卷172_11 【聞丹丘子於城北營石門幽居中有高鳳遺跡仆離群遠懷亦有棲遁之志因敘舊寄之】李白
【聞丹丘子於城北營石門幽居中, 有高鳳遺跡仆離群遠懷 亦有棲遁之志因敘舊 寄之】
-丹丘께서 城 북쪽 營內의 石門山에 숨어살고 있다는 말을 듣고는, 나도 遠大한 抱負를 품고
무리를 떠나 賢人으로 살아가며 발자취를 남긴다는 것이 좌절된 적도 있고, 또한 전날 말한
대로 隱遁하여 살고저하는 뜻이 있기에 이글을 보낸다.-
註; 高鳳-喻賢者待禮乃行.
註; 仆[엎드릴 부(복), 종 복]-(1) 向前跌倒(挫折)
註; 遠懷-원대한 포부.
註; 敘舊-2.叙談過去 交往的旧事。
春華滄江月,秋色碧海雲。①(춘화창강월, 추색벽해운.) 華=花 滄=蒼
①들녘에 봄꽃이 만발하면 푸른 강물에는 달이 비췄고, 가을 단풍 붉게 타면 푸른 바다에 흰 구름은 높이
떠가네.
離居盈寒暑,對此長思君。②(이거영한서, 대차장사군.)
②집을 떠나 寒暑를 다 보내고 나서도, 이렇게 오래도록 친구를 그리워만하고 있구나.
思君楚水南,望君淮山北。③(사군초수남, 망군회산북.)
③친구를 그리워하기 시작한 곳이 楚水 남쪽이었는데, 淮山 북쪽에 와서도 자네 생각만 하고 있으며.
夢魂雖飛來,會面不可得。④(몽혼수비래, 회면불가득.)
④꿈속에서야 혼백으로 비록 나타났어도, 얼굴을 마주하여 만나는 것은 얻을 수가 없었네.
疇昔在嵩陽,同衾臥羲皇。⑤(주석재숭양, 동금와희황.)
⑤옛적에 숭양에 있을 때는, 자네와 한 이불을 덮고 먹고 자면서 王羲之의 書體를 공부하였고.
註; 疇昔-1.往日,從前.
註; 同衾-1.谓共被而寝。比喻親近。(함께 이불을 덮는다는 것으로, 친근함을 비유한 것임.)
綠蘿笑簪紱,丹壑賤岩廊。⑥(녹라소잠불, 단학천암랑.)
⑥그때 우리들은 푸른 댕댕이 넌출을 바라보면서 벼슬아치들을 비웃었고, 붉은 골자기에 살면서 朝廷의
모습을 鄙淺하게 생각하였지.
註; 簪紱-冠簪和纓帶。古代官員服飾。亦用以喻顯貴,仕宦。
(상투를 고정하는 동곶이와 갓끈, 고대 관원의 복식, 또는 벼슬이 귀하게 된 것을 비유할 적에 쓰인다.)
註; 岩廊-2.借指朝廷。
晚途各分析,乘興任所適。⑦(만도각분석, 승흥임소적.)
⑦晩年에 가서 각기 서로 헤어지면, 흥에 겨워하면서 각자 알맞은 곳으로 찾아 들기로 하였는데.
註; 分析-2.離別;分離。
仆在雁門關,君為峨眉客。⑧(부재안문관, 군위아미객.)
⑧나는 雁門關에 눌러 살았고, 자네는 峨眉山으로 들어가 그곳 산사람이 되었었지.
註; 雁門關-在 山西省 代縣 北部。長城 重要關口之一。唐 於 雁門山 頂置關,
註; 峨眉-也寫作峨嵋、峩眉。山名。在四川峨眉縣西南,因山勢逶迤,有山峰相對如蛾眉,故名。
佛教稱為光明山,道教稱為“虛靈洞天”、“靈陵太妙天”。其脈自岷山綿延而來,突起為大峨、 中峨、
小峨三峰。
(峨嵋, 峩眉라고도 하고, 산 이름이다. 四川省 峨眉縣 西南쪽에 山勢가 구불구불 경사지고 나방의 더듬이가
대칭되어 있는 것 같은 산 봉오리가 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생겼다.
佛敎에서는 光明山이라 칭하고, 道敎에서는 ‘虛靈洞天’ ‘靈陵太妙天’이라 칭한다. 그 山脈이 산으로 면면히
이어내려 오면서 大峨, 中峨, 小峨 三峰으로 솟아올랐다.)
心懸萬里外,影滯兩鄉隔。⑨(심현만리외, 영체량향격.)
⑨마음은 만 리 밖 친구에 다가가 있는데도, 모습은 두 곳의 사이가 멀고머니 오가지를 못하였다가.
長劍復歸來,相逢洛陽陌。⑩(장검부귀래, 상봉락양맥.)
⑩장검을 차고 산에서 다시 돌아오니, 낙양의 길바닥에서 서로 만나게 되었지.
註解; 【李白年譜】
▲736年, 春李白在太原,曾北遊雁門關(今山西省代縣)。南下洛陽與元丹丘相逢。秋,至篙山元丘處,結識岑勳。 南返途經襄陽時,與孟浩然再會。
陌上何喧喧,都令心意煩。⑪(맥상하훤훤, 도령심의번.)
⑪길가에서 어찌나 반갑던지 떠들썩하게 소란을 피웠고, 거리의 司令들이 골치깨나 썩게 했으며.
