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부쩍 집중력이 떨어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책을 읽어도 몇 장 읽기 어렵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과한 음주탓에 뇌의 기능이 떨어진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차분히 집중해서 뭔가를 하는 것이 참 쉽지 않습니다. 반면에 스마트폰 한번 손에 잡으면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주위가 아무리 시끄러워도 초집중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컨텐츠를 보다가 아래로 스크롤하면 다른 재미있는 컨텐츠가 계속 위로 올라옵니다. 무한스크롤입니다. 이 무한스크롤이라는 것이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50% 정도 더 오래 사용하게 만든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합니다.
며칠전 지하철을 타고 퇴근하면서 주위를 힐끗 둘러 보았습니다. 한명도 빠짐없이 스마트폰을 쳐다보고 있더군요. 이제는 너무 익숙한 풍경이죠. 유일하게 제 옆자리에 앉아있는 남자분은 스마트폰을 보고 있지 않더군요. 자고 계셨습니다. 물론 스마트폰을 보고 있던 모두가 게임이나 유튜브, 넷플릭스, SNS를 하고 있지는 않았을 겁니다. 공부를 하는 사람도 있었을테고, 지인에게 연락을 하고 있거나, 회사 이메일을 확인하고 있는 사람도 있었을테죠. 여하간 스마트폰에 대한 현대인의 의존도가 엄청난 것은 사실입니다. 도구의존도는 뇌의 능력을 감퇴시킨다고 하죠. 스마트폰이 이제 우리의 뇌를 대체하고 있는 겁니다. 전화번호같은 것은 기억하지 않아도 되니 좋긴 합니다만, 실제로 어떠한 부작용들이 어느 정도나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지 못합니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에도 새롭게 등장하는 문명의 이기가 인간을 멍청하게 만들거라는 우려는 계속 있어왔죠. 텔레비젼이 처음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스마트폰이 가지는 파급력은 그보다 훨씬 크다고 인지과학자들은 말합니다. 2003년, 그러니까 아직 스마트폰이 나오기 이전 네덜란드의 인지과학자들은 한 가지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간단한 소프트웨어와 많은 도움을 제공하는 소프트웨어, 각각을 사용해서 퍼즐을 푸는 실험을 했습니다. 실험그룹을 두 개로 나누어서 한 그룹에게는 간단한 소프트웨어를 주고, 다른 한 그룹에게는 많은 도움을 제공하는 소프트웨어를 준 다음 퍼즐을 풀 게 했습니다. 초기에는 도움을 많이 제공하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그룹이 문제를 빨리 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간단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그룹의 성과가 올라간다는 것이 실험결과였습니다. 외부의 도움을 받지 않을 때 더 높은 집중력과 더 많고 간단한 경제적인 해결책이 도출되었습니다. 실험을 주도했던 인지과학자 반 님베겐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문제 해결과 또 다른 지적인 업무를 컴퓨터에 위임하면서 훗날 새로운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안정적인 지식 구조, 즉 스키마를 형성하기 위한 뇌의 능력을 감퇴시키고 있음을 의미한다"
어쩌면 우리는 후대에 스마트폰을 처음 사용한 마루타 세대로 기억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전 집중하지 못하는 현대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두 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하나는 요한 하리의 <도둑맞은 집중력>이고, 다른 하나는 니콜라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입니다. 둘 다 첨단도구와 문명의 도가니탕에서 점점 집중력을 잃어가고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있지 못하는 현대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메인 빌런은 스마트폰과 인터넷(SNS와 유튜브와 같은 영상언어)입니다. 요즘같은 세상에 그 둘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요? 스마트폰 세대에게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는 도구에 의존하는 현대인에 대해 많은 분량을 할애합니다. 저자는 독자에게 스마트폰은 점점 스마트해지는데, 정작 당신은 어떻냐고 묻고 있습니다. 사실 스마트폰까지 갈 것도 없이 태고로부터 문명의 발전은 사람들의 삶과 행태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경우 타자기를 산 후에 문체가 바뀌었다고 하죠. 손으로 글을 쓰다가 타자기를 쓰고 나니 니체의 산문이 보다 축약되고 간결해졌습니다. 그의 친구인 작곡가 하인리히 쾨젤리츠가 니체의 글을 읽고 뭔가 달라졌다고 생각해서 니체에게 무슨 일 있나고 물어봤습니다. 니체가 "우리의 글쓰기용 도구는 우리의 사고를 형성하는 데 한몫하지"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좋은 방향의 변화이든 나쁜 방향의 변화이든지 도구는 도구사용자의 행태와 사고에 영향을 줍니다. 2003년 네덜란드의 인지과학실험에서는 도구의존도가 사람들의 뇌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본 것이고요.
