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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5월 5일 어린이주일 예배 설교
○ 마태복음 19장 14절. 어린 아이들을 금하지 말라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학생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들이 드리는 이 예배를 받아 주시길 원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뜻을 알았을 때 여러분들의 어린아이들에 대한 마음가짐과 행동이 주님과 일치되기를 축복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람을 외모로 구분하는데 익숙해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들, 뚱뚱한 사람과 날씬한 사람, 잘생긴 사람과 못생긴 사람, 큰 사람과 작은 사람, 많이 배운 사람, 못 배운 사람, 비장애인과 장애인, 부자와 가난한 자, 권세있는 자와 갖지 못한 자등 여러 부류로 사람들을 구분합니다. 중동권에서는 대체로 여인들이 권세가 약합니다. 아이들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그들은 여인들과 아이들의 의견을 완전히 무시함은 물론 그들의 마음의 소원까지도 역시 무시합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역시 여자들과 아이들은 무시받기 일쑤였습니다. 그런 흐름들이 그 시대에 지배적일 때에 교회들 역시도 그런 흐름을 따라가기 싑습니다. 하지만 교회가 진리에 서 있다는 사실은 곧 교회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데 있어서 세상의 가르침보다 더 결정적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교회의 교회됨의 권위는 세상의 가르침을 받고 세상의 인정을 받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고 진리 가운데 온전히 행하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고난과 십자가를 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역사적으로 아이들은 온전히 자라지 못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 표현이 아주 강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대체로 밝습니다. 그리고 떠들썩합니다. 아이들이 있는 교회들은 활기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은 그런 아이들이 그렇게 활기차게 행동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끄럽다고 야단을 칩니다.
어떤 사람이 공장엘 갔는데 그 공장은 매우 조용했습니다. 남자들만 일했기 때문에 대체로 많은 말을 하지 않았고 또 말을 해도 대부분 조용히 말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특별한 주문이 들어와서 열 명 정도가 되는 아주머니들이 그 공장에 몰려왔습니다. 그때부터 공장이 난리가 난 것처럼 떠들썩하게 되었습니다. 순식간에 조용하던 곳이 시장판처럼 된 것입니다.
그 공장에 들어오면서도 왁자지껄했던 아주머니들이 일하는 내내 서로 웃어가면서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하자 그 공장에서 먼저 일하던 노인분이 그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는 그 아주머니들의 시끄러움에 대하여 불만스러움을 계속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그 공장의 팀장이 가서 아주머니들에게 약간 자제해줄 것을 부탁했지만 아주머니들은 잠깐 동안 조용하다가 원래대로 돌아갔습니다. 그것이 어쩌면 여자다움이고 그들다움일 수도 있겠지만 과묵한 성격을 가진 남자분은 그것을 괴로워했던 것입니다.
아이들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답게 시끄럽고 활기찬 것이 정상입니다. 사랑은 그 사람이 있는 그대로를 받아줍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의 마음에 여유가 없다면 사람을 만나는 것은 괴로움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 앞으로 몰려 들어온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들이 비록 자기들의 부모들의 손에 이끌려 왔을 지라도 아이들끼리 만났을 때 얼마나 신이 났겠습니까? 그러니 예수님이 말씀 전하시는 것과 사람들이 그 말씀을 듣는 것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 제자들은 아이들이 예수님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막았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은 관심은 예수님이 자기의 자녀를 위해 안수기도 해주기를 바라고 데리고 온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들의 작은 소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제자들은 아이들의 소란스러움으로 인해 아이들을 막았습니다.
오늘날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교회의 중직자들이나 노인 성도들은 교회의 어린 아이들의 소란을 견디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교회야 작아서 그렇다지만 도시의 큰 교회들은 많은 주일학교와 학생부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그래서 많은 주일학교 학생들이 교회에 다닙니다. 그런데 그들이 있는 곳은 요란합니다. 떠들썩하고 에너지가 넘칩니다. 그러다보니 잠시도 조용할 틈이 없습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교회의 중직자들이나 어른들은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것이 아니라 어른스럽게 행동하기를 요구합니다. 그래서 대놓고 아이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말합니다. 그 순간에 아이들은 교회에 실망합니다. 이것이 아이들로 하여금 교회를 떠나게 만드는 이유가 됩니다. 그래서 어른 예배와 아이들 예배를 분리시켰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맞는 예배를 드리게 한 것입니다.
