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소평 - 실각후 화장실 청소부로 살아야 했던 적이 있습니다. 성신제(성신제피자 사장) - 사업실패에 배신까지 당하고 투신자살을 위해 강남역 사거리의 16층 빌딩옥상에 서야 했었습니다. 이원복교수(먼나라이웃나라의 저자) - 생계를 위해 일본만화를 그대로 베껴 팔아야 했던적이 있습니다. 임권택감독 - 잘나가는 여배우에게 버릇없다며 뺨을 맞아야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엘지전자(금성전자) - 3년간의 적자로 직원들 식대를 지급하지 못해 인근 식당들로부터 외상사절 통보를 받았습니다. 서태지 - 선배들로부터 너는 가수로서의 필이 똥이다라는 혹평을 들었습니다. 김영세(이노디자인) - 수십통의 이력서를 퇴짜맞으며 가망없는 디자이너라는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박형미(전 화진화장품 부회장) - 아기 분유값이 없어 피눈물을 흘리며 세일즈에 뛰어들었지만 17일동안 단 한개의 상품도 팔지 못했습니다.
강영중(주식회사 대교회장) - 동네 과외방 교사였습니다. 김광석(참존사장) - 경찰의 수배를 피해 전국을 떠돌아야 했습니다. 김재철(동원그룹회장) - 원양어선 선원이었습니다. 김홍국(하림사장) - 병아리 10마리로 시작했습니다. 김철호(기아자동차 창업자) - 막노동꾼이었습니다. 박병엽(팬택사장) - 삼류 지방대 출신입니다. 신격호(롯데그룹회장) - 우유배달부였습니다. 성호정(송학식품...아시죠 국수회사... 사장) - 24세까지 뻥튀기 장사였습니다. 세스코 - 자본금 300만원. 직원1명으로 시작했습니다. 이랜드 - 2평짜리 옷 가게로 시작했습니다. 이장우(한국3M사장) - 수세미 외판원으로 시작했습니다. 최수부(광동 제약사장) - 최종학력은 초등학교 중퇴입니다. 최진순(청풍 창업주) - 반신불수의 몸으로 공기청정기 개발에 뛰어들었습니다. 박희선 - 82세에 킬리만자로를 정복했습니다. 손위옹 - 50세에 공부를 시작해 서울대법대에 합격했습니다. 유상옥(코리아나 화장품 회장) - 55세에 창업했습니다. 권원강(교촌치킨사장) -처음 치킨 집 개업후 몇달간 하루순이익이 3000원 정도였습니다. 김장훈 - 92년 대학로 소극장에서 첫 콘서트를 열었을때 총5명의 관객이 들었고 그중 3명은 초대관객이었습니다. 백현숙(대우 일렉트로닉스 특판 사업부본부장) - 12년간 148억원 어치를 팔았습니다. 하지만 가전판매 시작 당시, 4개월간 실적이 전무하여 해고당했습니다. 조용모(제일화재 전북권최고 세일즈맨) - 입사시험만 108번을 보았고 모두 퇴짜를 맞았습니다. 송승환 - 난타를 들고 6개국 홍보를 시작할때 한국에서도 퍼포먼스공연을 하느냐며 조롱을 받아야 했습니다. 박동호 - CGV 건설을 하는동안 국내 영화관계자들로부터 모두 그만두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최근영(아이씨텍사장) - 베트남과 사우디아라비아에 엄청난 물량의 난로를 팔고 있습니다. 안해모(LG) - 러시아에 현재까지 25만대가 넘는 에어콘을 팔았습니다.
가린샤 - 소아마비를 앓아 뒤뚱거리면서 걷는 사람입니다. 그는 브라질 축구대표로 총 3회의 월드컵에 참가하여 우승했습니다. 장 크레티앙 - 언어장애로 말을 잘 못함에도 불구하고 1993년 캐나다 총리에 당선되었습니다. 애블린 글레니 - 청각장애로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지만 그녀는 세계적이 타악기 연주자이며 10장 이상을 앨범을 냈고 매년 120회 이상의 공연을 합니다. 윤생진 - 고졸출신으로 금호타이어 이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공장 생산직 사원으로 출발했습니다. 박승철 - 한쪽다리를 저는 장애인이며 남자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국내 최고의 헤어디자이너중 한사람으로 꼽힙니다. 짐 애보트 - 태어날때부터 오른 팔이 없었던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10여년을 평균시속 150km를 던지는 A급투수로 활동했습니다. 김동수 - 300개나 되는 사채카드로 빚 독촉에 시달려 매일 죽음을 생각했던 그는 현재 세계5대 도자기 메이커인 한국 도자기의 회장입니다. 장승수 - 고3때 반 석차 50등. 아르바이트와 폭주족 생활로 피폐했던 그는 5년 뒤 서울대 법대에 수석으로 입학합니다.
첫댓글 힘이 됩니다. 선생님 좋은글 감사합니다.^^
힘냅시다.감사합니다!
좋은글 감사히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