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민간단체 '미등록 이주배경아동 공적확인' 맞손으로 드러난 절박한 현장
"인도적 인권 보호" vs "불법체류 우려·국민 정서"… 갈등 해소를 위한 법적·사회적 합의 시급
[배석환 기자]=태어났으나 행정 기록에 올라가지 못하고, 아파도 병원에 가기 꺼려지며, 학교 울타리 안에서도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출생 미등록 이주배경아동'을 향한 지자체와 민간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최근 경기도가 민간 구호단체들과 손을 잡고 이들을 돕기 위한 '공적확인제도' 확산에 나섰으나, 이 사안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인도주의적 아동권리 보장의 당위성과 국가 주권, 불법체류 방지, 국민 정서라는 현실적 우려가 팽팽히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민관이 손잡은 '최소한의 존재 확인'과 현장의 실태
지난 8월 7일, 경기도청 북부청사에서는 의미 있는 업무협약식이 열렸다.
경기도가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천주교 서울대교구 이주사목위원회 등 4개 주요 민간단체와 ‘출생 미등록 이주배경아동 공적확인제도 민관 협력 업무협약’을 체결한 것이다.
‘공적확인제도’는 부모의 체류 자격 문제로 공식적인 출생신고조차 할 수 없는 이주배경 아동에게 지자체가 "이 아이가 실제로 우리 지역사회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공적으로 확인해 주는 제도다.
비록 이 확인증이 합법적인 체류 자격이나 국적을 부여하지는 못하지만, 최소한 보육·의료·복지 서비스와 연결될 수 있는 행정적 고리 역할을 한다.
경기도 내 10개 시군에서 발급된 공적확인증은 올해 3월 말 59건에서 6월 말 기준 144건으로 144% 증가하며 높은 현장 수요를 입증했다.
협약식에 참석한 조민선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사업부문 총괄 부문장은 "최근 미등록 이주배경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놀다가 다리에 대형 상처를 입는 중상 사고를 당했으나, 법적 신분이 없어 학교 안전공제회 보험 혜택은커녕 건강보험조차 적용되지 않았다"며 "결국 긴급 지원으로 치료를 마쳤다"고 현장의 절박함을 증언했다.
인도적 당위성 vs 불법체류 자극 우려와 조세 형평성
이 사안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는 양방향의 시각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우선 아동권리 단체와 전문가들은 유엔 아동권리협약 가입국으로서 "부모의 신분과 무관하게 모든 아동은 태어난 즉시 등록되고 보호받아야 한다"는 '아동 최선의 이익 원칙'을 강조한다.
기본권 사각지대에 노출된 아이들을 방치할 경우, 학대나 범죄 노출은 물론 향후 성인이 되었을 때 더 큰 사회적 갈등과 비용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반면, 법적·정책적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미등록 이주민과 아동에게 법적 구제책이나 복지 혜택을 대대적으로 부여할 경우, 불법체류나 편법 입국을 오히려 자극하고 유인하는 '원인 제공(Pull Factor)'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또한 내국인 소외계층조차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상황에서, 법적 절차를 위반한 체류자의 자녀에게 국민 혈세 기반의 혜택을 제공하는 것에 대한 형평성 논란과 국민적 반발감도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이다.
법적 충돌, 외교적 복잡성, 그리고 입법의 한계
국회와 정부 차원에서 입법이 신속히 이루어지지 못하는 배경에는 복잡한 법적·정책적 난제가 자리 잡고 있다.
출입국 관리 및 체류자격 부여는 국가 주권의 핵심 영역으로, 현행 출입국관리법의 대원칙(불법체류자 단속 및 퇴거)과 인도적 구제안 간의 정면충돌을 조정하기가 용이하지 않다.
아울러 해외 거주 한인 2세(코피노 등) 구제 문제 역시 상대국의 법 체계, 친생자 관계 확인을 위한 DNA 검사 및 법적 인지 절차의 입증 한계, 외교적 마찰 우려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게다가 많은 국민이 '출생등록'을 곧 '한국 국적이나 합법 체류자격 부여'로 오인하는 사회적 오해 역시 입법 추진의 수문장 역할을 하고 있다.
단순히 정부의 '무관심'이나 국회의 '태만'으로 단정 짓기보다는, 관계 부처 간(법무부,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등) 시각차와 사회적 공감대 부재라는 한계를 함께 직시해야 하는 이유다.
'출생기록'과 '체류자격'의 분리를 통한 성숙한 합의 필요
지자체와 민간의 자발적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한 만큼, 이제는 중앙정부와 국회가 공론의 장을 열고 정교한 법적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
사회적 갈등 해소를 위한 3대 정책 방향
'출생 사실의 단순 기록'과 '체류자격 및 국적 부여'를 엄격히 분리해서 부모의 법적 신분과 무관하게 아동의 존재 자체를 행정적으로 기록하는 보편적 출생등록 시스템을 도입하되, 이것이 자동으로 합법 체류권이나 국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하여 대중적 우려를 해소해야 한다.
정교한 신원 검증과 단계적 구제안을 마련으로 인도적 지원을 확대하되 불법체류 악용을 방지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동시 구축하는 균형 잡힌 입법이 필요하다.
내국인 복지와의 균형을 유지하며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 국민적 설득을 바탕으로 사각지대 방치가 가져올 장기적 사회 비용을 최소화하는 국가적 결단이 요구된다.
아동의 기본권 보장이라는 인도주의와 국가의 법치주의·주권 수호라는 두 가치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사회적 갈등을 방치하지 않고 성숙한 합의를 도출해 내는 국가적 역량이 절실한 시점이다.