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일의 일을 절대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틀림없이 곧 오게 될테니까.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삶을사는 데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기적이 전혀 없다고 여기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사람은 이미 가진 것을 무시하고 무언가 다른 것을 바란다.
새처럼 날개가 있기를 바란다.
그는 이미 공간을 날아다니는 쾌락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인간은 그 영혼에 있어서 이미 이것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영혼에 날개가 돋쳐 가고 싶은 곳 어디로든지 간다.
하늘로도, 바다 위로도 깊은 숲 속으로도.
이 속세의 모든 불행은 터득이 없다는 사실에서 생긴다.
- 로댕
오늘의 슬픔 가운데 가장 비참한 것은
어제의 기쁨에 관한 추억이다.
추억이란 희망의 길에서 발에 걸리는 돌멩이이다.
- 칼릴 지브란
사람들의 삶은 대부분 온갖 사물과 일들로 어지러워져 있다.
물질적인 것들, 해야 할 일들, 생각할 것들로 항상 복잡하다.
인간의 삶은 인류의 역사와 다를 바 없다.
윈스턴 처칠은 그것을 두고
"한가지 망할 놈의 것 다음에 오는 또 다른 망할 놈의 것들"이라고 정의 내렸다.
사람들의 마음은 어지러운 생각들로 가득차 있어서
한 생각이 지나가면 다음 생각이 연이어 찾아온다.
이것이 대상의식의 차원이며,
많은 사람들의 지배적인 현실이 그것이다.
인간의 삶이 그토록 균형을 잃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이 대상 의식은 공간의식으로 균형을 잡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야만 우리의 행성이 제 정신으로 돌아오고,
인류가 자신의 운명을 완수할 수 있다.
인류 진화의 다음 단계는 바로 공간 의식의 등장이다.
어떤 사물을 의식하는 일은 언제나 감각기관을 통한 지각, 생각 그리고 감정의 순서로 귀결된다.
공간 의식의 의미는 사물을 의식하는 것에 덧붙여,
그 밑 바탕에 독립된 자각의 흐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자각은 단순히 사물(대상)을 의식 할 뿐 아니라,
자신이 의식하고 있음을 자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전면에서 일들이 일어나는 동안
배경에서 내면의 깨어 있는 침묵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공간 의식의 차원이다.
이 차원은 모든 사람 속에 있지만,
대부분은 그것을 자각조차 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때로 나는 그것을 가리켜 이렇게 말한다.
"자신의 현존을 느낄 수 있는가?"
공간 의식은 에고로 부터의 자유를 의미할 뿐 아니라,
이 세상의 일과 사물들, 물질주의와 물질성에 의존하는 것으로
부터의 자유이기도 하다.
그것 만이 이 세상에 초월적이고 진정한 의미를 줄 수 있는
영적 차원이다.
당신이 어떤 사건, 사람, 또는 상황 때문에 마음이 혼란해질 때,
진정한 원인은 그사건, 사람, 상황에 있는 것이 아니다.
공간만이 제공할 수 있는 진정한 시각을 잃은 데 있다.
시간을 초월한 순수 의식의 내면 공간을 자각하지 못하고
대상 의식에 사로 잡혀 있는 것이다.
'이 것 또한 지나가리라' 가 하나의 표지판으로 사용된다면,
당신은 다시금 그 차원을 자각할 수가 있다.
당신 안의 진리를 가리킬 수 있는 또다른 표지판은 다음의 문장에 담겨 있다.
"나는 내 자신의 생각으로 인해 절대로 마음이 동요 되지 않는다."
- NOW 에크하르트 툴레
무지를 두려워 말고,
엉터리 지식을 두려워 하라.
- 파스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