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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찬양(눅1:46-55)-2021.12.26
아기 예수 탄생과 가장 깊은 관련을 갖고 있는 인물은 마리아입니다.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를 수태한 복된 여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리아를 가장 복된 여인이라는 데는 동의하지만 마리아를 우상처럼 숭배하거나 신격화하는 것은 지지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카톨릭 교회는 마리아에 대한 숭배 사상이 강한 종교입니다. 카톨릭 교회는 개신교와 많은 다른 점을 갖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마리아에 대한 교리가 대표적입니다. 알다시피 카톨릭 신앙은 마리아를 신격화합니다. 그들은 마리아를 중보자, 하나님의 어머니, 모든 성도의 여왕이라고 부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중보자는 한분이십니다(딤전2:5).
마리아는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남자를 알지 못하는 여인으로서 참으로 끔찍한 소식을 전달 받은 것입니다. 요셉이라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수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통보하시고 친히 이름까지 지어주신 것입니다. 그 이름이 예수입니다(눅1:31절). 황당한 마리아가 천사에게 묻습니다.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는데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34절). 한마디로 이것은 지구촌 어디에서도 한번도 일어난 일이 없는 일이요, 또한 과학적으로도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윤리적으로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오래전 인류가 시작되자마자 이런 일이 있을 것을 예언해주셨습니다. 창세기3장15절을 우리는 원시복음이라고 부르는데, 여자의 후손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자의 후손은 남자의 씨를 통하지 아니하고 성령으로 잉태하여 우리 가운데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역사는 줄기차게 그 예언의 말씀의 성취를 위하여 달려온 것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 마리아의 몸을 빌려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여인의 몸을 빌려 우리 가운데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말씀하신 바를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막상 그 일이 처녀인 마리아에게 닥치니 그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 그러면서도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었겠습니까? 그 영광의 주인공이 바로 마리아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인류역사상 마리아는 가장 복된 여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입은 여인이지요. 감히 자기 몸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자가 태어나다니요? 하나님의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35절). 마리아는 천사의 거듭된 말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의 수태를 받아 드립니다. 38절을 보면,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그래서 우리는 마리아가 어떤 여인인지 알아보려고 합니다.
마리아는 다윗의 혈통인 요셉과 정혼한 아주 평범한 집안의 여인이었습니다. 성경에는 마리아의 친족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요19:25). 세례요한의 어머니인 엘리사벳은 마리아의 사촌입니다(5절). 예수님의 다른 이모는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인 살로메였습니다(마27:56). 마리아는 당시 요셉과 정혼만 했던 여인입니다. 아직은 순결한 처녀였지요. 그런데 남자를 전혀 알지 못하는 처녀에게 천사가 찾아와서 아기를 갖게 될 것이라고 통보한 것입니다. 물론 성령으로 잉태할 것이라는 것이지요. 정말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황당한 소식이었을 것입니다. 처녀 마리아가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일이었겠지요.
그래서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수태고지를 통보받은 마리아는 반신반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처음에는 마리아가 자기 의견을 피력하지만 가브리엘 천사의 거듭되는 설명을 듣고 그것을 수용하게 됩니다. 그래도 대단한 믿음이지요. 그래서 마리아는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의 어머니가 되는 영광을 얻은 것입니다. 마리아의 순전한 믿음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지요. 물론 마리아에게 하나님이 특별한 은혜를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만,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마리아의 믿음이 맞아 떨어진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마리아의 의심을 잠재울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증거를 말씀해 주십니다. 평생을 무자하고 나이 많아 수태를 못하는 엘리사벳이 임신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녀가 임신한 지 벌써 여섯 달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정말 쇼킹한 뉴스지요. 그것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함이 없다는 증거를 보여주시고 확신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혹시라도 마리아가 품게 될 의심덩어리를 제거시켜 주신 것이지요. 하나님의 특별한 배려예요. 그 소식을 들은 마리아는 분명한 확신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그녀가 고백합니다. 38절입니다.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마리아는 자기의 성령잉태 소식도 깜짝 놀라고 가슴 벅찬 소식이었지만 자기 친족 엘리사벳의 잉태소식도 그 어떤 소식보다 행복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소식을 듣자마자 빨리 일어나 산중에 있는 유대의 한 동네로 찾아갑니다(39절). 엘리사벳에게 축하인사를 드리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이게 어찐 일입니까? 마리아가 찾아가자 엘리사벳의 복중에 있던 아이가 뛰노는 것입니다. 장차 세례요한이 될 아이가 뱃속에서 이미 예수님을 알아 본 것이지요. 물론 엘리사벳도 마리아의 잉태소식을 알아차리고 마리아를 축복합니다(42절).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라고 말입니다.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던 것입니다(41절).
