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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트]부처님 오신 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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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님! 빨리 좀 가주시면 안 될까요.” “차가 밀리네요. 다 왔어요.” 아침부터 차가 밀린다. 그 중 마수걸이 손님으로 탄 젊은이가 무슨 급한 일이 있는지 재촉한다. 젊은이가 사찰에 간다고 하니 기특하게 느껴졌다. “저기 용화사 정문 앞에 내려주세요” “네, 고맙습니다.” 손님에겐 아무리 젊은 사람이라 해도 반말을 해선 안 된다. 물론 그렇지 않은 손님도 있겠지만, 친구 윤 기사는 딸 같은 손님에게 반말했다가 불친절 기사라고 신고하는 바람에 벌금을 물었다. 지금 손님은 막내 아들 같은 젊은이다. 내리려고 하던 젊은이가 주머니를 뒤지더니 낭패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기사님! 돈이 조금 모자라는데 카드 긁으면 안 될까요?” 미터기 요금은 7,500원에 서 있다. 어느 날은 마수걸이에 카드를 받았더니 종일 카드 내는 사람만 걸렸었다. 꼭 그래서일까만, 될 수 있으면 마수는 현금을 받으려고 하는데 오늘은 어째 출발이 신통찮다. “돈이 얼마나 모자라는데 그래요?” “오천원 밖에 없어요.” “하는 수 없지요. 그거만 주고 내려요.” “정말 죄송합니다. 부처님 복 많이 받으세요.” “고맙습니다. 젊은이에게도 부처님의 자비와 광명이 깃들기를 빌게요.” 어차피 일진이 나빠서 그리된 것 2,500원 더 받자고 카드를 받을 수도 없고 싫은 소리 해봐야 소용없을 것 같았다. 젊은이는 내리기 무섭게 헐레벌떡 뛰어간다. 첫 손님이 잘 걸리면 그날 운이 좋을 것이란 예감으로 일을 시작하고, 그렇지 않으면 재수 없게 생겼다고 투덜대며 일을 시작한다. 운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기분 좋은 손님이 마수걸이를 해주면 그날 장사가 잘 되는 때도 있다. 반대로 산적두목같이 생긴 사람이 첫 손님으로 타면 영 기분이 찜찜하다. 그런 날은 장사도 덜 된다. 지나고 생각하면 첫 출발을 얼마만큼 상큼하게 했느냐에 따라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 같이 운전해서 먹고 사는 사람들을 보고 운수업 하는 사람이라고 하는 데 말이 좋아 운수업이지 그냥 운전사라 불렀으면 좋겠다. 말 그대로 운에 따를 수밖에 없어서 운수업이라 부르는 걸 거다. 잘 굴러가던 바퀴가 갑자기 펑크가 나질 않나, 엉뚱한 차가 와서 들이받질 않나, 혼자서만 잘해서는 안 된다. 한마디로 운이 따르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이다. 그래서 조심조심 또 조심하는 게 우리 운전사 들이다. 젊은이를 내려주고 근 20여 분이 지나도 손님이 타질 않는다. 부처님 오신 날이어서 모두 사찰에 가기 위해 몸을 정갈하게 하고 자중하는 것일까. 누가 나에게 무슨 종교를 믿느냐고 물으면, 숭배하는 종교는 없지만, 불교 쪽에 가깝다고 말한다. 그것은 어려서 어머님을 따라 쌀자루를 지고 절에 올라다닌 기억 때문일 거다.요즈음도 등산 후에 사찰이 보이면 들려서 어머님을 그리워하고 삼배를 올린 다음 내려오곤 한다. 또 그런 날은 기분이 날아갈 것처럼 좋다. “어쩌다 생각이 나겠지. 냉정한 사람이지만.” 갑자기 내 상념을 깨트리고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패티 김의 노래, ‘이별’이. 나는 소리가 어디에서 나는 가 하고 서행하면서 살펴보니 조수석 바닥에 떨어져 있는 핸드폰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멀리멀리….” 그 와중에도 노래는 계속 흘러나오고, 스마트폰을 한참 만지작거렸으나 소용이 없다. 마음이 급해졌다. 조금 속도를 높여 용암동 지구대를 찾아갔다. “아니 이 사장님 아니십니까?”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니 지구대장이 앉아 있다가 호들갑을 떨며 일어섰다. 