아이들은 떠들썩한 만큼 축제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축제가 있는 곳을 쫓아다닐 정도입니다. 이태원참사도 그래서 일어난 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젊은이들이 그곳으로 몰려갔기 때문입니다. 누가 오라고 한 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떠들썩하게 축제를 한다고 하니까 몰려간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무질서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서로 밀고 밀리면서 계단을 뛰어 내려가다가 사고가 났습니다.
사람이 너무 많이 포화상태가 되면 사고가 나기 쉽습니다. 그래서 시설을 늘리거나 아니면 나누어서 모이게 되지만 축제장은 그 특징이 많이 모일수록 좋은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많이 모여도 그들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크고 작은 사고들이 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린 아이들이나 학생들, 그리고 청년들은 자기가 사고날 거라고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고날 위험을 생각하고 제재하는 어른들을 싫어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고 있는 일을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두길 원합니다. 하지만 내버려둔 결과가 이태원 참사같은 참사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책임을 젊은이들은 어른들에게 묻습니다. 물론 반대편 정치가들의 악한 의도가 숨어있기는 하지만 자기들의 무질서한 행동에 대하여 뉘우치는 젊은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이런 위험 때문에 저지를 당하기는 하지만 젊은 시절은 그런 어른들의 조언을 듣기 싫어합니다. 심지어는 자기들의 안정과 미래를 위해 좋은 말을 해주는 사람을 향해 “꼰대”라고 하면서 그 사람의 가치를 비하시키고 심지어는 적개심을 갖습니다. 마음껏 놀고 싶은데 방해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어른들로부터 빨리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사랑을 사랑으로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예배에 참석한 우리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젊은 날에 자기 속에 넘치는 에너지를 분출하는 것이 좋기는 하지만 어른들의 말에 대하여 귀를 기울이고 일어날 일에 대하여 대처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아름다움의 조화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특히나 예수님의 몸인 교회는 더욱더 그들이 예수님의 질서 안에서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럴 때 다음세대가 윗사람을 존경하면서 아름답고 창의적이며 발전적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제자들이 어린아이들이 그렇게 요란하고 소란스럽게 몰려들자 그 아이들을 제재하고 막고 꾸짖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보셨습니다. 그것을 보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하시고”
여러분! 예수님이 아이들에 대하여 가르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첫 번째는 아이들을 용납하라는 것입니다. 용납한다는 것은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받아들이는데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들의 개성과 특성과 기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들의 의견을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말을 무조건 다 들어주는 것 역시 사랑은 아닙니다. 들어주던 들어주지 않던, 허락하건 허락하지 않건 간에 그들의 유익을 위한 행동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것이 하나님의 영광이며 기쁨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어린아이들이나 젊은 사람들을 용납하는데는 온유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성령의 열매인 온유함은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용납할 수 있게 됩니다. 에베서소서 4장 2절을 보면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하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이 말씀을 보면 아이들을 용납하기 위해서는 겸손한 마음과 온유한 마음이 필요하며 그런 마음의 바탕 아래 오래 참음과 사랑으로 대해야 함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누가 이런 겸손과 온유한 마음으로 오래 참으면서 사랑 가운데서 아이들을 용납하겠습니까? 바로 교회인 여러분들이 해야할 일입니다. 사도 바울이 권고하는 대상이 바로 교회입니다. 여러분 온유한 마음으로 서로 용납하기를 바랍니다. 특히나 아직 정서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나 덜 만들어진 어린이들이나 학생들에 대하여 여러분들이 용납함으로 받아들이십시오. 후에 그들이 여러분들을 용납하는 때가 올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 역시 고린도교회에게 자신을 용납해달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 1절입니다. “원하건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하건대 나를 용납하라”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을 용납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불러 한 사람, 한 사람 안수를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거기를 떠나가셨습니다.
