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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축(己丑)년 소(牛)에 관한 이야기들.
올해는 소띠의 해이다. 소는 십이지 중 두 번째 동물로 축(丑)이라는 글씨로 표시된다. 소띠 해는 풍요로운 여유와 평화의 한해이다. 한문으로 축(丑) 자는 맺을 뉴(紐) 자에서 실 사(糸) 자를 뺀 것이다. 이는 실같은 끈이 풀리지 않았다는 뜻이며, 초목이 땅 속에서 싹이 텄으나 아직 끈처럼 구불구불 구부러진 상태를 상징한다. 즉, 모든 것의 출발이 갖추어지고 이미 시작이 되었으나 아직 표면에 나타나지 않은 상태이다. 그래서 새 출발을 앞둔 12월에 축(丑)을 배정하였다.
십이지의 소는 방향으로는 동북을 지키는 방향신(方向神)이며, 시간적으로는 새벽 1시에서 3시, 달로는 음력 12월을 지키는 시간신(時間神)이다. 여기에 소를 배정한 것은 소의 발톱이 두 개로 갈라져서 둘이라는 수는 음(陰)을 상징한다는 것과 그 성질이 유순하고 참을성이 많아서, 씨앗이 땅 속에서 싹터 봄을 기다리는 모양과 닮았기 때문이라고 전해온다. 석기시대, 청동기시대에는 중국에서 소의 뼈가 점을 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중국의 고대 문자인 갑골(胛骨) 문은 대부분 소의 뼈에 기록이 되어 있어 인간과 소의 밀접했던 관계를 말해주고 있다.
소와 사람의 관계는 역사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소에서 짜내는 우유는 BC 3000년경에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되었다는 고고학자들의 보고가 있는가하면, . 고대 인도의 인도-아리아 사람들은 옛 문헌인 리그 베다 (Rig-veda) 에서 볼 수 있듯이 젖소와 젖을 찬미하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소를 신성시하고 있다.
소는 예로부터 전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큰 재산으로 여겨졌다. 소는 신석기 시대 초기에 길들여져 인류의 역사에서 오랜 동안 사육되었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주로 농사를 짓거나 사람이나 짐을 나르는 데에 사용되었다.
소에 관하여 동양의 유교, 불교적 차원에 소에 관한 의식 구조는 각별하다. 우선 유교적 차원에거 중국의 요순 시절에 소에 관계되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는 것으로 보아 더욱 그렇다.
요임금은 순임금에게 그 자리를 물려 주었으나, 순임금은 주위 사방 팔방을 다 둘러봐도 임금의 자리를 선위(禪位-자리 물려줌)해 줄만한 인물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허유(許由)라는 고사(高士)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순임금은 손수 허유를 찾아가서 "내가 천하를 물려줄 사람을 오늘에야 만나 내 깊은 속 심정을 전할 수 있으니 기쁘기 한량없소이다. 당신은 지덕재(智德才)를 두루 겸비하였으니 부디 이 나라를 맡아 민생을 보살펴 주시오" 라고 말했다. 그러나 허유(許由)는 이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리고 그는 맑은 물이 구비 구비 흐르고 있는 영천(潁川)으로 달려 가서, 그의 유달리도 큰 양쪽 귀를 번갈아 가면서 씻고 있었다.
그때 마침 소부(巢夫)가 소를 타고 나타나 소에게 물을 먹이려던 참이었다. 소부는 허유에게 귀를 씻는 까닭을 물엇다. 허유는 자초지종을 말하고 그런 더러운 소리를 들은귀를 이 맑은 물에 씻어 흘러 보내려 한다고 말하니, 소부는 물 먹이려던 소를 타고 상류로 올라가며,더러운 말을 듣고 더럽혀진 귀를 씻은 더러운 물을 소엔들 어찌 먹일 수 있겠느냐 면서, 상류에 올라 소에게 물을 먹였다 고 하는 전설이 있다.
불교에서는 소를 각별한 대상으로 사찰의 대웅전 벽에 심우도(尋牛圖-소를 찾아 키우는 그림)를 그려 놓는다. 심우도의 열가지 그림은 원래 도교의 팔우도(八牛圖)가 불교의 선가(禪家)로 넘어오면서 12세기쯤에 곽암선사(廓庵禪師)에 의해 두 장이 더 추가되어 지금의 심우도, 또는 십우도라 불리게 되었다.
