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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피서를 여가 활동과 동의어로 사용한다. 정원사도 사람이니 무더위와 장마를 달가워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식물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직업을 갖고 이를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흙투성이와 땀범벅이 되어 하루 업무를 마치고도, 내가 맡지 않은 다른 정원 모습이 궁금해 발걸음을 재촉하는 방식으로 여름을 보낸다. 어떤 정원은 여름이 힘겹다. 그러나 자연을 닮은 이 정원은 여름을 이용하고, 즐기고, 이긴다. 정원은 한여름의 햇빛과 폭우와 바람이 자연에 무엇을 의미하는지 음미하는 공간이다. 여름을 살아내는 식물들 모습에서 ‘참 아름다워라’라는 찬송 가사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식물들로부터 나처럼 강인하고 아름답게 살아내라는 격려를 얻는 곳이다. 땀범벅에 흙투성이인 정원사에게 나를 닮으라는 당찬 주문을 던지는 이곳은 자연이 선택한 식물들의 정원, 뉴욕식물원 자생식물정원(Native Plant Garden)이다.
뉴욕식물원 자생식물정원의 8월 풍경. 우리나라에서 베르가모트라고도 불리는 모나르다(Monarda fistulosa)와 서양미역취(Solidago sp.), 프레리 콘플라워(Ratibida pinnata) 등이 어우러져있다. (이하 사진: 필자 제공)
이곳은 이름 그대로 미국 동부에 자생하는 식물들로 꾸며졌다. 1만 4천 제곱미터(약 4천 평)의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계류와 습지, 초원 지대와 우거진 숲 등 다양한 환경을 갖추었다. 십만 본 이상의 크고 작은 나무들과 야생화, 여러 종류의 그라스와 고사리, 수생식물들이 자연 상태와 비슷하게 서식처 환경이 조성된 공간에 심겼다. 물가에는 붓꽃과 벌레잡이식물인 사라세니아 등이 자라고, 숲속에는 연영초와 공작고사리 등 그늘을 좋아하는 식물들이 빼곡하다. 미국 동부의 전형적인 초원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메도우1) 정원은 토양의 습도에 따라 계류에서 가까운 곳부터 습윤, 반건조, 건조 메도우로 구분하여 각 환경을 선호하는 야생화들로 채워졌다. 초보 정원사에게는 서식처별로 식물을 공부하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일 뿐 아니라, 인위적인 정원에서 보기 어려운 정경 때문에 많은 방문객들에게도 사랑받는 곳이다. 이 정원의 가장 큰 매력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로워지는 풍경이다. 가을을 암시하는 색들로 가득한 8월이 지나면, 북미 동부에 자생하는 여러 종류의 들국화와 쥐꼬리새풀, 박주가릿과와 대극과 식물들은 깊고 고운 색을 뽐내며 절정을 이룬다. 가을과 겨울의 경계에서는 갈색의 아름다움이 심장까지 시리게 만들고, 한겨울에는 꽃대 위에 쌓인 하얀 눈과 빛나는 햇살의 조화가 일품이다.
난 곳 식물로
자생식물의 세계를 처음 접한 곳은 강원도 평창 국립한국자생식물원이다. 연보랏빛 야생화가 끝없이 펼쳐진 들판이 너무도 인상적이었다. 결혼 1년 차 신혼부부에게는 추억에 남을 사진을 찍기에 더없이 좋은 ‘배경’이었다. 나중에야 그 꽃들이 벌개미취라는 사실을 알았다. 두 아이들이 태어난 이후 환경과 생태에 깊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지만 한동안 자생식물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것이 없었다.
