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기시대·청룡사 铁器时代 · 青龙寺遗址
출처: 중국 고고학 소스 : 동북아역사문물연구원
▲ 청룡사에서 당나라 석경당 조각이 출토되었습니다.산시성 시안시 톄루먀오촌의 북쪽 고지, 즉 탕스러유위안, 탕창안시 신창방의 남동쪽 구석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1973년부터 1980년까지 중국 사회과학원 고고학 연구소는 여러 차례 조사와 발굴을 수행했으며 기본적으로 사원의 범위를 조사했습니다.청룡사의 전신은 수나라의 영감사로 개황 2년(582)에 창건됐습니다.
▲ 청룡사 터는 당초 무덕 4년(621)이 폐사되고 용삭 2년(662)에 관음사로 복립되었으며, 경운 2년(711)에 청룡사로 개칭되었습니다.회창 5년(845) 무종(武宗)이 불사를 훼철하면서 '내원(內園)'으로 수용되었다가 이듬해 5월에 복구하여 호국사(護國寺)로 개칭하였으나 청룡사(靑龍寺)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습니다.
북송(北宋) 원우(元祐) 원년(1086)에 절이 남아 있다가 명(明)대에 이르러 폐사(废毁)되었습니다. 청룡사의 면적은 신창방의 4분의 1을 차지하며 동서 길이는 500여m, 남북 폭은 260m에 달합니다.
현재 절터는 북쪽의 남북 폭 120~170m, 동서 길이 500m의 고지 1단만 보존되어 있습니다.발굴 결과, 사찰의 건물은 대부분 서부에 있었으며, 마당 터는 나란히 2기가 발견되었는데, 탑, 전, 회랑 등의 터가 있었다고 합니다.
▲ 청룡사 터에서 출토된 기와사 동부는 지형이 가장 높으며, 건축유적은 발견되지 않아 문헌에서 말하는 정원부분일 수 있습니다.절 주변에는 담장 유적이 일부 남아 있고, 북쪽 담장 한가운데에는 산문 터가 하나 남아있습니다.
출토유물은 다량의 벽돌 등 건축자재 외에도 석불잔괴, 금소동불, 은소불, 삼채도불잔편, 소도불탑 및 대화5년(831) 두문수립 석등대 경당 등이 출토되었습니다.
성당 이후 청룡사는 밀교파의 주요 도장이 되었고, 많은 고승들이 이곳에서 설교를 했습니다.일본, 신라 등지에서 장안으로 유학을 간 스님들은 밀교를 배우며 일본 불교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청룡사는 중일 문화 교류사에서 큰 역할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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