성령은 하나입니다. 그래서 성령은 통합니다. 영은 영으로 통하지요. 그러면서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향해 내 주의 모친이라고 부릅니다(43절). 그리고 다시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위로하고 축복합니다(44절). 마리아가 문안하는 순간 자기 뱃속에 있는 아이가 기쁨으로 뛰놀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장차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날 아기 예수를 영접하는 세례요한의 문안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과 세례요한의 첫 번째 만남이었지요.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자 마리아가 노래를 지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본문은 마리아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입니다. 거룩한 노래이지요. 짧은 노래지만 마리아의 정체성과 신앙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노래에요. 우리는 마리아의 노래를 통해 마리아에 대해 바르게 알기를 원합니다. 왜냐면 많은 사람들이 마리아를 잘못 알고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특별히 카톨릭교회에서는 마리아를 신앙의 대상으로 여깁니다. 카톨릭교회는 마리아를 기도의 대상으로, 경배의 대상으로 숭배하지요. 성모님이라고 추앙해요. 카톨릭이 대표적으로 주장하는 교리 가운데 하나는 마리아무죄설입니다. 마리아는 원죄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리아 숭배의 기초가 됩니다.
로마 카톨릭은 마리아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길이라고 주장합니다. 마리아는 우리를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는 중보자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중보자는 한분 밖에 없습니다(딤전2:5). 무엇보다 우리를 황당하게 만드는 것은 마리아가 죄 없이 태어났기 때문에 죄 없으신 그리스도의 모친이 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신성을 약화시키고 마리아를 신격화시키는 아주 잘못된 교리입니다. 예수님의 죄 없으심이 마리아가 죄가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또한 카톨릭이 주장하는 교리는 성모승천설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처럼 부활 승천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성경 어디에도 근거가 없는 주장들입니다.
그리고 마리아를 하늘황후라고 주장합니다. 이것도 역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하나님 외에 성모를 섬기는 격입니다. 마리아를 하나님의 속성을 가진 자라고 추앙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마리아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입은 수혜자요, 믿음이 출중한 여인임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를 피조물 이상으로 숭배하는 것은 결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1) 마리아의 신분
마리아의 신분을 아십니까? 마리아는 나이도 어리고 가난한 여인입니다. 다른 여인들과 비교해서 특별히 내세울만한 것이 하나도 없는 평범한 여인입니다. 다만 그 여인이 하나님의 은총을 입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하는 축복의 주인공이 된 것이지요. 세상에서 가장 복 받은 여성이 된 거예요. 사실 아무 것도 자랑할 것이 없는 아주 평범한 여인이었지만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된 것이지요. 마치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을만한 민족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로 택하심을 받은 것입니다. 마리아를 택하심도 마찬가지에요.
그러므로 마리아를 자랑할 것이 전혀 없는 것이지요. 물론 하나님이 마리아를 택하심은 마리아를 통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때문에 우리는 마리아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많고 많은 여인들 중에 마리아가 선택받은 이유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마리아의 인성을 살펴보면 보통 여인들보다는 분명히 다른 점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바로 정직함과 순결함입니다. 마리아는 인격적으로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품을 수 있는 준비된 그릇이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을 잘 아는 여인이었습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잘 아는 여인이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쓰임 받는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조건입니다.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을 모르면 어디서든지 쓰임을 받을 수 없지요.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른다면 절대 쓰임 받을 수 없는 것이지요. 자신을 아는 것은 하나님께 붙들리어 쓰임 받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조건임을 기억하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쓰임 받지를 못하는 거예요. 그것은 어떤 곳에서든지 마찬가지지요. 자기 자신을 모르면 쓰임 받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마리아는 자신을 너무 잘 아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자신에 대해 아주 간결하게 고백합니다. 48절을 보십시오. “비천한 계집종”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속에는 자신의 신분에 대한 삼중적 의미가 들어 있어요. 비천하다는 말이나, 계집이라는 말이나, 종이라는 말이 다 같은 의미에 속하는 거예요. 이처럼 마리아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런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쓰임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일군의 기준은 바로 이런 거예요.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지요.