벌개미취가 가득 피어난 2002년 여름의 국립한국자생식물원
자생종을 향한 관심은 뜻밖에도 물고기에서 시작되었다. 아이들이 시내에서 잡은 물고기를 기르자고 해서 시작된 수조 꾸미기는 아이들이 물고기에게 무덤덤해진 후에도 오래도록 나의 취미로 남았다. 강물에서 행복했던 유년기 추억이 되살아나는 것이 좋았고, 토종 물고기의 생태가 흥미진진하기도 했다. 동호회에 가입해 전문가들에게 배우기도 하고 물고기 도감을 사서 공부도 하면서, 우리나라에 2백 종이 넘는 민물고기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과 잡았던 물고기 중 묵납자루는 한강 수계에서, 칼납자루는 금강 수계에서 산다는 걸 배우고 나서야 아이들과 자주 찾았던 두 하천 물이 다른 수계임을 알았다. 금강 수계에서만 사는 감돌고기, 미호천과 그 지류에서만 사는 미호종개, 낙동강에서만 사는 여울마자, 이외에도 하천마다 고유한 자생종들이 살고 있다는 점이 신기했다. 서로 물이 섞이지 않는 수계에서 같은 계통의 물고기들이 유전적으로 서로 다른 형질을 지니고 살아간다는 사실은 피조 세계의 질서와 다양성과 아름다움에 관해 새로운 눈을 열어주었다. 한정된 지역에서만 서식하는 각 물고기들은 수계마다 새겨진 조물주의 시그니처(signature)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의 경험 때문인지, 지역의 고유한 생태를 존중하고 자생식물을 많이 사용해서 정원을 만드는 것이 옳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정원들이 참 아름답다고 느꼈다. 자연주의 정원의 큰 흐름을 이끌고 있는 네덜란드 정원디자이너 피트 아우돌프는 세계 곳곳에서 정원을 만들어왔는데, 처음 한두 해 동안은 그 지역 식생을 면밀히 살펴보는 것으로 잘 알려져있다. 세계적 명소가 된 시카고 루리가든과 뉴욕 하이라인을 조성하면서, 지역의 흔하디흔한 식물들을 발굴하여 오늘날 정원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식물로 만든 사례가 여럿이다. 그중 가느다란 실처럼 하늘거리는 그라스인 쥐꼬리새속의 한 종류는 한국 정원사들에게도 주목받고 있고, 미국에서 가장 흔해서 잡목 취급을 받던 미국붉나무는 그가 조성한 정원 풍경을 드라마틱하게 만드는 수종으로 손꼽히고 있다. 최근 울산 태화강 국가정원의 후스·아우돌프 정원을 조성하면서도 오랜 동료 바트 후스로 하여금 태화강 일대 환경을 꼼꼼히 살피도록 했다. 작년 가을 식재 작업을 끝낸 이 정원의 안내판에는 식재 도면과 식물 목록이 걸려있는데, 오래전 국립한국자생식물원에서 만났던 벌개미취도 포함되었다. 미국에서는 미국 식물로, 한국에서는 한국 식물로 정원을 만드는 그의 철학에는, 지역의 고유한 식생과 환경을 담은 정원이 참으로 아름답고, 강인하며, 실용적이라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그는 자생식물을 활용한 정원들을 통해 지역의 특수성에 충실한 작품이 세계인들에게 보편적으로도 해석되고 향유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했다.
울산 태화강 국가정원에 조성된 후스·아우돌프 정원의 식재 도면. 아우돌프가 손으로 그린 도면들은 그 자체로 예술품이라 인정받고 있으며, 언제부터인가 그의 정원에는 도면이 함께 전시되기 시작했다.
좋은 정원은 지역이 결정한다
지난 5월 열렸던 세계 최대 정원 디자인 경연 대회인 영국 첼시 플라워 쇼(Chelsey Flower Show)에서는 더 의미심장한 소식이 들려왔다. 이 축제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쇼 가든(Show Garden) 부문 금상 수상작으로 황지해 작가의 〈백만 년 전으로부터 온 편지〉(A Letter from a Million Years Past)가 선정되었다. 이 작품은 지리산 약초 공방을 모티브로 삼았는데, 사실상 대지 일부를 옮겨왔다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로 지리산 환경을 사실적으로 재연했다. 지리산에만 자생하는 한국 특산종인 지리터리풀을 비롯해, 우리에게도 생소한 각종 약초들이 진흙 벽의 전통 공방 주변으로 자연스럽게 심겼다. 한 지역의 토착 식물들로 꾸민 정원이 사람들 이목을 끌었다는 점도 의미가 있지만, 여기에 담긴 지극히 한국적인 서사를 영국의 보수적인 심사위원들이 충분히 감상했다는 점은 더 의미심장하다. 2011년 같은 대회에 출품한 정원 〈해우소 가는 길〉에서, 황지해 작가는 가장 개인적인 독백의 공간으로서 한국 전통 화장실, 비움의 미덕, 약초를 이용한 민간요법, 자연의 순환과 생명의 재탄생이라는 메시지를 담아냈는데, 이 작품은 전체 부문 금상과 아티잔(Artisan) 부문 최고상을 수상했다. 황지해 작가의 정원들은 지극히 현실적인 소재들로 세계인이 공감하고 감상할 수 있는 보편적인 메시지를 담아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황지해 작가의 〈백만 년 전으로부터 온 편지〉(A Letter from a Million Years Past). (사진: Royal Horticultural Society 제공)