불교의 심우도는 자신의 본성을 찾는 과정을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하여 나타낸 것이다. 사찰의 벽에 그려진 소와 소를 찾는 동자 모두 애초에 본성이 다르지 않음을 깨닫고 공적(空寂)으로 돌아가 허공만 남는 무(無)의 상태에서 끝나게 된다. 선사들은 이 깨달음은 완전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온다는 두 장의 그림을 추가시켰는데, 이 부분은 깨달음을 얻은 뒤에 중생을 제도하며 공(空)에서 붙어 시작되는 대승적 사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나라의 사찰에는 죽은 소의 비석과 무덤을 만들고 소의 넋울 기리는 경우도 있다. 경북 봉화의 청량산 청량사 앞 뜰에는 가지가 셌으로 뻗어 자라는 소나무가 있는데, 이 높은 위치의 청량사를 건축 할때에 필요 건춛 자제를 뿔이 세개인 소가 모두 운반하여 절집의 준공을 보는 날에 소가 죽었는데, 그 이튼날에 소가 죽은 자리에 소나무가 세개의 가지로 뻗어 자라 있었다는 전설을 청량사 신도들은 모두가 믿고 있다.
충청도 계룡산 갑사에도 청량사의 소와 같이 절집을 축조하다가 죽었는데, 비석을 세워 그 소의 넋을 기리고 있다.
공주 계룡산 갑사 우공탑- 백재시대의 탑으로 전해온다.
갑사 축조시 건축자제를 운반하다가 힘이 들어 죽자 그 소의 공로를 치하하면서 새운 탑.
불과 수년전에는 경북 상주에서 의로운 소에 대한 장례식이 성대하게 거행 되기도 하였다.
SBS 방송국의 <세상에 이런일이> 에 방송되어 전 국민이 앓고 있는 이야기이다. 이야기 인즉, 의로운 소 누렁이는 다섯 살이던 1992년 8월 경북 예천군에서 팔려와 상주시 사벌면 묵상리에서 자라는 동안, 이웃집 김보배 할머니가 오며 가며 소에게 먹이도 주고 주인보다 더 잘 해주었다.
몇년후에 소에게 잘해주던 이웃집 김보배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는데, 2km 가 넘는 할머니의 묘소에 소가 성묘를 다니는가하면, 할머니의 영정 앞에서 슬퍼 하던 소는 스스로 굶어 죽고 말았다. 의로운소를 장례치를 때에 상주 시장이 소에 대한 치사를 할 정도로 공식적인 행사였다. 조선시대에 이와 비슷한 소에관한 이야기와 소의 무덤은 경북 선산군에도 있다.
경북 상주의 의로운 소 장례 행열.
▶ 황희 정승과 소 이야기
황희 정승과 소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한 일화이다. 이 이야기는 남의 장(長) 단점(短點)을 말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사자성어 불언장단(不言長短)이라는 어휘가 탄생하기도 하였다. 조선조 초에 황희 정승이 벼슬하기 전에 길을 가며 쉬는데, 마침 농부가 두 마리의 소에 멍에를 씌워 밭가는 것을 보고, 황희 정승이 묻기를, 두 소 중 어느 것이 더 나은가 ? 하니 농부가 대답하지 않고, 밭 갈기를 그치고, 가까이 와서 귀에 대고 작게 말하기를, 이 소가 낫습니다. 하였다. 황희 정승이 괴이하게 여겨 말하기를, 왜 귀에 대고 말하는가 ? 하니, 농부가 말하기를, 비록 가축이지만, 그 마음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요. 이 소가 나으면 저 소는 못한 것이니 소에게 이를 듣게 하면 어찌 불평의 마음이 없겠소이까 ? 그리하여 황희 정승은 그 다음 부터 다시는 남의 장단점을 말하지 않게 되었다는 일화가 전해오고 있다.
▶ 소의 학명.
소는 칼 폰 린네가 처음으로 세 가지 종(種)으로 구별하였다. 하나는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에 서식하는 소를 학명으로 보스 토러스(Bos taurus)라 하였고, 또 하나는 인도 혹소를 학명으로 보스 인디커스(Bos indicus)라 하였으며, 멸종된 오록스를 학명으로 보스 푸리미제니어스(Bos primigenius)로 구별하였다. 멸종된 오록스는 인도 혹소와 유럽 소의 조상으로 알려져 오고 있다.
▶ 서양 사람들의 소에 관한 다양한 표현.
소에 관하여 영어 문자 사용하는 사람들의 표현은 아주 다양하다. 소의 학명은 보스 토러스(Bos Taurus)다. 소의 우직한 모습 때문인지 둔하다는 뜻의 형용사 보바인(bovine)은 황소를 뜻하는 라틴어 보브(bov)에서 유래했다. 음식점에서 맛볼 수 있는 소고기는 불란서 언어인 뵈프(bœuf)에서 유래한 비프(beef)라고 말하며 기름기가 적은 송아지 고기는 빌(veal)이라고 불린다.
