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 성리학을 새로 쓰다

정약용, 성리학을 새로 쓰다 정약용은 남인 가문 출신으로, 자는 미용(美鏞), 호는 다산(茶山), 사암(俟菴), 여유당(與猶堂), 채산(菜山) 등을 썼다. 정조(正祖) 연간에 문신으로 벼슬했으나, 청년기에 접했던 서학(西學 천주교)으로 인해 장기간 유배 생활을 하였다.그는 이 유배 기간 동안 자신의 학문을 더욱 연마해, 육경사서(六經四書)에 대한 연구를 비롯해 일표이서(一表二書) 즉 경세유표(經世遺表), 목민심서(牧民心書), 흠흠신서(欽欽新書) 등 모두 500여 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고, 이 저술을 통해서 조선 후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하였다.그는 실학의 학통을 이어받아 발전시켰으며, 각종 사회 개혁 사상을 제시하여 묵은 나라를 새롭게 하고자 노력하였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역사 현상의 전반에 걸쳐 전개된 그의 사상은, 조선왕조의 기존 질서를 전적으로 부정하는 혁명론은 아니었지만, 파탄에 이른 당시의 사회를 개량하여 조선왕조의 질서를 새롭게 강화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18세기 후반에 오랫동안 정치 참여로부터 소외되었던 근기(近畿) 지방의 남인들은, 기존의 통치방식에 대한 회의를 갖게 되었다. 그들은 정권을 장악하고 있던 노론들이 존중하는 성리학과는 달리, 선진유학에 기초한 새로운 개혁의 이론을 일찍부터 발전시켰다. 정약용은 바로 이와 같은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태어났고, 어릴 적부터 이러한 학문적 분위기를 접하게 되었다.이러한 다산에 대해서 우리는 일표이서와 여유당전서 등을 통해 그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에 대한 사상은 다소나마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러나 그의 철학 사상에 대해서는 생소한 이가 많다고 생각된다. 이에 정약용의 철학사상에 대하여 알아보는 것은 의미가 자못 크다고 생각되므로, 이를 개략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우선 그는 기존의 성리학 이론과는 다른 자신만의 논리를 전개하였다. 그래서 그의 철학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존의 성리학에 대한 밑바탕 즉 성(性)과 이기론(理氣論)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럼 이에 대한 내용을 잠간 더듬어 보자.주자는 이 우주의 본바탕인 태극을 받아들여 그것을 이(理)라고 이름하여 만물 생성의 근본원리로 삼고, 이 태극에서 생성되는 음양, 오행, 만물과 같은 현상적인 세계를 기(氣)라고 이름 붙였다. 이(理)는 모든 사물이 존재하게 하는 근본 원인과 이유이며 현실을 지배하는 법칙이다. 다시 말하면 우주를 형성하는 근본원리다. 그러므로 이(理)는 감각으로 경험할 수 없는 형이상(形而上)에 속하고, 기(氣)는 구체적인 사물 즉 현상을 가리킨다. 우주에 널리 존재하는 물질과 에너지를 통칭하는 개념으로 형이하(形而下)다.그러니까 이(理)는 우주가 존재하는 원리를 가리키고, 기(氣)는 드러나 보이는 현상 세계를 가리킨다. 현상이란 눈으로 보거나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理)는 볼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는 것인데 비하여, 기(氣)는 보거나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덧붙이면, 이(理)는 기의 근원이 되는 것이고, 기(氣)는 이(理)의 원리에 의해 생겨나는 구체적 현상이다. 이(理)란 어떤 것이 그것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이치요 본래성이며, 기(氣)란 어떤 것의 이치가 실현될 수 있는 재료 즉 물질이요 에너지다. 그러니까 이기(理氣)는 ‘원리와 그에 따른 현상’이란 개념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따라서 이기론(理氣論)은 우주의 생성 원리와 그 현상을 다루는 동양의 우주론이요 존재론이다.이와 같이, 이(理)와 기(氣)는 인간을 포함한 우주 전체, 곧 자연과 인간에 대한 존재원리와 현상을 탐구하기 위한 철학적 개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이(理)와 기(氣)를, 우주론보다는 주로 인간의 심성과 관련한 선악 문제를 해결하는 데 주력하였다.