또한 마리아는 영적으로 준비되어진 그릇이었습니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담기 위한 그릇이라면 세상의 어떤 그릇보다도 순결해합니다. 더러운 그릇에 깨끗한 음식을 담을 수 없듯이 감히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라면 평범한 그릇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말이지요. 그래서 하나님이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담을 수 있는 최고의 정결한 그릇으로 마리아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마리아는 사내를 알지 못하는 순결한 여인이었지요. 한마디로 부정적인 요소가 없을 만큼 순결한 여인이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녀가 무흠하고 무죄하다는 말은 아니에요. 그래도 정결함으로 준비되어진 여인이었다는 말이지요.
마리아는 누구보다도 영적 구도자였습니다. 지혜로운 영적구도자였지요. 지혜로운 구도자는 영혼이 맑고 순수합니다. 순결합니다. 그러기에 의심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드립니다. 계산하거나 잔머리를 굴리지 않습니다. 당시에 처녀가 임신했다는 소문은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에요. 특별히 정혼한 처녀에게 임신했다는 소문이라도 들린다면 죽임을 감수해야할 정도의 충격적인 소식이지요. 여인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소식이지요. 멘탈이 약한 여인이라면 심각한 우울증에 걸릴지도 모릅니다. 혹은 자살을 시도했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면 당시에 정혼한 처녀가 임신했다면 본인과 가정의 수치는 물론이요, 남편에게 파혼을 당하고 심지어는 돌에 맞아 죽을 수 있는 일이거든요. 그만큼 위험한 소식이에요. 이것은 죽느냐 사느냐 자기 운명이 걸린 문제이지요. 그런데 마리아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겁을 내고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냐고 의심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소식을 잠재우기 위한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으로 받아드린 것이지요. 이런 믿음은 보통 믿음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특별히 주신 믿음이지요.
역시 마리아는 구주 예수님을 담을만한 준비된 그릇이었던 것입니다. 그만큼 정결한 믿음을 소유한 여인이었다는 거예요. 마태복음5장8절을 보면 “마음이 청결한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십니다. 청결이란 마음속에 있는 잡다한 것들, 곧 세상적이고 육적이며 죄악된 것들을 깨끗이 제거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마음이 깨끗한 자가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마리아의 마음이 청결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하나님을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만큼 믿음이 순수하고 정결했던 것이지요.
우리는 하나님께서 왜 마리아를 택하셔서 구주 예수님을 담는 그릇으로 사용하셨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우연이 없고 실수가 없으며 실패가 없으십니다. 마리아에게는 구주 예수님을 잉태할만한 믿음과 인격이 준비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이런 마리아의 숭고한 믿음과 인격을 사람들이 우상화 시도를 한다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순수한 구도자였고,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잘 아는 순결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런 여인을 우상화하는 인간들의 무지함을 보신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하실까요? 천국에 있는 마리아도 통탄할 것입니다. 제발 그러지 말라고 말입니다.
인간들에게는 숭고하고 순수한 행동을 자꾸 미화시키고 포장하여 영웅시하거나 우상시하는 못된 기질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연말이 되면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사랑으로 이웃을 도우며 선행하는 자들이 더러 있습니다. 정말 그분들은 익명으로 선행을 하기 원하는데 그분들의 순수한 의도를 왜곡한 일부 단체나 메스컴에서 그들을 추적하여 그들의 숭고한 선행에 먹칠을 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습니다. 성경에도 그런 사례가 있지요. 베드로에게도 바울에게도 신처럼 숭배하려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들은 깜짝 놀라서 거절하고 절대 그러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지요. 만일 지금 카톨릭에서 숭배하는 성모신앙을 마리아가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요? 아마도 무지한 인간들의 그런 모습을 보며 통탄하지 않을까요?
카톨릭 교회와 기독교는 교리적으로 많은 부분에서 크게 다르지만 특별히 성모사상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거부감을 나타낼 정도로 큰 차이가 있어요. 카톨릭에서는 성모 마리아를 인류구원의 원인자라고 주장합니다. “마리아는 순명과 믿음과 희망과 불타는 사랑으로써 영혼들의 초자연적인 생명을 회복시키기 위해 구세주의 구세 사업에 비길 데 없는 협력을 해드렸다. 이 때문에 은총의 세계에서 우리의 어머니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기가막한 칭송입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미안하지만 마리아는 인류 구원에 어떤 협력도 한 일이 없습니다. 그녀도 역시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요, 피조물입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4:12).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 구원의 최종의 종결자요, 충분한 종결자이며, 유일하신 종결자이십니다. 다시 말하지만 카톨릭에서 주장하는 마리아의 무죄설은 성경의 어떤 근거도 없는 황당한 교리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무죄하다구요? 세상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롬3:10).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롬3:23).
