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장수가 전쟁터에 나갈 때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는 것은 적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인간은 문화·문명이 발달하면서 몸을 보호하는 장신구가 개발되고 발전되어 왔다. 원시인은 맨발로 다녔다. 내가 어릴 때만 하더라도 짚신을 신고 다니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다가 고무신이 등장하고 운동화가 나타났다.
사람이 신발을 신어서 발을 보호하고 있다. 신발을 신지 않으면 발에 어떤 상처를 입을지 모른다. 신발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구두, 운동화, 등산화, 조깅화, 고무신 등이 있으며 종류와 값도 천차만별이고 용도에 따라 편리한 신발을 신는다.
나는 한때 마라톤에 푹 빠져 전국을 누볐다. 마라톤화는 가벼우면서도 탄력이 우수한 신발로 장거리를 달리는데 신는다. 어떤 신발을 신고 뛸까 고민도 했었다. 그럴 때 선수들의 신발을 보고 선택하기도 한다. 당시에 이봉주가 신고 뛰던 신발이 아식스였다. 그 신발은 일본 제품으로 이봉주를 위한 한 켤레만 특수 제작한 신발이라고 한다. 이봉주의 체격 조건을 고려하여 만들어진 고가품의 신발로 광고 효과가 엄청나게 컸다고 한다.
과거 마라톤을 했을 때 이봉주의 신발을 보고 오로지 아식스 신발을 신고 뛰었다. 보통 신발보다 서너 배 비싸며 마라톤을 다섯 번 정도 완주하고 나면 교체해야 했다. 그렇게 뛰고 난 신발은 보기에 멀쩡해도 탄력이 떨어져서 쉬이 지치며 발에 부상이 따르기도 한다. 그런 신발은 연습용으로 돌려 짧은 거리를 달리며 연습할 때 사용한다.
옛날에는 소를 방목하여 스스로 풀을 뜯게 했다. 어릴 때 소 목동으로 소의 등에 타고 들로 산으로 다녔다. 소 등에서 더러는 잠이 들기도 했으며 등에서 서서 가기도 했다. 집과 산야를 오가며 소를 타는 재미로 소고삐를 잡았으며 소와 정이 들기도 했다. 소는 발굽에 신발을 신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말은 신발을 신는다고 한다.
도시 생활에서 승마장이 눈에 띄었다. 말을 타고 싶은 욕망이 간절하면서 말에 관심이 갔다. 말을 타고 금호 강변을 신나게 달리고 싶었다. 어느 날 승마장을 방문하여 알아보니 본인 소유의 말이 있어야 외각에 나가 달릴 수 있다고 했다. 실망스러운 마음으로 돌아왔지만, 승마에 대한 미련은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말은 신발을 신는다고 했다. 소에 비해서 많이 뛰니까 발을 보호하기 위해서 신발에 해당하는 U자 모양의 ‘편자’를 발굽에 부착하며, 일 년에 한두 번 갈아 끼운다고 한다. 딸그락거리는 말발굽 소리가 듣기만 해도 가슴이 뛰고 뿌듯한 기분이 드니 말이다. 지금도 승마의 꿈과 희망은 굽히지 않고 있다.
서부 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말타기와 총쏘기이다. 말이 전력 질주하며 딸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말 등에 탄 사람과 달리면서 총을 쏘는 모습을 보면 충동이 일어나기도 한다. 당시에 그것이 뺏고 빼앗기는 그들의 삶이었으리라. 그런데 그게 멋있어 보이며 부럽기도 하다.
오늘 삶의 멋은 무엇일까? 자동차를 타고 신나게 질주하는 것일까. 아니면 독수리처럼 팬텀기를 타고 하늘을 나는 것일까. 흘러가는 덧없는 세월(크로노스)에 어떤 시간의 화살을 과녁을 향하여 실어 보낼까. 마침 넷플릭스의 영화에서 딸그락거리는 말발굽 소리가 멀어지면서 막이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