우주에는 하늘의 이치 곧 천리(天理)가 있다. 이 천리는 인간과 모든 개별적 사물에 내재되어 있다. 모든 것은 천리에 의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중 인간에게 존재하는 천리를 성(性)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인간의 성은 천리다.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간의 성, 곧 천리는 원래 ‘선하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이 성(性)이 어떤 자극을 받아 흔들려 생기는 감정 상태를 정(情)이라 한다. 하늘의 이치를 받은 인간의 본성은 이(理)이고, 이것이 움직인 감정 즉 정(情)은 기(氣)에 속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본성인 이(理)는 선하고, 그것이 흔들린 정은 악을 포함하는 것이 된다.그러면 이들 이(理)와 기(氣)는 어떤 관계에 있을까?주희는 이에 대하여, 이(理)와 기(氣)는 서로 떨어질 수도 없고[不相離], 서로 섞일 수도 없다고[不相雜] 하였을 뿐, 명확한 정의나 구분을 하지 않고 세상을 떠났는데, 그 후 중국의 학자들도 이에 대한 구체적 논의를 하지 않았다. 주자의 그러한 모호한 정의는 조선의 학자들로 하여금 다양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기제로 작용하였다. 아무도 하지 않았던 이(理)와 기(氣)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를 조선의 학자들이 앞서서 천착한 것이다. 인간의 본성과 감정이 이기(理氣)와 어떻게 관련되는가를 합리적으로 설명하고자 한, 학자간의 논쟁이 그 유명한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이다.그럼 여기서 먼저 사단칠정에 대하여 살펴보자.사단(四端)이란 유학의 인성론에서, 인간은 본질적으로 선하다는 덕목[四德] 곧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단서가 되는 네 가지를 말한다.사단은 맹자의 용어로서 맹자(孟子) 공손추편(公孫丑篇)에 나오는 말인데, 인간의 선한 본성인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 등 네 가지 단서(端緖)와 관련지어 설명한 것이다. 즉 측은지심은 남의 불행을 가엽게 여기는 마음으로 인(仁)의 단서(端緖)가 되고, 수오지심은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잘못을 미워하는 마음으로 의(義)의 단서가 되며, 사양지심은 남에게 양보하는 마음으로 예(禮)의 단서가 되고, 시비지심은 선악과 잘잘못을 판별하는 마음으로 지(智)의 단서가 된다는 것이다. 이때 ‘단서’라는 것은 인간의 마음 속에 인의예지의 선한 본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증거(실마리)라는 뜻이다.이를테면,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를 보면, 누구든지 아무런 보상을 받으려는 생각이 없이 무조건 아이를 구하려 드는데, 이것은 측은지심의 발로로서 인간의 성품이 본래 선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좌라는 것이다. 즉 타인의 불행을 보면 그것을 도우려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인간의 마음 바탕에 선한 인(仁)이 있음을 알 수 있는 단서가 된다는 것이다.칠정은 예기(禮記) 예운편(禮運篇)에 처음 나오는 것으로, 인간의 감정을 희(喜), 노(怒), 애(哀), 구(懼), 애(愛), 오(惡), 욕(欲)의 일곱 가지로 나누어 말한 것이다. 그런데 이 사단과 칠정이 이기와 관련하여 어떻게 구분되고 관계를 맺는가에 대한 문제가, 조선 성리학의 중요한 담론으로 대두되었다.사단과 칠정은 원래 별개의 것이었다. 그런데 인간의 성정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한 송대(宋代)에 와서 맹자의 사단설에 대립되는 칠정을 아울러 논의하기 시작하였다. 주자는 맹자의 사단설에 만족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맹자의 주장대로, 인간이 사덕(四德) 곧 선한 인의예지로만 채워져 있다면, 온 세상이 도덕군자로만 가득 차고 도척(盜跖) 같은 악한(惡漢)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고자 받아들인 것이 7정이다. 