마리아도 구주가 필요한 여인입니다. 그래서 그녀도 고백합니다. 구주가 필요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고 믿었던 것입니다(46-47).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다고 말입니다. 심지어 예수님도 마리아를 부탁한다는 말씀을 하셨지만, 마리아를 특별히 숭배하거나 받들지 않았습니다(마12:48-50). 눅11:27을 보면, 한 여자가 예수님 앞에서 마리아를 높이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을 전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가로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도소이다 다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한 여인이 예수님을 밴 태와 먹인 젖이 복이 있다고 외친 것입니다. 마리아가 복이 있다는 말이지요. 마리아는 예수님을 밴 태요, 먹인 젖을 가진 여인이었기 때문이지요. 이 여인은 오늘날로 말하면 천주교 신자였던 셈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녀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마리아를 높이지 아니하신 것이지요. 마리아는 예배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카톨릭 교회는 마리아 무오설을 주장합니다. 마리아는 오류가 없다는 말입니다. 아닙니다. 마리아도 사람입니다. 그것도 깨어지기 쉬운 연약한 질그릇이지요. 보배로운 예수님을 담은 그릇입니다. 그러나 그릇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릇 속에 든 내용물이 중요한 것입니다.
심지어 카톨릭 교회헌장에는 마리아를 변호자, 보조자, 협조자, 중재자라는 다양한 명칭으로 부릅니다. 중보자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마리아가 기도의 응답자라고까지 말합니다. 아닙니다. 우리를 중보하실 분은 오직 한분 예수 그리스도밖에는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사람을 미화시키고 신격화시켜도 그것은 우매한 일입니다. 마리아는 그냥 존경스러운 여인임에는 틀림없지만 숭배할 대상은 아닙니다. 존경의 대상과 숭배의 대상을 구분하십시오. 그런데도 천주교에서는 마리아를 높이고 숭배합니다. 천주교에서는 마리아를 신성화해서, 마리아를 예배의 대상으로 삼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그림이나 동상을 보면, 예수님보다는 오히려 마리아가 주인공입니다.
제발 성경에도 없는 교리를 만들어 우상숭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더 이상 마리아를 괴롭게 하지 마세요. 사실 마리아의 언어적인 어원은 마라에서 나옵니다. 마라는 쓴물입니다. 더 이상 마리아를 신격화하지 마십시오. 마리아에 대한 카톨릭의 잘못된 교리 다섯 개를 폭로하고 고발합니다. 첫째, 마리아는 인간의 원죄에 오염되지 않고 태어났다. 둘째, 마리아는 일생토록 단 한번의 죄도 짓지 않았다. 셋째, 마리아는 평생토록 동정녀로 지냈다. 넷째, 마리아는 죽지 않고 승천했다. 다섯째, 마리아는 하늘의 여왕이 되어서 모든 것을 통치한다. 모두 다 성경에 아무 근거도 없는 인간들이 조작한 웃기지도 않는 교리들입니다.
(2) 마리아의 신앙
사실 마리아는 믿는 자들에게 존중받을만한 믿음을 가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녀는 정확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성경에 대한 정통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지요. 그녀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을 보십시오. 매우 성경적입니다. 전혀 흠잡을 데가 없습니다. 그녀는 어디서 들었는지, 어디서 배웠는지, 어디서 알았는지 궁금할 정도로 하나님을 정확하게 찬양합니다. 어찌보면 구약에 정통한 학자들보다 훨씬 더 정교한 믿음을 소유했던 것입니다. 어찌 신학을 전공했다한들 이처럼 정확하게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단 말입니까?
