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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 푸석대는 날에는
정환웅 詩
낙엽 푸석대는 날에는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자.
살아 있음에 감사하자.
나뭇잎이 곰비임비 1) 누운 날에는
걷는 걸음마다
엄마의 폭신한 젖가슴을 기억하자.
실바람 가늣하게 2) 부는 날에는
길섶 3) 위에 누웠다가 날리고,
푸르르 날았다가 다시 눕는,
비상(飛上)과 조락(凋落)의 인생을 생각하자.
아! 매달림의 절규
나뭇잎 가지 끝에서 애원하는 날에는
훗날 시들어 떨어질 나를 바라보자.
발길에 밟혀 해어져도
잎맥 앙상히 드러내며 닳아 없어져도
나는 꿈 꾼다, 갈맷빛 4) 내일을.
거름흙이 되고자
켜켜이 5) 쌓는다, 오늘을.
오늘의 소멸은 내일의 탄생이 되리니...
[각주]
1) 곰비임비 : 물건이 거듭 쌓이거나,
일이 자꾸 계속되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
2) 가늣하게 : 약간 가늘고 길게
3) 길섶 : 길의 양쪽 가장자리
4) 갈맷빛 : 짙은 초록 빛깔
5) 켜켜이 : 여러 겹으로 포개진 것의 각 층마다
2013. 12.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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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
낙엽이 떨어지네
날아가네
공중을 한 바퀴 돌면서
‘안녕히, 안녕히’
손짓을 하고
이제는 어머니의 품을 떠나는
아기들처럼
먼길을 떠나는
수많은 낙엽들은
제 할 일을 다한 기쁨
제 갈 길을 가는 기쁨
우리 다시 더 가까운 자리에서
함께 숨쉬며 손잡자고
모두 다 즐겁게
떠나가네
먼 하늘에
사라지네
(이오덕, 아동문학가, 1925~2003)
낙엽
낙엽은 나에게 살아 있는 고마움을 새롭게 해주고,
주어진 시간들을 얼마나 알뜰하게 써야 할지 깨우쳐준다.
낙엽은 나에게 날마다 죽음을 예비하며 살라고 넌지시 일러준다.
이승의 큰 가지 끝에서 내가 한 장 낙엽으로 떨어져
누울 날은 언제일까 헤아려 보게 한다.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내 사랑의 나무에서 날마다 조금씩 떨어져나가는
나의 시간들을 좀더 의식하고 살아야겠다.
(이해인·수녀 시인, 1945-)
추일 서정
낙엽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
포화(砲火)에 이지러진
도룬 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케 한다.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日光)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 열차가 들을 달린다.
포플라나무의 근골(筋骨) 사이로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내인 채
한 가닥 구부러진 철책(鐵柵)이 바람에 나부끼고
그 위에 셀로판지로 만든 구름이 하나.
자욱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
호올로 황량(荒凉)한 생각 버릴 곳 없어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帳幕) 저 쪽에
고독한 반원(半圓)을 긋고 잠기어 간다.
(김광균 시인, 1914∼1993)
낙엽의 열반
겨울 숲길을 걸어가니
밟히고 밟혀 더 이상 부서질 것 없는 낙엽이
부드럽고 포근하게 내 발을 받쳐 준다.
낙엽은 으깨지고 으깨져야만
찢기고 찢겨야만
제 고향으로 제 뿌리에게로 가는가
제게로 돌아가는 길이
그렇게도 힘이 드는가
발을 옮길 때마다 낙엽이 밟힌다.
낙엽은 이미 오래 전
바스락 소리도 잊고 아픔도 잊은 듯
평화롭기만 하다.
고요하고 고요한 낙엽들이
스며들고 있구나
저만치 오고 있는 봄 속으로
(차옥혜, 시인, 1945~)
낙엽이 나에게 건네 준 말
어느 날
차창에 낙엽 한 잎
노란 몸짓으로 날아오더니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나에게 건네주는 말
생각해봐,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이 뭐겠니
나는 잠시 생각해 보았네
어느 익숙한 노랫말처럼
사랑하는 사람에게
안녕이라고 하는 말인지
아니면 아니면...
머뭇거리는 나에게
낙엽이 가만히 속삭이는 말
생각해봐,
내가 무엇을 해주고 싶어도
받아 줄 사람이 거기 없을 때
가슴 저미는 일이야
두손에 가득 선물을 들고
허공을 바라보는
그 일인 거야
바람만 불어왔다 불어가 버리는
혼자 남은 괴로움이야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
주어진 기회를 붙잡으렴
(홍수희, 시인)
낙엽
가을
나무들
엽서를 쓴다.
나뭇가지
하늘에 푹 담갔다가
파란 물감을
찍어내어,
나무들
우수수
엽서를 날린다.