인간의 감정인 7정에는 선한 것도 있고 악한 것도 있기 때문이다. 사단은 순선무악(純善無惡, 순수한 선만이 있고 악이 없음)하고, 칠정은 선악이 섞여 있으므로 인간의 현실을 설명하는 데 유용하기 때문이다.그런데 앞서도 말했지만, 주자는 사단과 칠정의 관계에 대하여 명확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는 “칠정을 사단에 배속시킬 수는 없다. 칠정은 사단 속을 꿰뚫어 지나가고 있다.”고도 하고, “본디 사단과 칠정은 서로 비슷한 점이 있긴 있다.”고도 하여 일관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그래서 조선의 학자들은 사단과 칠정의 해명에 들어갔다. 우리나라의 사단과 칠정에 대한 논의는 처음에 이황과 기대승 사이에서 벌어져, 뒤에 이이가 기대승의 설을 지지함으로써 논쟁이 확대되어, 성리학의 핵심 문제로 등장하였다.그러면 여기에 대한 이황의 설을 먼저 보기로 하자.이황은 이(理)와 기(氣)는 엄밀히 구분되며 갈래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즉 사단은 이(理)의 발(發 움직임)이요, 칠정은 기(氣)의 발이라고 하였다. 이(理)도 기(氣)도 다 같이 움직인다고 본 것이다. 이른바 이(理)와 기(氣)가 다 같이 움직인다[發]는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내세운 것이다. 그리고 이(理)는 순전히 선하고 악이 없는 순선무악(純善無惡)인데 반하여, 기(氣)는 선과 악이 혼재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주장을 담은 일군의 학파를 주리파(主理派)라 한다.이에 대하여 기대승은, 이(理)는 변하지 않는 하늘의 이치(원리)이고, 기(氣)는 모든 변화의 근원을 말하는 것인데, 변하지 못하는 이(理)가 움직여서 사단이라는 감정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며, 사단과 칠정은 모두 움직이는 기(氣)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말로 말하면, 이(理)와 기(氣)를 분리하며 원리인 이(理)도 움직인다는 이황의 논리는 틀렸다는 것이다.그는 이어서 마음의 이치는 사물의 이치와 같다는 성리학의 기본 입장을 언급하며, 사물의 이(理)와 기(氣)는 서로 떨어지지 않고 작용하는데, 사람의 마음에서만 그 둘이 분리되어 작용한다는 것은 불가하며, 이(理)에 속하는 사단과 기(氣)에 속하는 칠정은 분리되는 감정이 아니라, 칠정 중의 선한 부분이 사단을 가리키는 것이라며 이황의 설을 반박하였다. 이(理)와 기(氣)는 별개의 것이 아니며, 움직이는 것은 기(氣)뿐이며 이(理)는 그 중의 선한 부분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상에서 성리학의 성과 정, 그리고 사단에 대한 대강을 살펴보았다. 그러면 이에 대한 다산의 의견을 들어보기로 하자.정약용은 먼저 도학의 중요 개념인 태극, 성, 이기 등의 개념들에 대해 전면적이고 근본적인 비판을 하고 있다. 주자는 ‘태극’을 만물 생성의 근원이라 제시하고 있는데, 정약용은 하늘과 땅이 분리되기 이전의 미분화된 상태로 형체가 있는 시작이 태극이라 하였다. 그런 면에서 태극은 초월적이고 궁극적인 존재가 아니라 분리 이전의 혼돈으로서의 전체를 태극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우주론적인 혼돈의 의미로 태극을 보는 것이다. 정약용은 태극 개념을 천지가 분화되기 이전의 상태로서 음양이 배태되는 생성과정의 시원으로 파악하며 무형의 천과 일치시키기를 거부한다.성리학 속에서는 ‘이’와 ‘기’가 우주의 모든 존재를 그 본체와 현상으로 설명하는 두 범주이며 근원적 실재라고 본다. 이에 비해 정약용은 기를 스스로 존재하는(자립하는) 물체이며, 이는 기에 붙어 있는 속성으로 본다. 따라서 ‘이’는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물에 붙어 있는 법칙 내지 조리가 된다. 이는 이데아와 현상이 별개임을 말한 플라톤의 설을 부정하고, 그것을 형상과 질료로 일원화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과 유사하다. 다산의 주장은 성리학의 주리론을 거부하는 입장이면서, 동시에 기를 근원적 존재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주기론과도 다르다. 곧 그는 이기론 자체를 거부하는 입장이다. 