나는 장사가 잘 안되든지 하면 가끔 지구대 마당에 차를 세워놓고 들어가 커피도 한 잔 얻어 마시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듣고 하면서 쉬곤 하는 곳이다. 그런데 이곳 직원들이 어찌나 친절한지 언제 봐도 정월 초하루다. “사장님 커피 한잔 드세요.” “대장님! 저 운전사에요. 사장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아무나 개인택시를 굴리나요. 우리는 이런 차 못 굴려요. 사장님!” 지구대장이 커피를 건네주며 농담 삼아 나를 반긴다. 이 용암지구대와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 지난해 봄이었다. 국제 테니스장 앞에 손님을 내려주고 출발하려는데 ‘꽝’하는 소리가 들렸다. 구닥다리 갤로퍼가 신형 소나타를 들이받은 것이었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사고를 내면 그 후속조치를 하게 마련인데 무슨 일인지 갤로퍼가 후진하더니 그대로 달아나 버리고 만다. 나는 119에 전화를 걸었고 환자 구호도 도왔다. 출동한 용암지구대 경찰관에게 목격한 사실을 모두 진술했다. 결국 뺑소니범은 검거되었다. 상장과 포상금 50만원이 나왔다. 그것은 순전히 공돈이었다. 그 돈을 가지고 그날 제일 먼저 현장에 출동한 용암지구대를 찾아갔다. 이 돈은 내가 번 돈이 아니니 여기 직원들 간식이나 사 먹으라고 했더니 대장님 이하 전 직원들의 눈이 등잔만 하게 커진다. 우리 대한민국 경찰은 국민을 위한 경찰입니다. 국민으로부터는 어떠한 돈도 받아서는 안 됩니다. 라며 한사코 거절한다. 억지로 30만원을 집어 던지다시피 하고 나왔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는 그 돈을 어느 장애인 단체에 기부했다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지구대장이나 직원들은 내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대장님! 스마트폰을 하나 주웠는데 열 줄을 몰라요. 임자 좀 찾아주세요.” “아 그래요?” 스마트폰을 한참 만지작거리더니 어느 곳으론가 전화를 거는 것 같았다. 이윽고 통화하는데 옆에서 들어보니까 조금 전에 내린 그 젊은이가 분명했다. 나에게 전화기를 건네주며 통화를 하라고 한다. “기사님! 고맙습니다. 저는 폰 잊어버린 줄 알았어요. 택시 요금도 깎아주시더니 폰까지 찾아주시네요. 이 고마움 어떻게 갚아야 하지요?” “당연한 일을 했어요. 고마움은 무슨….” “그러지 마시고 통장번호 좀 불러주세요.” “아니 무슨 통장 번호를?” “그냥 있으면 제가 미안해서 안 되겠어요.” “그럼, 농협 012-3456-7890 이수창이에요.” “기사님 10만원 입금할게요. 폰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곧이어 입금되었다는 문자 메시지가 울린다. 나는 농협으로 달려가 그 돈을 찾아 보탑사로 향했다. 길가에 매달린 연등에 어머님 모습이 어른거린다. | ||||
첫댓글 요즘 같이 각박한 세상에 그렇게 좋은 택시 기사 아저씨가 있다는 것이 흐뭇합니다. 나누고 베풀며 사는 사람에게는 덕이 생긴다는 부처님의 자비로운 말씀이 전해지는 글 잘 읽었습니다.
이번에도 박종희 선생님이 수고해주셨네요. 고맙습니다.
남에게 베풀고 살아야 하는데 그게 쉽지않네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덕을 쌓으면 하늘이 복을 준다더니 정말 그러네요. 콩트인데 진짜 일어났던 이야기처럼 생생하네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방주 회장님!
아무나 덕을 쌓을 수는 없나봅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야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읽어주시고 좋은 말씀까지 해주시니 더욱 고맙습니다.
박순철 선생님,
기사님에게 전해진 그 돈이 우리 진천 보탑사로 왔네요 ㅎㅎ 더 반가운 마음 ~~~제 주머니로 들어온 것도 아닌데
재미있게 잘 읽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ㅎ ㅎ ㅎ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