도구에 의존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현대인의 삶은 온갖 도구에 의존하고 있고, 그로 인해 얻게 되는 혜택과 편리함들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과도한 의존도는 뇌의 특정영역의 감퇴를 부를수밖에 없습니다. 곱셈을 무조건 계산기로만 한다면, 언젠가는 구구단을 까먹게 되겠지요. 단 계산기를 이용해서 더 빠르게 곱셈을 하고 남는 시간에 우리는 다른 무언가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실제로는 다른 창조적인 일을 하지 않습니다. 도자기를 만드는 도공에게 불가마를 떼는 일은 많은 노력과 긴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도자기의 장인이 땔감나무에 불을 붙여가며 불가마를 지피는 모습에서 우리는 그의 굵은 땀방울과 숭고한 장인정신을 동일시합니다. 여기서 불가마를 전기불가마로 바꾸면 장인정신이 사라지게 될까요? 전기불가마는 편리함을 가져다 주지만 도자기의 예술성을 증대시키지는 않습니다. 원래 불가마를 떼기 위해 애썼던 그 시간에 뭘 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도구에 의존해서 머리가 나빠진다니, "그럼 문명의 이기들을 사용하지 않아야겠어!"라고 생각한다면 너무 순진한 생각입니다. 도시에서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고,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려면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밖에 없죠. 우리가 사용하는 스마트폰과 SNS는 거대기업들에 의해 치밀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한번 잡으면 손에서 놓지 않도록, 계속 클릭하고 스크롤을 하며 본인의 관심사를 노출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현대인의 머릿속은 디도스 공격을 받는 컴퓨터와 같습니다. 뇌의 일부빈이 일종의 행업(hang-up) 상태로 주체적인 사고가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전두엽이 점점 망가져가고 있는 거죠. <도둑맞은 집중력>에서 저자 요한 하리는 거대기업들이 소비자들을 바라보는 관점은 행동주의 학습이론의 선구자였던 스키너의 이론을 철저히 따르고 있다고 말합니다.
"스키너에 따르면 우리와 우리의 집중력은 그동안 살면서 경험한 강화훈련의 총합일뿐이다. 스키너는 인간에게 정신(우리가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으로서 스스로 선택을 내린다는 의미에서의 정신)이 없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그게 무엇이든 현명한 설계자가 선택한 방식으로 재설계될 수 있다. … 만약 사용자에게 하트와 '좋아요'를 줘서 셀카 찍는 행동을 강화한다면 강박적으로 왼쪽날개를 펼친 비둘기처럼 사용자들도 강박적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할까…. 인스타그램의 설계자들은 스키너의 핵심기술을 수십억 사용자에게 적용했다."
잠시 스마트폰을 손에서 내려놓고(이 글을 스마트폰으로 보고 있을 공산이 크지만...)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관심이 있으시다면 소개 드린 책들을 한번 읽어보시면 좋을 듯 합니다. 저희 집 아이들도 스마트폰을 많이 사용하는데, 말로는 통제가 잘 되지 않는 편입니다. 그래서 얼마전 아내가 스마트폰 감옥이라는 것을 사서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스마트폰을 투옥시키게 하고 있습니다. 별거 아닌 시도라도 경각심을 가지고 작은 실천을 계속 한다면 본인과 가족들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누적시킬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이제 더위도 지나간 것 같습니다. 가을이 기다려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