기존 성리학의 인성론에서는 사덕(四德) 곧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선천적인 것으로 여기고 있다. 사덕은 인간의 행위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천부적으로 갖추어진 성(性)으로 보기 때문이다.그러나 다산은 사덕은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실천적인 노력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하였다. 즉 기존의 성리학은 사단의 단(端)을 서(緖)로 보아 인의예지가 그 안에 있다는 증거로 본 것이다. 인의예지가 본래 있다는 단서 즉 측은, 수오, 사양, 시비지심은 밖에 드러난 것[端]으로 보아, 그것으로써 인간이 지니고 있는 본래의 성(性)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그러나 다산은 단(端)을 시(始)로 보아 사단은 안에, 사덕은 밖에 있는 것으로 본다. 즉 사단이 시초(기반)가 되어 이를 실행하여 후천적으로 길러진 것이 인의예지 사덕이라는 것이다. 이를 다산의 단시설(端始說)이라 한다. 사단의 마음은 인간이 나면서부터 지니고 있는 것이며, 인의예지는 그것을 닦고 확충하여 이룬 것이라 본 것이다. 즉 인의예지 네 가지는 도덕의 명칭이지 ‘성(性)’의 명칭이 아니며, ‘성’이란 오직 나에게 있는 것으로 천하에 다 통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단은 실천의 근본이요 시작이고, 사덕은 실천의 결과로 형성된 덕목이라는 것이다.그의 단시설은 단(端)을 시(始)로 보고, 인의예지를 열매로 비유하며, 근본을 마음에 둔다. 또 인의예지처럼 효제(孝悌)도 수덕(修德)의 명칭이므로, 그 완성은 바깥에 있지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였다. 성리학에서는 인의예지의 도덕성은 인간의 본성에 선천적으로 부여되어 있는 것으로서, 개인의 감정을 통제하고 기질을 억제하여 보편적 본성을 발휘함으로써 도덕성이 실현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정약용은 성품이 마음의 속성이요 본체일 수 없다는 입장에서, 인의예지가 인간의 성품에 선천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행위의 결과로서 획득되는 것이라 주장한다. 따라서 사단(四端)은 성리학의 해석처럼 인의예지의 성품이 드러나는 실마리로서의 ‘단서’가 아니라, 인의예지의 도덕성을 실현하기 위한 첫머리로서 ‘단시(端始)’라 해석하고 있다. 다산은 또 성(性)을 이(理)이자 내면의 본체로 파악한 주자의 설을 부정하고, ‘성’을 마음의 기호(嗜好) 즉 마음이 좋아하고 싫어함의 정감적 태도를 가리키는 것이며, 어떤 대상이나 가치를 지향하는 자세라 정의하였다. 곧 기호는 꿩이 산을 좋아하고, 사슴이 들을 좋아하는 감각적 기호와 벼가 물을 좋아하고 기장이 건조함을 좋아하는 본질적 기호라 생각했다. 이는 성(性)을 심(心)의 본체로 인식하는 주자학적 임장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성을 심의 속성으로 밝히고 있다. 또한 성선설의 의미도 성이 본래 순수한 것이라는 주자학의 견해를 거부하고, 선을 좋아하는 하나의 기호라고 하였다.왜냐하면, 물이 아래로 흐르고 불이 위로 타오르듯이 자동적으로 선을 행할 수 있다면, 선을 행하는 것이 자신의 노력이 쌓인 공(功)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인간에게 자유지권(自由之權) 곧 자유의지를 부여한 것이다. 결국 인간을 도덕적 주체로서 자유의지를 지니는 존재로 확인함으로써, 성리학에서처럼 본연지성이 선하다고 하는 관점을 거부한 것이다. 선은 그것을 쌓으려고 노력한 결과로 얻어지는, 자유의지의 산물이라는 것이다.그는 인간에게 두 가지 기호(嗜好)가 있다 하였다. 그 하나는 영지(靈知)의 기호, 즉 영성적(靈性的), 지성적(知性的)으로 즐기고 좋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형구(形軀)의 기호, 즉 육체적, 감각적으로 즐기고 좋아하는 것이다. 영지의 기호란 선을 바람직스럽다고 하고 악을 미워하며, 덕행을 좋아하고 더러움을 부끄럽게 여기는 마음이다. 이것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도덕적 성품이라 한다. 형구의 기호란 인간의 눈이 좋은 빛깔을 좋아하고, 입이 맛있는 음식을 즐겨하며, 따뜻하게 입고 배부르게 먹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동물도 가지고 있는 성품이므로 동물의 성품 또는 기질(氣質)의 성품이라 한다.