리사로 쥐의 캐릭터를 설정한 것은 너무나 멋진 아이디어였다. 레미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자신을 가장 싫어하는 주방으로 잠입한다. 그러나 쥐의 힘만으로 멋진 요리를 만들 수는 없다. 레미의 조력자가 필요하다. [라따뚜이]에서 레미와 짝을 이루는 사람은 레미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할 수 있고 또 레미와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존재이어야 한다.
링귀니라는 레미의 파트너는 그런 전제 아래서 캐릭터가 형성되었다. 쥐라는 태생적 존재로서의 레미의 한계를 보완해 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인간이어야 하고, 관객들의 정서적 동질성을 유발할 수 있는 외로운 청년이어야 한다. 링귀니의 아버지는 바로 이 레스토랑의 창업자인 구스또. 그러나 구스또 사후 레스토랑은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구스또 대신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사람은 욕심 많은 스키너. 레미와 링귀니 커플의 가장 큰 장애물 역할을 한다.
[라따뚜이]의 재미는 바로 요리의 세계이다. 단순히 허기를 면하기 위해서 음식을 먹는 것은 야만인들의 삶이다. 문명인들은 맛을 음미하며 먹는다. 먹는다는 행위는 생존 조건의 필수적 요소지만, 일차적인 굶주림의 압박으로부터 해방된 문명인들은 더 좋은 맛을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이제 먹는 행위는 존재의 필수조건이 아니라, 충분조건이 되고 있다. [라따뚜이]는 갈수록 음식문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증대되는 현대인들의 일상에 신선한 자극과 재미를 준다.
주방의 천덕꾸러기인 청소부 링귀니는 구스또 사후에 자신이 구스또의 아들이라는 증명서를 갖고 구스또 레스토랑을 찾아 왔다. 주방의 요리와 경영을 책임진 스키너에게는 구스또의 아들이라는 링귀니의 신분은 목의 가시같은 존재. 하지만 링귀니는 레미의 도움을 받아 최고의 요리를 만들어낸다. 오래를 해본 적도 없는 링귀니가 최고의 요리를 만드는 비법은 링귀니가 머리에 쓰고 있는 커다란 주방용 모자 안에 숨어 있는 레미 때문이다. 레미는 링귀니의 머리카락을 두 가닥으로 양 손에 잡고, 차를 운전하듯 링귀니의 두 손을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때로는 링귀니의 의사와는 다른 재료를 쓰게 해서 멋진 요리를 만들어낸다.
레미-링귀니 커플의 성공을 가로막는 존재는 일차적으로는 주방 내부의 스키너, 두번째는 주방 외부의 요리평론가 안톤 이고다. [라따뚜이]의 후반부는 레미-링귀니 즉 요리의 생산자와, 안톤 이고 즉, 오리의 수용자 사이의 대결이다. 요리의 수용자를 대표하는 전문 요리 비평가 안톤 이고가 레미가 만든 요리에 감동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다. 브래드 버드 감독은 흐름의 완급을 조절하는 시간차 공격으로 관객들의 정서를 장악한다. 냉정하고 차가운 안톤 이고가 구스또 레스토랑에 앉아 레미가 만드는 음식을 기다리는 장면이나, 마지막 클라이막스에서 신문에 기고한 안톤 이고의 요리비평은, [라따뚜이]를 넘어서 모든 대중문화에게도 상관이 된다. [라따뚜이]는 성공한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의 모범적 사례를 보여준다. 고정관념을 뒤집는 모험적인 시도와 소재의 다양함을 추구하는 새로운 상상력은, 요리하는 쥐라는 모순된 캐릭터를 만들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