하지만 이것은 이 여인이 학문적으로 준비되었다는 것보다는 하나님이 은혜로 하나님을 알만한 것들을 채우시고 공급하셨다는 의도가 더 정확할 것입니다. 왜냐면 마치 준비라도 했다는 듯이 엘리사벳의 축복을 받고 나온 그녀의 찬가를 들어보십시오. 엘리사벳의 임신소식을 전해 듣고 문안드리던 갔던 마리아는 엘리사벳으로부터 두 가지 축복된 칭찬을 듣게 됩니다. 하나는 마리아의 잉태의 복입니다(42절). 또 다른 하나는 그것을 믿음으로 수용한 마리아의 믿음의 복입니다(45절). 그러자 화답이라도 하듯이 마리아는 노래를 지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비록 짧은 내용이지만 분석해보면 정말 성경적이고 신학적입니다. 그녀의 찬양하는 내용은 구구절절이 하나님만 찬양합니다. 믿음이 없다면 절대 할 수 없는 내용이지요. 그녀는 하나님에 대한 속성을 누구보다 분명히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녀가 찬양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실까요? 먼저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46-48절). 맞습니다. 하나님은 만복의 근원이 되시고 복의 통로가 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큰일을 행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49절). 사랑과 공의로우심을 동시에 가지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50-53절). 그러면서 자기백성을 선대하시고, 영원히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모든 것을 이 짧은 노래를 통해 다 고백하고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고백하는 하나님을 정리해보면, 복 주시는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긍휼이 풍성하신 사랑의 하나님, 교만한 자와 겸손한 자를 분별하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 항상 자기 백성들을 지키시고 돌보시며 영원히 변치 아니하시는 불변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마리아의 신앙입니다. 이처럼 마리아의 신앙은 매우 성경적이고 신학적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마리아의 신앙이 분명하고 확실하다고해서 그녀를 영웅으로 만들거나 우상으로 만들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느 교회나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본문에서 마리아는 하나님을 내 구주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죄인입니다. 그래서 그도 역시 구주가 필요한 사람이요,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세상에 구주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밖에는 없습니다. 따라서 마리아를 신성화하고 우상화하는 것은 하나님이 명하신 제1계명과 제2계명을 위반하는 명백한 범죄행위입니다. 더 이상 마리아를 욕되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굳이 카톨릭 교회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비록 개신교회에 속해 있을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3) 마리아의 찬양
오직 우리의 찬양을 받으실 분은 하나님 한분밖에는 없습니다. 이 땅에 어떤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면 안됩니다. 비록 부스러기 같을지라도 그분의 영광을 훼손하는 것은 죄악입니다. 혹은 하나님의 영광의 일정부분이라도 빼앗는 것은 범죄행위입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께 온전히 돌려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그런 의미에서 마리아의 찬양을 배워야 합니다. 마리아의 찬양이 자기 개인을 지나서 자기 조상 이스라엘에게로 확대됩니다(54-55절). 마리아는 이스라엘을 그분의 종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종은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이라는 이스라엘의 특별한 지위를 뜻합니다.
마리아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기 때문에 그들을 결코 버리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믿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시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상기하면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찬양한 것입니다. 역시 마리아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심으로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마리아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몸에서 수태되고 태어날 것에 대한 확신에 찬 예언적인 찬양을 한 것입니다.
마리아의 찬양은 혈통적인 이스라엘뿐 아니라 이방인들에게까지도 포함된 새롭게 회복될 모든 영적 이스라엘들에게 적용될 예언의 찬양인 것입니다. 아니 오늘 이 시간 이 복음을 듣는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어질 축복의 찬양 시이기도 한 것입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지킴으로(눅2:19) 말미암아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시는 구세주를 낳아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참여하는 축복의 주인공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믿고 순종하는 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지금도 각 개인에게 구주 예수님을 수태하기 원하십니다. 다만 우리가 마리아처럼 믿음과 인격으로 그분을 모실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다 마리아와 같이 성령 충만하고 말씀 충만한 자들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수태하는 축복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리아의 찬양 속에는 자신의 비천한 신분에 대한 감사와 기쁨, 또한 그런 연약한 자기를 택하사 부르시어 쓰시는 데 대한 감사와 감격을 고백한 것처럼 우리 모두 다 약한 나를 들어 쓰시는 하나님께 감사함을 잊지 말고 예수님을 수태하는 축복의 주인공들이 되어 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마디로 지금 내안에 주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계시는지의 여부를 점검하시어 날마다 주님과 함께 사는 자들이 되어 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세상에 대통령이 한번 지나만 가도 유명한 명소가 되고, 한 장의 종이에 유명화가 피카소가 한 폭의 그림만 그려도 수 십 억원을 호가하고, 시인 롱펠로우가 휴지조각에 몇 마디의 시를 적었더니 육천불이 되었다고 하는데, 하물며 나 같은 죄인에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나와 함께 사신다니 감히 무엇으로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감히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수태하는 복을 받았다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은혜이지요. 우리 모두 마리아처럼 예수님을 수태하는 축복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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