정약용의 이러한 인성론은 인간의 성(性)을 현실의 구체적인 사물에 대한 성향, 즉 기호로 보기 때문에 성기호설(性嗜好說)이라고 일컫는다. 성리학에서는 천리가 각 사물에 부여되어 내재하는 것을 일러 성(性)이라 하고, 그 성을 다시 보편성과 특수성의 의미로 나누어 본연지성(本然之性)과 기질지성(氣質之性)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물론 성리학에서 두 가지의 성이 동시에 존재함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이기(理氣)의 측면에서 순수 ‘이’로서의 본연지성과 ‘기’와의 결합으로서의 기질지성을 구분한 것이다. 따라서 본연지성은 천리로부터 부여받은 본래적이고 순선한 성인데 반해, 이기(理氣)가 공존하는 기질지성은 선악의 가능성을 가진 현실적인 ‘성’이 되는 것이다.다산은 이러한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으로 나누어 보는 견해에 대해 반대한다. 성리학의 본연지성, 기질지성은 선악이 공존한다는 설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맹자의 성선설에 분명히 위배되는 것이다. 또한 성에는 오직 한 가지밖에 없음을 주장한다. 벼는 물을 좋아하고, 보리는 건조함을 좋아할 따름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다산은 이러한 성리학의 본연·기질지성설이 공맹의 설에 어긋나는 학설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성리학에서는 본연과 기질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선악의 존재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다. 그러나 다산은 인성에 선이 있고 악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성’이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기호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기호에 형구의 기호가 있고 영지의 기호가 있어, 선을 지킬 수도 불선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산은 성리학의 선천적 불평등설에 대해서도 반대하였다. 성리학에서는 성은 본래 선한 것인데 기에는 청탁(淸濁)이 있어서, 청한 것을 받은 자는 현인이 되고, 탁한 것을 받은 이는 어리석은 사람이 된다. 본연지성은 모든 인간과 만물이 같으나, 기질에 의해서 달라진다고 하여 선천적인 차이를 인정했다.이에 대해 다산은 현명함과 어리석음은 ‘성’의 차이가 아니라 지혜의 우열일 뿐이라 하였다. 즉 현명과 어리석음은 선천적인 성의 차이가 아니고, 후천적인 습관과 노력의 결과라 하였다. 이와 같이 다산은 인간에게는 하나의 ‘성’만 있음을 강조하였다. 다음으로 성즉리(性卽理)설에 대한 다산의 주장을 살펴보자. 성리학에서는 성즉리 즉 하늘이 준 성이 곧 이(理)라고 하여, 천리에 의해 모든 만물이 같은 ‘이’를 받아 동일한 ‘성’을 이룬다고 하였다. 그러나 다산은 하늘이 성을 부여할 때 처음부터 인간과 사물에게 각각 다른 성을 부여했다고 하였다. 만약 성이 곧 ‘이’라고 한다면, 중용에 ‘하늘이 명한 것을 성이라 한다.’고 했는데, 이 말을 성즉리에 맞추면 ‘이’가 명한 것을 ‘이’라 한다는 말이 되어 논리적으로 어긋난다고 하였다. 단순한 동어반복에 빠지는 모순이라는 것이다.또 성리학의 성즉리설에 따르면, 인간이나 사물이 동일한 성을 부여받게 된다. 그러면 다른 사물들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도의의 성을 가지게 되어, 결국 인간과 사물은 차별이 없게 된다. 그래서 다산은 본연의 성이 각각 같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람인즉 선을 좋아하고 악을 부끄럽게 여겨, 몸을 닦고 도를 지향하고자 하는 것이 그 본연이고, 개는 도둑을 보면 짖는 것이 그 본연이며, 소는 멍에를 차고 무거운 짐을 나르며 풀을 먹는 것이 그 본연이라 하였다. 오늘날로 말하면 매우 진보적인 사상이다. 다음으로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에 대한 다산의 사상을 살펴보기로 하자. 인물성동이론이란 인성(人性)과 물성(物性)이 같으냐 다르냐에 대한 논쟁이다.조선 후기 성리학이 발전하면서 인성(人性)과 물성(物性)에 대한 동질 여부에 대하여 논쟁이 발생하였는데, 이 논쟁은 권상하(權尙夏)의 문하에서 시작되었다. 