“보시기에 좋았더라.” 한 지역의 토종 생태를 살필 때 이 성경 구절에서 암시하는 심미적·기능적·생태적 가치에 관한 우리의 해석은 성경을 읽어온 세월이 무색할 만큼 빈약하다. 성경 해석의 깊이와 지역에 대한 감수성은 비례하는 것 같다. 무엇이 이 두 세계를 연결하는 영적 감수성을 잃게 만들었을까. 지역 생태를 담은, 자연을 닮은 정원에서 우리는 창조주가 느꼈던 흡족함을 되찾는 연습을 할 수 있을까. “생육하고 번성하라.” 이 명령이 가장 잘 실현된 모습은 지역의 문화와 생태가 고도의 다양성을 보이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인류가 생육하고 번성하는 방식은 반대로 향하는 듯하다. 창세기 1장의 중요한 원리들을 실천하는 첫걸음은 내가 사는 지역을 살피는 일이다. 사실 이 과정은 조경설계에서 ‘현장 분석’(site analysis)이라고 불리는 절차의 일부이기도 하다. 나도 좋은 정원을 만들기 위해서 집 주변의 식생을, 뉴욕주 북부의 생태를 오랫동안 살피고 있는 중이다. 정원사에게 지역의 고유한 생물종과 식생을 살피는 일은 지역을 해석하는 과정이다. 각자에게는 각자의 관점으로 지역을 해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시간은 지역에 새겨진 신의 시그니처를 찾아가는 구도의 여정이다. 그 결과로 우리는 부르심에 직면한다. 약속의 땅을 정탐했던 열 명의 정탐꾼이 실패했던 그 일이다. 어쩌면 이 과정은 구도의 여정이라기보다는 구원받은 삶의 실재일지도 모른다.
나는 좋은 정원은 지역이 정의한다고 믿는다. 좋은 정원은 지역 생태의 다양성과 아름다움뿐 아니라 지역이 간직한 역사와 문화, 그리고 지역의 문제마저 품는다. 루리가든은 프레리라 부르는 미국 대평원에 대한 기억과 향수를, 이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조차 회복하게 했다. 동시에 육중한 들소와 귀여운 프레리도그2), 거기서 자생하던 식물들이 개발과 함께 사라지고 있는 문제를 상기한다. 하이라인은 뉴욕의 초록 혈관이라 불릴 만큼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으면서, 대량의 육가공품을 실어 나르던 녹슨 철로를 통해 소비주의 흔적과 그로 인해 피폐해진 도시 생태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준다. 태화강 국가정원은 폐수로 죽어가던 강을 기억하게 하면서, 그곳에 은어가 돌아왔다는 치유와 회복의 서사를 그대로 담아낸다.
굴 위로 고개를 내민 프레리도그. 콜로라도주 덴버 시내와 인접한 이곳 프레리 보호 구역은 개발 면적이 확대되면서 존립이 위태로운 상황이다. (사진: 필자 제공)
성경이 서사를 구성해나가는 모습도 이와 닮았다. 구속사라는 큰 흐름은 에덴의 작은 동산에서 시작해, 아라랏의 산등성이, 브엘세바 우물가, 벧엘의 돌짝밭, 도단의 빈 구덩이, 호렙산 자락의 떨기나무 수풀 등 그렇게 작고 구체적인 현장을 무대로 삼았다. 공간에 암시된 그 시대의 문제 속에 메시지가 깊이 스며들었다. 그 주인공들은 지역과 연결되어야 했다. 구약 역사의 큰 전환점이었던 여리고 입성을 통해 약속의 땅을 밟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내려진 명령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서 난 것을 먹으라는 말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의 소출을 먹자, 다음 날 만나가 그쳤다.3) 영적 신분은 변하지 않았으나 그들의 양식은 하늘에서 내려온 것에서 땅에서 올라온 것으로 바뀌었다. 영적 탯줄이 끊어졌다. 하지만 지역은 거기 깃든 생명을 부양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이렇듯 성경 속 주인공들은 지역을 살았고, 오늘날 신자들은 그 장소를 탐구하며 거기에 스며든 메시지를 추출하고, 음미하고, 적용한다.