註; 喧喧-2.形容扰攘紛雜。(소란스럽고 떠들썩한 모양)
迷津覺路失,托勢隨風翻。⑫(미진각로실, 탁세수풍번.)
⑫迷路 같은 골목길에 들어갔다가 길 잃은 것을 알았을 때,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어라 바람 부는 대로
따라가 보자면서 헤매고 다녔지.
註; 迷津-3.泛指迷誤的道路;錯誤的方向。
註; 托勢-1.猶乘勢。 2.依託的位勢。 3.依仗權勢。
以茲謝朝列,長嘯歸故園。⑬(이자사조렬, 장소귀고원.)
⑬이런 날들로 세월을 보내고 朝廷班列에 드는 것도 사양하다가, 오래 동안 허송세월한 후에 고향으로
되돌아갔고.
註; 茲-1. 這,這个,此
註; 朝列-朝班。泛指朝廷官员。
故園恣閑逸,求古散縹帙。⑭(고원자한일, 구고산표질.)
⑭고향에 돌아와서도 제멋대로 노닐기만 하다가, 낡은 옛날 서책들을 구했다고 하였지.
註; 縹帙-書衣,亦指書卷。
久欲入名山,婚娶殊未畢。⑮(구욕입명산, 혼취수미필.)
⑮名山에 들어가 오래도록 있고 싶다면서, 婚姻하여 夫人을 맞이하는 것을 미처 못 하게 되었고.
人生信多故,世事豈惟一。⑯(인생신다고, 세사기유일.)
⑯사람이 산다는 것은 모두가 사연이 있다고 믿게되면서, 세상일이 어찌 똑같을 수 있겠나? 라고 생각하게
되었지.
念此憂如焚,悵然若有失。⑰(염차우여분, 창연약유실.)
⑰이런 생각은 모든 근심을 불살라버린 것과 같으며, 세상사 즐겁지 않고 불안하기만 하여 삶의 의욕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이었는데.
註; 悵然-失意不樂貌。
聞君臥石門,宿昔契彌敦。⑱(문군와석문, 숙석계미돈.)
⑱친구가 석문산에 누워지낸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니, 옛적에 우리가 한 이불속에서 먹고 자면서 친하게
지내던 생각이 떠올랐다네.
方從桂樹隱,不羨桃花源。⑲(방종계수은, 불선도화원.)
⑲나도 자네처럼 계수나무 수풀 속에 숨어 지낸다면, 무릉도원이 부럽지 않을 것이고.
高風起遐曠,幽人跡復存。⑳(고풍기하광, 유인적부존.)
⑳高尙한 風貌는 멀리까지 소문이 확 퍼져 알려질 수 있을 것이니, 은자의 발자취는 또 다시 생기겠지.
松風清瑤瑟,溪月湛芳樽。㉑(송풍청요슬, 계월담방준.)
㉑솔바람 속에서 거문고 청아하게 뜯고, 밝은 달밤에 시냇가에 앉아서 맛있는 술잔 기울인다면.
安居偶佳賞,丹心期此論。㉒(안거우가상, 단심기차론.)
㉒바로 이런 안정된 삶이 아름답고 모범적인 모습일 것이니, 일편단심 바라고 바라는 것은 자네한테서
이와 같이 살아가고 있다는 말로 回信이 보내오기를 기다리겠네.
【李白年譜】
▲736年, 春李白在太原,曾北遊雁門關(今山西省代縣)。南下洛陽與元丹丘相逢。秋,至篙山元丘處,結識岑勳。南返途經襄陽時,與孟浩然再會。
▲750年, 李白五十歲。春在金陵。五月,往廬山。元丹丘自篙山來信相邀,舉家前往。時李白已與宗氏夫人再婚。秋,至尋陽(九江)。旋北還,途經憔郡(今安徽省亳州)訪友人元演。至任城。
【解說】
이 詩는 李白이 50세 되는 750년 여름 한철을 崇山에 隱居하는 그의 친구 元丹丘와 書信을 주고받으면서
지낼 때의 여러 作品 가운데 한 作品이다.
口話體로 된 古詩體로서 丹丘의 隱逸한 生活에 대한 來歷을 回想하면서 友誼를 交感하려고 하였고, 詩의 末尾에서 자신도 따라하려는데 어찌 생각하느냐고 하는 助言을 구한다는 구실을 붙여 친구를 채근하는 모습을 담고 있어서, 두 사람의 說往說來 말싸움의 깊이가 깊다는 것을 짐작케 하고 있다.
특히나 긴 詩題 自體가 하나의 論爭을 시작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어서 더욱 實感하게 한다고 할 것이다.
①~⑫隱遁 생활 이전까지의 來歷을 말한 것으로 論爭을 誘導하기 위한 터전을 마련한 것이다.
⑬~⑯행까지의 뜻은 元丘丹의 隱遁生活의 출발점이 名分에서 별다른 大義가 없다는 弱點을 지적한 것이고,
⑰~⑳행이 과거의 한 이불속 생활을 회상케 하면서 자기도 친구를 따를 테니 도움을 구한다는 구실이고,
㉑~㉒행은 은둔생활의 참모습을 제시하면서 자네가 이런 긍정적 삶을 하고 있는지 말 좀 해보라는 것으로
친구의 나태한 생활을 채근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眞正한 友情에서 나온 忠言인지 아니면 書信을 주고받고 하는 論爭 중에 있으니 자신의 論旨를 先占하려는 爭論의 一部인지는 그 두 賢人들만이 알고 있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