큰 수소를 뜻하는 황소(黃牛)는 영어로 불(bull)이나 옥스(ox)로 부르는데 옥스는 요즘은 거세한 수소라는 의미로 사용 되기도 한다. 암소는 카우(cow)로 부른다. 송아지는 캐프(calf)라 하고, 어린 숫 송아지 혹은 거세한 숫소를 칭할 때는 불록(bullock)이라 한다. 세살 미만 암송아지 중에 새끼를 낳지 않은 소는 헤퍼(heifer)라 부른다. 또한 소를 뜻하는 집합명사 캐틀(cattle)은 라틴어의 캐풋(caput)에서 유래했다. 예전 영국인들은 캐틀을 움직이는 재산이라는 의미로 동산(動産)의 개념으로 쓰기도 했다. 사람이 소비하기 위하여 기르는 소를 beef cattle이라고 부른다. 미국의 어떤 지역의 목축 산업에서는 beef가 성별의 구별 없이 어떤 동물을 지칭하는 의미로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우유를 얻기 위하여 길러지는 젖소는 다이어리 카우스(dairy cows)라고 부른다.
소에 관하여 독일어 표현 또한 다양하다. 독일어로 소는 하우스린트(Hausrind)로 불린다. 어린 소는 칼프(Kalb)로 불린다. 알고이(Allgau) 지방에서는 어린 암컷을 슘펜(Schumpen)으로 부른다. 4개월 - 1년까지의 어린 소는 암·수에 따라 불렌(Bullen) 또는 페르젠프렛서(Farsenfresser)로 불린다. 성숙한 암컷의 소는 쿠(Kuh)라 하는데, 이 소는 우유와 고기를 제공한다. 밀히쿠(Milchkuh) 또는 무터쿠(Mutterkuh'로도 불린다.
독일어로 새끼를 낳기 전의 성숙한 암소는 페르제(Farse) 또는 크벤(Queen)라 부르는데, 오스트리아, 독일 남부에서는 칼빈(Kalbin)이라 부르고, 슈타르케(Starke) 등으로 불린다. 성숙한 수소는 불레(bulle), 슈티에르(Stier), 파렌(Farren) 또는 파젤(Fasel)로 불린다. 성숙했지만 젊은 수소는 융불레(Jungbulle)라 한다. 거세된 수소는 옥세(Ochse), 거세된 암소는 슈니츠칼빈(Schnitzkalbin)이라 부르는 정도로 다양한 표현이 있다.
▶ 소에 관한 한국어 표현.
한국에서 소는 조선시대 이전에는 쇼로 부르기도 했다. 어린 소는 송아지라 부르며, 암수의 구별에 따라 암소, 수소로 부른다. 토종 소는 한우 또는 황소라 부르며, 우유를 생산하기 위한 소는 젖소라 한다. 소의 집을 외양간 또는 우사(牛舍), 소를 거래하는 시장을 쇠장 또는 우시장(牛市場)이라 한다. 소의 울음소리는 보통 음메 로 표현한다. 한편 고기를 뜻하는 한자 육(肉)은 종종 쇠고기를 뜻하기도 하는데, 예컨대 개장국은 원래 개고기를 쓰지만, 쇠고기를 쓸 때는 육(肉)개장으로 부른다.
▶ 소의 새김질과 환경에의 영향.
소는 반추 동물인데 이 말은 소는 소화가 잘 되지 않는 먹이를 반복하여 게워내고 이를 새김질감으로 다시 씹을 수 있는 소화 계통을 가졌다는 뜻이다. 새김질감은 다시 삼켜지고 반추위에 서식하는 특별한 미생물에 의하여 좀 더 소화가 된다. 이 미생물들은 섬유소와 기타 탄수화물을 휘발성 지방산으로 변화시키는데, 소는 신진대사의 주요한 에너지로 이 휘발성 지방산을 사용한다. 반추위에 서식하는 이 미생물들은 요소나 암모니아 같이 단백질이 아닌 질소 성분들로부터 아미노산을 합성해 낸다. 이러한 특징으로 소는 풀과 기타 초목을 먹고 잘 자란다.
이 미생물 중 일부는 메탄생성경로라 불리는 혐기성(嫌氣性) 과정에 의하여 장(腸) 내에서 호흡을 한다. 소는 많은 양의 메탄을 배출하는데 그 중 95%는, 방귀가 아닌, 트림을 통해서 배출된다.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23배 강력한 온실 기체이기 때문에 미국이나 호주처럼 소의 대량 사육에 지구 온난화의 원인이라는 논란이 되고 있다. 그리고 가축에 의하여 생산되는 메탄 가스는 온실 기체를 증가시키는 명백한 요인이다. 그래서 보충적으로 식이요법을 쓰고 메탄을 생성하는 미생물을 비율을 줄이는 처치, 백신 처방 등으로 이러한 메탄을 줄이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 소에 관한 속담.