예수님이 어린아이에 대하여 말씀하신 두 번째는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을 금하지 않으시고 다 받아들이셨습니다. 제자들에게와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도 역시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린아이들이 교회에 나오는 것을 막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한 아이에게 복을 빌어주는 것과 실족하게 하는 것으로 인해 인류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르고 계십니다. 한 아이를 말로 실족하게 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그 아이가 가족이라도 그렇습니다. 먼 훗날에 그 아이가 자라서 하나님을 대적함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지옥으로 끌고갈지 어떻게 압니까? 히틀러나 스탈린이나 김일성처럼 말입니다.
반대로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의 자식이나 또 다른 아이들에게 빌어준 복이 그 아이에 일생을 복되게 할지 어떻게 알수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제자들처럼 천국에 오는 아아들을 막을 수도 있고 예수님처럼 천국에 들어오는 아이들에게 안수를 해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집사님은 아이들이 등교할 때마다 머리에 안수기도를 하고 보낸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떤 부모들은 아이가 늦게 일어나 미적거리면서 학교에 지각할 지경에 이르러 아침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악담을 퍼부을 수도 있습니다. 아침마다 복을 받는 아이와 아침마다 저주섞인 소리를 듣는 아이 가운데 어떤 아이가 참신하고 아름다우며 세상을 밝혀주는 복이 될까요?
하나님은 자신이 택하신 사람들에게 밝는 미래를 제시하십니다. 그것이 아이들일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어른이라고 귀하게 여기시고 어린아이라고 업신여기지 않으십니다. 어린아이들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그 아이들이 하나님 나라와 미래에 임할 지도자가 될 것입니다. 또한 세상을 밝히는 사람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이 다 하나님을 알고 경외해야 합니다. 세싱 엄마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에 자기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인 여러분들은 다릅니다. 자녀들에게 하나님과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아이들이 온전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잘못된 열심은 제자들처럼 예수님께 오는 아이들을 막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아이들을 실족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어 후에는 그 아이들이 천국으로 들어갈 사람들을 막는 사람이 됩니다. 아이들이 예수님께 오는 길을 막지 마시고 오히려 열어주시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길 축복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어린아이에 대한 세 번째는 천국이 이런 자들의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이 어린아이 같은 사람들의 것이라고 여러차례 말씀하십니다. 천국은 어린아이들처럼 있는 그대로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예수님을 향해 나오며 예수님을 구하는 사람들의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천국을 구하며 예수님을 구하는데 있어서는 어린아이들과 같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부모들과 함께 나온 아아들을 일일이 안수하시고 그곳을 떠나셨습니다. 그 아이들은 예수님의 복을 받은 것입니다.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천국의 미래가 바로 예수님을 찾는 아이들에게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십시오.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불러가면서 기도해주십시오. 비록 작은 인원밖에 안되는 우리 학생부지만 하나님은 여러분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실 것이며, 또한 여러분들을 통해 이 아이들을 하나님 나라 일꾼으로 자라는데 도움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학생들에게 관심을 가지시고 사랑하시며 기도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럴 때 악이 만연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되어 세상을 밝히고 복되게 하는 하나님 나라의 일꾼들이 될 것입니다.
천국이 바로 예수님을 믿음으로 찾아온 이들의 것이며, 또한 그들처럼 예수님을 구하는 사람들의 것이기에 예수님은 그들에게 복을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아이들을 용납하시고, 어떤 이유에서든지 간에 아이들이 예수님께 나오는 것을 금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신앙생활을 잘 하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도록 격려해주십시오. 따뜻하게 손이라도 한 번씩 잡아주시고, 학생예배 드리러 오는 아이들들을 위해 간식이라고 한 번씩 사주시고, 또 아이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주십시오. 하나님 나라가 바로 이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미래가 바로 이들에게 달려있으며 세상이 밝아지느냐 어둡게 되느냐가 바로 이들에게 달려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오늘 어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는 우리 학생들을 위하여 안수하는 시간을 갖기를 원합니다. 예배 후에 잠깐 동안 안수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곘습니다. 여러분들도 역시 우리 학생들을 위해 함께 축복해주십시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의 기도를 받으시고 이들에게 천국을 주시며, 이 땅에서 언제나 함께 하시면서 이들의 앞날에 복을 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와 복이 여러분들 모두에게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