아무도 없는
빈 뜨락에
나무들이
보내는
가을의 엽서
(공재동, 아동문학가, 1949~)
낙엽
나무 그늘에
나무의 손이 떨어져 있다.
내가 오면 주려고
알사탕을 움켜쥔
쪼글쪼글한 외할머니 손처럼
다람쥐가 오면 주려고
알밤을 꼭 움켜쥔
작은 손
(함기석, 아동문학가, 1966~)
낙엽의 노래
누가 목숨 부치다 간 자리인가
누구를 떠나 보낸 생채기인가
구멍 뚫리고 찢어진 마른 잎들,
가랑잎 더미를 들추며 아무리 찾아봐도
성한 잎이라곤 하나도 없다.
빨강 노랑
금과 은으로
빛나던 시간의 그 어느 그늘에
눈물은 숨어 있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날에 이르러서야
그 상처의 알몸을 하늘 아래 다 드러내는가
가랑잎이여, 모든 사라져 가는 것들이여,
짧은 추억 하나
어머니 무릎처럼 베고 누워
쉬거라, 부디 편히 쉬거라.
(고명, 시인)
낙엽
이제는 더 이상
느낌표도 물음표도 없다.
찍어야 할
마침표 하나.
다함없는 진실의
아낌없이 바쳐 쓴 한 줄의 시가
드디어 마침표를 기다리듯
나무는 지금 까마득히 높은 존재의 벼랑에
서 있다.
최선을 다하고
고개 숙여 기다리는 자의 빈손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빛과 향으로
이제는 신이 채워야 할 그의 공간
생애를 바쳐 피워올린
꽃과 잎을 버리고 나무는
마침내
하늘을 향해 선다.
여백을 둔 채
긴 문장의 마지막 단어에 찍는
피어리어드.
(오세영, 시인 1942~)
낙엽송
가지 끝에 서서 떨어졌지만
저것들은
나무의 내장들이다.
어머니의 손끝을 거쳐
어머니의 가슴을 훑어 간
딸들의 저 인생 좀 봐
어머니가 푹푹 끓이던
속 터진
내장들이다.
(신달자, 시인 1943~)
낙엽 편지
제 무게에 겨워
스스로
몸을 놓고
한없이 가벼움으로
세월에 날리며
돌아가고 있는
한 생의 파편,
적막 속으로
지고 있다.
가벼이
다 버리고
다 비우고도
한 평생이 얼마나 무거웠던가
이제
우주가 고요하다
눈썹 위에
바람이 잔다.
(홍해리, 시인, 1942~)
선암사 낙엽들은 해우소로 간다.
길가에 낙엽은 또 떨어진다.
인생의 가을이 되면 누구나 퇴비가 되라고,
인간으로서의 역한 냄새를 스스로 향기롭게
만들어 보라고 낙엽은 또 떨어진다.
낙엽이 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무리 나뭇가지에 영원히 매달려 있고 싶어도
때가 되면 낙엽이 되어 그만 땅에 떨어진다.
아무리 영원히 썩지 않기를 원해도 그만 누구나 썩고 만다.
다만 그 썩음이 어디에서 누구를 위해 어떻게 쓰이느냐
하는 것만 다를 뿐이다.
(정호승, 시인, 1950~)
낙엽을 위한 파반느
세상이 잠시 황금빛으로 장엄하다.
노란 은행잎들이
마지막 떠나가는 길 위에서
몸 버리는 저들 중에 어느 하나
생애에서 목마른 사랑을 이룬 자 있었을까
마침내 행복한 자가 그 누구였을까
최후까지 등불을 끄지 않는
기다림의 시간만이 저 혼자 깊어간다
몸은 땅에 떨어져 나뒹굴지라도
사랑은 아직 끝나지 않았노라고
남은 불꽃을 당기는 저들만의
그리움이 안타깝게 쌓여가고 있다.
(이병금, 시인)
낙엽이라는 병
가을은 향수 (鄕愁)가 병이다.
나무는 나무대로
벤치는 벤치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낙엽과 유사한 병을 앓는다.
(이생진, 시인, 1929~)
낙엽
시몬!
나무 잎새 져버린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낙엽 빛깔은 정답고 모양은 쓸쓸하다.
낙엽은 버림받고 땅 위에 흩어져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해질 무렵 낙엽 모양은 쓸쓸하다
바람에 흩어지며 낙엽은 상냥히 외친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발로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
낙엽은 날개 소리와 여자의 옷자락 소리를 낸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낙엽이 되리라.
가까이 오라,
벌써 밤이 되고 바람이 분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구르몽, 프랑스 작가, 1858~1915)
囕盈에서

마로니에

from Cafe 마로니에 그늘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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