인간과 동물 혹은 식물의 본성이 같다고 주장하는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과 근본적으로 서로의 본성은 다른 것이라고 주장하는 인물성이론(人物性異論)으로 나뉘었다.전자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대표 주자는 이간(李柬)이며, 후자의 대표 주자는 한원진(韓元震)이다. 인물성동론을 주장하는 성리학자들은 대부분 서울 지방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낙학(洛學) 또는 낙론(洛論)이라 하였고, 인물성이론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충청도지방에 살고 있어 호학(湖學) 또는 호론(湖論)이라고 칭하였다. 따라서 이들 사이에 벌어진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의 논쟁을 호락논쟁(湖洛論爭)이라고 한다.이러한 논쟁은 조선 후기 성리학의 한 특징을 형성하는 것이며, 비록 현실 사회의 실용적인 논쟁이 아니라는 비판을 받기는 했지만, 인성과 물성의 근본적인 문제를 다룸으로써 인간의 주체성과 도덕의식을 함양하는데 기여하였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있다.다산은 인물성이론의 입장에 있다. 기존의 인물성동이론은 모두 ‘이’와 ‘기’의 결합 여하에 따라 구별되어진다고 보았다. 다산은 이와는 달리, 성(性)은 이기(理氣)의 문제가 아니라, 하늘로부터 부여 받은 명(命) 자체가 인간과 사물은 다르기 때문에 인성과 물성은 아예 다르다고 했다. 인성과 물성이 근본적으로 같다는 성동론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였다.앞에서도 말했지만, 다산의 생각은 사람은 선을 좋아하고 악을 부끄럽게 여기는 ‘성’을 가지고 있고, 개는 도둑을 보면 짖고 똥을 먹는 ‘성’을 가지고 있으며, 소는 짐을 나르고 풀을 먹고 되새김질을 하는 ‘성’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다산은 인간과 사물은 하늘로부터 받은 ‘성’이 애초부터 다르다고 본 것이다. 다산은 경세유표를 쓴 연유를, “지금의 현실은 터럭만큼도 병통이 아닌 것이 없는바, 지금이라도 고치지 않으면 반드시 나라가 망할 것이다.”라고 하여 근본적인 개혁을 통해서만 국가와 사회가 유지될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즉 “국가 통치 질서의 근본이념을 새로 세워 오랜 조선을 새롭게 하려고 저술하였다.”는 것이다. 그는 당시 민생의 고통 원인이 말단 서리들의 중간착취와 소모에 의한 결과라 하였고, 땅덩이는 중국의 한 주(州)만도 못한데 관직의 수는 주대(周代)의 갑절이나 많아, 관리들은 쓸데없는 자리에 앉아 국고를 축내고 있다고 지적하였다.또 목민심서에서는 백성을 다스리는 지방 목민관의 치민(治民)에 대한 요령과 거울이 될 만한 마음가짐과 태도를 역설하였다.흠흠신서는 그 서문에서 “오직 하늘만이 사람을 내고 또 죽이니 인명은 하늘에 매여 있다.”는 글로 시작해 “삼가고 또 삼가는 것이 형을 다스리는 근본이다.”는 충고로 끝을 맺었다. 또 “사람이 천권을 대신하면서 두려워할 줄 모르고, 자세히 헤아리지 아니한 채 덮어두고, 모른 체하며 살려야 할 사람은 죽이고, 죽여야 할 사람은 살리고서도 태연하고도 편안할 뿐 아니라, 비참함과 고통으로 울부짖는 백성의 소리를 듣고도 구제할 줄 모르니 화근이 깊어진다.”고 하였다.이처럼 그의 일표이서에서는 한결같이 다스리는 자의 그릇됨과 백성들의 신음 소리를 그 밑에 깔고, 잘못된 정치의 일대 개혁을 부르짖고 있다.이와 마찬가지로 그의 철학사상도 당시의 성리학과는 다른 시야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해석을 가하고 있다. 그는 근본적으로, 하늘이 내려준 것보다 인간 자신의 노력과 인간 자체의 실존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개량주의적인 그의 시각은 실학과 서학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변하지 않으면 썩고, 썩으면 종국에는 죽게 된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우리가 다산의 철학사상을 다시 곱씹어 봐야 하는 연유는, 혼란의 시대를 헤쳐가려면 어떠한 자세로 살아가야 할까를 고민하고, 그에 대한 철학적 자세를 정립하려 했던 그의 울림이 지금 우리 앞에 절실히 와 닿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