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쯤 눈을 감은 구멍가게 반백머리에 한가롭게 매달린 햇살들 뽀얗게 먼지 앉은 과자봉지들이 구시렁거리며 떠오른다 먼지털이를 들고 고개를 까닥거려주던 할머니가 졸리운 눈 속으로 들어가더니 연둣빛 바구니에 복숭아를 담아 온다 눈이 침침한 할머니의 지팡이를 따라 더듬더듬 밝은 길이 만들어지고 한쪽이 기운 평상에 앉아 가끔씩 다리를 긁으며 파리를 쫓던 할아버지와 파리는 실은 놀이에 집중한 듯 아주 천천히 잡는 시늉을 하고 아주 천천히 도망가는 시늉을 한다 제삿날 생율을 치거나 어느 저문날 발뒤꿈치의 굳은살을 깎아내는 데 쓰였을 나무손잡이 달린 반달칼을 들어 할아버지가 복숭아를 가른다 복숭아 살을 조금씩 베어물고 아주 오래 씹는다 가끔씩 파리가 주름진 얼굴에 앉고 그들은 꼭 복숭아 한개씩만 반쪽으로 갈라 나누어 먹는다 마주 앉아서 이것은 동쪽으로 뻗은 가지에서 딴 것이 분명하다는 둥 이것은 서쪽 가지의 것이라는 둥 바람 많이 분 날이 너무 많았다는 둥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을 법한 연둣빛 바구니를 사이에 두고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파리 한마리가 복숭아 씨앗에 아로새겨진 요철 점자를 읽는 사이 뒤꼍 복숭아나무 시름시름한 가지를 매만져주면 물관 속 깊은 곳을 지나는 도톰도톰한 말들이 만져진다 아직 덜 여문 복숭아 열매 속에서 복숭아나무와 노부부와 나와 파리 한마리가 고요한 필담(筆談)을 나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