우리말의 속담중에 소와 관련 되는 속담은 참으로 다양하다.
만석군 부자도 소가 반 재산이다.
되는 집에는 소를 낳아도 큰 소만 낳는다.
가을 물은 소 발자국에 고인 물도 먹는다.
소 의 형국에 묏자리를 쓰면 자손이 부자가 된다.
밤 까먹은 자리는 있어도 소 잡아먹은 자리는 없다.
느린 소도 성낼 적 있다.
소 닭 보듯 한다.
소가 웃는다.
새 풀에 소 살 찐다.
꺼먹 소도 흰 송아지를 낳는다.
못난송아지 엉덩이에 뿔났다.
쇠 귀에 경 읽기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
바늘 구멍으로 황소 바람 들어 온다.
외상은 소도 잡아 먹는다.
쇠 뿔도 단김에 뽑는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일어 난다.
쟁기질 못하는 놈이 소 탓 만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오뉴월 쇠 불알 늘어지듯 늘어 퍼젔다.
쇠 심줄 같이 질기다.
쇠 뒷걸음치다 쥐 잡는다.
사람 새끼 서울로 보내고 마소 새끼 시골로 보내라.
소가 힘 쎄다고 왕 노릇 하나.
느릿느릿 걸어도 황소걸음이다.
닭잡는데 소잡는 칼을 쓴다.
미친 소 날뛰듯 한다.
소죽은 귀신같다.
쇠 뿔 고치려다 소 죽인다(矯角殺牛).
이상에 열거한 속담 이외에고 소와 관련된 속담은 더 많을것이다.
▶ 소를 이용한 음식들.
우리 역사에 소를 희생으로 한 제사의 기록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있었으며, 제사 후에는 소의 고기를 이용하여 음식을 만들었다. 우리 속담에 밤 까먹은 자리는 있어도 소 잡아먹은 자리는 없다는 말 처럼 소의 모든 부위가 음식 재료로 쓰인다. 현재 전래되는 음식에는 육회, 구이, 육포, 국, 수육, 장조림 등이 있으며, 피, 곱창이나 골 등을 포함한 모든 부위가 요리에 쓰인다. 설렁탕·곰탕·국밥 등의 국 종류에는 고기나 엉덩이뼈, 꼬리, 다리 부분을 오래 삶아 국물을 낸다. 소의 허파, 지레, 간 등의 내장은 약재로도 쓰이며, 귀중한 약재인 우황도 소에서 얻어낸다.
▶ 지난 100년간 소띠 해에 생긴 일
지난 100년 사이에 소띠 해가 여덟 번이 지나 갔다. 지난 100년간 여덟번의 소띠 해에 남겨진 발자취를 간략하게 잠시 돌아보면 아래와 같다.
◎ 1913년 - 한일합방 3년째를 맞으면서 일본의 한반도 지배가 본격화 되었다. 안창호 등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흥사단을 창립 하였다. 광희문-왕십리-진팔리 사이를
오가는 전차가 운행되기 시작한 해였다.
◎ 1925년 - 일제 왜적은 서울 남산에 조선 신궁을 세워 조선에 대한 정신적 지배를 확고히
하였으며, 서울운동장은 이 해 가을에 개장되었다.
◎ 1937년 - 기업가 박흥식이 화신백화점을 개업하였다. 일제 왜적은 만주에 한인 노동자
10만 명을 이주시키기로 결정 하였다. 소련땅 극동의 교포 20만 명이 소련
정부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는 수난을 겪든 해였다.
◎ 1949년 - 국호가 대한민국으로 결정된 해인 반면, 김구가 안두희에 의해 암살되고, 여순
반란 사건 주모자들이 대거 체포되고, 제주 4.3사건 소탕전도 일단락 되었다.
제1회 총인구조사 결과 남한 인구는 도합 2천16만 명으로 확인됐다.
◎ 1961년 - 4.19혁명과 5.16쿠데타 등으로 시국이 요동친 해였다.
◎ 1973년 - 국내 최초의 현수교인 남해대교가 개통됐다. 서울에 어린이대공원이 개원한 것
역시 이 해의 일이다.
◎ 1985년 -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이 개장했고, 여의도의 대한생명 63빌딩이 완공
되었다.
◎ 1997년 - 연말의 대통령선거에서 김대중 후보가 당선돼 건국 이후 최초로 여야 정권교체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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