교회를 생각한다. 지역교회(a church)라는 용어는 우주적 교회(the Church)에 대비해 유형의 개별 교회를 지칭하는 말로 쓰이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지역이라는 수식어보다는 교회라는 단어에 비중이 실려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해나갈수록 두 단어에 같은 비중으로 무게가 실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두 단어의 조합이 아닌 한 단어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지역을 기반으로 한 생활 공동체를 탐구해왔다. 독일 브루더호프 공동체4)를 설립한 에버하르트 아놀드의 책 《공동체로 사는 이유》를 시작으로, 성미산마을 공동체5)와 미국 이타카(Ithaca)의 에코 빌리지6) 사례도 연구했다. 아이들을 인도네시아 발리의 혁신학교인 그린스쿨(Green School)7)에 보내면서 일 년을 머물렀는데, 학교는 ‘지역에 충실하라’(Be local)는 원칙을 교육철학의 제1원리로 삼고 있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면 교회 성도들과 코하우징 커뮤니티를 만들어 지역 기반 공동체 생활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미국으로 오게 되면서 그 계획들은 잊혔고, 시간이 흐르면서 공동체 생활에 대한 관점도 많이 바뀌었다. 공동체는 벤치마킹을 통해서가 아니라, 신 앞에서 신을 벗고, 맨발로 땅을 밟으면서 만든다는 걸 깨달았다.
좋은 교회도 지역이 정의한다. 그곳 사람들, 그곳의 문화적 자원들, 그곳이 안고 있는 문제들이 좋은 교회의 재료다.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정서적으로 가장 안전하고 풍요로운 삶을 은혜와 복이라고 포장하면서 지역과 담을 쌓는 대신, 좋은 교회는 지역의 문제를 끌어안고 지역과 함께 울고 함께 웃는다. 사도 바울이 교회들에 보낸 편지에는 각 교회가 처한 고유한 문제들이 드러난다. 그 문제들 속에서 교회는 정체성과 목적이 더 선명해진다. 사실 성경은 온통 문제 속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구현해온 이야기이다. 하나님이 문제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역사를 이끌어왔다면, 지금까지 살아남은 인류는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교회는 문제를 제거하는 방식으로는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자연을 닮은 정원들이 그러하듯, 문제를 은폐하거나 외면하는 대신, 기억하고, 드러내고, 품고, 치유한다. 지역 사람이 깃들이고, 지역의 역사와 문화가 향유되고, 지역의 아픔과 상처가 다뤄지고, 지역에서 사라졌거나 사라져가는 동물과 식물들이 기억되는 교회를 통해서, 사람들은 그곳에 새겨진 창조주의 시그니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지역교회가 그 지역에서 사라져간 식생의 흔적을 추적해 보존하는 일을 해줬으면 좋겠다. 병들고 기진해진 땅을 어루만졌으면 좋겠다. 취미로든 직업으로든 정원 일에 ‘주님께 하듯’ 열심을 쏟는 성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지역의 자생식물을 교회 화단에 심어봤으면 좋겠다. 화단이 없다면 성도들이 함께 가까운 수목원에서 자원봉사를 해봤으면 좋겠다. 흙을 만지며 식물을 가꾸는 일은 ‘하나님의 임재 연습’과도 같다.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그림자라면, 교회의 유전자를 통해 천국 형질이 계승되는 것이라면, 무너진 피조 세계도 교회를 통해 회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 주
1) 자연적으로 조성된 소규모 초원 지대와 목초지로 사용하기 인위적으로 조성된 초지를 통틀어 메도우(meadow)라 부른다. 미국 중서부 대평원 지역에 넓게 펼쳐진 초원 지역을 의미하는 프레리(prairie)와 함께 미국의 전형적인 풍경을 이룬다. 정원에서 사랑받는 수많은 식물이 이런 초원 지역에서 유래했다. 많은 초지가 농장이나 목초지로 개간되면서 빠른 속도로 식생이 파괴되고 있다.
2) 토끼와 쥐의 중간 크기인 포유동물로 미국 대평원 지역에 무리 지어 산다.
3) 여호수아 5장 12절
4) 1920년 독일에서 시작된 기독교 생활공동체로서 현재는 한국, 미국을 비롯해 세계 여러 곳에 마을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bruderhof.com).
5) 서울 마포구 성미산 자락의 마을공동체로서 어린이집을 함께 운영하면서 시작되었고, 이후 성미산 개발을 저지하는 운동을 펼치며 마을의 정체성과 공동체성이 확고해졌다(sungmisan.org).
6) 환경, 경제, 사회문제의 해결을 위한 대안적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다. 이 공동체 설립을 주도한 리즈 워커가 쓴 《이타카 에코빌리지》 (황소걸음)에 그 과정이 상세하게 기록되었다(ecovillageithaca.org).
7) 인도네시아 발리 소재 공동체주의 혁신학교로서 창의적 문제 해결 방법론(Design Thinking)을 기반으로 환경, 인권, 예술 등 다양한 분야를 주제로 수업이 진행된다(greenschool.org/bali/).
첫댓글 자연을 닮은 정원이 있는 도시와 교회~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